던전마스터. 일어나실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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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9.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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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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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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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첫 가챠는 보라색맛이 났어

DUMMY


[마법기사 엘리나의 시련을 시작합니다]

[메인 퀘스트 : 마법 기사 엘리나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고, 귀족으로서 가문을 복권시켜라]


“오오! 본격적이잖아?”


오솔길 위로 공중에 문자가 출현했다.


제법 그럴듯한 굵은 필기체로 표시된 퀘스트 메시지는 마치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프롤로그를 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길을 따라 다가오는 기마에 승마한 집단을 바라보았다.


저기에 엘리나가 있는 것일까?


“아니, 잠깐만···.”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스토리 체험형인가?”


아니다. 방금 눈앞에 나타난 글씨에 쓰여 있지 않았던가.


마법기사 엘리나의 시련이 시작된다고.


엘리나를 보호하라고.


엘리나 카드를 선택했을 때 분명 팝업창이 있었다.


그것이 시련을 시작할지 물어보는 창이었으리라.


불찰이다.


좀 더 신중하게 진행하면 좋았을 것을···.


꿀꺽. 마른 침이 넘어갔다.


이미 코앞까지 다가 온 기사들에게 무슨 말을 하면 좋단 말인가?


“안녕하세요!~”


결국 임기응변이다.


기사들은 번쩍거리는 은빛의 철제 갑옷을 입고 있었다.


그들이 탑승한 말도 투구를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착실한 기사 집단으로 보였다.


엘리나의 카드에는 분명 마법기사로 적혀있었다.


이들 중에 엘리나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선두에 걷던 남자가 주먹을 쥔 채 들어 올리자 후열의 기마들이 정지했다.


일단 적의가 없음을 알리기 위해 양 팔을 벌리고 흔들었다.


나의 모습에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무엇인가 이야기를 주고받는듯했다.


이윽고 한 기사가 기마를 몰고 다가왔다.


“누구냐? ··· 이 숲에 무기도 없이 혼자서? 어디 나라 사람이지? 소속을 밝혀라.”


다행이었다.


“댑!···.”


말은 통한다는 것에 안심하며 ‘대한민국이요’라고 말할 뻔 했다.


간신히 입을 틀어막으며 멈췄지만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수상쩍은 듯 기사가 허리춤에 있는 검에 손을 올렸다.


다급해진 상황에 나는 일단 서둘러 생각나는 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 저는 지현···. 아니, 타미엘이라고 합니다. 그, 엘리나 씨를 만나러 왔는데요. 혹시 엘리나 씨는 계시나요? 아······. 망했다.”


최악이다.


아니 최악을 넘어 혐오스러운 대답을 하고 말았다.


친구 집에 놀러가 친구가 있는지 묻는 초등학생도 아니고···.


도대체 난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러나 기사가 중얼거린 내용은 내 예상에서 벗어난 말이었다.


“음? 어째서 이름을? 아니··· 예정이 변경된 것인가?”


생각보다 대화가 길어진다고 느낀 탓인가, 후방에서 대기하던 기사들 중 더욱 훌륭해 보이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앞으로 나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아! 그런 것인가! 엘리나 네년이··· 폐하께서 온정으로 가문의 죄를 묻지 않고 기사단에 잔류하는 것을 허하셨는데! 타국의 간첩과 내통한 것이냐!”


[서브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서브 퀘스트 : 소대장의 말에 반박하고 엘리나의 결백을 증명하라]


“하?···. 어떻게?”


“대장! 아닙니다! 저도 그가 누군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입니다!”


“시끄럽다! 배신자의 말을 듣지 마라! 전원 발도!”


챙! 쇠가 긁히는 막을 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기사들은 엘리나와 나를 향해 반씩 나뉘어 창백하게 빛을 반사하는 검을 겨눴다.


나는 생각했다.


최악이라 생각했을 때가 제일 높은 고점이라고.


나는 분명 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


가볍게 게임의 선택지를 생각하고 인사를 건넨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니면 이 숲속에서 아무런 무장도 없이 털레털레 나타난 것이 잘못이었을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빙글빙글 머릿속은 이미 혼란으로 가득 차,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지금도 눈앞에 격하게 고개를 저어 억울함을 토로하는 엘리나가 보였다.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는 기사들에게 아무리 항변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듣지 않는 듯 했다.


어떻게든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 일을 열던 그 순간.


쉬이이이익!


“카학!···.”


피리처럼 얇고 날카로운 음색이 울려 퍼진 후, 망치로 얻어맞은 듯 충격과 함께 어깨에 통증이 퍼져 나간다.


나는 그대로 꼬꾸라져 흙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아프다.


어깨가 찢어질 만큼 아팠다.


서둘러 아픔이 느껴지는 장소를 만지자, 그곳에는 살을 뚫고 나온 뾰족한 금속이 느껴졌다.


질척질척하고 뜨거운 무엇인가가 쿨렁이며 손바닥을 적신다.


화살이었다.


화살이 어깨에 박혔음을 인지하자,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나는 몸부림치며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렀다.


“적습! 적습이다! 모두 총원 방어태세! 마법 장벽 주문을 외워라!”


