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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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
작품등록일 :
2012.11.17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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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04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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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자축 외전]라제칸의 등대지기(1)

DUMMY

샤를리즈는 덜컹거리는 마차 속에서도 제 무릎을 베개 삼아 곤히 자고 있는 에드리안의 머리칼을 매만졌다. 그녀의 나이 14살, 그리고 에드리안의 나이 10살. 빈트뮐러 상단에 들어 온지 5년 되는 해, 그녀는 상단의 총수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고 상단의 실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있었다. 물론, 정체도, 얼굴도 모르는 사내인 척 행세를 하면서 말이다.


그녀의 말을 전해줄 대행을 찾는 것은 항상 번거로운 일이었으나 언젠가 에드리안이 공작의 작위를 물려받았을 때, 그녀가 상단에 몸을 담았음을 알고 이를 빌미로 귀족들이 그를 공격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선 그 정도 번거로움은 감수할만했다.


샤를리즈는 창문을 열었다. 오늘은 여태껏 샤를리즈가 맡아왔던 일들 중 가장 어려운 일을 행하러 온 것이다. 사실 일 자체의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았다. 그냥 이 도시에서 잘 나가는 상인에게서 무슨 물건을 받아오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문제는 이 도시가 문제였다. 라제칸. 비교적 법질서가 잘 되어 있는 크로이츠 왕국과 스니케드 왕국,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먹는다는 야만인들의 땅 키클로, 이 세 지역이 맞닿은 도시가 바로 라제칸이었다. 형식적으로는 크로이츠 왕국의 땅이었으나 인구수는 키클로 사람들-다행히 라제칸에 사는 키클로 사람들은 식인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이 가장 많았고, 상인들은 스니케드 출신이 많았다.


그래서 라제칸을 다스려야 할 크로이츠 출신의 관료는 항상 기일을 채 채우기도 전에 죽거나 혹은 떠났었다. 세 민족이 사는 나라인 데다가 관료가 항상 바뀌니 이 도시에 제대로 된 질서가 통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라제칸은 대륙에서 ‘무법자의 도시’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도시.


만일 샤를리즈와 에드리안 남매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분명 며칠을 못 가서 죽임을 당했으리라. 샤를리즈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크로이츠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복식과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들이 어지러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열에 서넛은 싸우고 있다. 크로이츠의 대부분 도시에서의 싸움이 단순한 주먹질이라면 여기서의 싸움은 검과 도끼 등을 이용한, 생사를 다투는 싸움이었다. 샤를리즈는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을 고용하길 잘했어요. 여기서 이 아이와 단 둘이 왔다간 정말로 들어오자마자 죽임을 당했겠군요.”


그러자 샤를리즈의 맞은편에 있던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창밖에 보이는 이들보다도 덩치가 컸는데, 심지어 여자조차도 창밖에 있는 사내들만 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샤를리즈가 입고 있는 부들부들한 천으로 된 옷이 아닌, 짐승의 가죽으로 이루어진 옷을 입고 있었는데, 분명 샤를리즈의 것보다 튼튼할 것임에도 그들의 옷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거기다 간간히 보이는 흉터들은 그들이 얼마나 거친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두 남자 중 검은 안대를 한 사내가 말했다.


“우리는 라제칸에서도 이름이 난 용병들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쉬이 저들이 시비를 걸진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우리 용병단의 문양이 박힌 마차를 타고 있으니 간이 배밖에 나오지 않는 이상 덤벼들지 않을 겁니다.”


