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_기회는 이번 한 번 뿐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79화>
기회는 이번 한 번 뿐입니다
* * * * *
“슬픈 나무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어.”
“별을 뺏긴 나무들이 슬픈 나무가 돼. 슬픈 나무는 별을 하늘로 돌려보내지 못하기 때문에 정말 죽게 되는 나무야.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나무야.”
“도와줘. 꽃들아.”
벼리는 꼼짝할 수 없었다.
벼리는 랜디를 떠올렸다.
랜디가 준 손목 위의 나뭇잎들을 떠올렸다.
나뭇잎들이 벼리를 숲으로 데려다 줄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나뭇잎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떤 힘이 더 있어야 하는 것 같았다.
아니면 랜디의 힘이 닿는 곳이어야 했다.
“벼리야, 빛이 들어오길 기다려야 해.”
“난 눈을 뜰 수 없어. 빛이 들어오는지 알 수 없어.”
“꽃과 나무는 빛이 있으면 힘을 받을 수 있어. 넌 꽃의 정령의 힘을 갖고 있어. 빛이 있으면 몸이 반응할 거야. 힘을 얻을 거야.”
“빨리 힘을 얻고 싶어. 어떻게 빛을 얻을 수 있어?”
“이곳 지하는 하늘의 빛이 닿지 않아. 잠시 후 부활의식이 있을 때 달빛이 들어올 거야. 그때 꽃들을 부를 수 있을 거야.”
“블루문, 넌 괜찮아?”
“난 블루문 달빛이 들어오면 어쩌면 달빛에 몸이 타버릴 지도 몰라. 이곳에 끌려온 꽃들의 운명이야.”
“널 어떻게 구하니?”
“날 구한다고? 네가 더 위험한 상황이야.”
“넌 나의 꽃이야. 네가 죽는다면 나도 죽을 거야.”
“네 가슴에는 꽃이 없어. 알지? 넌 지금 위험해.”
“어릴 때 죽어가는 아이를 살리려고 그 아이에게 블루문로즈를 줬어.”
“그래, 재인이 네 블루문로즈를 가지고 있어. 재인의 블루문로즈를 가져와야 해. 그래야 네가 살아날 수 있어.”
“어떻게 가져와?”
“못 가져와. 재인이 너에게 줘야만 해. 하지만 재인은 너에게 꽃을 주지 않을 거야.”
“재인은 왜 나를 해치려고 하는 거지?”
“재인은 처음부터 널 노렸는지 모르겠어. 부활의식을 하게 되면 너의 숨이 달빛에 타오르는 꽃을 따라서 옮겨가게 돼. 그때 숨은 도현의 어머니가 아닌 재인에게로 옮겨 갈 거야. 원래가 재인의 숨이었어. 향기를 품고 있는.”
“그럼 나의 숨은? 나는 꽃만 있었어? 왜 나의 숨은 없어?”
“너에게도 향기를 품은 숨이 있었어. 하지만 사람은 하나의 향기만 품을 수 있어. 네가 네 꽃을 재인에게 주고 재인의 숨을 받아야 해서 네 숨을 잠시 나무가 맡았어.”
“내 숨을?”
"넌 숨이 있고 꽃이 없어. 재인은 꽃이 있고 향기가 없어."
"............"
“재인의 꽃 역시 블루문 로즈인 건 알고 있지?”
“응, 재인의 꽃도 블루문 로즈.”
“재인은 엄마가 죽은 후 엄마를 안고 있었어. 몸이 차가워지면서 저체온증으로 목숨이 거의 위태로웠어. 그때 재인 엄마의 영혼을 담고 있는 구골나무가 재인을 구하기 위해 재인의 가슴에서 블루문로즈 꽃을 잠시 가져갔어. 꽃이 이미 죽었거든. 그래서 재인의 가슴에 살아있는 꽃을 넣어야 했어. 그래서 너의 꽃을 재인의 가슴에 넣어 준 거야. 그 꽃을 따라서 네 향기가 재인에게 간 것이지. 재인의 향기를 품은 숨은 네가 가져간 거지.”
“그럼 나는 나의 꽃이 없이 재인의 숨만 가지고 있는 거야? 나는 이미 죽은 거야?”
“아니야, 구골나무의 영혼이 널 지켜주고 있잖아. 구골나무를 지키는 것이 랜디야. 결국 랜디가 널 지키고 있는 거지.”
“랜디가 나를 지키고 있었어?”
“랜디가 너에게 이파리를 줬지? 그 이파리가 결국 꽃과 나무를 불러올 거야. 하지만 빛이 있어야 해. 그 일을 누군가 해줘야 할 텐데 걱정이야.”
“누가 도와줄까? 연이도 지금은 잡혀 있는 상태야. 어떻게 빛을 불러와?”