화살은 어디서 날아온 것인가?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 속 먼발치의 오솔길이 보였다.


그 오솔길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화살이 박힌 어깨를 누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반짝.


무엇인가가 반짝인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오솔길이 아닌 숲 속에서 발사된 것이었다고.


그리고 이마에 느껴지는 작열감과 무엇인가 부서지는 소리.


그것이 내가 느낀 마지막 감각이었다.


[메인 퀘스트 : 마법 기사 엘리나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고, 귀족으로서 가문을 복권시켜라]


[시련에 실패하였습니다. 마법기사 엘리나의 시련에 더 이상 도전할 수 없습니다]


——————◇——————


“으아아아?!”


암전했던 의식이 순식간에 각성했다.


끓어오르는 주전자처럼 심장이 날뛴다.


“우, 우웨엑!”


장기가 이리저리 뒤틀리는 것만 같아 참지 못하고 땅바닥에 게워내고 말았다.


마치 뱃멀미를 한 것처럼 어지럽다.


나는 그대로 누워 한동안 괴로움에 치를 떨어야 했다.


“뭐야, 시련? 시련이 그런 의미였어? 세피라에서는 그냥 스토리 감상하고 끝이었는데, 이번엔 퀘스트도 진행해야 했던 거야? 그리고 진짜 아프잖아! 전송 때도 태워죽이더니 시련에서도 똑같이 고통이 느껴지는 거냐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지 않은가.


아르테라는 그 여자는 마조히스트가 분명하다.


사람의 아픔과 고통을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화살이 어깨를 관철한 이후 이마에 느껴졌던 그 작열감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는 머리에도 같은 것이···.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즉사해서 다행이라고 말해야할까?


피할 겨를도 없었던 부조리함에 화를 내야 할까?


뭉글뭉글 마음속이 편치 않았다.


“하아··· 너무 이세계를 쉽게 본건가.”


엘리나 카드를 선택할 때 신중했더라면 이런 결과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어왔다.


빨리빨리 서번트를 얻고 싶다는 욕구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현실에 스킵은 없는 건데 말야.”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처럼 스토리를 스킵 하는 일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보다, 이제 엘리나는 도전 못하는 건가 보네.”


상체를 일으켜 석판을 바라보니 그 위에 표시된 12명의 프로필 중, 유독 하나만이 불투명하게 빛을 잃고 있었다.


마법기사 엘리나의 프로필이었다.


“하아, 그래도 다행이지. 진짜 죽은 것도 아니고, 엘리나도··· 캐릭터니까.”


이세계는 나에게 현실이다.


그러나 가챠에 등장하는 서번트는 그 트랜센던스사의 아르테와 같은 초월적 존재들이 만들어낸 존재일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이 좋다.


지구에서도 AI 생성형 캐릭터를 만들어낼 정도였고 말이다.


개발 스튜디오에 있던 특이한 외국인들.


그들도 만들어낸 존재일지 모른다.


‘만들어진 존재라 하더라도 지성을 가지고 있으면 그 존재는 가짜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 의문에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고, 애써 무시했다.


찝찝함은 잔류물처럼 묵직하게 마음속에 눌러 붙었지만···.


앞으로도 캐릭터를 얻을 땐 시련을 도전해야 한다.


그런 것을 걱정하고 도전조차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왕이면 초심자의 행운으로 처음 얻는 서번트는 첫 도전에서 얻는 게 좋았는데 말이지. 소설처럼 극적인 성공이나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나 이대로 다음 10연차를 진행해 좋은 카드가 나왔다 하더라도 방금 전 시련과 비슷한 수준이라면, 십 중 구할 구 푼은 실패할게 뻔했다.


“그렇다면, 스펙 업이다!”


능력이 부족하면 키우면 좋을 뿐이다.


이세계 판타지하면 무엇인가?


그것은 마법과 검이다.


다음부터는 베리어든, 쉴드든, 신체 강화든, 피부자체가 경질화되든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수단과 공격 수단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다.


나는 샵을 열어 목록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직 초기단계이기 때문일까?


여러 목록들을 살펴보니 내가 살 수 있는 것은 회복 물약.


단, 한 개의 항목뿐이었다.


“3,000 크리스탈?!”


더욱이 너무 비싸다. 앞으로 살 일이 없는 아이템이다.


다른 항목들을 살펴보자 스펙업에 직결될만한 것들은 모두 [구매 불가]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뜻대로 되진 않네. 후우··· 그렇다면 이제 하나하나 도전해 볼 수밖에 없다.”


이대로 포기할 내가 아니다.


비록 무미건조하게 살아왔지만,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자부만큼은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근성으로 이 상황을 타파할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어낸 나는 가슴을 젖히고 외쳤다.


“자, 그럼 이세계 판타지 소설의 제 1비기. 마나 느끼기이다!”


그렇게 나의 명상 수련이 시작되었다.



——————◇——————



솨아아···.


그렇지 않은가?


지금까지 영문 모를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상황 자체가 너무 불합리해 짜증에 짜증이 겹쳐 오른다.


주식으로 열매만 먹는 채식 주의자 생활도 이것으로 10일 째. 적당히 신물이 올라올 정도이고, 고기가 먹고 싶다.


