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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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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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01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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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DUMMY

누이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요즈음 자신도, 그리고 누이도 너무나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공작 가문의 일원으로써 정식으로 인정받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단에서 같이 살았기 때문에, 아무리 누이가 바쁘더라도 지나가면서라도 한 번쯤은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조차 불가능하다.


자신이야 주변에 엘루이즈나 클랜디스, 그리고 제인 및 다른 이들과 함께 지낸다지만 샤를리즈의 인간관계는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에드리안이다. 기껏 해봐야 에단, 마담 페트리시아, 그리고 요즈음 만나고 있다는 란 크로프츠라는 남자뿐.


예전에 비앙카가 살아있었을 때라면 그녀와 서신을 주고받아서 외로움을 덜었던 샤를리즈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누이가 생각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임을 아는 에드리안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지금이야 일이 바쁘다는 명목으로 일에 미쳐 잘 버티고 있다곤 하지만, 만일 조금 한가로워진다면 그의 누이는 부쩍 빈자리를 크게 느끼게 될 것이다.


이왕이면 지난 번, 칼라일 경의 연회 같은 곳에 자주 참여해서 친구들도 많이 만들고 그랬으면 좋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에드리안이 뭐라 하지 않는 까닭은, 샤를리즈가 그토록 폐쇄적으로 살아온 이유의 대부분이 그 때문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도련님, 상단으로 모실까요?”


마부의 말에 정신을 퍼뜩 차린 에드리안은 부드럽게 미소 지은 뒤 고개를 끄덕이곤 그에게 책을 넘겨주었다. 예전 같으면 마부의 존대를 부담스러워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겠지만 이제는 마부에게 자연스레 책을 넘기고 그가 문을 여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자신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진다. 그의 누이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에드리안은 마차에 탄 뒤 창문을 살짝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하던 생각을 이어간다. 샤를리즈가 그토록 폐쇄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신 때문이다. 혹여 공작가문으로 인정받지 못한, 제 친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에드리안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샤를리즈가 될 테니까. 그리고 그 말을 직접 에드리안에게 한 샤를리즈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에드리안은 아주 어렸기 때문에, 별로 특별할 것 없다는 듯 말하는 샤를리즈의 모습에 그냥 ‘그런가보다.’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샤를리즈의 성격을 아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때, 그렇게 말할 때 제 누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짐작조차 하기 힘들었지만, 아마도 비참했으리라.


그래서 에드리안은 자신이 떳떳해지면 누이를 공작가문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만들겠다고 다짐했었다. 약점은, 감추면 감출수록 더 큰 약점이 되고,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언젠가는 그 의미가 퇴색해 약점이 아니게 된다. 적어도 에드리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누이는 저를 위해 한없이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길 원했지만 자신은 반드시 누이를 빛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보다 낮은 가문의 사람들의 천대쯤은 기꺼이 받을 수 있었다.


마차의 속도가 빨라지자 바람이 세졌다. 바람은 제인을 닮았다. 그러고 보면 제인을 만나러 가야한다. 이젠 날씨가 정말 추워져 제인을 진정으로 돌보고자 하는 이가 없다면, 제인은 그 추운 정원을 얇은 원피스 차림으로 나와 돌아다닐 것이다. 망토 같은 걸 사줘야 할까? 하지만 스웨어 가문에서 제인에게 그런 것을 사주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텐데. 혹시나 괜한 참견이 될까싶다.


나중에 상단에 가는 김에 카를로가 있다면 조언을 구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교계 시즌이 아니니 카를로가 수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슈드레거의 일 때문에 로버트도 있을 수 있다. 그럼 재미있을 것이다. 그 둘은 친한데다가 에드리안을 많이 귀여워했기 때문에 에드리안도 그들을 잘 따랐으니까. 에드리안은 마차의 벽에 기대어 중얼거렸다.


“빨리... 상단 가고 싶다.”


그가 태어난 곳은 분명 그라니우스 성이었지만 그의 고향은 역시 빈트뮐러 상단이었다. 5살 때부터 18살 때까지 자란 곳. 에드리안에게 있어서 정신적인 안식처는 그곳뿐이다. 이런 사실을, 에드리안을 놀리던 녀석들이 듣게 되면 이걸 가지고 얼마나 빈정거릴까? 생각해보니 아찔하기만 하다. 이런 사실은 역시 더 강해지고 나서 이야기하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한다.


왕성에서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빈트뮐러 상단이 위치했기 때문에 꾸벅 꾸벅 졸기 전에 마차가 멈췄다. 에드리안은 목이 뻐근한 것을 느끼고 스트레칭을 하며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여는 것을 기다렸다. 마부가 문을 열자 에드리안은 마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책은 저택에 좀 갖다 두게. 저택으로 갈 때는 상단의 마차를 타고 갈 테니 다시 오실 필요는 없네. 어쩌면 오늘 상단에서 묵을 지도 모르니 내가 저녁 전까지 들어오지 않거든 그리 알라고 앨런에게 말해 두고.”


“예, 도련님.”