“벼리, 네가 랜디를 불러서 빛을 데려오도록 해줘.”
“하지만 아직 움직일 수 없어.”
“내가 너에게 힘을 나눠 줄게. 내가 달빛에 타오르면 그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어. 그리고 달빛에 타버리면 완벽하게 소멸되는 것이어서 슬플 거야.”
블루문 로즈는 벼리를 온통 감싸고 있었다.
블루문 로즈는 바람이 없이도 팔락거리는 것 같더니 벼리 주위를 떠서 벼리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벼리는 묶여 있었지만 자신의 힘이 조금 더 커지는 것 같았다.
벼리가 다시 꽃들을 불렀다.
“도와줘.”
그 순간 벼리의 손목에서 이파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파리가 하나씩 생겨나더니 거대한 숲이 되었다.
빛이 있어야만 숲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랜디의 숲이 만들어졌다.
그곳에 랜디가 있었다.
“랜디, 살려주세요.”
“벼리, 사랑을 믿어야 해. 푸른 수염의 사랑을 믿어야 해. 무조건적인 믿음이 널 살릴 수 있을 거야.”
“뭘 어떻게 믿어요? 무서워요.”
“너의 사랑을 온전히 믿고 있으면 돼. 네가 믿고 있는 사랑이 죽은 너를 살려줄 거야.”
랜디의 숲이 흐릿해졌다.
랜디의 숲이 사라졌다.
연이는 옆에 있다고 했었다.
“연이 언니...”
“연이 언니...”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연이는 벼리처럼 생각으로 이야기를 전달할 수는 없었다.
랜디는 자신을 보호하는 정령이었다.
구골나무가 사랑한 재인은 푸른 수염이었다.
그런데 9시에 교통사고가 있을 거라고 했다.
자신과 연이는 아직 여기에 묶여 있었다.
그럼 사고는 다른 희생자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좀 흘렀으니 사고가 있을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부활의식의 준비가 끝났을 것이었다.
“성 부장, 교통사고는 어떻게 됐어?”
“지금쯤 희생자의 사고소식이 곧 뜰 것 같습니다. TV를 켜볼까요?”
“어서 켜봐. 일은 순조롭게 되어 가는 건가?”
“뉴스 속보입니다.”
아나운서의 소리가 들렸다.
“사고 소식입니다. 대유그룹 대유엔터테인먼트 김재인 대표의 아내인 은벼리 일행이 탄 자동차가 전복되면서 차가 전소되었다고 합니다. 현장을 불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김 기자.”
“김 기자입니다. 여기는 교통사고 현장입니다. 차는 현재 전소된 상태이며 사고 차는 대유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소유로 아내와 문화일보 기자인 유 기자가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워낙 크게 나서 시신은 찾을 수 없다고 하는데요, 유족들에게 지금 연락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기 보십시오, 벼리의 오빠랑 어머니가 현장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그럼 우리의 계획을 방해할 것은 없는 것이겠지?”
“네, 완벽하게 처리한 셈입니다.”
“그럼 부활의식을 기다리면 되겠군.“
모두들 뉴스에 시선을 모으고 있는데 전화벨 진동이 울렸다.
재인의 전화였다.
“재인, 들었어? 지금 벼리의 사고가 났어. 벼리와 연이가 탄 차가 전소됐다는 거야.”
민수의 전화였다.
급박한 전화였다.
재인은 약간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지금은 부활의식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아내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현장에 바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회장님,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가지 않으면 의심 받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뭐야? 일처리를 그렇게밖에 못해?”
“하지만 지금 사고가 안 났으면 실종신고가 들어갔을 시간입니다. 그럼 더욱 복잡했을 상황이 될 것이어서...”
“알았어. 어서 다녀와. 부활의식에 늦지 않도록 해.”
“중요한 처리만 하고 바로 돌아오겠습니다. 대신 다른 부활의식을 위한 준비는 모두 마쳤습니다.”
재인은 서둘러 교통사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달려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성 부장도 따라 갔다.
차는 처참하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성 부장은 주도면밀하게 사고 현장을 말끔하게 만들었다.
재인에게 의심은 없을 것이었다.
성 부장이 벼리와 연이의 몸집과 몸무게가 비슷한 두 여자를 잘 골랐을 것이다.
사람들의 의심은 없을 것이었다.
CCTV에 찍힌 것도 어떻게 조작했는지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사고현장으로 되어 있었다.
어떻게 연출한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민수와 벼리의 어머니, 아버지는 거의 넋이 나간 상태였다.
재인도 눈물을 흘렸다.
실제 벼리의 희생을 본다면 눈물이 날 것이었다.
“자네가 벼리를 죽인 거지? 벼리 살려내. 연이도 살려내.”
민수는 소리를 질렀다.