아, 이제야 알아낸 것이지만 이 몸. 적당히 안 먹어도 배는 고프지 않은 특별 사양이다.


유일하게 아르테에 고맙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아니, 웬만하면 내 의중을 참고해 키도 180을 넘기고 근육이 적당히 있는 핸섬한 외모도 좋지 않았을까?


자신의 취향을 섞어 남에게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솨아아아···.


어제는 좋은 나무를 찾아냈다.


나의 첫 무기이자 자작의 무기.


<실버 팽>을 넘을만한 좋은 소재였기에 집에 모셔 두었다.


석판으로 갈아내는 것도 꽤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니 내일이나 며칠 후에는 집중해 제작할 생각이다.


이름은···. 이 녀석은 꽤 굵기 때문에 <베어 그릴>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이것으로 얄미운 토끼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솨아아···.


“전혀 느껴지지 않아···.”


삼일 간, 마나라든지 마력이라든지 그런 것을 느끼기 위해 모래사장에 좌선을 하고 명상에 잠겼지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20만 크리스탈의 가치가 있는 신체이기에 마력을 손쉽게 얻을 거라 낙관했으나 이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아니면, 애초에 어릴 적부터 마나를 느끼는 훈련은 한다든가 어릴 적부터 훈련하지 않으면 몸에 마력이 축적되지 않는 가능성도 있을 것이고. 신전에 기도하고 직업을 얻는 시스템일지도 몰라.”


여러 가지 가정이 떠오르지만, 지금으로선 도전이 불가능하거나 실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이렇게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면 잡생각만 끊임없이 떠오르니 별로 효율이 좋은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고전적인 방법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물질적인, 자연의 모든 생물이 살아남기 위한 자연의 수련밖에 길이 없는 것이다.”


캥거루를 보았는가?


실제 캥거루는 귀엽다.


그러나 늙어감에 따라, 하체가 약화되어 상체 근력을 단련해 부족한 보행능력을 두 팔로 보조한다.


캥거루는 늙을수록 보디빌더보다 강력한 근육을 지닌 초-마초의 영역에 다다른 근육 괴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답은 근력과 신체 능력 단련이다!”


그렇게 나의 신체 단련이 시작되었다.



——————◇——————



후우우···. 후아아···.


숨이 가파르다.


다시 말하자.


20만 크리스탈 값어치를 하는 몸이지만, 알아낸 것이 있다.


이 몸은 단련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후우우···. 하아아···. 제기랄, 어째서?!”


아니,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유아기 시절부터 단련해야 근력이 오른다거나, 몬스터를 잡고 신체 능력을 올릴 수밖에 없는 세계관일지도 모른다.


최악 몬스터를 잡아 마석 같은 걸 먹어야할지도 모른다.


이 세계는 현실이다.


그러나 현실이면서 판타지의 세계이다.


그 질 나쁜 망할 여자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이세계에 유기한 것부터 문제였다.


무엇이 던전마스터인가?


“무엇이 하렘으로 여자를 끼고 후후하하꺄꺄 한다는 거야!”


그 날, 한 남자의 비통한 심경이 가득한 처절한 절규가 외딴 섬에서 울려 퍼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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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 그대의 희생은 숭고했느니라 NEW 2시간 전 0 0 12쪽
20 19. 고요한 평화는 비탄의 외침에 깨진다 24.09.17 1 0 14쪽
19 18. 마스터, 메이드는 힘든 일이야 24.09.17 2 0 12쪽
18 17. 의심과 오해의 해소는 어렵다 24.09.16 5 0 12쪽
17 16. 따스한 봄볕에 황혼은 춤춘다 24.09.15 7 0 12쪽
16 15. 잠자는 숲속의 메이드x2 24.09.14 6 0 12쪽
15 14. 공격적인 입사 면접에 대하여 24.09.13 10 0 13쪽
14 13. 어미새 또한 아기새였다 24.09.13 10 0 12쪽
13 12. 후회에서 비롯된 각오 24.09.12 11 0 11쪽
12 11. 세번째 맛. 공(空)의 맛 24.09.12 8 0 13쪽
11 10. 파멸의 가챠는 심연으로 향한다 24.09.11 8 0 12쪽
10 9. 진화하는 능력, 퇴화하는 지능 24.09.11 7 0 12쪽
9 8. 메딕은 언제나 옆에 있었다 24.09.10 9 0 11쪽
8 7. 고도의 고고한 고고학자 24.09.10 9 0 14쪽
7 6. 두 번째. 고통과 슬픔의 맛 24.09.09 11 0 12쪽
» 5. 첫 가챠는 보라색맛이 났어 24.09.09 10 0 13쪽
5 4. 알고 있는가? 석판은 도구다 24.09.09 9 0 11쪽
4 3. 이세계에 유기당해 버렸다 24.09.09 10 0 13쪽
3 2. 안녕히 지구, 어서와 이세계 24.09.08 13 0 12쪽
2 1. 투자 제안은 사기일 수 있다 24.09.08 13 0 12쪽
1 空. 과거의 기억과 라비린스 24.09.08 2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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