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 어사 : 물고양이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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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졸한톳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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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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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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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신기한 의인

DUMMY

#

#B-232동 도착 10분 후.


분노에 휩싸인 나는 색다른 방식으로 현주의 위로를 이어나갔다.

살살 끌어 오르는 복수심을 천천히 삭히며 웃어 보였다.


현주는 불안한 눈치였다.

내 해맑은 표정에서 어딘가 불안정한 징조를 느낀 걸까.

해맑게 위로하고.

묻고.

해맑게 위로하고.

재차 묻고.

해맑게 위로하고.

얼버무리고.

더 이상 대화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는 현주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몰라 얼버무리기 일수였다.

현주는 그런 나의 눈치를 보며 애써 웃어 보이지만.

분명 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 두려워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나와의 동거를 시작한 목적도 단순하지만은 않을 터.

그녀는 암묵적으로 나를 감시하려 한다.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미련곰탱이를.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싶었을 거다.

그 기류가 느껴져.


'이제 어떡할까.'


나는 문서 보관함에 갇힌 물고양이 마도서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일단은 녀석의 압축을 풀어놓는다.

나쁜 의도는 없어.

그냥, 내 외부 장기가 묶여 있는 것이 갑갑하기에 그지없었기 때문이지.


"현아, 우리 이제 답답하게 살지 말자. 조금 더 먼 곳을 보자! 집도 생겼어! 누나는 직장도 새로 구했고. 너만 옆에 있어 주면 돼. 너만···."


"뭐?"


"제발 내 옆에 붙어만 있어 줘. 제발 부탁이니까는···. 그 깡패 새끼한테 물들지 말아줘."


"누나. 솔직히 너무 답답ㅎ···."


“아~. 잠깐만. 우리 동생, 기운이 없어 보이네? 어깨도 뻐근해 보이구.”


솔직히 말하면 기운이 없는 건 네 쪽이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얼굴을 하고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어 보이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냐는 말이야.

내가 그것을 못 알아차렸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난 그저 모르는 척하며 넘어가고 있었을 뿐.


“어깨 말고 배꼽이 조금 뻐근하네. 밥 좀 차려주라.”


일단 배꼽을 가리키며 중얼거리긴 했는데.

난 핑계와 처세술에는 약한 편이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저렇게 IQ가 경계선에 걸친 듯한 발언을 내뱉고 말았다.

그냥 배고프다고 말하면 됐을 텐데.

말하고 나니 후회되네.

분위기도 훨씬 싸해졌고 말이야.


'아직은 시간이 필요한 건가.'


전부 잊은 척.

활발한 척.

그게 나쁜 건 아닌데, 나는 그게 싫었다.

나는 그녀가 맞서길 원했다.

시간이 필요한 거라면, 언제든지 줄 수 있으니까.

포기만 안 했으면 할 따름이었다.


“하아···. 미안. 밥 차리러 가볼게. 나중에 보자~.”

현주가 밝게 웃으며 급히 방을 떠났다.


덜컥-


현주는 힘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애써 생기 있게 보이도록 노력했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눈물이 맺힌 눈망울은 점점 생기를 잃고 텅텅 비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공황이 왔다.


내려가는 도중.

이상하리만큼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나오느라 힘이 빠져버린 것이었다.


톡-

떨어지는 눈물이 건조한 나무 바닥을 적신다.

그렇게 쓸쓸하게 계단을 마저 내려간 현주는 홀연히 주방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아직은 툭 까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사건들.

둘 사이에 깊게 쌓인 정이 그 찝찝함을 덮어주는 순간이 올 때까지, 악으로 버텨볼 뿐.

자신이 정말 한심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한편.

유현은 누나가 눈물을 쏟으며 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무력감 반, 권태감 반으로 넋이 나가 있었다.


띠링-


문자가 왔다. 퇴학당한 학교 단톡방으로부터 온 문자.

전 담임 선생님을 필두로 아이들이 카톡방을 나가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악랄한 장난꾸러기가 현주에게 막말을 퍼붓고 단체방으로부터 도망가느라 울리는 알람음이었다.


[현아, 담임이다.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이번 건은 솔직히 네가 심했던 것 같아. 반 애들이 전부 너에게 실망했어. 농담은 농담인 건데, 그에 따른 처벌은 학교에 맡겼으면 어땠을까 싶네. 안녕. 열심히 살아라.]띠링-

담임 선생은 저 말을 마지막으로 나를 차단했다.


