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_죽은 너를 살려줄게 =완결=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81화>
죽은 너를 살려줄게
* * * * *
재인은 숨을 쉬지 않았다.
벼리는 어린 시절, 몸이 싸늘하게 식었던 아이였던 재인을 떠올렸다.
벼리는 어린 시절처럼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슴에서 블루문 로즈를 꺼냈다.
손바닥 위에서 블루문 로즈가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벼리는 다시 손을 펴서 재인의 가슴에 블루문 로즈가 스미도록 손을 댔다.
벼리의 블루문 로즈가 재인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벼리는 재인의 입술에 키스했다.
벼리의 숨이 재인에게 스며들었다.
재인은 크게 숨을 쉬었다.
이제 재인은 벼리의 블루문 로즈와 벼리의 숨으로 다시 살아났다.
사랑이 사람을 살린다는 일은 이런 것이었다.
사람을 죽이려는 부활의 의식이 벌어졌던 지하에서는 그와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재인은 살아났다.
도현도 살아났다.
벼리도, 연이도 살아났다.
하지만 정우는 아니었다.
도현은 목숨을 잃은 상태에서 자스민 꽃을 가슴으로 받아서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없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만 정우를 살릴 수 없었다.
“재인, 나 때문에 정우가 죽는 거 원치 않아. 정우를 살려줘.”
“그럼 정민이나 라일라, 준희, 윤지를 살려줘.”
“내가 어떻게 살려? 그들은 이미 죽었어. 영생을 얻었어.”
“아니야. 그들은 모두 잠시 동면에 있어. 네가 살려달라고 말한다면 우리의 정우도 깨어날 수 있을 거야.”
“제발 부탁이야. 모두 깨어나게 해줘. 난 정우만 있으면 돼. 너무 모른 척 했어. 정우, 나의 정우.”
도현은 정우를 잃고서야 정우의 사랑이 사무쳤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사랑을 모르는 법이었다.
떠나 보내봐야 사랑을 안다는 말은 어쩌면 늦은 사랑이 주는 오래된 교훈이었다.
“나의 목숨을 정우에게 줘. 난 목숨을 받을 자격이 없어. 나의 것을 정우에게 줘. 제발 부탁이야.”
도현은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애쓰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는 저절로 부탁의 말이 쏟아졌던 것이었다.
“제발 나를 살린 것처럼 정우를 살려줘. 내가 아닌 정우를 살려줘.”
도현은 진심으로 정우를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벼리, 정우를 살려줘. 도현을 살인자로 만들지 말아줘. 오랫동안 우리가 사랑했던 벗들이야.”
재인은 벼리에게 부탁했다.
벼리는 재인의 부탁의 말을 듣고 랜디를 바라봤다.
랜디는 고개를 끄덕였다.
벼리는 재인의 어머니의 꽃인 구골나무의 꽃을 정우의 가슴에 스미도록 주었다.
정우는 총을 맞았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얼굴이 하얗게 변했었다.
구골나무의 꽃이 정우에게 스미자 정우의 얼굴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도현은 정우를 안고 있었다.
도현이 정우의 입술에 키스했다.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키스했다.
“정우야, 미안해. 너무 오랫동안 모른 척 했어. 알면서 모른 척 했어. 사랑해.”
정우는 도현의 가까이에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우가 살아난 것이었다.
“도현....”
정우는 깨어나서 도현의 얼굴에 키스했다.
도현도 아무 말하지 않고 정우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고 안고 있었다.
결코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처럼 힘차게 안은 상태였다.
모두의 사랑이 서로를 살린 것이었다.
사랑이 기적이었는지 기적으로 사랑이 만들어졌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도현의 어머니였다.
이제야 도현의 어머니는 진정 죽음을 맞게 되었다.
도현의 어머니 영애는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죽기 전에 아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어머니의 힘이었다.
이미 훨씬 전에 세상을 떠났어야 했으나 자신의 아들을 위해 별의 힘까지 끌어 모아 아들을 살린 것이었다.
총소리가 들리자 민수와 명훈은 이들의 의식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시간은 잠시 멈춤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부활의 의식 가운데로 뛰어들었을 때는 도현이 정우를 안고 있는 광경이었다.
벼리는 연이를 부축하고 있었다.
재인은 벼리를 그 옆에서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김 교수와 성 부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실제 이들은 이 모든 일을 꾸민 당사자들이었다.
도현과 재인, 영진, 정우를 영생과 부활로 현혹했던 사람들이었다.
민수와 명훈이 들이닥쳤을 때 이들의 사건은 하나의 해프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지하 6층에 있는 정민이나 라일라, 준희, 사유, 윤지라는 실종사건 증거물이 있었다.
이들은 이번 실종사건에서 도망칠 수 없었다.
민수와 명훈은 도현과 재인, 영진, 정우와 함께 지하 6층으로 향했다.
지하 6층에는 파견된 경찰들이 와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지하6층에 갔을 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곳은 단순한 전시 회랑이었다.
어느 순간 모든 유리관들을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었다.
도현이 이곳을 폭파시킨다고 했었는데 이것은 폭파도 아니고 공간이 어딘가로 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도현과 영진은 깜짝 놀라 재인과 정우를 바라봤다.
