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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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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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09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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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2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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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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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DUMMY

* * *






학자들과의 토론이 끝난 뒤 에드리안은 챙겨온 자료들을 챙긴 뒤 궁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상단에 들르는 날이었기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학자들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은 채 짐을 챙겨 일어난다. 그 때였다. 누가 봐도 고의로 내민 발에 걸려 에드리안은 비틀거렸다.


다행히 넘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책 몇 권이 쏟아졌다. 에드리안이 한숨을 내쉬고 책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그의 옆에 앉아있던, 토론 중 시종일관 그의 말에 부정적이었던 청년 하나가 중얼거렸다.


“겸손하기도 하시지. 그런 일은 시종을 시키면 될 텐데. 하긴, 본래라면 시종을 해야 할 위치인지라 제 일인 줄 알았나보군.”


그 말에 에드리안은 피식 웃었다. 그 말은 기분이 좋든 나쁘든 사실이었으니까. 무엇보다 저들의 의도는 그를 화나게 하여 망신을 주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들이 하는 짓이 기분 나쁘거나 하지는 않다. 신경이 거슬리는 정도, 딱 그 정도이다.


물론, 이렇게 당하는 것이 자신이 아닌 샤를리즈였다면, 져들은 지옥을 맛봤겠지만 말이다. 그것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에드리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일어나 토론장을 나가기 위해 걸었다. 그러자 뒤에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고 보니, 황손이 태어난 기념으로 태자 저하께서 친히 훈장을 걸고 검술을 겨루는 대회를 연다고 하시더군. 그것도 왕궁에서 말이야. 안 그래도 우리 저하께옵서 워낙에 인자하시지 않는가? 그래서 귀족의 추천이 있다면 용병들도 참여 자격을 준다고 한다더군. 참, 누군가에겐 무척이나 좋을 저하 아니신가?”


“그래? 그 누군가도 이번 대회에 나가 훈장을 받으려나?”


“아닐걸? 내가 듣기로 그 누군가는 검술에는 영 소질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도 그럴게 그 누군가의 가문 자체가 좀...”


그러면서 킬킬거린다. 분명 저들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저렇게 유치한 장난질이라니. 뭐라 쏘아붙이려니 자신의 입장만 이상해지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영, 신경이 거슬리는 게... 차라리 이럴 때만큼은 행동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는 그의 성격보다는 욱하는 다혈질인 누이가 부럽다.


혹은 바로 주먹이 나가는 엘루이즈라든가. 그 때였다.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고함소리가 들린 것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에드리안을 괴롭히는 주동자가 이마를 감싸고 자세를 낮추고 있다. 바닥을 보니 책 한 권이 널브러져 있다. 누군가가 던진 것이다. 누가 던졌는지 둘러보기도 전에 범인이 걸어 나왔다. 눈부시도록 잘생긴 외모를 가진 청년.


“자식들이. 유치해서 못 들어주겠네. 에녹 드 아스피트가 여기 왔었어도 네 녀석들이 그렇게 구시렁거렸을까?”


“클랜디스! 네가 카인이 어느 가문의 자제인지 잊고 이런 일을 저지른 거냐?”


“글세, 몰라. 카인의 가문에는 아가씨가 없으니까. 그런데 내가 카인의 약혼녀 가문이 어딘지는 잘 알지. 메이슨 백작 가문의 아가씨.”


클랜디스가 으쓱이며 말하자 이마를 움켜지고 있던 자, 카인이 불쾌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녀에게 접근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클랜디스!”


“그녀에겐 볼일이 다 끝났으니 앞으로 접근할 일은 없어.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못 넘어뜨린 아가씨들은 극히 드물잖나? 거기다 요즈음 내가 연애를 하고 있어서 다른 아가씨들한테 신경 쓸 여력도 없고.”


“너 이 자식!”


“덤빌 테면 덤비던가. 그런데 너희도 잘 알잖아? 내가 단순히 운만으로 기사단에 들어간 게 아니라는 거?”


그렇게 말하며 클랜디스가 자세를 바로 잡자 그들은 움찔한다. 크로이츠 왕가의 기사단은 단순히 귀족이고, 검술을 꽤 한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집단이 아니다. 대륙 유수의 용병들과도 대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수준의 검사, 혹은 그런 검사가 될 수 있는 장래성이 있는 검사들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간혹 귀족이 아니더라도, 크로이츠 왕국에 뿌리를 둔 용병단의 단원들이 스카웃되는 경우도 있었다. 비록, 그러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아무튼 클랜디스는 그러한 가능성을 인정받은 사내이다. 물론, 그의 가문이 다음 대 그라니언 공작의 외가라는 이유로 그라니언 가문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았을 리는 없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입단을 할 때만 작용하는 것이다.


적어도 클랜디스는 타인의 힘을 빌려 기사단에 들어갔지만, 2부대 대장을 맡은 것만큼은 분명 그의 실력이었다. 비록 그가 훈련에는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는 하나, 소문으로는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귀족 아가씨들이 목을 매는 것이다. 사람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에 언변, 그리고 그라니언 공작의 외가에 뛰어난 무술 실력까지.