재인의 멱살을 잡았다.
옆에서 말려야 했다.
재인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처럼 죄인의 모습으로 있었다.
죄인인 것은 당연했다.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지 못했으니 죄인이었다.
재인은 민수로부터 온갖 지탄을 들었다.
옆에서 성 부장이 재인을 챙겼다.
“대표님, 댁으로 가시지요.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 가. 가버리라고.”
재인은 성 부장과 함께 집으로 갔다.
사고처리는 계속 되고 있었다.
사고현장이 워낙 컸다.
이때 민수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누워 있는 벼리와 연이의 사진이었다.
<두 사람은 현재 그린섬 지하에 있습니다. 아직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약속된 시간에 지하 엘리베이터를 타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기회는 이번 한 번 뿐입니다>
<그린섬 정원의 문이 열려 있을 것입니다. 그곳에 들어가면 연못 안에 우물이 있습니다. 우물을 빙 둘러서 붉은 벽돌들이 빛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만든 장치입니다. 붉은 벽돌 3개를 빼주세요. 벽돌 3개를 빼면 빛줄기 3개가 지하로 스며들 것입니다. 지하로 잠입하기 전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시간은 10시 10분이었다.
서둘러야 했다.
11시에 엘리베이터를 타라고 했었다.
아마도 다른 시간은 노출될 시간일 것이었다.
민수는 명훈과 함께 그린섬으로 향했다.
시간은 10시 45분이었다.
서둘러 그린섬 정원으로 향했다.
언젠가 벼리에게 들었던 그린섬 정원의 입구로 향했다.
지문 인식키가 있었는데 문이 열려 있었다.
민수와 명훈은 정원으로 들어가 연못으로 갔다.
연못은 평범한 모양이었는데 가운데 우물이 있는 것이 특이했다.
그 우물의 붉은 벽돌 3개를 빼라고 했었다.
민수가 신발을 벗고 연못 안으로 들어갔다.
연못 가운데로 가자 우물이 자세히 보였다.
특이하게 벽돌로 둥글게 마감이 되어 있었다.
빨간 벽돌을 빼라고 했었다.
대부분 푸른색 벽돌이었다.
사이사이 3개의 붉은 벽돌이 있었다.
민수는 조심스럽게 3개의 붉은 벽돌을 빼냈다.
벽돌은 견고해서 손으로 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일부러 누군가 빼기 쉽도록 1차 작업을 해놓은 것이었다.
민수는 우물 안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벼리와 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두 번째로 봤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착각일 수 있었는데 벼리와 연이의 모습은 한순간 선명하게 보였었다.
착각이 아닐 것이었다.
사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벽돌 3개를 빼자 우물 바닥이 열리는 것 같았다.
지하와 지상의 빛을 차단했던 장치를 없앤 것 같았다.
한순간 하늘이 깜깜해서 우물 안도 깜깜했지만 하늘의 빛은 우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민수는 우물 안을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서둘러 빼낸 벽돌 3개를 들고 연못 밖으로 나왔다.
혹시 필요할지 몰랐다.
명훈은 망을 보고 있었다.
명훈이 민수에게 서둘러 나오라고 손짓을 했다.
“벽돌은 만약을 몰라서 들고 나왔어.”
“그거로 뭘 하려고. 연못 옆에 두고 와. 지하까지 가지고 갈 수는 없잖아.”
민수는 벽돌을 두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민수가 나오려고 하는데 그린섬 정원의 나무들에게서 후두둑 빗물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나무들에게서 비가 오는 것 같았다.
나무들에게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민수와 명훈은 지하로 향했다.
지하로 통하는 CCTV를 보는 형사로부터 문자가 왔다.
많은 차량이 지하로 이미 들어갔다는 이야기였다.
이제 부활의식이 시행될 것이었다.
민수와 명훈은 지하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모든 장치를 해제하며 내려갔다.
후속으로 내려올 형사들을 위한 것이었다.
지하 6층에 도달했다.
민수 일행이 들어올 수 있도록 누군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한 것 같았다.
민수와 명훈은 복도를 조심히 따라서 어느 곳으로 향했다.
지난번과 다르게 벽은 열려 있었다.
이들의 생각대로 유리관에는 각각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정민, 라일라, 준희가 누워 있었다.
사유과 윤지는 다른 방에 있는 것 같았다.
벼리와 연이도 보이지 않았다.
지하6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들은 조심스럽게 비상문을 통해 지하7층으로 향했다.
지하 7층에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의식은 지하7층에서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과연 지하 7층의 유리관에는 벼리와 연이가 누워 있었다.
마치 잠자는 것처럼 보였다.
생사는 알 수 없었다.
유리관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지하7층은 꽃향기가 진동했다.
블루문로즈와 자스민의 향이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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