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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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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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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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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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1쪽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DUMMY

* * *



“지금쯤 한창 에단 씨가 싸우고 있겠네.”


로버트의 말에 샤를리즈는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추고는 큭큭거리며 물었다.


“당신도 가고 싶어요? 그랬으면 내가 힘을 좀 써서 구경 가게 해줬을 텐데. 가령 에단의 동생으로 위장을 한다든가요.”


“아, 그건 싫은데. 액면가가 내가 더 늙은데. 그보다 우리 아가씨는 가고 싶지 않았나봐요? 태자 저하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닌가?”


그 말에 샤를리즈는 뭐라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문다. 란과 태자가 사촌지간이라는 것은 아직 극비이다. 사실 란과 태자의 관계 때문에 태자의 얼굴을 한 번쯤은 보고 싶었다. 닮았을까? 사촌이면 닮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과 프리실라는 어쩌면 자매인데도 닮지 않았다.


자신은 자신의 어머니를, 프리실라는 공작부인을 빼다 박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란과 태자는 같은 검은 머리칼에 푸른 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더 닮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왜 이 화제를 두고 이렇게 스스로가 고민을 하는지 알 수 없어 샤를리즈는 괜히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호칭 말이에요. 여왕이면 여왕. 아가씨면 아가씨. 통일하지 그래요? 그리고 내가 거길 가서 뭘 하겠어요? 남자들이 득실거리는데. 그런 곳 생각만 해도 숨 막혀.”


“하긴, 하늘이 버리셨다는 운동신경을 가지셨으니 가서 본다 해도 뭐가 뭔지도 모를 테고.”


“어머? 지금 시비 거는 건가?”


“설마.”


“아무튼 에단이 싸우는 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와서 일을 하는 건 좋은 선택이에요. 내가 궁정에 사람을 좀 심어둬서 아마 도성에서 누구보다 빨리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을 테니까.”


“흐음. 하지만 사람의 일인지라 막 달려오고 하는데 시간이 뺏겨서 그렇게 빨리 이야기를 듣는 건 아닐 텐데?”


“아니에요. 이거, 얼마 전에 칼라일 경에게 선물로 받았는데. 키워드를 순식간에 보내줄 수 있는 도구라고 하더군요.”


샤를리즈가 주머니 안에서 수정구 하나를 꺼내어 냈다. 수정구는 투명했는데 그 안은 뭐라 글씨가 떠오르려고 하는 건지 희뿌연 연기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로버트는 신기하다는 듯 그 수정구를 빤히 바라보았다.


“뛰어난 마법사와 친구를 하는 것은 자작 작위를 받는 것보다 더 좋다고 하더니.”


“그렇죠? 이거 아직 시판도 되지 않은 거래요. 몇 개 시범삼아 만들어 봤는데 그 것 중 하나를 내게 주셨죠. 아무래도 그 분이 나를 많이 아끼나 봐요. 그래서 나도 얼마 후 있을 마법사 후원회 때 성의를 좀 보이려고요.”


“그 성의가 얼마나 될지 궁금한데요?”


“왕국 최고의 마법사께 보이는 성의니.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요. 상단의 돈을 쓸 생각은 없으니까. 내 돈으로 내가 후원할 거예요.”


“아, 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우리 아가씨 재산이 어느 정도 되실까? 소문에 의하면 총수께서 비밀리 모아둔 재산이 우리 상단을 하나 더 차릴 만큼이라던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 정도는 아니라면, 그 밑까지는 된다는 건가?”


“글쎄요? 아, 글자가 뜨는 것 같은데. 나도 사실 이거 처음 보는 거라...”


샤를리즈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하얀 연기가 꾸물거리더니 이윽고 글씨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탄성을 지르던 로버트는 이내 그 연기가 만들어내는 글씨를 보고서는 벙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샤를리즈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의미에서 말이다. 글자의 의미를 샤를리즈는 곧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위티시 훈장]






훈장의 이름이 너무 짧았다. 란만 하더라도 그 이름이 여섯 글자이고, 태자의 풀 네임은 다섯 글자이다. 그러니 그들의 이름을 딴 훈장도 그 정도는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저 훈장의 이름은 단지 세 글자이다. 물론, 짧은 이름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름에 담긴 뜻이었다. 로버트가 말했다.


“위티시.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다라크 교 성서에 나오는 부족 이름이에요.”


샤를리즈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엄지로 제 입술을 매만지며 그녀의 사저를 잰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를 로버트가 빤히 바라보고는 다시 글자를 바라보았다.


보통 다라크 교의 성서는 읽어나 보지 저런 식으로 한 단어를 보고 ‘이게 뭐다.’라고 달달 외우지는 않기 때문에 그는 위티시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본래 다라크 교를 믿지 않는 나라의 출신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샤를리즈가 갑자기 자리에 앉았고 어두운 표정으로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에 로버트가 물었다.


“왜 그럽니까?”


“위티시는 아주 먼 옛날, 다라크의 현신이 이 땅에 다시 태어났을 때 그를 보좌하던 부족이에요. 어떠한 핍박에도 그를 지켰고, 결국 그를 위해 산화되었던 부족. 다라크 교에서 위티시는 수호자의 뜻을 가지고 있죠.”


“흐음. 흥미롭군요. 아, 태자비 마마께서 다라크 교의 성녀였으니 성서에 있는 이름을 지어준 건가?”


