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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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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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10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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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DUMMY

연회는 이틀 후에 열린다고 하였으니, 이 연회에 참석한 후 바켄바우어 건을 처리하면 되겠다고 샤를리즈는 생각했다. 샤를리즈는 그녀의 책상 끝에 있는 종을 두 번 두드린 뒤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그녀의 눈이 반짝 뜨임과 동시에 그녀의 사저 문이 덜컥 열렸다.


"부르셨습니까?"


하늘빛이 도는 회색머리칼을 가진 장신의 청년이 걸어 들어오자 샤를리즈는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쉰 뒤 자신의 주머니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어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딱! 하고 소리를 일부로 내는 걸로 보아 샤를리즈가 제법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에 에단은 아주 친한 자가 아니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미소를 짓고는 성큼성큼 걸어와 그 은화를 집어서는 자신의 주머니로 집어넣었다.


샤를리즈는 그 모습을 보면서 투덜거렸다.


"진짜 이해할 수 없어. 어떻게 2층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5초밖에 걸리지 않지?"


그녀의 사저가 에단의 사저가 있는 2층과 가까운 1층에 있었다고는 하나 5초 만에 2층에서 1층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상식적인 선에서는. 그랬기에 에단이 제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듣고 샤를리즈는 내기를 제안했던 것이다.


이길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샤를리즈는 평민들의 일주일 평균 생활비에 해당하는 은화 한 닢을 걸었고, 상식적인 선에서 한참을 벗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에단은 보란 듯이 성공해버렸다.


내기와 같은 것에 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샤를리즈의 표정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에 반해 에단은 무엇이 어려운지 모르겠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듣자마자 달려와 난간에서 뛰어내렸으니까요. 생각보다 얼마 안 걸립니다. 아마 연습을 한다면 당신도 할 수 있겠죠."


"싫어. 그런 괴물은 에단만으로도 충분해. 종소리는 어떻게 듣는 거야? 이거 내 옆방에 있는 에드리안도 못 듣는 거 알아?"


그녀가 아까 두 번 두드린 종소리는 그 소리가 2층까지 도달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았다. 기껏해야 그녀의 사저를 울릴 정도. 샤를리즈의 바로 옆방에 있는 에드리안조차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또한 에단에게 있어서는 별일이 아니었는지 머리를 긁적인 뒤 책상 앞에 있는 아무 의자나 끌어와 그녀와 마주 앉으며 말했다.


"그런 이유 따위를 알았으면 제가 검만 잡고 당신 꼭두각시 노릇만 하고 살았겠습니까? 연금술사든 치료사든 무엇이든 되었겠죠."


"흥! 그것들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 당신이 받는 대우가 훨씬 좋아."


샤를리즈가 코웃음을 치고 말했다. 사실이 그러하였다. 마법사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현재 연금술사는 그 세력이 약해져 있었고, 사제들이 신성마법을 사용하는 한 굳이 치료사에게 환부를 보일 필요는 없었으니까.


연금술사나 치료사들 수 십 명이 벌 돈과 총수 대리가 벌어들이는 돈 중 어느 쪽이 많을 지는 뻔했다. 에단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답했다.


"그걸 아니까 이러고 있는 거겠죠."


너무 쉽게 수긍하자 김이 빠졌다는 듯 샤를리즈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샤를리즈는 인상을 살짝 찌푸린 뒤 입을 열었다.


"당신은 조금 야망을 가져도 좋아. 당신 같은 검술이 있다면 신분이 평민이라 할지라도 왕궁 명예 기사자리는 거뜬히 차지할 수 있을 텐데. 그리고 거기서 계속 버티고 있으면 작위를 하사받을 수도 있겠지.


뭐, 내 아래에 있을 때보다 돈은 덜 만지겠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대단한 것 아니겠어? 에단은 돈에 욕심도 없잖아. 게다가 어쩌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겠지. 어떤 사내들은 그것 때문에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당신은 그렇지 않은가봐?"


"저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나서지 않는 것을 7년 동안 봐왔기 때문에 감히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겠지요."


씁쓸함이 묻어나오는 에단의 말에 샤를리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고개를 홱 돌려보았다. 그 '에단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누군지는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눈을 살짝 내리깔고는 중얼거렸다.


"그 사람의 몸에는 천민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꿈도 못 꿀뿐더러 꿈을 꿀 권리조차 없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 사람의 몸에는 귀족의 피도 흐르죠."


그 말에 샤를리즈는 고개를 홱 돌려 에단을 노려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저를 왜 불렀느냐, 뭐 그런 겁니다."


샤를리즈의 신경을 묘하게 건드린 말을 하고는 쉽게 빠져나가버린다. 거기다 저렇게 담담한 표정이라니! 샤를리즈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에드리안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샤를리즈가 7년이나 에단을 최측근으로 곁에 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주인을 아주 갖고 노는군! 뭐, 불러놓고 계속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 내 잘못이 크지만. 각설하고 이틀 후에 칼라일 시모어 경의 저택에 방문할 예정이야. 물론, 베스트셀러 작가로써. 연회에 초대받았거든."