마부가 고개를 숙인다. 그에 에드리안은 가보라는 듯 미소 지은 뒤 상단 건물을 바라보았다. 고향집에 온 기분이다. 그리고 상단의 입구에서 저를 맞이하고 있는 에단의 모습은 그 기분을 더욱 배가시켰다. 에드리안은 환하게 웃으며 에단에게 걸어갔다.


“오랜만이네요, 에단 씨.”


“저 같은 자에게 존대를 쓰면 안 되죠. 밖에서는 말입니다. 따르시죠. 이왕이면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편이 좋을 테니.”


“와. 제가 벌써 그런 위치인가요?”


“당연한 말씀을.”


에단이 어깨를 으쓱인 뒤 앞서 걸어갔고, 그를 씁쓸하게 미소 지으며 에드리안이 따라간다. 이제는 슬슬 에드리안의 얼굴이 유명해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이렇게 비밀통로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상단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게 점점 변한다. 자신도, 제 누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에단 씨는 여전히 하나도 안 변하셨네요.”


에드리안의 말에 에단은 고개를 돌려 무슨 말이냐는 듯 눈썹을 까딱인다. 그에 에드리안은 웃으며 말했다.


“처음 봤을 때랑 똑같잖아요. 키도, 얼굴도.”


“성격은 많이 변했다고들 하던데요.”


“그거야 누님이 워낙에 그 성격 바꾸려고 들들 볶아댔으니까요. 아, 이렇게 말했다는 건 비밀로 해주세요.”


왠지 제 누이가 이런 말은 싫어할 것 같아 에드리안이 말하자 에단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제 머리칼을 정돈하며 에단이 말했다.


“새삼스럽게 그런 말씀을 하시는군요. 옛날에도 말씀드렸듯 전 외형상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어쩌면 에드리안 군이 늙더라도 이런 모습일지도 모르죠.”


“왠지 그럴 것 같아요. 에단 씨의 늙은 모습은 상상도 안 되니까.”


“당신 누님의 늙은 모습은 상상이 되고요?”


“아뇨.”


그거야말로 정말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 분명 에드리안은 누구보다도 오랫동안 샤를리즈의 옆에 있었다. 그러니 샤를리즈의 커가는 모습도 동시에 봐왔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샤를리즈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라고 하면 그를 기억하는데 오래 걸린다.


그냥 샤를리즈, 하면 지금의 모습이 전부인 것 같다. 자신보다 어린 나이의 샤를리즈는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에드리안이었다. 이는 아마도 자신이 그만큼 누이를 큰 존재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리라.


“또, 검술 실력도 많이 늘었습니다. 남몰래 수련하고 있으니까요.”


“으아. 엄청 대단하네요. 생각해보면, 에단 씨를 처음 만났을 때도 엄청 대단한 실력이었잖아요. 라제칸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였으니까.”


“별 거 아닙니다. 제 실력.”


에단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말하자 에드리안은 눈을 깜빡인다. 자신은 에단에 대해 모든 것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검술에 한해서 이런 식의 겸손함을 보이는 자는 아니었다. 에드리안은 고개를 까딱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닐걸요? 제 친구들이 다 왕실 기사단이고, 꽤 좋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보다 훨씬 더 잘 싸울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게 어렸을 때, 에단 씨가 몰래 훈련하던 거 본 적이 있었는데... 그들보다 훨씬 더 나았던 것 같은 걸요.”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입니다. 게다가 에드리안 군이 어린 시절 봤던 기억이니 더 크게 각인되었을 수도 있죠.”


“그런 걸 다 배제시키고 하는 말이에요.”


그 말에 에단이 에드리안을 빤히 바라본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에드리안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물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생각보다 에드리안 군이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서요.”


“네?”


“당신 누님보다 말입니다.”


“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는데.”


방금 자신이 한 말과 샤를리즈의 안목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를 일이다. 혹시나 검술에 대해 샤를리즈에게 한 소리를 들었던 걸까? 에드리안이 알기로 샤를리즈가 남의 검술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을 텐데.


“어쩌면 제가 샤를리즈 님 보다 당신과 더 잘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갑자기 왜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시죠.”


갑자기 에단의 기분이 좋아진 것 같은 것은 기분 탓일까? 에드리안은 괜히 이 상황이 어색해 제 머리칼을 긁적인다. 누이와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샤를리즈와 에단이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니 그는 아닐 것이다. 에단이 만일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면, 에드리안은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을 것이다.


“이쪽입니다.”


에단이 멈춰선 곳은 뒤뜰이었다. 그것도 통로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에드리안이 무슨 뜻이냐는 듯 에단을 빤히 바라보자 에단이 손을 들어 창문을 가리킨다. 그러고 보니 상단 건물의 구조상 이쯤이면 샤를리즈의 사저에 있는 창문이 있는 위치이다. 그래서 이곳이 낯이 익었나 싶었다. 에드리안은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비밀통로라는 게 그냥 창문을 통해서 들어가라는 거였어요?”


“예. 일개 상단의 건물입니다. 공작가문의 저택처럼 비밀통로가 있거나 하지 않아요.”


작가의말

곧 100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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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100화 자축 외전]라제칸의 등대지기(1) +3 12.10.04 1,180 13 12쪽
»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8 12.10.01 1,130 1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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