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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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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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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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2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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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DUMMY

크로이츠 왕국의 수도는 왕국에서도 조금 북부로 치우쳐져 있다. 그럼에도 왕국 지리 특성상 따뜻한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어 겨울이 되어도 눈이 자주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눈이 내릴 때는 연말이나 되어야 했는데 올해는 신기하게도 연말이 아직 다가오지 않았음에도 첫눈이 내렸다. 그리고 그 첫눈이 내리던 날, 태손이 태어났다.


크로이츠 사람이라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태자와 태자비 사이의 아들이 태어난 것이었다.







* * *







“다들 난리네요.”


샤를리즈는 머그컵 안에 담긴 밀크티를 홀짝 마신 뒤 말했다. 그녀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축제는 아직 2주나 남았는데도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축제준비에 한창이었다. 아마도 얼마 전 태어난 태손을 위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으리라. 태손이 태어나 상단의 일도 바빠졌건만, 샤를리즈는 그 일들을 모두 다른 이들에게 미뤘다.


예를 들면 에단이나 최근 슈드레거 일로 수도를 방문한 로버트 케일리에게 말이다. 타인에게 제 일을 미루지 않는 성격인 그녀가 일을 미룬 이유는 다름 아닌, 그녀의 앞에서 그녀와 마찬가지로 창밖을 바라보는 남자 때문이었다. 이 왕국에서 태손이 왕자라는 사실이 가장 달갑지 않을 사람.


“왕실에 아이가 태어난 건 20년이 넘었으니까요. 거기다 그 유명한 커플의 아이 아닙니까?”


란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의 행보가 그녀의 동생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요즈음 부쩍 그와 자주 만나고 있었다. 자주라고 해봐야 주일에 한 번 정도였지만, 평소 샤를리즈가 만나는 이가 매우 한정되어있음을 감안하면 자주라고 할 수 있겠다.


그 때문에 샤를리즈도 어느 정도 란을 인간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 그는 진심으로 미소 지은 것이다. 신기하다. 태자가 아들을 얻었다. 태자는 현재 명실상부한 왕위 계승 서열 1위. 그리고 2위가 바로 며칠 전 태어난 아들이 되는 셈이다.


왕을 포함해서 경쟁자가 둘에서 셋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거기다 태손은 모든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그들을 내치고 왕위에 올라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은. 그런데도 순수하게 기뻐하고 있었다. 샤를리즈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대단하네요.”


그 중얼거림을 용케도 들었는지 란이 고개를 돌려 물었다.


“뭐가요?”


“아, 그냥. 신기하잖아요. 물론, 인기가 많은 두 분이셨다지만... 한 사람의 탄생으로 모두가 기뻐하는 이 상황이. 전 사실 좋은 일인 건 알겠는데, 기쁘기까지는 하지 않으니까.”


샤를리즈는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 그러자 란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흐음. 난 당신이 꽤 감정이 풍부하다고 생각했는데. 하긴, 너무 먼 일이니 와 닿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그냥 그런 거죠. 이 나라에 대를 이을 왕족이 생겼으니 우리 왕국이 평안하게 유지되겠구나. 뭐, 그런 심리가 반영된 게 아닐까요?”


“당신도 기뻐하고 있잖아요. 그러면서 다른 사람 얘기 하듯이 얘기하네요.”


“제가요?”


“네. 엄청 기뻐 보이는데?”


“뭐, 기쁘다고 해두죠.”


“그래요.”


어차피 저 사람의 입장에서 샤를리즈는 아무 것도 모르는 여자이다. 그러니 여기서 더 파고 들었다간 도리어 저 쪽에서 의심하리라. 그 정도로 눈치가 좋은 남자다, 저 남자는. 그녀는 아스피트 공작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이 정도까지 오르는 데는 분명 자신의 능력도 능력이었지만, 운도 많이 따라준 것이라고.


만일 자신보다 더 뛰어난 이를 만났더라면 진작 무너졌을 거라고. 그리고 그 자가 말했던 뛰어난 이들은 아마 란의 뒤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들을 이끄는 것이 란. 그 때문일까? 샤를리즈는 그를 대할 때 지나치게 경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고치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그의 태도 때문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얼마간은 분명 그는 그녀를 어떻게든 설득해 총수를 만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는 이렇게 미지근한 대화만 나눈다. 거기다 만날 때면 항상 총수에 대해 물어볼 법도 하건만 그런 것도 없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 그 소식 들었습니까? 시모어 경의 손녀 밀리아 양이 곧 결혼을 한다고 하더군요. 시모어 경이 샤를리즈 양도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밀리아 시모어라는 말에 샤를리즈는 가면무도회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그 여자의 신분으로 왕성에 출입했었다. 그리고 뜻밖의 대어를 잡았었다. 그 여자가 결혼한다고 한다. 상단의 이름으로 뭔가 큰 선물이라도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건 정중히 거절해야겠네요. 그런 자리 좀 불편하거든요. 나중에 따로 뵈어야겠어요.”