"그런 자리 안 가시지 않았습니까?"


에단의 뚱한 물음에 샤를리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슬슬 나가야지. 에드리안도 제 몫을 확실히 챙겼겠다, 나도 내 이름을 직접적으로 알려야하거든. '그라니언 공작가문의 사생아 후계자의 누이가 서민이다.' 보다는 '그 누이가 뛰어난 학식을 지닌 베스트셀러 작가이다.'라는 편이 좀 더 그 아이의 명성에 도움이 되지 않겠어?


뭐, 그 아이는 그 아이 나름대로 잘 하리라 믿지만, 적어도 누이로써 방해물은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샤를리즈의 표정이 순식간에 빈트뮐러 상단의 총수의 그것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주먹으로 노크를 하듯 책상을 치며 입을 열었다.


"각하가 무슨 일을 벌일지 귀족 사회에서 그의 움직임을 직접 파악하면서 알아내야겠어. 내 허황된 생각이 상상에서 끝날지, 현실화가 될지. 그리고 그것이 에드리안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난 그 작자의 실수에 의해 18년간 준비해온 이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아."


그녀가 내뱉은 말에는 마치 차가운 냉기가 서려있는 듯해 오랫동안 샤를리즈의 곁에 있었던 에단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라도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순수하고 장난기 많은 아가씨 정도로 알려져 있는 그녀가 실상은 쥐도 새도 모르게 계획을 짜고, 그를 직접 움직이고, 그녀나 에드리안에게 있어 걸림돌이 되는 자를 파멸시키는 무시무시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는 극히 드물었으니까.


그것은 피도 눈물도 없다는 빈트뮐러 상단 총수의 모습이었다. 에단은 그의 짙은 회색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분위기를 바꿀 필요성을 느꼈는지 눈을 살짝 굴린 뒤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결론은 연회 갈 준비를 하라는 거군요. 이래서야 총수 대리보다는 집사에 가깝죠."


그의 가벼운 투덜거림에 샤를리즈의 매서움이 누그러졌다. 그녀는 난처하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그런 걸로 투덜거릴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내가 연회를 가는 것에 준비할 필요는 없어. 학술회에 가까운 연회이기 때문에 에스코트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부탁하고 싶은 건 마차나 준비해 달라 뭐, 그런 거지."


"옷은 어쩌시고요? 당신에게 연회에 갈 드레스가 있었습니까?"


"드레스를 왜 입고 가? 평소에 입던 정장 입고 갈 건데. 내가 거기 선 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요즈음엔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들은 머리가 비었다는 말이 많아서 정장을 입고 가는 게 평판에 더 좋을 거야. 요즈음 귀족 영애들과 동일시되는 건 정말 기분 나쁜 일이지."


정확히는 '프리실라 아가씨와 동일시되는 것'이 기분이 나쁠 샤를리즈였지만 말이다. 에단은 그녀의 속마음을 파악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리즈는 칼라일 시모어가 보낸 초대장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바켄바우어의 남부지부장은 잘 구금하고 있겠지?"


연회 이야기를 꺼낼 때와는 사뭇 다른 목소리다. 그 미세한 목소리 변화에 에단 또한 편안하게 앉아있던 허리를 곧추세웠다.


"예. 상단의 지하에 잘 있습니다. 지은 죄 때문에 도망칠 생각조차 못하고 있지요. 혹시나 싶어서 장정 5명을 붙여두긴 했지만요. 그 장정들만 없으면 구금이라기보다는 접대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잘 대해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명령한 그대로요."


에단의 말에 샤를리즈는 만족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제법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검지로 만년필을 책상에 문지르듯 천천히 굴리기 시작했다.


"잘했어. 저 쪽에서 그 작자에게 홀대했다는 걸로 따지고 들 수 있으니까 대우에 있어서는 소홀함이 없도록 해야겠지. 일단은 한 상단의 남부지부장을 맡았던 자이니까. 그 그릇은 너무나도 작았지만. 바켄바우어 총수가 사람 보는 눈이 제법 있다고 하는 말은 이번을 통해 시정되어야겠지."


"딱히 사람 보는 눈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는데요. 그 사람."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이 드문 에단이 샤를리즈의 말에 토를 달자 그녀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러나 곧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기억해낸 샤를리즈는 에단을 놀리듯 박수를 한번 짝 치고 감탄했다.


"어머? 설마 에단, 그 때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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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6 2,663 27 12쪽
21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5 2,684 32 12쪽
20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5 2,717 26 10쪽
19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1 11.02.04 2,781 2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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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0.10.10 3,162 34 10쪽
1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4 10.10.10 3,240 27 9쪽
11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10) +2 10.06.05 3,422 29 8쪽
10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9) +2 10.06.05 3,490 30 10쪽
9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8) +2 10.06.03 3,597 28 11쪽
8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7) +2 10.05.31 3,640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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