“그렇죠. 문제는 그 의미에요. 태손은 상식적으로 왕위를 이어받아야 할 자. 그런데 어째서 다라크의 현신의 이름이 아닌, 그 수호자의 이름이 붙여졌겠어요?”


“그건 그렇군요. 그렇다고 왕위를 이어받을 이가 또 있는 것도 아닌데.”


그 말에 샤를리즈는 아차, 하더니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로버트는 에단이 아니다. 그러니 란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이 일을 말해야 할까? 샤를리즈는 짧게 생각했다. 그는 곧 그녀의 자리를 물려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미리 말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샤를리즈는 최대한 짧게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단어를 정리한 뒤 말했다.


“내가 만나고 있다는 자, 란이라는 사람의 본명은 라르비카이츠로 선왕의 아들이죠. 그는 현재 그라니언 공작가를 비롯한 유수 귀족 가문들과 접촉해서 왕위를 차지하려 하고 있고, 내가 알고 있기로 얼마 전에는 태자 저하를 보러 갔었어요.”


“워! 잠깐만!”


로버트가 소리쳤다. 그리고는 그의 귀를 막으며 눈을 깜빡인다.


“내가 방금 엄청난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은 것 같은데?”


“이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건 나와 에단. 그리고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건 마담뿐이니까요. 하지만 로버트 씨가 부총수 건을 수락했으니 당신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그럼 내가 마담보다 한 수 아래였다는 겁니까?”


마담 페트리시아를 라이벌로 생각하는 로버트였다. 샤를리즈는 그를 달래듯 웃으며 말했다.


“마담은 우리들 가운데 가장 정보를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 제가 그녀에게 의뢰를 했어요. 비록 그녀의 정보와는 상관없이 뜻밖에 그 작자를 찾아냈지만.”


재미삼아 갔었던 가면무도회에서 그를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샤를리즈는 고개를 들어 로버트를 바라보았다. 로버트는 아직도 상황을 이해 못한 건지 멍하게 있었다. 그가 이해를 할 때까지 시간을 둬야 했다. 하긴,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이렇게 압축시켜서 말했는데 누가 과연 금방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얼마나 지났을까? 수정구의 글이 사라지고 또 다른 글귀를 만들어내려던 찰나 로버트가 말했다.


“그럼 그 이름 때문에 당신이 당황한 것도 이해가 가는군요. 태자는 지금 왕위를 그.. 란 이라는 자에게 넘기려고 하고 있어요. 내 말이 맞습니까?”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면요. 그의 아들이 왕위를 잇는 것이 아니라 란이 이끌 왕가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공언한 셈이니까요. 자신의 의지를 란에게 비췄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요, 문제는 이게 현왕의 뜻이 반영되었는가, 아닌가겠죠. 물론, 제 아들의 이름을 제 멋대로 지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는 없지만, 현왕과 태자 저하의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제 멋대로 이름을 지었다는 쪽이 말이죠.”


“이름을 그냥 짓는 거야 그렇다 치지만 이 일은 대소사 아닙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모르겠다는 거예요. 이 일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를. 하여튼 지금쯤이면 귀족들도 난리가 났을 거예요. 물론, 란 쪽의 귀족들이 말이죠. 게다가 이렇게 된다 하면, 란, 그 사람이 어떻게 등장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골머리를 좀 앓아야 할 거예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영웅이 되는 방법이지만 크로이츠 왕국은 너무나도 평화로우니.”


“제 식으로 이야기해보자면 무대가 없는 셈이로군요.”


“그런 셈이죠.”


샤를리즈가 빙긋 웃은 뒤 다시 수정구를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령 등장을 할 무대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역할이 없어요. 현왕이 폭정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태자 저하는 인기가 넘치죠. 명분이 없어요. 귀족들이나 다른 세력들을 규합해 자신이 왕위에 올라야겠다고 주장할만한 명분이.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만 말이에요. 어쩌면 그에 대해서도 다 생각해뒀을 지도 모르겠지만.”


높으신 분들의 일을 어떻게 알겠냐는 듯 샤를리즈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그에 로버트는 앓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이래서 내가 상단 일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 거절했었죠. 무대의 일과는 달리 이런 일들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상단 일이 장사만 잘하면 되리라 생각하는 치들에게 하루만 일 좀 맡아달라고 청하고 싶습니다. 세상에, 정변이라니!”


“나도 비교적 최근에 알았어요. 그러니 이렇게 눈치만 살살 보고 있는거지만. 조금만 더 일찍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일찍 알았으면 달라질 것이 있었을까요?”


“아뇨.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손놓고 구경만 하지는 않았겠죠. 어느 쪽에든 돈을 대던가... 뭐, 조만간 저 쪽에서 접촉을 해올 것 같지만요. 마음 같아선 슈드레거의 일을 끝내고 이쪽 일도 해결하고 싶은데 왠지 모르게 일이 맞물릴 것 같거든요. 그래서 사실 로버트 씨를 이쪽으로 끌어들인 거예요. 만일 맞물리게 된다면 슈드레거 일은 로버트 씨에게 전임할 생각이니까.”


“마녀가 따로 없으시군.”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죠.”


샤를리즈가 제 머리칼을 꼬며 말했다. 이래나 저래나 일이 꽤 재밌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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