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_새로운 나무 한 그루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53화>
새로운 나무 한 그루
* * * * *
도현이 돌아가고 벼리는 연이를 따라서 연이의 집으로 갔다.
연이의 집은 아버지 집 가까이에 있었다.
아파트였다.
벼리가 갔을 때 민수와 명훈이 와 있었다.
민수는 벼리와 연이를 작은 방으로 데리고 갔다.
민수는 방의 창 커튼을 내렸다.
“비밀 유지가 필요해서.”
민수가 웃으며 말했다.
방은 평소와 다르게 변해 있었다.
벽면에 여러 장의 인물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 옆으로 꽃 사진이 하나씩 연결되어 붙어 있었다.
그린섬 정원의 위성사진도 있었다.
벽면 하나가 사건 프로파일링의 브리핑을 위해 정리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완전 수사전담반이 꾸려진 거야? 전문 수사가 시작된 분위기야.”
“우리 남편 능력 있어 보이네? 이 정도였어? 멋지고 든든하다. 내 남편. 기특하다. 기특해.”
연이가 민수의 엉덩이를 토닥거리자 민수가 질겁하며 몸을 피했다.
“아휴, 제수씨. 그건 두 분이 있을 때 하시죠. 닭살입니다. 여기 솔로를 두고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맞아. 연이 언니는 감정 표현이 솔직해도 너... 무.. 너무 솔직해. 내가 잘 참고 사는 것이 대단하다니까요.”
“벼리 씨가 고생이었겠어요. 저런 얼간이 부부 속에서.”
“하하, 알아주시니 고마워요. 내가 보기엔 민수 오빠가 아니라 명훈 오빠가 들어와서 뭔가 수사전담팀의 느낌인 거 같은데요. 명훈 오빠가 강력반 특수수사팀 전문이었잖아.”
“벼리야, 이 오빠가 계속 처음부터 지금까지 사건 좇은 걸 잊은 건 아니겠지? 이 오빠를 너무 물로 보면 안 된다.”
“우리 오빠는 물론 캡짱이야. 인정. 멋져. 오늘 여기 정리해 놓은 것만 봐도 얼마나 조사를 많이 했는지 알겠어. 든든해.”
“글치? 내 남편 민수 씨, 든든하지. 멋지다. 기사 쓰고 싶다니까.”
“또 시작이야? 그만 하고. 이제 사건에 대해 정리해 보자. 나 저녁 내내 가슴이 쫄아 들어서 혼났어. 무슨 일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민수가 프로파일링이 정리된 벽면 앞으로 갔다.
“사건이 복잡해서 상황판을 만들어 봤어. 프로파일링을 하려면 상황판을 만들어 놓고 전체적 그림을 보는 것이 중요하거든. 그래야 놓치는 것도 적고”
“이걸 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실종된 사람들 세 명이야. 모두 파리 그린섬에서 함께 지냈던 여성들이야. 모두 여성들만 실종되었어. 그래서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여성들이라고 할 수 있어.”
“여자들만 피해자가 된 이유가 있겠지?”
“어쩌면 그린섬에 남은 남자들이 가해자일 수 있다는 뜻일 수도 있어.”
연이가 던지듯 말했다.
“그렇게 오버하며 추측하는 것은 금물이야. 그린섬 남자들은 아직 의심을 살만한 증거가 하나도 없어. 대신 연관성은 있어.”
명훈이 주의를 주듯 말했다.
“실종된 사람들에 대한 간단히 정리를 해볼게. 현재 실종된 사람은 3명이야. 아까 말했지만 이건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실종자야. 실종자가 더 있을 수 있어.”
“일단 그린섬 멤버로 집중해봐야지.”
“서정민, 30세, 여, 파리의 그린섬에서는 제이라 불렸어. 그린섬 빌딩 최초 설계자인 서겸재의 딸이야. 문자로 어딘가 다녀오겠다고 엄마에게 문자를 남기고 실종되었어. 본인의 문자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어. 1차 실종 피해자야.”
“서정민이 실종되었을 때 그린섬 정원에 때죽나무가 심겼어.”
