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_충분히 의심스러운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42화>
충분히 의심스러운
* * * * *
준희가 눈처럼 하얀 수국꽃을 주문했었다.
눈처럼 하얀 수국꽃은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연이는 눈처럼 하얀 수국꽃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갔다.
민수는 연이에게 수국꽃 한아름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연이는 요즘 그린섬에 자주 갔으며 그곳에 꽃나무가 새롭게 심겨지는데 실종된 사람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린섬에 랑데부 레스토랑이 있어. 그곳의 셰프 준희가 저기, 눈처럼 하얀 수국꽃을 주문하고 사라졌어. 어딘가 떠날 사람이 꽃을 주문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 떠날 사람이 꽃을 주문하지는 않지. 그런데 꽃을 주문했다? 충분히 수상한 정황이야.”
“지금 그린섬 정원에 나무 세 그루가 새로 생겼어. 누군가 심었는데 조금 이상해. 정원에 나무가 새로 생기는 것은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닌데 나무와 어떤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 느낌이 있어. 때죽나무, 라일락나무. 그리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또 한 그루.”
“때죽나무?”
“응, 원래 정원에 없는 나무였어. 최근에 심긴 거야. 벼리가 말하길 정민은 나중에 죽으면 때죽나무가 되겠다고 했대. 그래서 혹시 그 나무가 정민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뭐 남의 정원에 심긴 나무가 실종된 사람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겠냐 하겠지만 충분히 관계가 있어.”
“때죽나무라면 나도 알고 있어. 너도 알고 있잖아. 기억 안나? 언젠가 우리 가족이랑 너네, 정민네가 같이 산에 갔잖아. 그때 정민과 벼리가 먼저 일찍 올라갔어. 네가 하도 힘들다고 해서 나는 너랑 맞춰 가느라고 천천히 올라갔잖아.”
“내가 민수 너를 맞춰 줬겠지. 엄살은 항상 그대, 민수였어. 내가 아니었다고.”
“하여튼 뭐.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벼리 뒤를 따라 갔을 때 정말 좋은 향기가 났었잖아. 우리들이 향기가 좋다고 했는데 하얀 꽃이 핀 나무의 냄새였어. 벼리와 정민이 그 나무 아래 있었어. 정민이 그 나무가 때죽나무라고 알려줬는데 너는 향기가 좋은데 이름이 때죽이라고 웃긴다고 했었어. 생각나?”
“그런 일이 있었어? 기억이 안 나는데?”
“근데 정민이 이 나무는 자기 나무라고. 나무에 자기 표시를 하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목에 두르고 갔던 빨강 스카프를 때죽나무에 걸어줬었어. 그때 내가 엎드리고 정민이가 나를 밟고 올라서 손수건을 나무에 걸었어.”
"그래?"
“정민은 약간 괴짜스러운 게 있는 아이인 거 알지? 그리고 무슨 의식인가를 했어.”
"아, 맞다. 의식을 했어. 이제 생각난다. 모두 때죽나무에게 절을 세 번 했잖아. 정민이 우리들한테 어떤 말을 따라 하라고 시켰어. 우린 웃으면서 장난스러운 기분으로 의식을 치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민은 뭔가 알고 했던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 정민이 약간 이상한 일을 잘 벌이는 천재였잖아. 많이 엉뚱했지. 우린 정민이 시키는 게 재밌어서 잘 따라 했어.”
“그때의 주문은 이런 거였어.”
《때죽나무 님, 정민의 영혼을 때죽나무 님에게 드리오니, 살아 있는 동안 정민의 영혼을 보살피시고, 죽은 후에는 영혼을 거두어서 때죽나무가 되게 하소서》
“맞아. 우리 모두 정민을 따라서 주문을 외웠어. 난 잊었었나 봐.”
“그런데 정민이 죽으면 되고 싶다던 때죽나무가 정원에 있었어? 원래 없던 나무였는데 정민이 실종된 후 심어진 거라고?"
"맞아. 원래 없던 나무였다고 해."
"하지만 나무 한 그루 새로 심어진 것이 누군가 실종된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억지야. 정민이 죽어서 때죽나무가 되고 싶다고 했어도 연관 짓은 것은 좀 무리라고 할 수 있어. 대부분 어떤 사건이 생기려면 있던 것이 없어지거든. 없던 것이 생기는 일은 드물어."
“하지만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봐. 억지인데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이 들거야.”
"뭔가 더 있어?"
“그린섬 설계를 정민 아버지가 했어. 그건 알고 있지?”
“그린섬 설계를 맡았던 겸재 아저씨가 음주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잖아. 정민은 그 일이 이상하다고 알아보고 있었어. 나에게도 부탁한 일이야.”
“그게 아니라, 정민이가 그린섬의 재인과 잘 아는 사이였다는 거야.”
“어떻게?"
"우리도 이제 알았는데 정민은 파리에서 지낼 때 재인과 같은 집에서 같이 지냈대.”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해?”
“정민을 후원한 그룹이 재인의 친구 아버지 회사였대.”