“역시. 왕국에서 이름 난 용병단 답군요. 문양만으로도 겁을 먹다니. 우리 상단도 얼른 커서 그 정도 위치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여자가 코웃음을 쳤다. 과연 열 네 살짜리 계집애가 생각할만한 수준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빈트뮐러 상단은 분명 이름 있는 상단이었지만 다른 거대 상단인 바켄바우어나 슈드레거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상단이었다. 요즈음에야 이름 모를 간부의 활약으로 상승세라고는 하나, 그래도 두 상단에 비하면 빈트뮐러 상단은 갓난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바켄바우어는 도예를, 슈드레거는 가죽을 다룬다. 두 상단은 그러므로 귀족 물품을 다루어 큰 이윤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빈트뮐러는 고작해야 풍차나 만드는 장인들을 기반으로 한 상단이다. 큰돈은 귀족들이 가지고 있다. 농민들을 상대로 버는 빈트뮐러는 분명 기반은 탄탄하나 큰돈을 얻기엔 힘들다. 다른 아이템을 찾지 않는 이상.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가 그 열 네 살짜리 계집애와 눈이 마주치고는 움찔했다. 녹색 눈동자. 저 계집애는 나이와는 다르게 섬뜩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꺼림칙하다. 이번 의뢰도 엄청난 돈이 아니었다면 저 계집애 때문에라도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병들은 미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저런 섬뜩한 기운을 가진 계집애가 얽힌 의뢰는 받지 않는 것이 좋다. 아무리 곱상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저 기운은 분명 죽음으로 인도하는 기운이기 때문이다.


“블렌다 씨는 참 대단하세요. 여자가 블렌다 씨처럼 강하기는 힘들다고 들었는데. 왕궁의 기사단 중에서도 여기사는 거의 없다고 들었거든요.”


“블렌다는 여자이지만 매우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다 재능도 뛰어나죠. 용병단에서도 블렌다를 상대할 용병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와. 부럽네요. 아, 저건 뭐죠?”


샤를리즈가 창밖의 제법 높은 건물을 가리켰다. 주변의 건물은 고작 1~2층에 불과했는데 샤를리즈가 가리킨 건물은 5층 정도 되어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특이한 것은 그 건물은 길쭉했으며 아무런 장식도 없는, 단순한 원통형 모양이었다. 그 모양은 마치 등대를 연상시켰다. 거기다 색깔도 때가 탄 하얀 색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더욱 굳혔다. 창가에 있던 사내가 그것을 보고는 감탄하며 말했다.


“저게 바로 그 유명한 라제칸의 등대로군요.”


“라제칸의 등대?”


“예. 아가씨는 소문을 들은 적이 없으십니까? 용병들이나 기사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유명합니다.”


그 말에 샤를리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등대란 무엇인가? 바다를 향해 빛을 밝히어 밤에 다니는 배에게 위치를 알려주는 건물이 아니던가? 즉, 등대는 바다가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라제칸은 해안도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라제칸에서 바다를 가려면 한 달이 넘게 마차를 타고 가야한다. 그런 도시에 등대라니? 물론, 탑의 생김새는 분명 등대가 맞았지만. 샤를리즈의 의문점을 알아차렸는지 블렌다가 말했다.


“생김새가 그래서 등대라고 부를 뿐입니다. 저 탑의 주인은 무시무시한 마법사였는데 그가 살던 마을의 등대를 본 따서 지은 건물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하긴, 내륙지방에 등대라니 유명할 만하네요.”


“아뇨. 건물 때문에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블렌다의 말에 샤를리즈는 블렌다를 바라보았다. 설명해보라는 듯 바라보는데 정작 설명은 가운데 있던 남자가 말했다.


“저 건물에는 등대지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등대지기라는 자가 굉장한 검사라고 들었습니다.”


“아, 그래서 용병들이나 기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거군요?”


“예. 그의 별명은 라제칸의 등대지기로 이 곳, 무법자의 도시에서 반드시 숙지해야 할 불문율의 주인공이죠. 라제칸의 등대지기에게 시비를 건 자는 사형.”


“설마하니 그 법을 집행하는 자는 따로 없을 테고, 그렇다면 그 등대지기라는 사내가 죽이는 거군요. 라제칸은 무법자의 도시이기 때문에 실력이 뛰어난 전사들이나, 악독한 범죄자들이 주로 머문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시비가 잦을 텐데 그런 자들을 모두 죽였으니 그 자는 굉장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되는 거군요. 다들 이런 편견 때문에 쉽게 덤벼들지 못하겠고요.”