재인과 정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파견된 경찰들은 해프닝으로 끝난 일들을 투덜거리며 서로 복귀했다.
“우리 정원이나 한 번 가볼까요”
재인이 도현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이런 날은 블루문의 그믐달을 한 번 봐야죠. 특별한 밤이니까요. 정원으로 가보도록 해요.”
정우가 그린섬 정원으로 가자고 다시 말했다.
모두 함께 그린섬 정원으로 향했다.
일행은 그린섬 정원에서 깜짝 놀랄 일들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실종되었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민, 라일라, 준희, 윤지가 자신들의 나무 옆에 서 있었다.
모든 나무들이 일제히 모두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향기는 온 도시를 다 덮고도 남았다.
블루문의 그믐밤에 꽃은 그린섬 정원에만 핀 것은 아니었다.
근방의 모든 꽃들이 계절 없이 모두 한꺼번에 활짝 꽃피운 것이었다.
사방에서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였다.
“펑펑펑펑”
“펑펑펑펑”
폭죽 터지는 소리보다 꽃망울 터지는 소리는 더욱 활기차고 긴 밤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다.
사랑은 전염되는 것이었고 아름다움은 전파되는 것이었다.
사랑의 힘이 꽃을 피웠고 꽃은 계절을 바꿔서 모든 곳의 꽃들을 꽃들의 계절로 이끌었다.
세상은 꽃이 세상이 되었다.
“정민.”
연이가 뛰어가 손을 잡았다.
“라일라”
영진이 달려가 안았다.
“준희.”
도현과 정우가 달려가 손을 잡았다.
“윤지.”
벼리가 쫓아가 손을 잡았다.
이름을 부르고 손을 잡고 안는 이 모든 일은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었다.
사랑이 한꺼번에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잘 지냈어? 도현? 오랜만이야.”
정민이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인사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내가 누구야, 제이잖아.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천재. 최적의 동면 조건을 만들어놓았다 이 말씀이야. 바로 내가.”
“어떻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미 그린섬과 관련된 모든 설계도면을 내가 받았잖아. 난 어차피 죽을 것이었고 부활을 준비해야 했어.”
“미안해. 도현 너를 위해서 재인과 내가 이번 일을 준비했어.”
“너희들이 나를 배신했다고?”
‘도현, 너의 배려가 아름답게 풀리길 바랐어.“
“네가 너의 목적을 위해 우리들을 끌어들었지만 우리들은 누구도 불행하지 않았어. 너는 우리들과 있는 동안 누구도 불행하게 하지 않았어.”
“너와 함께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하나도 어렵지 않게 되었어.”
“우린 모두 다 불행한 아이들이었어. 그린섬의 트루먼 쇼는 나쁘지 않았어. 이 주도면밀한 도현. 나쁜 도현.”
재인은 라일라와 준희 역시 위험해지자 정우와 치밀하게 준비해서 정확히 동면에 들도록 했다.
대신 이 일은 김 교수나 성 부장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성 부장이 교통사고를 위장해 2명의 희생자를 낼 줄은 몰랐다.
그린섬 정원에 있던 나무들의 눈물은 꽃으로 활짝 피고 있었다.
구골나무와 자스민과 치자나무는 이제 편안한 얼굴이 되었다.
이들에게 별이 각각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별이 떨어졌어. 이제 우린 이 별들을 다시 하늘로 돌려보낼 거야. 다음 생에 더 아름다운 인간으로 태어나겠지? 그런 기도로 별들을 보낼 거야.”
이별의 순간에 낙화는 아름다웠다.
구골나무와 자스민, 치자나무는 모두 일제히 꽃을 떨구었다.
이들의 꽃이 지자 온 사방에 향기가 가득했다.
떨어지는 꽃들과 떠나가는 꽃들의 향기는 너무도 아름다웠다.
온 도시를 향기로 물들이고도 잠이 든 이들의 꿈에까지 찾아가서 향기로운 꿈을 전해준 밤이었다.
모두 각자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어쩌면 아주 우습게 해프닝처럼 끝난 사건이지만 사랑이 없었다면 얼마나 거대한 비극이었을지 상상할 수 없는 밤이었다.
재인은 벼리와 펜트하우스로 올라왔다.
둘은 아주 천천히 입술을 대었다.
이들은 알았다.
예전에 이들이 사랑을 나눌 때면 무언가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넘나드는 듯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재인의 가슴에 있었던 블루문 로즈 꽃은 벼리의 것이었다.
벼리의 숨에 있었던 블루문 로즈의 숨은 재인의 것이었다.
블루문 로즈는 벼리의 가슴에서 재인의 가슴으로, 재인의 가슴에서 벼리의 가슴으로 넘나들었다.
이들이 어느 순간 아찔한 순간을 맞을 때마다 이들은 자신들의 방을 바꾸었던 것이다.
이들의 숨 또한 벼리에게서, 재인에게서 야릇하고 짜릿한 순간이 올 때마다 넘나들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벼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두 개의 블루문 로즈 중에서 자신의 블루문 로즈를 재인의 가슴으로 넘겨줬던 것이었다.
재인의 블루문 로즈는 자신이 갖고 있을 것이었다.
사랑이란 그렇게 서로의 심장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사랑이란 그렇게 서로의 숨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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