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어사 : 물고양이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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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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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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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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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유현의 철면피&몽란의 김칫국

DUMMY

#


“끄윽.”

웨폴리가 몸의 소유권을 유지한 채로 계속 걸어가려던 순간이었다.

거세게 저항하는 본체의 의식 때문에 몸을 똑바로 가눌 수 없었다.

본체인 유현은 지금 패닉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등골 오싹해지는 쓰나미 마법의 대가로 한껏 지쳐 버린 몸.

그리고 사람이 죽었다는 공포감.

흑영으로 번진 서울을 보고 느끼는 괴리감까지.

패닉에 안 빠지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긴 했다.


그래. 이래서 교육 안 된 민간인은 사수로 삼으면 곤란해지는 거다.

그냥 버려 버릴까.

어차피 유현이라는 아이는 찰나의 유흥이었을 뿐이다.

연합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민간인이 이놈 하나뿐인 것도 아니고.

그냥 간혹 가다 볼 수 있는 돌연변이 정도로 생각되었으니까.


스륵-


‘어쨌든 미안하다.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었군.’

양심의 가책을 느낀 물고양이는 우선적으로 유현에게 몸의 주도권을 돌려주었다.


“후···. 으으··. 이건! 이건! 날 속였어! 서울이 왜 저래! 서울이 왜 불바다야! 게다가, 마법사가 죽었어? 마법사도 죽는 거야? 마법사는 안 죽어야 하는 거잖아!”


'조기 교육받은 셈 치자. 사람은 어차피 죽어, 친구.'


“마법사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잖아! 너는 그걸 보고도 물을 쏟아!? 제정신이야?”


'밀고 나갔지. 시원하게~.'


“한 번만 더 떠들어라?!”


‘어쩌라는 건지. 어차피 다 뒤진 놈들이었어. 영성술사 한 놈 살아있긴 했는데··. 아무튼! 계는 잘 따라왔으니까 뭐···.’


크릉!-

물고양이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유현에게 진절머리가 난 모양이다.

몸 한 번만 빌리겠다고 허락도 맡았고 미리 말까지 했는데, 왜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건지 원.

미안하긴 한데 뭔가 귀찮아서 해명하기가 싫어졌다.

그냥 조용히 있기로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저 어린애의 성질머리도 금방 풀리겠거니 하는 것이었다.


"휩쓸려 간 마법사의 동료들이 날 잡으러 올지도 몰라···! 도망가야 해.”


'뭐, 얼추 맞는 말이긴 해. 민간인한테 영성의 존재가 유출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게 몽상 연합이니까. 일단 계약을 해지 해주마. 그사이에 도망가.'


“무슨 소리? 왜 나 혼자 도망을 가?”


'엥.'


“넌 이미 내 마법 보따리야. 어디 못 가니까 나랑 있어.”


'이거 보통 미친 꼬맹이가 아니네? 아···. 아니지···. 애초에 날 인지하는 것부터 정상이 아니었나?'


“너는 갱생이 필요해. 이 살인자 깡패 마법 찌꺼기야!”


'이야~. 살인자···. 깡패···. 찌꺼기···. 아까부터 계속 지껄이네. 난 그런 소리 무지하게 싫어하거든?'

그 순간 발끈한 물고양이 기록마도.

영성술을 발휘해 물로 된 꼬리 하나 소환하고는.

그 꼬리로 계약자인 유현을 둘둘 묶어버렸다


"끙···."

유현은 회오리 감자 사이에 낀 나무 꼬챙이처럼 힘없이 제압당했다.

낑낑거리며 저항해 봤자다.

물로 이루어진 물고양이 근육은 도무지 붙잡을 수가 없는 구조였다.

붙잡으면 붙잡을수록 깊게 박혀버리는 손.

마치 늪에 빠진 기분이었다.


마법사가 제 마법에 제압당하는 꼴이라니.

유현은 참을 수 없는 아니꼬움을 느꼈다.

'주인한테 반항을 하는 기록마도라니.'

'감히 책 속 짐승 주제에 인간님에게 반항하다니.'

동화나 만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꼬마야 잘 들어. 나는 평범하게 살 수 없는 몸이야. 연합에 들어가거나, 연합에 붙잡히거나 양자택일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이대로 도망쳐도 좋을 거 없으니까 그냥 연합에 자수하자고~. 귀찮게 굴지 말고.'


“아니야. 마음에 안 들어. 따까리 너는 갱생이 필요하다니까는.”


스륵-


팡!-

그 순간이었다.

유현은 유치원생의 힘이라곤 믿을 수가 없는 괴력을 발휘하여 물꼬리의 속박을 풀어냈다.

물고양이는 살짝 놀란 듯 흠칫하며 유현을 바라보았다.

자신을 가로챈 민간인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은신 마법을 간파하고.

영성을 향해 대담하게 말을 걸고.

부사수로서의 자리에 영입을 제안하는 것.

그것은 민간인의 영역이 아니었다.

태생부터 몽상 어사가 될 씨앗을 품고 있는 아이.

