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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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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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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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0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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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DUMMY

실망이다. 에드리안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 뒤 창문을 연다. 이거, 생각보다 쉽게 열린다. 에드리안은 인상을 살짝 쓰고는 물었다.


“이거 위험한 거 아닌가요? 아무리 에단 씨가 있다지만 여기, 누님의 사저잖아요. 호신술조차 쓸 줄 모르는 누님인데.”


“무슨 일이 생기면 즉각 제가 반응하니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게다가 샤를리즈 님은 대외적으로는 작가입니다. 그다지 인질로써의 가치는 떨어지죠. 오히려 옆방에 묵고 계시는 카를로 씨나 그 옆방인 로버트 씨가 더 목표로써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그렇게 신경 쓰이면 나중에 샤를리즈 님께 말해 보시든가요.”


“그래야겠네요. 누님은 가끔씩 스스로가 여자라는 점을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에드리안이 한숨을 내쉰 뒤 열린 창문틀에 다리를 걸쳤다. 그리고는 몸을 구부려 몸을 방 안으로 들인다. 운동신경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공작이나 샤를리즈에 비하면 양반인 에드리안이다.


운동이라 할 것도 없는 이런 동작쯤은 가뿐하다. 그러나 에드리안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거의 텀블링을 하듯 휙 하고 들어온다. 괜히 쉽게 들어왔다는 것에 으쓱했던 에드리안이 민망해져 뺨을 긁적이고는 일부러 동작을 크게 하며 주변을 둘러본다.


“누님은 어디 가셨어요?”


“예. 로버트 씨에게 잠깐 가셨습니다. 곧 오실 겁니다. 앉아서 기다리시죠.”


“네. 어? 이거!”


샤를리즈의 책상 위를 본 에드리안이 갑자기 검지로 뭔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한정판 소설인데! 이거 뒤쪽 이야기는 진짜 구하기 힘들거든요! 와.. 이걸 어떻게 구했지? 역시 누님이네요.”


에단은 에드리안의 손에 있던 책을 바라보았다. 저 책은 분명, 얼마 전 샤를리즈가 공작의 저택에 들러 가져온 책들 중 하나였다. 그러고 보면 이 책들은 모두 비밀 서고에 있기 때문에 아무나 볼 수 없다고 들은 것 같다. 신기한 점은 그 비밀 서고에 샤를리즈의 출입은 허용했으면서 에드리안에게는 그 서고의 존재조차 말하지 않은 공작의 의중이었다.


그가 알고 있기로 샤를리즈와 공작의 관계가 저 먼 대륙에 있는 사막 같이 삭막한 관계이다. 반면, 에드리안과 공작은 나름대로 정도 있는 그런 관계. 그렇다면 대개 후자에게 비밀 서고를 알려주지 않는가? 이에 대해서 뭐라 말하려던 에단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어쩌면 에드리안이 공작에게 서운함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에드리안은 마냥 장난감을 손에 쥔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책을 본다. 이런 점을 보면 참 남매는 남매다 싶다. 에단은 그렇게 에드리안을 빤히 바라보다가 낯익은 발자국소리를 듣고는 말했다.


“샤를리즈 님 오십니다. 발자국 소리가 들려요.”


“항상 느끼지만 에단 씨의 능력은 진짜 대단하네요.”


“뭘, 새삼요.”


에단이 어깨를 으쓱이자 방문이 열렸다. 피곤한 표정을 하고 샤를리즈가 걸어 들어온다. 그녀는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고 머리를 다듬으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반가운 얼굴에 환하게 웃으며 소리쳤다.


“에드리안!”


그 외침에 에드리안은 책을 책상 위에 놓고는 팔을 뻗어 저를 반기는 누이를 끌어안았다.


“오랜만이죠?”


“그래! 너무 오랜만이야.”


샤를리즈는 최근 란에게 들은 소문 때문에 에드리안이 괜히 더 안쓰러워 눈을 질끈 감고는 에드리안을 꼭 안았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 걸까? 지난번에도 만나서 안았었는데 그 때와는 조금 다르다. 샤를리즈는 팔을 풀곤 에드리안을 올려다봤다.


