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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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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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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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0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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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자축 외전]라제칸의 등대지기(2)

DUMMY

샤를리즈는 눈앞의 오동통한 사내가 내민, 값비싼 천으로 싸인 물건을 받았다.


“확실히 받았습니다. 내일 바로 총수께 전해드리지요.”


“예. 총수께서 수양딸을 들이셨다 해서 궁금하던 차에 이렇게 만나 뵙는군요. 칭찬을 아주 많이 하시던데. 오늘 밤에 연회를 열 생각인데 꼭 참석해주시지요.”


“무슨 일이 생기지 않는 한 꼭 참석하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예?”






* * *







샤를리즈는 방에서 나와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용병들에게 주머니에서 금화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건네었다.


“이로써 임무는 완수하신 셈이군요. 돌아갈 때에는 여기서 용병을 붙여준다고 했으니. 그럼 세 분은 찢어지는 건가요?”


“예. 블렌다는 라제칸을 떠날 테고, 저희 둘은 등대지기에게 갈 생각입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아, 물론 방해가 안 되게 멀리 떨어져 있을게요. 그는 검을 든 자에게만 덤벼든다고 하니 제게는 덤벼들지 않겠지요. 물론, 이에 대한 보수를 원하신다면 더 얹어드릴 수도 있어요.”


그렇게 말한 뒤 샤를리즈는 금화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하나 더 건네었다. 그러자 두 사내는 망설이다가 이내 그것을 집어 든다. 허락의 의미였다. 거기다 이를 집어 들었다는 것은 이길 자신이 있다는 것이리라. 샤를리즈가 건넨 돈은 분명 큰돈이었다.


그녀가 관심도 없는 전투를 보기 위해 그 정도 대가를 지불했다는 것은 무척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녀는 빙긋 웃은 뒤 그들을 따라갔다. 그 때 블렌다가 뒤에서 물었다.


“함께 온 도련님은 이곳에 두는 겁니까? 너무 상인을 믿는 거 아닌가요?”


“걱정말아요. 그 애를 지키는 자들은 따로 왔을 테니까.”


에드리안은 자신과 달리 공작가문을 이어야 할 ‘의미 있는’ 아이이다. 그러니 공작이 사람을 붙여놨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도 공작가문에서 사비를 들어 만든 최정예 부대가 에드리안의 뒤를 몰래 따르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라제칸이 난다 긴다 하는 범죄자들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그들을 당해낼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다 라제칸이 이번 행선지라고 소문을 흘려두었으니 공작이 알아서 배치된 인원수를 늘렸으리라. 애초에 용병들을 고용한 것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였다. 에드리안을 지키기 위한 자들이 그녀를 지키리라는 보장은 없었으니까. 자신은 ‘의미 없는’ 아이이니까.


샤를리즈는 제 붉은 머리칼을 하나로 묶은 뒤 로브를 썼다. 그리고는 종종걸음으로 두 용병을 따라갔다. 상인은 그의 형의 유산을 되찾기 위해서인지 등대와 제법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등대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신기한 점은 마차를 타고 오는 길에 보였던 그 많던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마치 호랑이가 사는 동굴 근처에 동물들이 없는 것처럼.


등대가 눈앞에 보일쯤에는 샤를리즈의 눈에 잡힌 사람은 단 한사람뿐이었다. 아주 멀리, 등대의 문 앞에 앉아있는 사람. 아마도 저 사람이 라제칸의 등대지기이리라. 멀리 보이는 그는 회색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소문의 실력을 가지려면 적어도 중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윤곽이 잡히는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앳되었다.


그리고 두 용병이 여기서 기다리라고 말한 지점에서 보인 그 등대지기의 얼굴은 기껏해야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를 가진, 키만 멀대 같이 큰 말라깽이 사내였다. 아무리 봐도 무지막지하게 세다는 이미지는 없었다. 덩치만 본다면 두 용병의 승리였다. 거기다 실력도 두 용병은 출중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큰돈을 들여서라도 용병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용병 둘을 고용했으니까. 어쩌면 건달 몇몇을 쓰러뜨리고 나서 떠돌게 된 허황된 소문이든가, 아니면 상인이 제 형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퍼뜨린 소문이든가 둘 중 하나이리라. 진짜로 저 사내가 강하다면 이제 증명이 되겠지. 이 싸움에서 두 쪽 중 하나는 분명 죽을 것임에도 샤를리즈는 빤히 결판이 나기를 기다렸다.