그것이 유현이었다.


'마법 저항력이 장난 아닌데? 니 부모님이 누구시니? 몽상 어사야?'


"나도 몰라. 나 보육원에서 살아."


'엄···. 아까 엄마가 너 찾으러 오셨었잖아. 꽤 젊으신···.'


"현주는 중학생이야. 말 가려서 해."


'중학생이 뭐 어때서.'


"그러게. 그건 나도 잘 몰라."


'가만있어 봐. 너 그럼 다른 보호자는 없냐.'


"있어. "


'오. 그게 누구신가?'


"너잖아, 이 빚쟁이야."

유현은 모자 속에 숨겨 놨던 물고양이 마도서를 꺼내 보였다.

그는 물고양이를 그냥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지어는 주머니에서 유성 펜을 꺼내 가격까지 적어 놓았다.

물고양이 원본에는 4,000원이라는 낙찰가가 쐐기처럼 박혔다.

보통 본인 이름 적어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방식이 태반이었으나, 어릴 적부터 양육권 분쟁의 쓴 맛과 자본주의의 차가움을 몸소 느꼈던 유현은 대뜸 개인 재산의 가격부터 매겨 버린 것이었다. 유현 왈, 자본주의와 양육권 분쟁, 그 두 가지 맛은 마치 설탕 없는 녹차 아이스크림과 같다더라.


'얘 진짜 뭐지. 왜 내 주인인 양 행동하는 거지?'


물고양이는 10리 물길 속보다 깊은 의문을 가졌다.

유현의 대담함에 자꾸만 기분이 이상했다.

아리송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것이라.


"전리품이 늘었군~. 새로운 책장을 구매해야겠어."


'이런 건방진 놈이···?'

물고양이는 솟아오르는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꼬았다.

하지만 그 발버둥이 소용없는 짓임을 인지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간 사회를 자유로이 누비는 생활.

민간인과 유유자적 도피 생활.

자신을 가둔 한국 몽상 연합을 엿 먹이는 잠적 생활.

코피가 나올 것 같았다.

질 좋은 장난감의 사용법을 완전히 익혀버린 것이었다.


‘야. 너 그러면 이제 진짜 못 도망치는 거다.’


“···?”


‘싫으냐?’


“아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인데.”


‘허허허. 이 싹수 시퍼런 새끼.’

.

.

.


#한편.

서울시 옹골동의 빅-스트로크 사태 종결 이후.

B-232동 정 여사의 자택.


무슨 생각인지, 몽란은 웃음 가스를 통째로 들이마신 듯 기분 좋게 히쭉거렸다.

비이상적으로 벌어진 입술.

귀에 걸린 입꼬리.

그냥 화풍 자체가 개그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원초적 웃음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새반이 이번 소집 건에서 공을 세운다면, 서울로 기지 이전을 신청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시골을 벗어나고팠던 아이는 김새반의 귀가만을 눈코입이 쏙 빠지게 기다렸다.


“흠흠~. 앞으로는 체계적인 훈련 계획을 구상해야겠군요!”


“또 뭐가.”


"이번 전쟁에서 새반씨가 공을 세우면, 우리 같이 서울로 이사 갈 거랬잖아. 이제는 나도 더 센 녀석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겠지! 기록마도는 어떤 걸 고를까~.”


“어머, 네가 세운 공이 아니잖니.”


“나도 공 세울 수 있어. 살살 굴리다 보면 알아서 서겠지!”


똑똑-

그때였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누군가.

분명 김새반이었다.

발소리부터 그였다.

위풍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주인공 발소리.

나는 문 앞에 마중을 나가면서도 기대에 부풀었다.

앞으로는 바빠지겠지.

내가 활약할 무대는 점점 커져 갈 테니까.


덜컥-


“해피~홈커밍이네여! 어서 웰컴 드링크를 받으세요!”


몽란은 냉장고에 있던 요구르트를 꺼내 급하게 뛰쳐나왔다.

반만 꿇은 무릎을 김새반에게 향하게 한 채 시중을 들어 보이는 그녀.

특유의 약삭빠르고 이해타산적인 움직임은 가만히 보고 있던 정 여사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였다.

‘집에 꽃뱀을 들인 기분이야.’


“해피홈이라. 못난이 너는 이곳이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김새반이 방긋 웃으며 물었다.


“응! 여기 좋아~! 할머니만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좋아, 그럼 앞으로 여기에서 평생 살자.”

상할 정도로 영혼 없는 웃음으로 나를 쓰다듬는 김새반.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표정이다.

저 철판 깔린 도마뱀 관상이 나올 때면 항상 그랬다. 숨기고 있는 심각한 고민이 있는 거겠지.


“오라버니 왜 그래···?”


“일 좀 저질러 버렸다."


"···?"


"미안하다. 나 이제 나락이야.”


“아-. 일단 요구르트는 돌려줘.”

나는 재빠르게 요구르트를 다시 빼앗은 뒤 책장 구석으로 숨어 쪽쪽 빨아대기 시작했다.

