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끼 스킬
거제도 붉은 담 별장.
신기는 충동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좀비의 목을 베었다. 날을 세우지 않은 검임을 깜빡했다. 잠깐 중학교 2학년 감성이 떠올랐던 걸까. 황급히 덜 아픈 왼손으로 가벼운 검을 뽑아 좀비를 처리한 후 치유를 사용하고 오른 손목이 낫기를 기다렸다. 통증으로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 괴물이 모여있는 건 각성자의 스킬 효과로 보입니다.
짧은 잠에서 깬 신기는 스킬 경험치를 위해 성휘 스킬을 펼치다 정보 단말의 말에 움직이기로 했다. 효주가 여전히 곤히 자는 것을 확인하고 검 두 자루를 들고 움직였다. 붉은 담을 두른 별장 주변에 있는 괴물들을 처리하다 흥이 나서 그만 실수했다.
손목의 통증이 사라지자 다시 무거운 검을 들고 해골을 해치웠다. 성휘 덕분에 굳이 가슴을 공격하는 척 페이크를 줄 필요가 없어졌다. 세 번째 좀비는 첫 좀비처럼 벽에 부딪히게 유도한 후 검으로 목을 뭉개버렸다. 아까 충동적으로 지나가는 좀비를 베려고 했던 게 너무 부끄러웠다.
괴물을 전부 처리한 신기는 레벨부터 점검했다. 레벨이 그대로인 것을 확인하고 신기는 낮은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안에 있던 사람이 2층 창문을 열어 신기를 맞이했다.
"너 집주인 아니었어?"
"해골이 몰려와서 급한 대로 아무 집이나 들어왔어요. 우리 집이 아니에요."
"너 혹시 각성자야? 눈앞에 막 글이 보였어?"
"네. 어떻게 아셨어요?"
박철은 새벽에 갑자기 눈앞에 글이 보였다. 미끼라는 재주가 생겨서 호기심에 한 번 사용해봤다. 처음에 아무 효과도 없었는데 갑자기 수십 마리의 괴물이 몰려왔다. 해골과 좀비는 사람이 달리는 속도만큼 빠르게 달렸다.
"해골과 좀비가 사람처럼 빠르게 달렸다고?"
"네, 맞아요. 미친놈처럼 달려오더라고요."
"네 정보 한 번 읽어봐."
이름 : 박철
등급 : 정급
개인 등급 : 1
재주 : 미끼 입문 2
"괜찮네. D급이면 등급이 높은 편이잖아. 혹시 미끼 스킬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어?"
"새벽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알겠어요. 이거 사용하면 일정 범위에서 괴물을 불러와요. 낚시할 때 떡밥 던지는 거랑 비슷한데 일정 시간 괴물을 계속 잡아둬요."
신기는 박철을 자세히 살폈다. 소처럼 커다란 눈망울이 무척 순하게 보인다. 머리도 단정하게 정리했고 옷은 낡았지만 깨끗하게 빨아서 입었다. 성격이 약간 소심해 보였지만 물어보는 말에는 꼬박꼬박 제대로 된 대답을 했다.
"정말 훌륭한 스킬이구나. 나랑 함께 가자. 우리 집이 이곳보다 훨씬 안전해."
박철은 자기 스킬이 전혀 쓸모 없다고 생각했지만 신기는 박철의 스킬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함정을 파놓고 미끼로 괴물을 모은 후 정화로 처리하면 빠른 레벨업을 할 수 있다.
### DUAL SYSTEM ###
영국 노팅엄.
에릭은 중급의 탐구 스킬을 보유한 헌터다. 사실 헌터보다 더 먼저 각성했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공식적으로 최초의 각성자는 헌터가 되었다. 에릭은 B급이고 헌터는 현재 D급이다.
"방금 되게 중요한 거 알아냈어. 우리 멤버들 다 불러."
호출이 끝나고 모두 모이는 데 삼십 분이 걸렸다. 에릭은 그새 자신이 알아낸 걸 글과 그림으로 정리했다. 각성하면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향상되고 머리도 더 똑똑해진다. 그러나 기초 지식이 부족하면 아무리 머리가 똑똑해도 이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조금 멍청한 몇몇을 위해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
"이 사실은 우리만 아는 게 아니라 널리 알려야 할 것 같아. 그래서 모두를 부른 거야."
에릭은 준비한 자료를 모두에게 나눠준 후 설명을 시작했다.
"미끼라는 스킬이 있어. 화산구에서 이 스킬을 사용하면 준비가 덜 된 몬스터를 끌어내서 처리할 수 있지. 여기까지가 상식처럼 알려진 부분이야. 우리는 미끼 스킬 사용자를 통해 미리 레벨을 많이 올릴 수 있었어."