두 덩치와 한 말라깽이가 대치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먼저 움직인 것은 커다란 도끼를 가진 사내였다. 소설 속에서나 익히 봤을 괴물들이나 내지를 법한 소리를 지르며 그는 달려갔고, 그 뒤를 애꾸눈의 사내가 따랐다. 동화 속의 용사님과는 달리 등대지기는 빠르게 휘둘리는 도끼를 멋있게 막아내기 보다는 휘청거리듯 피한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용병의 검도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적어도 샤를리즈의 눈에는 그랬다. 검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였기에 안목도 형편없었지만, 그녀의 눈에도 비틀거리는 등대지기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 피한 것은 맞았으리라. 막아내는 것도 없고, 두 덩치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샤를리즈는 제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시시하다 생각했다. 싸움판에 관심이 없는 그녀였으나 그토록 대단하다고 하기에 나와 봤더니, 별 거 아니구나 싶다. 이런 시시한 걸 구경하고, 돈을 걸고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혹시나 상품성이 있을까 싶어 와봤는데. 흥미가 떨어졌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고 고개를 든 순간, 등대지기와 눈이 마주쳤다.


눈동자도 회색이었던가? 그 흐릿한 눈동자가 일순 빛났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냐면, 이 먼 거리에서 그 사람의 눈동자만 보였기 때문이다. 순간이었다. 비틀거리던 몸이 제대로 자세를 잡고, 도끼를 든 사내를 찌른 뒤 곧장 내리치는 애꾸눈 사내의 검을 향해 도끼를 든 사내를 집어 던진 것은. 그 자는 과연 등대지기의 검에 죽은 것일까, 애꾸눈이 휘두른 검에 죽은 것일까?


샤를리즈도, 애꾸눈의 사내도 답을 내리기 전에 등대지기의 검이 애꾸눈의 가슴을 찔렀다. 등대지기가 가슴팍에 박힌 검을 힘겹게 뽑자 애꾸눈의 사내의 몸은 조금 들썩이더니 이내 그 움직임을 멈추었다. 등대지기는 둘의 시신을 향해 뭐라 중얼거린 뒤 고개를 들어 샤를리즈를 바라보았다. 도


망치는 것도 잊은 채 눈만 깜빡이던 그녀는 숨을 몰아쉬었다. 죽일까? 소문에 의하면 덤벼들지 않는 한 죽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어째서 저 자는 저리도 자신을 바라보는 것일까?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듯 둘은 서로를 빤히 바라만 봤다. 그리고 먼저 시선을 거둔 것은 등대지기였다.


그는 고개를 살짝 떨어뜨리고는 몸을 돌려 걸어가 제가 앉아있던 등대의 입구에 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양새가 이상하다 싶어 샤를리즈는 입술을 앙 다물고는 천천히 그 곳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걸어갈수록 짙어지는 피 냄새가 역해 몇 번이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고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사람의 시체를 넘어 등대지기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갔음에도 등대지기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잠이 든 것일까? 살펴보려는데 갈라진 목소리가 들렸다.


“검도 없는 계집이 무슨 용무냐?”


그 말이 무척이나 거슬렸으나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순간에 나댈 용기는 없었으므로 샤를리즈는 떨리는 손을 움켜쥐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단, 죽기는 싫으니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왜 여기에 왔었더라? 무슨 대답을 해야 관심을 보일까?


“돈은 안 꺼내요?”


참으로 그녀가 몸담고 있던 집단다운 질문이었다. 다행히도 등대지기의 흥미는 끌었는지 그가 고개를 든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로 비쩍 말랐다. 거기다 씻지도 않았는지 작은 움직임에서도 풍겨오는 냄새가 심상치 않다. 하지만 이런 내색을 보였다간 죽겠지. 자신이라 해도 기분 나빠서 죽이리라. 설명해보라는 듯 저를 빤히 바라보는 회색 눈동자에 샤를리즈는 말했다.