[깡패 새끼가, 조크 하나에 사람을 패버리네. ㄹㅇ 분조장인가:;]


[앞으로 밥 좀 작작 처먹어. 다이어트 겸 북한으로 꺼져 주면 안 되겠니.]


[ㄹㅇ 나가 뒈져라.. 근데, 나가기 전에 누나 전화번호는 주고 가셈ㅇㅇ.]


“아아아아아아, 시바아알! 진짜아!”

나도 모르게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충격적인 문자 내용. 어이가 출타하여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꼭 저런 애들이 기승이야.

저질 문화에 홀려 우상으로 숭배하는 작자들.

갱들이나 쓰는 조크가 본인 모국어인 마냥 남발하는 미친 새끼들이.


갱이 한국말로 뭔지는 아는가.

그냥 깡패다. 깡패.

저런 건 농담이 아니다.

저급한 험담이란 말이다.

내가 깡패라고? 내가 현주를 범한 녀석과 동급이라고?

아니, 진짜 깡패는 너희들이야.


“하···.”

나는 끓어오르는 숨을 겨우 내쉬며 카톡방에서 탈퇴했다.

보기도 싫고 생각하기도 싫었다.

잠시 어지러워 고개를 숙였다.

슬픔보다도 분노에 가까운 감정.


‘한 대만 더 패고 올 걸.'

물고양이를 가지고도 숨어 살아야 했던 지난날 전부가 너무 억울했다.

내가 왜 이 능력을, 눈치 보면서 써 왔을까.

철근을 옮기고 돌을 옮기고 벽을 청소할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는 없었을까.

아, 애초에 나는 들키는 게 후달렸던 거야.

애물단지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속도 없이. 미련하다.


“아아아아악!”

두 눈을 부릅뜨고 스마트폰을 꽉 쥐어 보였다.

참다가. 또 참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집어던지려고 팔을 거세게 휘둘렀다.


띠링-

그 순간이었다.

찰나의 순간에 못 봤던 알림이 보였다.

자신을 던지지 말라고 항의하듯 울려 퍼진 스마트폰의 알림 소리.

나는 홀린 듯이 팔을 내리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물고양이 이야기] 압축 해제 완료.


발신자표시제한 : [야! 던지지 마! 새집 청소 중이야! 조금만 진정해.]


이상한 상황에서,

이상한 타이밍에,

이상한 파일이 덜컥 날아왔다.

진짜 다운로드가 되는 거였구나.


영성술의 세계는 정말이지 경이로웠다.

기록 매체만 있다면 기록된 영성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구조인 걸까.


“종이가 아니어도 술법이 나간다고?”


휙-

시험 삼아 팔을 뻗어 물고양이 영성술을 발휘해 보았다.

평소에 영성을 방출할 때를 생각해 보자.

종이 마찰음이 들려온 뒤, 마도서가 빛을 내뿜는다.


"써지면 레전드다."


지잉-

충천 시작 알림임이 미미하게 울렸다.

설정이 조잡해서 실없는 조소가 새어 나왔다.


그르륵-

힘을 준 팔뚝에 물고양이의 앞발이 나타났다.

물방울이 모여들어 옷소매를 적시는 것이었다.


“훨씬 부드럽다. 이게 현대 문물의 맛이란 말인가.”


#물고양이 이야기 : 디지털 프롤로그


[먼 옛날, 악마를 찬양하는 광신도 무리가 있었다.

세상은 광신도의 욕망으로 하여금 점점 메말라 갔지.

욕망으로 인해 더럽혀진 세상.

범죄와 위선이 판을 장악하고만 이 세상.

심복의 수는 점점 불어나기만 하고, 사람들은 고통은 날로 심해져 갔다.


난세. 범죄. 전쟁. 그리고 다시 난세.

난세의 반복.

‘빅-스트로크’의 서막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라.

영웅은 본디 난세에 등장하는 법이니.

초대 신선들의 성스러운 영성, 4대 전설 신화를 훑어보자.

“물고양이.”

“불꽃나비.”

“바람나방.”

“땅강아지.”

그중에는 유독 출렁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가 섞여 있었으니.

악의뿐인 세상을 잠재울 기사의 등장이었다.


“바다보다 깊은 지혜. 호수보다 맑은 마음.”


4원소 중 첫 번째.

물보다 유연한 고양이 물고양이 이야기.]

.

.

.


