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푸른 장미를 얻는다면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프롤로그>
푸른 장미를 얻는다면
* * * * *
꽃잎이 파란색을 띤 장미는 현실에 실존하지 않는다.
식물의 꽃에 푸른색을 내는 색소는 델피니딘인데, 장미에는 델피니딘을 생산하는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른 장미는 일찍부터 '신비로움'이나 '불가능'의 상징이 되었고, 푸른 장미를 얻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화도 생겨났다.
* * * * *
“도와줘.”
벼리는 꼼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정신은 명료해서 모든 소리가 멀리서도 달려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떤 감각세포의 힘이 약화될 경우, 다른 감각세포가 예민하게 살아난다고 하더니 벼리의 감각세포가 그러했다.
벼리는 있는 힘을 다해 누군가를 불렀다.
“도와줘.”
벼리의 감각은 거의 모두 사라졌다.
통증도 무엇도 육체적인 감각은 없었다.
하지만 청각과 촉각이 가느다랗게, 간신히 살아있었다.
죽음 직전에 가본 사람들이 가장 오랫동안 느낄 수 있었던 감각은 소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임종을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소리를 지르지 않아야 한다.
죽음 직전의 사람이 몸을 비틀고 인상을 쓴다면 큰 소리 때문일 것이다.
소리가 임종을 맞는 사람에게 괴로움이라면 사람들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감각이 청각과 촉각이라더니 죽어가던 벼리는 분명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벼리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 느낄 수 있었다, 하는 것은 소리를 귀가 아닌 온몸의 촉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소리가 온몸의 세포를 뚫고서 벼리에게 인식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소리가 아닌 어떤 특별한 감각이었다.
벼리는 그 느낌을 향해 소리쳤다.
벼리의 소리 역시 소리로 퍼져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벼리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소리가 어딘가로 퍼져나간다는 것을.
꼼짝할 수 없는 온몸의 감각은 이미 모두 마비되었다.
감각은 어쩌면 죽어버렸다.
그 속에서 벼리의 정신은 명료했고 도움을 요청해야겠다는 절실함이 정신을 더욱 또렷하게 했다.
들을 수 있었다.
청각이 아닌 촉각의 느낌이었다.
벼리는 온몸으로 소리가 들린다고 느꼈다.
후각은 감각 중에서 가장 먼저 잃는 것이다.
하지만 벼리는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후각 역시 이미 마비된 상태였는데 어딘가 향기가 있었다.
후각도 소리처럼 힘은 약했지만 온몸으로 밀려 들어왔다.
소리와 향기를 담은 공기 중의 미세한 파동이 촉각으로 전달되었다.
벼리의 촉각은 청각과 후각의 기능 모두를 대신했다.
촉각으로 소리와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벼리에게만 있는 특별한 감각이었다.
위급했다.
이제 벼리는 무언지 모르겠지만 이들의 회합의 결과 죽음을 당할 것이었다.
아직까지 들은 이야기의 결론은 이러했다.
벼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다른 이의 부활을 위해 준비된 제물이었다.
제물인 벼리를 통해 누군가의 부활은 이루어질 것이었다.
‘이미 죽어버린 사람을 살리는 일이 가능할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벼리는 잠시 후에 부활의 제물로 사라질 것이었다.
“도와 줘.”
“도와 줘.”
“누구든 나를 도와 줘.”
그때 희미하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벼리야.”
어디선가 들렸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벼리는 소리가 사라질까봐 온 힘을 다해 다시 불렀다.
“도와 줘.”
이들의 회합에선 생화가 사용되지 않았다.
살아 있는 것들은 어떻든 서로 작용을 했다.
살아있는 것들이 이들의 회합에 끼어들지 못하는 이유다.
부활의 밤은 예외였다.
살아있는 것들의 작용이 필요한 밤이었다.
부활의 밤은 다시 살아날 사람을 대신하는 것이 필요했다.
푸른 블루문 장미가 부활의 꽃으로 사용되었다.
“벼리야.”
다시 희미한 소리와 함께 희미한 향기가 느껴졌다.
블루문 장미의 향기였다.
블루문 장미의 소리였다.
블루문.
벼리가 가장 사랑하는 꽃이었다.
블루문 장미가 이들의 제의에 있는 것은 벼리가 사랑하는 꽃이기 때문이었다.
벼리는 그때서야 그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아주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이제 겨우 말을 시작했던 다섯 살이었었다.
잊고 있었던 사연이었다.
하지만 이제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왜 부활의 제물이 되었는지.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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