진급하는 데에 실패한 가장에게 요구르트 한 개는 너무 과분한 포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일단 서울 지부는 포기하자.

서울은 공기도 나쁘고 사람들도 차가우니까.

사람들이 차가우면 여름에는 시원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B동 지부로도 충분히 만족하니까 괜찮아.


“새반아. 그게 무슨 말이더냐. 저질렀다니? 뭐를?”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정 여사가 깜짝 놀라 물었다.


“구수형이 그 자식이 저를 배신했습니다. 작전 지역 이탈을 명목으로 제보를 한 모양이에요.”


“뭐야?! 그 구수형이가? 그 녀석이 그럴 성격이 아닌데···. 만년 2위의 서러움이 왜 하필 그때 터졌을꼬.”


“그리고 하나 더. 연합 본부에서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중앙 도서관 복구 작업에 강제 참여하라는군요.”


“뭐야?! 돈도 없고 인력도 없는 우리 지부가 중앙 도서관은 어떻게 복구해!”


“벌금은 제가 모아뒀던 몽상 사관 학교 입학 비용으로···. 복구 문제는 제가 수시로 서울로 올라가서 물고양이 포획에 참여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사령관 정예부대가 될 예정이었던 챔피언.

이제는 명령불복종이라는 명분 하에 나락의 길을 걷는구나.

지방에서 전전하다가 썩어갈 일만 남았다니.

당신의 뒤를 따라 몽상 어사가 되기로 마음먹은 나는 어쩌라는 말이야.

작전 지역 이탈?

후배한테 고발 당했다고?

한심하구나.

한심하지.

하지만 원망스럽지는 않아.

원망스러울 리가 없지.

나는 당신의 한결같음이 존경스러운 거니까.


이후.

시간이 흘렀다.

나는 B-232 부대 도서관 안에서 단출한 취임식을 마쳤다.

정식 취임식도 아닌 임시 취임식.

그래서 딱히 감흥은 없었다.


내 차사 전용 장비는 궁상맞은 몽상 연합 나눔 상가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연합 내에서 수많은 영성술사들의 손을 거쳐 간 골동품 수준의 장비들이었다.

여우 가문 암매장에서 구한 싸구려 영성탄과 권총.

죽은 전사자들이 쓰던 구식 보급품.

도깨비 영성 부대의 수선 작업을 거친 마도구 부품 쪼가리들.


위장 마법이 담긴 제복 코트는 정 여사님이 과거에 쓰던 것을.

신축성이 좋은 제복 바지는 허벅다리에 구멍이 뚫린 학도병의 것을.

은신 마법이 담긴 제복 모자는 ‘신나성’이라는 이름이 적힌 A-31 부대 대원의 것을.


“차라리 잘된 일이지.”

“챔피언의 밑에서 찰싹 붙어 배울 기회가 온 거야.”

“정작 챔피언이라는 작자는 연합 내에서 제일가는 망나니로 낙인 찍히고 말았지만.”


촤르륵-


촤르륵-


촤르륵-

아무 것도 상관없다.

B동 지부이건 수도권 지부이건 출세하는 데 아무런 지장 없으니까.

이제 시련의 목차를 보일 시간이다.

최강의 모태 신화를 골라서.

최강의 영성술사가 되어서.

우리 지부의 부흥을 다시 이끌어서.

김새반씨에게 은혜를 갚을 것이다.

내가 그를 이끌어줄 것이다.

그가 나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영성술사가 되리라.


"내가 챔피언 할 거야! 당신은 구석에서 손가락이나 빠세요!"


"그, 그-래."


"내가 당신과 구수형 아저씨의 사이를 좋게 좋게 돌려놓겠습니다!"


"그래."


"내가 전설적인 탈옥수 물고양이 더 리퍼를 직접 체포하겠습니다!"


"그래."


"내가 몽상 연합의 역사를 다시 쓰는···!"


"그래 몽란아, 우리 밥부터 먹자. 오라버니 지금 배가 너무 고프다."


"아하."

음, 확실히 그렇겠지.

일하다 왔으니까 배가 고프시겠지.

김새반 차사는 그게 문제다.

업무 중에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정도로 강인한 사람인데.

업무 외에는 축 늘어져서 뒷골목 양아치가 되어버리니까.

나는 그의 한결같지 못한 면이 정말 아쉬웠다.


"붕어빵 먹을래요?"


"야, 못난아."


"왜여?"


"너 그거 엊그저께에도 품고 있던 거 아니냐?"


"맞아여."


“갖다 버려.”


“왜여ㅠㅠ? 불쌍하잖아여ㅠㅠ.”


“하···. 이 똘마니 새끼.”

.

.

.


작가의말

승진에 실패한 아버지에게 팍 식은 붕어빵을 드리세요!

차가운 현실을 일깨워 주는 겁니다.

#추가 설정 :

*그녀가 붕어빵을 버리지 않은 이유는 김새반이 포획해 올 물고양이의 먹이를 챙겨주기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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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터져버린 호환 24.09.12 1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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