“애기야! 밥 먹어라! 카레다! 니가 제일 좋아하는 카레!”


도입부에서 벗어나 물고양이 이야기의 막을 올리려던 찰나였다.

현주의 부름이 들려왔다.

금세 활기를 되찾은 그녀의 목소리.

명랑한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만큼, 밥은 먹고 책을 읽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겠는가.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알겠어! 금방 내려가!”

책 읽는 것을 멈추고 천천히 1층 모퉁이를 돌았다.


터벅-


터벅-


“어?”


그때, 주방에서 다소 생소한 광경을 목격했다.

주방에는 현주 한 명이 아닌 또 다른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생각해 보니 기차역에서 통화할 때, 손님이 올 거라고 했었지.


“유현! 인사해. 옆집 사시는 정 여사님이셔. 우리 집의 집주인이셔!”


현주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확실히 통화 중에 들었던 기억이 있다.

힘들 때, 자신을 많이 도와주신 ‘정 여사’라는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저분이 그분인가.’


애써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집주인을 마주했다.

저분은 나의 보호자를 돌봐준 위인.

무엇보다 이 집을 싸게 내준 사람이라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영웅이다.


“아~. 이제 내려오셨네요. 안녕하세요.”


신비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목소리.

목소리에 걸맞게 고풍스러운 자세로 앉아 차를 마시는 모습.

중세 시대에 온 것만 같은 고풍이 느껴졌다.


“그때 말한 그 할머니셔?”


“아~. 맞아. 정미자 여사님이야. 옆집에서 동네 도서관도 운영하시는데, 책 좋아하는 너랑 완전 찰떡이잖냐. 동네 모임에서 너 얘기를 잠깐 했었는데,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다고 하셔서.”


“누나 동네 모임도 나가?”


“응! 나랑 여사님이랑 몽란이까지 총 세 명이야. 너까지 들어오면 네 명 되겠네.”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하는 현주.

그녀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현주가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마냥 다행일 뿐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싶다.


“바로 옆집에 동네 사람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사설 도서관을 열었습니다. 언제든 와서 빌려 가세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입니다. 읽을 책을 별로 들고 오지 않아 고민이 많았거든요.”


“그렇습니까···.”


그때, 어색한 인사를 쉽게 풀어내기 위해 잠자코 있던 현주가 입을 열었다.

“아! 여사님. 근데, 오늘 몽란이는 안 왔네요? 이왕이면 오늘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현주가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녀는 ‘몽란’이라는 아이와 만나지 못해 아쉬운 눈치였다.


“용무가 있어 오지 못한다고 통보받았습니다.”


“아쉽다~. 그럼, 일단 여사님이라도 먼저 식사하셔요.”

현주는 밥솥을 열어 따끈따끈한 쌀밥을 퍼 담기 시작했다.


“몽란이는 제가 추후에···.”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그때였다.

갑작스레 여사님의 스마트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는 것이었다.


“음. 실례하겠습니다.”

정 여사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의 구석으로 향했다.


정 여사 : [어, 그래, 순찰이 끝났으면, 현주네 집으로 오겠니? 손님이 왔···.]


몽란 : [전방에 스트록 출현.]


정 여사 : [뭐?! 이 시간대에 스트록 출현이라니 별일이군.]

정 여사 : [일단 대기하도록. 또 동네 취객을 잘못 보고 덤벼드는 불상사가 생겨서는 안 돼. 그게 사유서 몇 장짜리 인지 알고 있겠지?]


몽란 : [응 그래.]


정 여사 : [이런 싸가지 없는 ㄴ···.]


띠릭-


전화는 몽란의 단답과 함께 끊어졌다.

몽란의 전화에, 정 여사의 머릿속에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박멸한 줄 알았건만! 아직 전쟁의 잔해가 남아 있었단 말인가.’


정 여사는 속으로 분노를 표출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 여사가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를 응시하는가 싶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


“저,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급한 용무가 생겼습니다.”


“아~. 아니에요. 저희는 괜찮아요. 오랜만에 동생이랑 단둘이 먹으면 되죠.”

현주는 정 여사의 자책에 손사래 치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정 여사는 급하게 현관을 나섰다.


끼이익-


덜컹-


이내 대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상당히 급하신가 보네.”

나는 유유히 떠나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배웅하러 나갈까 고민했는데,

카레 냄새가 너무 황홀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안방마님아, 김치 남은 거 좀 꺼내 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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