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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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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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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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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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칠흑의 꽃. 제 10막. 진실을 알아챈 고양이.

DUMMY

마차에 오른 뒤에도 샤를리즈는 그 책을 한 번 더 빠르게 훑어 읽었다. 암호는 전혀 없다. 역시 뒤편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샤를리즈는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책을 읽으니 어쩐지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 마차의 문을 연다. 으슬으슬한 바람이 들어온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샤를리즈는 추운 날씨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기가 차가운 느낌을 좋아했다. 뭔가 자신이 살아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언젠가 에드리안에게 하니, 괜히 그 녀석이 제게 파고들며 자신은 추운 것이 싫다고 말했었다. 아마 에드리안이 12살 때였던 것 같다.


그 때는 참 귀여웠었는데. 지금은 어엿하게 커서 한 사람 몫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에드리안이 대견하면서도 조금 섭섭했다. 이제 정말로 제 품을 떠나는구나 싶어서. 평생을, 에드리안을 공작으로 만드는 것에 바친 그녀였다. 만일 에드리안이 정말로 공작이 되면,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에드리안은 샤를리즈에게 웬만해서는 손을 뻗지 않을 테니 공작의 작위에 올라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많이 바빠져 점점 사이가 멀어질 것이다. 지금도 이미 그렇게 되고 있지 않는가? 그녀는 상단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고, 에드리안은 궁정에서 그의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한 달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분명 같은 도성 안에 살고 있음에도 말이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만날 수 있는 둘이건만, 서로에게 폐가 될까봐 갑자기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생각이 많다. 남매의 닮은 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왔던 그녀였기에 에드리안만큼은 순수하게, 자신과 닮지 않게 만들려고 노력했건만 피는 못 속이나 싶다.


샤를리즈는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에드리안이 공작이 되면, 굳이 상단을 운영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다. 평민이 출세를 하기 위해서는 검술이나 마법 등에 재능이 있어야 한다. 글렌 아치볼트나 칼라일 시모어처럼. 하지만 그녀는 그 어떤 재능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껏해야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것과 또래에 비해 영악하다는 것뿐. 거기다 그녀는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된 ‘여자’였다. 그래서 모습을 숨기면서도 뒤에서 에드리안을 봐줄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우연이었을까? 그녀가 9살 되던 해 공작의 주선으로 그녀는 빈트뮐러 상단의 양녀가 되었다.


사실상 그라니언 가문과 그녀의 연은 그 때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에드리안은 공작의 사생아로, 그녀는 상단 주인의 양녀로. 사실상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거기까지 생각한 샤를리즈는 미간을 검지와 중지로 눌렀다. 이미 지난 일이다. 지금 더 생각해봐야 기분만 더러워질 뿐. 아무튼 그 이후로 상단 일에 힘을 쏟았다. 그녀의 나이 스물 둘. 에드리안을 공작으로 만드는 일만큼 상단의 일에도 평생을 쏟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한 상단을 운영하지 않게 된다면, 그녀는 무얼 하게 될까? 그녀의 인생이나 다름없는 상단을 그만두고 나면?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글을 계속 쓸까? 글을 쓰는 것은 재밌었다. 하지만 평생 그걸로 먹고 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뭐든 취미일 때가 좋은 것이다. 그것이 업무가 되어버리면 결국 싫어지기 마련.


에드리안이 공작 작위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요즈음 부쩍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에단이나 로버트에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들에게 일을 조금씩 맡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에드리안이 공작이 되고 나서 아스피트 공작의 말대로 자신이 마침내 에드리안의 가장 큰 약점이 된다면, 아스피트 공작 앞에서 공언했듯 그녀는 ‘사라져야’할 것이다.


마차가 멈추자 샤를리즈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마차에서 내려 마부에게 말한다.


“이만 상단에 가보세요. 저택에 들렀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닐 생각이거든요. 에단에게는 생각 좀 정리하고 간다고 전해줘요.”


“예, 아가씨.”


오늘은 공작 가문의 저택에 사람이 거의 없는 날이라고, 레베카가 미리 언지를 줬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대이면 공작의 응접실에 그가 후원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와서 공작과 이야기를 나눈다. 프리실라는 여전히 나돌아 다니고 있었고, 그것은 공작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 보니, 최근 남자가 생겼다고 했었던가? 그 남자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한다. 야망이 없는 곱상한 청년이라면 상관없겠지만, 만일 그녀를 이용해 뭔가 뜯어낼 심산이라면? 혹여나 공작부인이 아들이라도 낳게 된다면? 샤를리즈는 이를 으득 갈았다.


그 때는 자신이 이뤄낸 모든 것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없애버려야 할 것이다. 아무튼 지금 이 시간이라면 공작의 방에 들어갈 이는 아무도 없다. 레베카가 그 자신만 알고 있는 저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알려줬기에 그녀는 그리로 향한다.