“그런 자리라니.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 말입니까?”


“네. 그런 데 가려면 여자로써 꾸며야 할 테고. 또, 모르는 사람들도 많겠죠. 거기서 뚱한 표정을 지을 순 없으니 하루 종일 웃어야 할 텐데. 거기다 전 신부인 밀리아 양의 얼굴도 모르는 걸요. 그 날 상단에 일이 없으리라 장담할 수도 없고.”


애초에 그렇게 사람이 많은 자리에 그녀가 가는 건 안 될 일이다. 공작과 에드리안, 그리고 자신은 닮았으니까. 단순한 흥미로 나들이를 나간 건 지난 번 한 번으로 족하다. 그를 알 리 없는 란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곧 축제이니 상단에도 일이 많겠군요. 당신도 상단의 일에 관여하곤 합니까?”


“무겁지 않은 것들이라면 그렇죠. 근래 바켄바우어를 흡수하고 이래저래 일이 많으셔서 총수께서 많이 힘들어하시니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어 드리면 좋겠죠.”


“그렇군요.”


그렇게 말을 끊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는 란을, 샤를리즈는 밀크티를 마시는 척하며 바라봤다. 일부러 상단 얘기와 총수 얘기를 해서 이야기를 할 건수를 만들어줬는데도 덥석 물지를 않는다. 오히려 저 태도는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태도가 아닌가?


태손이 태어났고 현 왕에 대한 지지도는 높아졌다. 그러니 저 쪽 상황은 급할 텐데. 저 여유 있는 태도는 뭐란 말인가? 샤를리즈는 몰래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나 란이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돌리자 금세 인상을 푼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어이없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라니언 가문의 도련님에 대한 얘기였죠.”


제 동생의 얘기를 갑자기 꺼내자 샤를리즈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뭔데요?”


“그 댁 도련님, 아시다시피 공작부인의 자식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고위 귀족 자제들에게 따돌림 비슷한 걸 당한다더군요.”


샤를리즈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눈을 깜빡였다. 이게 지금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학식이 뛰어나, 왕궁 학자들의 신임을 받으니 그를 질투한 거겠지요. 거기다 사생아인데 저들보다 높은 공작 작위를 받게 되었으니. 어리고, 성격도 온화하다고 하니 따돌림의 대상이 된 거겠죠. 다행히 스웨어 가문의 도련님이 방패막이가 되어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만... 샤를리즈 양?”


“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샤를리즈는 퍼뜩 정신 차렸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굳히고 있었다.


“표정이 안 좋군요. 아, 혹시 그 댁 도련님과도 친분이 있으셨습니까?”


“간혹 뵈었죠. 그보다 참... 질 떨어지네요.”


“뭐, 하지만 스스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긴 하죠. 물론, 그들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그가 훌륭한 공작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관문 같은 거 아니겠습니까? 이 나라는 서자에 대해 관대한 나라가 아니니.”


“그렇죠.”


그 애가 직접 넘어 가야 할 관문. 란의 말은 분명 옳았다. 어차피 이런 일은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마음이 아리는 건, 최근 에드리안을 보기 힘들 정도로 그녀가 바빴기 때문에 그 애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때문이리라. 거기다 에드리안의 성격상 이런 일에 대해 저에게 말하지도 않을 테니. 괜히 이 일에 대해 자신이 입을 열었다간 더 어색해질 일이다.


샤를리즈는 작게 한숨을 내쉰 뒤 괜한 화풀이를 란에게 한다.


“그 가문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스니케드 왕가에서 대대적인 숙청이 일어났다죠? 그럼 그 댁 아가씨에게도 계승권이 생기는 거겠죠?”


샤를리즈가 란과 자주 만나면서 알아낸 것은, 이 남자가 프리실라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온화했던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은 그걸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게 재밌어서 그가 그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때면 프리실라의 말을 꺼내곤 했던 샤를리즈였다. 과연, 지금도 인상이 살짝 굳는다.


“그렇겠죠. 그 왕에게는 아직 왕자가 없으니.”


“그 아가씨와 결혼하는 사내는 정말 행운아네요. 공작 가문의 사위이자 어쩌면 스니케드 왕국을 노릴 수도 있을 테니. 그런 아가씨가 왜 여태까지 약혼자가 없는지... 안 그런가요, 란 씨?”


“그렇..죠.”


애써 미소 짓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 역시 이러한 반응으로 보건데, 프리실라와 란은 약혼 관계이며 란은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뭐, 이런 것들이 변수가 될 리는 없겠지만. 마음에 안 든다고 파혼을 하기에는 프리실라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샤를리즈는 란의 어색한 미소를 바라보며 밀크티를 홀짝 마셨다. 프리실라보다는 역시 지금은 에드리안이 더 신경 쓰인다.


작가의말

9막 시작입니다. 이번 화는 에단의 활약이 큰 화입니다.
그런데 정작 에단이 안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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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칠흑의 꽃. [외전]실수 +4 12.10.29 1,14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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