“그래? 어떻게 그렇게 엮여 있지? 이상해. 이상한 촉이 온다. 나도 요즘 정민에 대해 이런저런 것을 조사하고 있는데 누군가 정민에 대한 흔적을 지운 것 같은 느낌이야. 정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이상하게 알 수 없어. 어느 순간 항상 정민을 알 수 없도록 흔적을 지운 것 같거든.”
“이상한 거 맞지? 그리고 또 한 가지 일이 있어.”
"또 있다고? 뭔데?”
“유튜브에 라일라라고, 유명한 인싸가 있어. 패션 관련 인기가 아주 많은 인싸야. 그런데 라일라 역시 파리에서 정민이랑 함께 지냈어. 그리고 현재 소식이 끊겼어. 실종된 느낌이야.”
“아는 사이였어? 그런데 라일라가 왜? 연관이 있어? 뭐가 이렇게 복잡해?”
“그것만 있는 게 아냐. 랑데부 레스토랑 셰프 준희라고 있는데 그 친구도 파리에서 함께 지냈대.”
“그런데 함께 지낸 것이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함께 지낸 것은 놀랍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함께 지낸 것은 놀랄 일이지 사건은 아니야. 그런데 사건이 있어.”
“정말 사건이 있어? 무슨?”
“정민이 때죽나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했지?”
“응..”
“정원에 나무가 새롭게 심어졌어. 때죽나무, 라일락꽃 그리고 또 하나가 더 있어.”
“정민과 때죽나무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추억 정도의 연관이야. 사건과 연관짓기는 어려워.”
“그런데 경우의 수가 몇 개 더 있다면?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고 생각해.”
“경우의 수가 뭐야?
“정민은 죽으면 때죽나무가 되고 싶었어. 둘째 라일라라고 하는 친구는 라일락꽃과 관련한 사연이 있어. 그리고 이번에 심어진 나무는 아마 수국이 아닐까 싶은 거지. 준희가 수국과 관련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
“결론적으로 세 명의 여자들이 실종되었다. 공통적으로 세 건 모두 실종신고가 안 들어갔다. 세 명 모두 파리에서 지낼 때 그린섬에서 함께 자랐다.”
“오, 정리 잘 하시고.”
“하나 더.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세 명의 여인들, 모두 그들만의 꽃을 가지고 있었다.”
“맞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한 키에 정리를 해버리네. 경찰밥을 괜히 먹은 게 아닌가봐. 경찰 자격 있다. 인정이야.”
“정리하고 보니 이건 엄청난 사건일 수 있겠다. 명확하지 않은 이야기들만 무성한 것은 뭔가 큰 사건의 단초일 수 있어. 그런 점에서 드러난 이야기는 뭔가 숨기는 것이 많은 거 같아.”
“그런데 왜 실종신고가 안 된 거야? 분명 모두들 실종된 게 맞는데?”
“그건 일반인들의 생각이야. 실종신고를 하고 수사를 하기까지는 쉽지 않아. 젊은 아가씨들이 집에 안 들어갔다고 경찰들이 나서서 그 아가씨들을 찾잖아? 아마 이 시대의 연애하는 모든 커플들은 납치범이 돼 있을 거야.”
“하하, 일리가 있어.”
“연이야, 이 사건은 뭔가 큰 배후세력이 있는 것 같아. 실종사건인데 하나같이 실종신고가 되지 않았어. 누군가 사건을 은폐하고 있다는 정황이지.”
“그럼 어떻게 실종신고를 하지?”
“어떤 세력이 막고 있어서 가족이 아닌 사람이 신고하긴 쉽지 않을 거야.”
“말도 안 돼. 실종신고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니 놀랍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충분히 의심스러운 정황이야. 난 경찰서의 노 형사한테 협조를 얻어서 조금 더 알아볼게.“
“그런데 벼리가 걱정인 상황이야.”
“사건이 그린섬과 관련이 있어서?”
“응, 그린섬의 재인이 충분히 의심스러운데 벼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가봐. 그래서 벼리가 힘들어 해. 혹시 재인이 나쁜 일에 연루되어 있을까봐.”
“나도 그래서 조금 더 빨리 알아보려는 거야. 재인이 벼리의 신랑이니 억울한 일이 없도록 더 빨리 알아봐야지. 아니면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서둘러야 해.”
“서둘러 줘.”
“죄를 짓는 사람은 작은 죄를 지었을 때 잡혀서 벌을 받는 게 제일 좋아. 작은 사건일 때 안 들키거나 안 잡히잖아? 그럼 반드시 처음 사건보다는 더 큰 사건을 저지르는 법이거든.”
“어떤 상황이든 어떤 일인지 빨리 밝혀지면 좋겠어.”
“그런데 사람이 실종되는데 왜 나무가 심겨지는 거지? 나무가 무슨 역할을 해서? 이상한 일이야.”
그린섬 정원에 이번에 새로 심긴 나무가 수국꽃이라면 틀림없었다.
누군가 실종되면 그린섬엔 나무가 하나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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