“저 자들, 돈이 많던데. 돈이 목적이 아니라면 왜 죽였어요?”


“너는 돈이 목적이면 사람을 죽이냐?”


“내가 아니라도 많은 이들이 그렇죠. 돈이 아니라면 명예, 혹은 권력을 위해.”


“삭막하구만. 난 저들이 날 죽이려 했기 때문에 죽인 것이다.”


“죽이려 하면 죽이나요? 관리에게 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삭막하네요.”


이게 무슨 짓거리인가 싶다. 샤를리즈도, 등대지기도. 고작 이따위 말장난이나 하러 왔나 싶어 회의감이 드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혹시나 그 용병들이 죽은 게 아니라 산 것일까 싶어, 화들짝 놀라 몸을 돌리는데 웬 거지 여럿이 용병들의 시체를 뒤적거리고 있다.


그 모습이 구역질이 나 샤를리즈는 냉큼 고개를 돌려 등대 쪽을 바라보았다. 없는 사람들은 저렇게 시체를 뒤진다고 듣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견디기 힘들다. 분명 자신도 저들과 비슷한 시궁창 속에서 살았는데, 사람이 간사한 동물이라는 말이 맞는지 5년간 윤택한 삶을 살았다고, 저들의 삶이 구역질나게 느껴진다.


초심을 잃은 건가 싶은데 뒤에서 거지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의 외침이 들렸다.


“예 있수, 형님!”


그러고는 등대지기 앞으로 날아오는 금화 여섯 닢. 그것을 주섬주섬 등대지기가 줍는다. 설마하니 돈을 나눠준 건가? 그런데 왜 금화 여섯 닢뿐인가? 자신이 그 두 용병들에게 나눠준 금화는 최소한 저것의 20배는 되는데. 자신이 손해 본 것도 아닌데 괜히 떼인 기분이 든 샤를리즈는 고개를 돌렸으나 이미 거지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동시에 시체들도. 옷가지까지 팔 생각일까? 하긴, 그들이 들고 있던 검이나 도끼, 그리고 방어구 등은 제법 돈이 될 테니. 거기다 옆 나라 키클로 인들에게 시체를 팔면 제법 짭짤한 수익을 얻는다고 들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저와 얘기를 나누던 자들이 사람에게 먹힌다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이상해진다. 그녀는 이런 생각들을 떨쳐내기 위해 등대지기를 바라보고 물었다.


“왜 당신이 죽였는데 저들이 돈을 가져가는 거죠?”


“저들은 시체를 치워주니까. 시체 썩은 냄새는 지독해. 그에 대한 보수지. 거기다 간간히 먹을 것을 던져주고 가지. 오늘은 없었지만.”


“시체를 치워주는 보수가 금화 120냥이 넘는다면 너도나도 할 텐데. 그보다 말을 하실 줄은 아시네요? 나는 워낙 소문이 무시무시해서 나까지 죽을 줄 알았는데.”


“죽일 작정이었지.”


그 한 마디에 느슨해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 그러나 겁을 잔뜩 먹고 있던 아까와는 달리 샤를리즈는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죽일 작정이었다는 것은 이제는 죽일 생각이 없다는 것이니까. 말을 채 듣지도 않은 채 죽일 작정이 아니라면 그녀도 순순히 죽어주지 않을 작정이다. 말로는 닳고 닳은 상인들도 꿰어내는 재주가 있는 그녀이다.


“네 뒤에 있는 것들은 실력도 대단하고, 수도 많아 상대하기 벅차. 거기다 난 며칠째 먹지 못했어.”


샤를리즈는 제 뒤에 있는 것들이라는 말에 눈을 깜빡였다. 혹시나 상인이 그녀를 배려해 사람을 붙여주었던가? 그럴 리는 없다. 만약 그 정도 병력을 움직일 수 있다면 이 등대도 차지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녀의 뒤를 지키고 있는 자들이 누구란 말인가?


빈트뮐러 상단의 총수가 그녀를 염려해 따로 사람을 붙여두었던 것일까? 아니면 혹시... 그까지 생각한 샤를리즈는 이내 고개를 도리질 치고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말했다.


작가의말

전투씬은 진짜 너무 어렵네요... 눈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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