“그렇죠. 특히 몇 년 전, 왕립 기사단의 글렌 아치볼트 경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사건은 굉장히 유명했습니다. 비록 그 자는 죽이지 않았지만요.”


“글렌 아치볼트 경이요?!”


언제 잠에서 깨어난 것일까? 에드리안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그 모습에 샤를리즈는 눈을 깜빡이다가 빙긋 웃고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긴, 열 살짜리 남자아이들에게 왕립 기사단은 동경의 대상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그들 중 한 사람의 팬이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아마도 에드리안은 글렌 아치볼트 경의 팬이었나 보다.


그는 평민출신임에도 왕립 기사단의 2인자였다. 대개 평민들이 기사단에 들어가면 기껏해야 부대의 대장정도가 최고로 승진한 경우였다. 그러니 글렌 아치볼트가 2인자인 것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가졌는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왕립 기사단이나 무술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샤를리즈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이론적으로만 알 뿐, 체감하지 못했다.


“예. 그는 용병시절에도 엄청났었죠. 그가 용병이었던 시절 라제칸의 등대지기와 한 판 붙었다고 합니다. 대개 등대지기와의 전투는 30분을 넘기지 않는데 그 때는 하루가 걸렸다더군요. 결국 무릎을 꿇은 것은 글렌이었죠. 그러나 그의 실력에 감복한 등대지기는 그를 그냥 살려줬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소문은 거짓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블렌다가 갑자기 끼어들어 말했다. 그 말에 사내들도, 에드리안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한숨을 쉬곤 말했다.


“그 전투를 직접 본 자는 없고, 소문만 무성하다고 했습니다. 거기다 제가 글렌의 동료를 좀 아는데 글렌이 그 소문에 대해서는 틀렸다고 말했었다 들었습니다. 거기다 여태까지 들려온 등대지기의 성격을 봤을 때 단순히 실력에 감복해 항상 죽여 온 상대를 살려 보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단순히 강자에 대한 동경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등대지기에게 물어보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 작자는 검을 든 자라면 바로 경계하고 덤벼든다고 하니, 그럴 수도 없겠지요.”


“그런데 그 등대지기는 왜 등대에서 사는 거예요?”


에드리안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안대를 한 사내는 미소를 지은 뒤 말했다.


“글쎄요. 사실 그 등대는 그 자의 소유도 아닙니다. 본래 살던 마법사의 동생이자, 지금 아가씨께서 만나려고 하시는 상인의 소유이지요. 그 분이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등대에 들어가려 했다가 데리고 온 용병들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 상인도 등대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하더군요. 그래도 유산이 탐은 났는지 계속해서 용병을 보냈는데 모두 죽었습니다. 그 때문에 조금씩 유명세를 타고 유명해졌지요. 사실 우리가 이 의뢰를 수락한 것도 그 등대지기를 한 번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머? 목숨이 아깝지 않으신 거예요?”


“그보다는 우리가 더 뛰어나리라 믿는 거죠. 물론, 블렌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지만.”


“등대지기를 쓰러뜨리는 것은 분명 용병으로써 최고의 명예를 얻는 것이지만, 굳이 그 따위를 위해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블렌다의 말에 샤를리즈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에드리안은 불만이라는 듯 볼을 풍선처럼 불렸다. 하긴, 에드리안의 나이 정도면 명예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 나이이다. 샤를리즈는 에드리안을 달래 듯 어깨를 감싸 안으면서 속으로는 라제칸의 등대지기에 대해 생각했다. 그는 틀림없는 인재였다.


작가의말

100화 특집으로 외전, 연참 등을 원하시기에 외전연참을 준비했습니다.
본편은 운이 좋다면 오늘 중에 아니면 내일 올라올 것 같습니다.
곧 다음편이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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