자신을 아는 하인들을 만나 그들의 적대어린 눈빛을 보는 것만큼 불쾌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통로의 문을 열어 들어간다. 공작은 자신이 다른 이들과 얘기할 때 하인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랬기 때문일까? 오늘따라 저택에는 하인이 거의 없었다. 마치 모두들 휴가라도 간 것처럼. 오히려 그녀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운이 좋으면 오늘은 에드리안의 방도 몰래 구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샤를리즈의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공작의 방은 2층 구석, 응접실은 1층이다. 그러니 공작과도 마주칠 일도 없다. 샤를리즈는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 하인들과 마주치지 않게 주변을 살피며 공작의 방으로 들어간다.


이제는 슬슬 요령이 생길 시기인지라 그녀는 어렵지 않게 비밀 서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인들이 드나들까봐 비밀 서고의 문을 닫는다. 오래된 책 냄새가 갑갑해 제 몸이 겨우 통과할 만한 작은 창문을 연다. 그리고는 그녀가 들고 온 책을 바라보고는 서고를 살펴본다.


책은 제목도 없고, 저자만 있는지라 책 표지의 재질을 비교하면서 다음 편을 찾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보여 팔을 뻗어 책을 꺼낸다. 저자의 이름을 보니 꽤 이름을 날린 작가이다.


그런데 왜 이 책의 존재를 몰랐나 생각하다가 이내 그 작가가 쓴 글 중 가장 팔리지 않아 시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춘 책임을 깨닫는다. 공작이 허용한 책의 권수는 2~3권. 그러나 그녀는 오늘 생각을 정리할 겸 여기저기 들를 생각이니 오늘은 한 권만 빌려갈 생각이었다.


그러니 일단 그녀가 원하는 책이 있는지 확인한 뒤 이 책을 가지고 갈지 정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책을 다시 꽂는다. 그리고는 다시 서고를 탐색해 나간다. 이러고 있으니 괜히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겨우 2~3살 된 에드리안을 데리고 그라니우스에 있는 성의 서재에 갔던 것이 생각난다.


글조차도 모르는 에드리안을 앉혀놓고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었다. 에드리안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그러고 보니 서재에서 책을 찾는 방법을 누가 가르쳐줬었더라? 아니, 그 전에 그녀에게 글을 가르쳐줬던 사람은? 아주 어린 시절의 일인지라 생각이 날 듯 말 듯 하다.


아마 앨런이었던가? 앨런의 나이를 생각해본다면, 그보다는 조금 더 젊었을 것 같은데...


쾅!


갑작스레 들려온 소리에 샤를리즈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비밀 서고의 입구를 바라본다. 공작의 방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문을 꽤 거칠게 열고. 이윽고 발소리가 두 개 들린다.


그 중 하나는 매우 거슬리는 구두 굽 소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꽤 높은 신분의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하이힐소리였다. 다른 구두 굽 소리는 귀족 남성들의 것. 누군가 싶어 숨죽이고 있는데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서고 너머로 들린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공작의 목소리였다. 저렇게 평정을 잃은 공작의 목소리는 거의 처음 듣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일까? 샤를리즈는 눈을 깜빡인다. 왠지 이 상황에서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이 들통 나면 안 될 것 같아 괜히 몸을 움츠린다. 비밀서고와 공작의 방은 공간적으로 분리가 되어 있었음에도.


“내가 그들과 시간을 보낼 때에는 응접실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런데 거기서 고함을 질러? 덕분에 나는 내 집 사람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어중이떠중이가 되었군!”


보아하니 ‘누군가’가 공작이 후원하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깽판이라도 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게 누구일지는 뻔하다. 프리실라 혹은 공작부인. 그들 외에 감히 누가 공작이 있는 자리에서 깽판을 칠 수 있겠는가? 그 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렸다.


“내가 지금 안 그러게 생겼어요? 당신이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에요!”


공작부인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부부싸움이라는 것인가? 하지만 둘의 사이는 본래부터 좋지 않았다. 싸움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말조차 오가지 않는 사이. 사교계에서 형식적으로나마 함께하는 것만이 전부인 그들이다.


끝없이 공작부인을 증오하는 공작과 그를 끝없이 따라다니는 공작부인. 이는 사교계 내에서도 조용하게 퍼져있는 소문 중 하나였다. 만일 프리실라가 사교계를 휘어잡고 있지 않았다면 얼마든지 귀부인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을 공작부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공작부인은 딸을 참 잘 뒀다 싶다.


“프리실라, 내 딸이 왜 ‘그 자’의 병문안을 가야한단 말이에요!”


작가의말

이번 챕터는 중요한 챕터여서 공들여쓰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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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칠흑의 꽃. [외전]실수 +4 12.10.29 1,14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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