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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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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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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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1.02.04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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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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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DUMMY

"어이, 넌 뭐냐?"


그의 뒤에서 들려오는 조금 걸걸한 목소리에 에드리안은 화들짝 놀라 상념에서 벗어났다. 그의 뒤에는 에드리안보다 키가 5cm는 커 보이는 장신의 청년이 못마땅하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한 갈색 머리칼과 그 아래의 하늘빛 눈동자는 청년이 입고 있는 은빛 갑주와 대비되어 더욱 도드라졌다. 에드리안은 은빛 갑주가 의미하는 바를 빠르게 파악하고는 청년에게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입을 열었다.


"저는 높으신 분의 명을 받아 스웨어 경을 뵈러 왔습니다만."


"높으신 분 누구? 아니 그 전에 네 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그 따위 정장을 입고 기어들어와? 죽고 싶냐? 앙?"


"에..엑?!"


길바닥의 건달에게서나 나올 법한 말투가 아무렇지도 않게 기사의 입에서 나오는 것도 에드리안에게는 당황스러워 죽을 맛인데 기사로 추정되는 청년은 한 손으로 에드리안의 멱살을 거칠게 낚아챘다.


샤를리즈의 가호 아래 이런 일을 단 한 번도 당해본 적이 없는 에드리안은 정신이 아연해졌다. 그리고 에드리안의 멍한 표정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청년의 인상은 더욱 험악해진다.


"이 자식이 사람 말을 못 들어 쳐먹냐?! 여기는 왕립 기사단 제 1부대 소속의 대련장이란 말이다! 그 계집애 같은 상판 때기로 여길... 응?"


청년은 에드리안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손을 멈추고는 인상을 살짝 풀었다. 그리고는 에드리안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빨간 머리에 녹색 눈이라. 이 이상한 색 배합은 우리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건데. 그러고 보니 그 사람하고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사람한테 아들이 있었던가?"


그 사람이 누군지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에드리안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쳤다.


"이, 이, 있습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저, 전 그라니언 공작 각하의 사생아로써...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긴장하거나 당황하면 횡설수설하는 에드리안의 버릇이 튀어나오자 청년의 누그러졌던 인상은 급격하게 험악해졌다. 그리고 인상이 험악해지는 것과 비례하여 여전히 에드리안의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줄 또한 도드라졌다. 결국 청년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 자식이 남의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작정을 했나? 똑바로 말 못하냐!"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마주해본 적이 없는 성품의 소유자 앞에서 에드리안은 기가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정도로 넋이 나간 에드리안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의 누이와 에단 그리고 그의 아버지뿐이었다.


만일 자신의 넋을 나가게 한 사내의 머리로 붉은 사과가 날아오지 않았다면, 에드리안은 저도 모르게 살려달라고 기도문을 읊었을 것이다.


따악!


비교적 청명한 타격 음이었다. 청년은 멱살을 잡고 있던 것을 놓고는 제 머리를 매만지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아까까지 에드리안에게 윽박지르던 것은 분노의 축에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운을 온 몸에서 뿜어내며 청년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리고는 선발 장군이 적진을 향해 검을 뽑으며 소리를 치는 것도 저 것보다는 작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고함을 질렀다.


"어떤 빌어먹을 자식이냐!"


에드리안은 다리가 풀리는 것을 느끼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곳으로 자신을 보냈단 말인가?


스웨어 경은 고사하고 어쩌면 여기서 생을 마감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아아, 자신이 죽으면 누이는 어떻게 나올까? 평소 누이가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지, 그리고 자신의 방해물을 어떻게 해치웠는지 보아왔던 에드리안은 정신을 차렸다.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나라가 뒤집힐 거야! 그러고도 남을 누님이잖아!'


여전히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에드리안은 일어섰다. 그리고 에드리안은 보았다. 불을 뿜을 기세로 씩씩거리는 사내의 뒤쪽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붉은 사과를 매만지는 미남자를.


그 사내는 에드리안이 익히 알고 있던 프리실라의 환한 금발과는 조금 다른, 오히려 진짜 금을 실로 뽑아낸 것만 같은 긴 머리칼을 단정하게 하나로 묶고 있었다. 미남자의 눈은 에드리안의 머리칼보다 훨씬 짙어, 갈색에 가까운 붉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는데 에드리안은 그 눈동자가 묘하게 섬뜩하게 느껴졌다.


한편 으르렁거리던 사내는 제 눈앞에 있는 곱상한 청년이 넋을 놓고 그의 등 뒤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보고는 에드리안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폭발했다.


"클랜디스! 이 자식...!"


에드리안에게 있던 짜증이 고스란히 배가 되어 클랜디스라는 미남자에게로 옮겨진 것만 같았다. 이름 모를 청년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가 에드리안에게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칠게 미남자의 멱살을 잡고는 정원으로 그를 내던져버렸다!


그리고는 날아간 자가 다쳤는지 다치지 않았는지 관심이 없다는 듯 두 팔을 들어 기지개를 쭉 편 뒤 소리쳤다.