그의 가문이 비록 세를 잃었다고는 하나, 승승장구할 일만 남지 않은 것이 바로 클랜디스이다. 아무튼 그런 클랜디스를 상대할 용기는 없는 그들은 괜히 죄 없는 책상을 발로 찬 다음 성큼성큼 토론장을 빠져나간다. 그들이 나가자 일부 귀족 청년들은 그들을 비웃으며 따라 나선다. 에드리안은 집어던진 책을 줍는 클랜디스에게 다가가 말했다.


“신세를 졌네.”


“우리 가문이 네 가문에 신세 진 것에 비하면 이 정도야. 거기다 저 자식들 웃기잖아. 아마 네 출신이 사생아 출신이 아니었다면 여기에 있던 모든 녀석들이 놈들을 비웃었을 거다. 루이가 있었다면 아무 말 안하고 패줬을 테고.”


클랜디스는 에드리안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마치 발목이라도 삔 것 마냥 그에게 기대 걷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에드리안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그건 그렇고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냐? 네가 호통만 치면 끽 소리도 못할 텐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 그리고 그 전에 너나 엘루이즈가 나섰잖아. 둘에겐 정말 신세진 게 커. 나중에 크게 갚아야지.”


“네가 굳이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나중에 내가 작위를 물려 받으면 크게 뜯어 먹을 거니까 걱정마라.”


클랜디스가 제 화려한 금발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복도를 걸어가던 시녀들이 흘긋 보고는 이내 보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려 제 갈 길을 간다. 그를 본 에드리안은 시녀들처럼 클랜디스를 흘긋 바라본다. 확실히, 저렇게 몰래 훔쳐보고 싶을 정도의 외모이긴 하다. 에드리안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 연애한다며? 그 때 말한 세르먼드 가의 부인을 말하는 거야?”


“아니? 그 여자랑은 연애는 아니고 서로 즐기는 거야. 넌 이게 뭔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연애는 다른 여자랑.”


평소 클랜디스의 나른한 표정과는 달리 이번에는 조금 진지한 표정이어서 에드리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곤 물었다.


“이번엔 좀 진지한가봐?”


“어? 아, 뭐 그렇지.”


클랜디스는 에드리안에게서 조금 떨어진 뒤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난 그 여자에게서 내 아이를 얻을 생각이라 진지하다면 진지하다 할 수 있겠지.”


“아.. 그래?”


에드리안은 클랜디스에게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나 싶어 조금 놀란다. 사교계 최고의 난봉꾼이자 최고로 인기 있는 남자가 벌써부터 가족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얼마나 큰 파장이 일지. 그와 동시에 제 또래인 클랜디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니 뭔가 이질적이다.


하긴, 그러고 보면 클랜디스의 나이에서 조금만 더 더하면 혼인을 하기엔 적령기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즉, 자신도 언젠가는 결혼을 하게 되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몸이 간질거리고 기분이 이상한 것 같아 애꿎은 머리를 긁적인다. 클랜디스는 붉은색에 가까운 제 눈을 반짝이고는 에드리안의 머리를 잔뜩 헝큰 뒤 말했다.


“난 이만 가보지. 훈련이 있어서 말이야. 아, 아까 그 녀석들이 말한 훈장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봐. 공식적으로, 그러나 티가 나지 않게 그 자식들을 엿 먹일 수 있는 기회니까. 물론, 네가 나가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아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말에 에드리안은 고개를 끄덕인 뒤 얼른 가보라는 듯 손을 흔든다. 클랜디스가 몸을 돌려 기사단의 훈련장 쪽으로 가자 에드리안은 손을 내린 뒤 아까 하던 생각을 마저 한다. 만약 자신이 결혼하게 된다면,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가 정해준 여자와 결혼하게 될 것이다. 그의 입장 때문에 비록 사교계에는 발걸음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그 나이 또래의 여자들은 조금 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들 중 하나가 될 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게 되면 많은 것이 바뀌리라. 어차피 작위를 이어받는 대신 평민들처럼 평범한 연애를 통한 결혼은 포기했다. 관심도 없었지만. 클랜디스 또한 그것을 잘 알기에 지금 저렇게 난봉꾼처럼 휩쓸고 다니는 것이고, 엘루이즈는 그럴 기회가 없이 어렸을 적부터 약혼녀가 정해져 있었다.


또 아는 사람이라면, 제 누이.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은 상단에 가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에드리안의 느릿한 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연휴기간입니다!

p.s 이번 편에서 언급된 클랜디스의 말 속의 여자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혹시나 오해하실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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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칠흑의 꽃. [외전]실수 +4 12.10.29 1,142 11 11쪽
111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7 12.10.28 1,411 16 12쪽
110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3 12.10.27 1,418 15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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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8 12.10.01 1,130 15 11쪽
» 칠흑의 꽃. 제 9막. 위티시 훈장. +6 12.09.29 1,183 1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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