에릭은 먼저 미끼 스킬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갔다. 이 과정을 통해 듣는 사람의 집중력을 끌어올릴 뿐 아니라 자기 생각도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기어 나온 몬스터에 대해서는 미끼 스킬이 무슨 작용이 있을까? 방금 탐구 스킬로 알아냈어. 이거 시전자에게는 꽤 위험한 스킬이더라고."
미끼 스킬은 범위형 스킬이다. 이름은 미끼인데 사실 그물질과 비슷하다. 미끼 스킬을 사용하면 일정 범위 안의 괴물을 유인한다. 미끼 스킬에 적중된 괴물은 최대한 빠른 속도로 미끼 스킬 시전자를 향해 달려간다.
"미끼 스킬에 걸리면 평소 이동 속도보다 3배 정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해. 절대적인 건 아니니까 이 수치는 참고만 해.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다른가 봐."
범위 안의 모든 괴물이 미끼 스킬에 걸리는 건 아니다. 모든 괴물을 다 끌어오려면 스킬을 꽤 오랜 시간 유지해야 한다. 기력의 양과 스킬의 범위가 개개인에 따라 편차가 크기에 명확한 수치는 없다. 기력이 많고 범위가 작으면 괴물을 깡그리 몰아올 수 있다.
"문제는 이거야. 불을 소환하면 불이 사라진 후 공기가 조금 뜨거워. 무슨 의미냐면 불이 사라지면 모든 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대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말이야. 마찬가지로 미끼 스킬도 여파가 있어."
미끼 스킬의 범위가 반경 1킬로라고 할 때, 1킬로 밖의 괴물들도 미끼 스킬의 영향을 받는다. 확고한 목표가 없다면 높은 확률로 미끼 사용자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지금 출현한 몬스터들은 상당히 멍청하지. 차라리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게 나을 텐데 어설프게 머리를 쓰거든. 그래서 상대하기 무척 편하기는 하지만, 미끼 스킬에서는 그 멍청함이 문제가 돼."
누군가가 같은 곳에서 미끼 스킬을 자주 사용하면 문제가 된다. 괴물을 유인해서 처리하면 스킬의 범위 안에는 괴물 수가 적어진다. 그러나 주변의 괴물들이 무의식적으로 그쪽으로 움직이며 미끼 스킬 사용자를 중심으로 둥그런 포위망을 구성한다.
"처음에는 스킬을 사용할 때 불러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비슷할 거야.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늘어나겠지. 자주 사용하면 몬스터의 이동에 방향성이 생기고 결국 어느 순간 미끼 스킬 사용자를 중심으로 많은 몬스터가 모일 거야. 그리고 파탄이 생기는 거지."
가까운 괴물을 불러다 처리하면 주변에 괴물이 적어지고 결국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미끼 스킬은 범위 밖의 괴물들 이동에도 영향을 준다. 급하게 달려오는 건 아니지만 괴물이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크게 작게 영향을 끼친다.
미끼 스킬 사용자를 중심으로 하고 스킬 범위보다 큰 반경으로 해서 괴물 밀도가 매우 높은 원형의 띠가 형성되는 것이다. 언젠가 이 반경이 스킬 범위보다 작아지는 순간, 미끼 스킬을 사용하면 평소보다 수 배에서 수십 배의 괴물이 몰려온다.
"자기만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들이 미끼 스킬로 레벨업 하다가 목숨을 날리겠군."
에릭의 말을 빠르게 알아들은 누군가가 말했다. 에릭은 놀라는 몇몇을 확인하고 자괴감을 느꼈다. 딴에는 아주 친절하게 잘 설명한다고 했는데 못 알아듣는 멍청이가 여럿 있었다.
"이 정보는 각국에 적극적으로 알려야겠어. 우리는 다른 국가들보다 앞서 나가려는 거지 다 죽이고 우리만 살아남으려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모두의 의견을 듣고 싶어."
민주를 표방하지만 몇 개 파벌로 나뉘어 있어 각 파벌의 수장이 고개를 끄덕이면 끝이다. 대부분 나라는 각성자를 데리고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영국의 각성자들은 이미 조직을 이루고 파벌까지 생겼다.
"중국과 미국에만 알릴 생각이야 아니면 모든 국가에 알릴 생각이야?"
지금의 사태를 예측한 영국 헌터 조직은 중국과 미국에만 이 사태에 대해 미리 알렸다. 영국 첩보 기관에서 분석한 바에 따르면 미리 알려주지 않아도 이 두 국가는 큰 피해가 없이 막아낼 것이라 했다. 그래서 차라리 정보를 주고 다른 이득을 얻어냈다.
"중국과 미국에 먼저 알린 다음 며칠 뒤에 다른 국가들에도 알리지. 지금 사태가 해결된 후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면 두 강국의 도움이 필요해."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 미국과 중국에만 알리자. 그리고 미국인인 척 스킬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 풀어버리자."