"아! 속 시원하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에드리안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 지 못했다. 언뜻 봐도 에드리안 만한 키를 가진 사내를 두 손으로 내동댕이친 것도, 그런 짓을 해놓고서 속 시원하다며 호탕하게 웃어젖히는 것도 에드리안에게 있어서는 이세계의 일이었다.


에드리안의 머릿속에 있는 최강자 에단도 저런 짓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그 때 청년의 웃음이 멎었고 청년의 고개가 서서히 에드리안을 향해 돌아갔다. 아까와는 달리 화는커녕 짜증조차 담기지 않은 얼굴이었으나, 에드리안은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아, 그러고 보니 너. 아까 뭔 말 하려고 하지 않았냐? 자초지종을 정확하게 설명하라고. 그걸 말하려던 차였지."


"그보다 저 사람은..."


에드리안은 남자가 날아가 버린 정원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로 보아 기절이라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뭔 대수라는 듯 사람을 날려버린 당사자는 뺨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어엉? 저건 걱정할 필요도 없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던져버렸으니까 10분 후면 깨어날 거다. 애초에 이 정도로 죽을 놈이었으면 훈련을 땡땡이치지도 않았을 거다. 너도 저 꼴이 나지 않으려면 똑바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넌 딱 봐도 비리비리하니까 죽어버릴 지도 몰라."


협박 아닌 협박에 에드리안은 최대한 제 누이에게 말하듯 상황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본래 그라니언 공작 각하와 로즈퍼드 자작가의 영애 사이의 사생아인데, 나이가 어느 정도 찼기에 후계자로써 왕도로 입성하게 되었고... 지금은 각하께서 스웨어 경께 전해라는 전갈을 전하기 위해 여기에 왔는데요."


"흐음.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 그런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군. 공작에게 사생아가 있다는 말을 말이야. 그런데 그게 로즈퍼드 자작가 영애 사이의 아들이었나? 로즈퍼드의 피가 흐르면 모두 싹수가 노란 놈들인 줄 알았는데..."


청년은 인상을 살짝 찌푸린 채 아까 제가 날려버린 자가 있을 정원을 노려보았다.


"하긴, 가끔씩 돌연변이도 있겠지. 그래서 넌 결국 그라니언 공작 가문의 계승자란 말이냐? 그럼 사생아라는 말 따위는 네 입으로 내뱉지 마라. 그렇게 대단한 가문을 이어받는 주제에 네 스스로를 깎아내릴 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


많이 누그러진 태도로, 이제는 조언까지 해주는 청년의 태도에 에드리안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성격이 좀 매서워서 그렇지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다. 에드리안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합니다."


에드리안의 갑작스러운 감사에 청년은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뭐 감사받을 일이라고... 그보다 너 이름이 뭐냐? 나이는? 나보다 확실히 어려 보여서 말을 놓고 있었는데."


"아, 저는 에드리안 드 그라니언입니다. 올해 18살이고요."


"그래? 나는 엘루이즈 드 스웨어. 올해 20살이니까 너도 말 놔라. 징글맞게 존댓말 쓰지 말고."


청년, 엘루이즈는 여태껏 에드리안이 써왔던 존댓말에 닭살이 돋았다는 듯 제 팔을 거칠게 문질렀다. 반면 에드리안은 그의 소개에 넋을 놓고 말았다. 그러니까 눈앞에 있는 청년의 성이 뭐라고...


"스웨어 경이 그럼 그 쪽이었습니까?"


"존댓말 쓰지 말라니까!"


험악하게 소리 지르는 그의 모습에 에드리안은 어깨를 움츠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스웨어 경이... 너야?"


"어, 그러고 보니 나한테 전할 게 있다고 그랬지? 줘봐라."


에드리안은 그에게 전갈을 건네주며 엘루이즈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그가 듣기로 스웨어 경은 앨런의 16살 아래 동생이라고 했다. 앨런이 50대 후반이었으니 스웨어 경은 40대 초반이여야 말이 된다.


그런데 엘루이즈는 자신을 20살로 소개했다. 그제야 에드리안은 엘루이즈가 자신이 찾는 스웨어 경이 아닌, 그의 아들임을 깨달았다. 경비병이 자신에게 잘못 가르쳐준 것이다. 분명 자신은 그라니언 공작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고 했는데 어째서 스웨어 경의 아들이 있는 곳을 가르쳐준단 말인가!


물론, 엘루이즈도 기사 차림을 하고 있었기에 그 또한 스웨어 경임은 확실했지만, 그라니언 공작이 이렇게 어린 청년에게 서신을 보낼 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에드리안은 속으로 경비병의 어리석음을 원망했다.


그들의 어리석음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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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1.02.06 2,663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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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2 10.10.10 3,161 34 10쪽
12 칠흑의 꽃. 제 2막. 기묘한 베스트셀러 작가 +4 10.10.10 3,240 27 9쪽
11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10) +2 10.06.05 3,422 29 8쪽
10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9) +2 10.06.05 3,490 30 10쪽
9 칠흑의 꽃-제 1막. 검은 꽃 인장의 주인(8) +2 10.06.03 3,597 28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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