“키가 많이 큰 것 같아. 가까이에서 보니까 확실히 그러네.”


“네. 최근에 갑자기 쑥! 하고 크더라고요. 어쩌면 에단 씨보다 커질 지도 몰라요.”


“글쎄? 그라니언 가문에는 키가 멀대 같이 큰 사람이 거의 없었으니. 뭐, 혹시 모르지. 네가 최초가 될 지. 아무튼 앉자. 내가 널 기다리게 했네.”


샤를리즈가 힘없이 웃은 뒤 소파에 앉았다. 그러자 에단과 에드리안도 따라 앉는다. 에드리안은 빙긋 웃었다.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그런데 로버트 씨가 있다고 하던데. 슈드레거 일이 잘 처리됐나요?”


“응. 뭐, 진행형이지만. 그 외에도 그에게 맡길 일이 있어서 부른 거야. 그보다 난 네 얘기가 듣고 싶은데. 요즘은 별일 없어?”


“네. 별일이라고 해봐야... 황손이 태어나셔서 모두 분위기가 들떠있다는 것뿐이죠. 아, 태자 저하께서 친히 훈장을 걸고 검술 시합을 개최하신대요. 요즘 이슈는 그거죠.”


“하긴, 아들이 태어났으니. 가벼운 죄를 지은 이들도 풀어준다고 들었어. 곧 축제 시즌이고.”


“네. 각하께서 담고 있는 세력에겐 나쁜 소식인데, 왕궁의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니 저도 기쁘더라고요. 새카만 머리에 태자비 마마의 눈동자처럼 연녹색이래요. 소문으로는 태자 저하를 꼭 닮았던데.”


“예비 일등 신랑감의 탄생인가? 성격까지 닮으면.”


“최고죠.”


에드리안이 웃자 샤를리즈도 따라 웃었다. 하지만 속은 정작 타들어간다. 따돌림 당하고 있다면서. 사실은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왕궁에는 별일이 없냐고 물은 것이었는데 정작 긍정적인 얘기만 하고 있다. 혹시나 따돌림의 강도가 심하지 않은 것일까?


아니다. 심하든 심하지 않던 상관없다. 따돌린다는 것 자체가 사람을 주눅 들게 한다. 자신이 하는 말 하나하나를 비웃을 테고, 그러면 자신감이 떨어져 훗날 공작 가문을 이끌 때도 큰 흠이 되리라. 차라리 우는 소리를 해서 같이 그 놈들을 욕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저를 만나 기뻐서 방긋방긋 웃으니 이쪽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런 제 마음을 알 리 없는 에드리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무튼 그라니언은 공작가문이고, 이런 일에 각하께서 나서긴 그러니 아마도 제가 나서게 되겠죠.”


“그렇겠지. 보통 훈장을 따오는 건 그 가문의 장자나 젊은 가주들이 하는 일이니까. 훈장을 따오면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장자의 경우에는 작위 계승권을 공고히 할 수 있고 젊은 가주라면 제 입지를 다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그런 자리에 각하가 나서면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는 젊은 귀족들의 기를 다 죽이는 행세가 돼. 누가 감히 중년의 공작을 이기려 들겠어? 게다가 에드리안, 너는 알다시피 네 입지가 매우 약해. 만일 방계 출신 중 너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가 있었다면 넌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어. 그러니 그곳에는 네가 나서는 게 맞아. 뛰어난 무사를 고용해 그 훈장을 따는 게 맞지. 뭐, 다행히 선대 때 방계의 사람들이 거의 죽었고, 지금 남은 자들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자는 병으로 골골거리고 있으니. 아, 혹시 각하께서는 들으셨다든? 알렉시스 드 그라니언이 중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얼마 전 앨런이 그 분이 산다고 알려진 곳으로 잠깐 갔다 왔다고 했었어요. 앨런이 스스로 자리를 비울 리는 없으니...”


“각하의 기분은 살펴봤니?”


“그게... 저도 앨런이 흘리는 말로 그 지역에 갔다 왔다고 해서 알았지, 이상하게 이야기가 나돌지 않더라고요. 보니까 부인께서도 모르시는 것 같던데.”