결론이 나자 사람들은 빠르게 흩어졌다. 충분히 예측하고 충분히 준비했지만 많은 문제가 생겼다. 각성자들의 위력이 예상보다 못했고 군대도 생각처럼 잘 싸워주지 못했다. 에릭은 십수 대의 헬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력이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 DUAL SYSTEM ###
거제도 신기의 별장.
"삼촌, 거지 주워왔어요?"
박철을 데리고 집에 돌아가니 어느새 깨어난 효주가 울고 있었다. 혼자 남겨져서 심술이 났는지 아니면 우는 걸 들켜서 부끄러웠는지 효주는 무척 까칠하게 나왔다. 박철은 주눅이 들어 항변하지 못했다.
"박철이는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에요."
오는 길에 박철이 고아나 다름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았다. 체형보다 큰 옷은 다른 사람이 버린 옷을 주워서 입은 것이다. 신기는 박철과 대화하며 무척 순수한 아이임을 느꼈다.
신기는 수건을 물에 적셔서 효주를 세수시켰다. 얼굴이 깨끗해지자 효주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는지 박철에게 사과했다. 신기는 박철과 효주를 위해 얼마 남지 않은 고기를 구웠다. 본인이 먹을 때 와는 달리 온갖 양념으로 맛을 돋웠다.
박철과 효주는 고기를 무척 많이 먹었다. 효주는 어제 슈퍼에서 아주 조금만 먹었고 박철 역시 어제 오후 2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고기를 다 먹고 입맛을 다시는 둘을 위해 신기는 창고로 가서 통조림을 꺼냈다.
"삼촌, 효주 이쁜 옷 입고 싶어요."
효주가 입은 옷은 땀에 절고 먼지가 묻고 효주가 자면서 침까지 흘려 무척 더러웠다. 박철의 옷은 낡았지만 깨끗했다. 박철을 거지라고 했던 효주는 배가 부르자 자기 더러운 옷이 무척 부끄러웠다.
신기는 전투식량을 살 때 사은품으로 받은 생활 무전기를 꺼내서 채널을 맞췄다. 통화 거리가 1킬로라고 하는데 실제로 더 먼 곳에서도 무전이 된다. 신기는 박철에게 무전기를 주고 검 두 자루를 등에 멘 다음 효주네 별장으로 향했다.
신기는 성휘를 펼치고 조심스레 움직였다. 지름 15미터 안에 괴물이 들어오면 괴로워하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15미터 밖의 괴물은 알아낼 방법이 없다. 두 별장은 직선거리가 60미터 정도밖에 안 되지만 길을 따라 움직이면 200미터 정도 걸어야 한다.
"삼촌, 효주 보여요?"
신기는 효주의 무전을 듣고 몸을 돌려 손을 흔들어 주었다. 효주와 박철이 옥상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효주네 별장 앞에 도착한 신기는 무전기로 질문했다.
"효주야, 혹시 열쇠 숨겨둔 곳 알아?"
"효주 열쇠 몰라요."
신기는 낮은 담을 넘은 후 2층에 열려있는 창문을 발견하고 기어 올라갔다. 창문을 통해 들어간 방은 분홍색이 넘쳐나는 효주의 방이었다. 작고 앙증맞은 여행용 가방도 하나 있었다.
신기는 다른 방에 가서 큰 가방을 찾았다. 효주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은 보기만 좋았지 안에 옷 몇 벌을 넣을 것 같지 못했다. 덕분에 서재로 보이는 방에서 위성 전화기 하나 찾아냈다.
"삼촌, 내 인형도 갖다 주세요."
옷은 많지 않았으나 인형은 꽤 많았다. 옷과 인형뿐이라 가방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위성 전화를 챙기고 여행용 가방 두 개를 든 신기는 일 층으로 내려갔다. 일 층에서 신기는 꼼지락거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배가 홀쭉한 강아지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열심히 바둥거렸다. 신기는 우선 가방 두 개를 집으로 옮긴 후 돌아와서 강아지를 데려갔다. 강아지 집을 통째로 들고 애견용 분말도 전부 챙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효주는 손수 애견용 분말을 물에 타서 우유를 만들어 강아지에게 먹였다. 빗으로 강아지 털도 빗겨주고 강아지 집 청소도 직접 했다. 누워서 꼬물거리며 가끔 하품도 하는 강아지는 무척 귀여웠다.
전기를 아끼기 위해 불을 일찍 껐다. 제대로 자지 못한 박철은 물론 고열에서 갓 벗어난 효주도 바로 잠들었다. 신기는 충전을 끝낸 위성 전화로 효주 아버지의 전화번호로 전화했다. 친절한 음성이 전화기가 꺼져있다고 알려줬다.
- 작가의말
맞춤법 검사기 사이트가 접속이 안 되어 글을 늦게 올립니다. 그래도 아이피로 접속하는 방법을 깨닫고 불편한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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