“프리실라 아가씨야 어차피 관심도 없을 테고.”


샤를리즈가 입을 비죽이며 말하자 에드리안은 웃으며 말했다.


“네. 요즈음 한창 바쁘시던 걸요. 그도 그럴게 사교계 시즌이 끝나서 좋은 보석들의 값이 이제야 정가로 내려와서. 거기다 요즈음 루타의 보석들이 암시장에 풀려서 경매장에 다니시느라... 저도 얼굴을 못 본지 꽤 됐어요.”


“보통 그런 건... 밤에서 새벽에 열리니까. 그리고 넌 아침 일찍 궁으로 간다며. 벌써부터 그렇게 부지런을 떨 필요가 있니? 네 나이또래답게 즐겨가면서 해. 각하께서도 젊은 시절 그렇게까지는 안하셨더라. 덕분에 학자들 사이에서 네 인기는 높다고 듣긴 했다만.”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게 누님이라서 그런 가보죠.”


“그러니까 내 말은 그런 걸 날 닮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런 걸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그럼 당신이 바뀌면 되지 않습니까? 그걸 에드리안 군이 본받고요.”


에단의 말에 에드리안은 크게 웃었다.


“그러면 되겠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릴. 안 그래도 요즈음 루타와의 밀거래로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일탈을 하라 이거야?”


“그럼 지금 사교계에서 유행하고 있는 루타의 보석들이 다 누님의 작품이란 말이에요?”


“잘난 척을 좀 하자면, 이 나라에서 그 정도 배포와 자금을 가진 상인이 나 말고 또 누가 있겠어?”


“그것보다 말입니다.”


“네?”


“그 훈장, 꼭 따야하는 거라면 무사를 고용하셨습니까? 오전에 용병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카인 드 크산느가 용병 델타모어를 고용했다고 하더군요. 그 자는 요즈음 꽤 주가가 높은 용병이죠.”


“크산느 자작가문은 요즈음 치고 올라오는 가문이니까. 루타와의 교역을 성사시킨 사절단에도 크산느 자작이 있었으니. 이렇게 치고 올라올 때 훈장을 하나 받아두면 좋을 거야. 하지만 그 훈장은 에드리안, 네가 받아야 해. 세상일은 모르는 거야. 갑자기 네 자리를 넘보는 이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고.”


“전 사실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중요한 일이야. 넌 각하의 의중을 알기 때문에 다음 대 왕이 태자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 세상일은 모르는 거야. 정변이란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아. 특히 지금의 왕은 평민들의 입장에선 폭정을 휘두르는 것이 아냐. 그러니 만일 실패했을 때, 이 훈장을 딴 사람은 앞으로 태자가 될 아이, 그리고 곧 왕이 될 아이의 이름을 가진 훈장을 딴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게 된다면 철 밥통을 맨 거나 다름없지. 아마 곧 각하께서도 네게 압박을 줄 거야. 내가 생각한 걸, 각하께서 생각하지 않을 리 없으니.”


“그렇군요. 제가 어리석었어요. 각하께서 하시는 일이 실패할 리 없다고 생각하고 말았네요.”


“거의 그렇지. 하지만 그건 각하께서 항상 위험부담을 최소화시켜 일을 진행하셨기 때문이야. 정변은 달라. 위험부담을 아무리 최소화시킨다 한들, 실패할 땐 공작부인과 프리실라가 나보다도 낮은 신분으로 전락하게 될 거야. 그리고 각하와 넌 죽게 되겠지.”


죽게 될 거라는 말에 에드리안의 얼굴이 조금 파리해진다. 그에 샤를리즈는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난 그 가문과는 관계없는 사람이니, 누구보다도 정황을 파악해서 널 빼돌릴 테니까. 실패를 하든지 성공을 하든지, 내가 살아있는 한 네가 죽을 일은 결단코 없어.”


작가의말

사실 외전인 라제칸의 등대지기는 이야기 흐름상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데다가 이야기가 꽤 긴 외전이여서 구상만 해뒀다가 생략할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기분이 좋네요.

항상 읽어주시는 분들, 덧글 남겨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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