“박미화, 30세, 여, 라일라라고 불려. 인스타 스타로 2차 실종 피해자야. 인스타에 잠시 어딘가 다녀오겠다고 글을 남겼으나 이것 역시 본인이 올린 것인지 모를 의심 정황이 있어.”
“라일라가 실종되었을 때 그린섬 정원에 라일락나무가 심겼어. 라일라는 이영진 정신과전문의 여자친구였어. 이영진은 라일라가 잠시 어디 갔을 거라 보면서 크게 불안한 정황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고 있어.”
“정준희, 30세, 여, 랑데부 셰프야. 세 번째 실종자.”
“준희는 수국이 심겼어. 랑데부 대표인 정우를 좋아했는데 당시 정우는 준희를 파리에 보내려고 비행기 티켓을 구입해 줬어. 준희는 벼리와 연이도 만났는데 파리에 가지 않겠다는 의사표현을 정확히 한 적이 있어. 역시 랑데부 대표이면서 친구인 이정우도 준희를 걱정하지 않고 있어. 곧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종합적으로 정리하면 세 명의 여성 피해자가 있었고 이들은 모두 파리의 그린섬에서 같이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는 거야. 그리고 이들이 실종되고 그린섬 정원에 평소 피해자들이 언급했거나 피해자와 연관 있는 나무들이 하나씩 심겼어. 결국 피해자와 정원의 나무는 연관이 있어.”
“이 정도가 우리들이 알고 있는 피해자에 대한 간단한 정리야.
“대단하다. 간단히 정리가 되었어.”
“그리고 건물에 대한 이야기야. 우리들이 그린섬 지하에 다녀왔잖아.”
“대체 뭘 본 거야? 뭐가 있었어?”
“무서워. 뭐가 있었을지.”
“지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미리 그린섬 정원의 위성사진을 보여 줄게.”
위성사진으로 본 그린섬 정원은 펜트하우스에서 본 정원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펜트하우스에서 보면 정원의 달은 어떤 주술적 느낌이 있었는데 평면으로 보이는 위성사진 속의 연못을 그저 어떤 형태일 뿐이었다.
“위성사진은 특별할 게 없는데?”
민수는 정원에 있는 각각의 나무에 빨간 매직으로 동그라미를 쳤다.
동그라미가 4개였다.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나무들이야. 이걸 보면 피해자가 3명은 틀림없이 어떤 사고가 있어. 틀림없어. 그런데 여기 구골나무가 한 그루 있지? 미리 심겨져 있던 거야. 이건 뭘 의미할까? 이미 있었던 피해자? 앞으로 있을 피해자의 암시? 이 한 그루의 나무도 어떤 의미가 있을 거야.”
“구골나무는 재인의 어머니가 좋아했던 나무라고 했어.”
“아, 그럼 정리됐네. 모두 어떤 인물과 관련이 있는 나무라는 거. 구골나무는 재인 엄마의 나무라면 재인 엄마는 이미 사망했으니 정말 죽은 사람들의 나무들이 심겨져 있을 수 있어. 왜냐면 하나의 경우가 확실한 사망자를 나타내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럼 피해자는 사망했을 거란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아.”
민수는 위성사진에 다시 빨간 매직으로 두 군데에 동그라미를 쳤다.
“여길 봐. 여기가 정원에서 약간 이상한 부분이야.”
연못의 그림을 가리키며 민수가 말했다.
“이곳 연못은 그냥 일반 연못과는 좀 달라. 여기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뭔가 푸른빛이 보이지? 구름도 보여. 물론 연못에 담긴 물이라는 것이 하늘도 담고 구름도 담는 것이 당연하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는데 이걸 봐. 여기....”
민수가 가리킨 연못 안의 또 다른 동그라미 안에 뭔가 빛이 있었다.
“이건 낮에 촬영된 거야. 그런데 여길 봐. 뭔가 있지? 빛이 모여 있어. 조명시설일 수 있는데 지금 낮시간이라 다른 곳도 충분이 빛이 넘치는 시간이거든. 그런데 유독 여긴 빛이 모여 있어. 뭔가 어떤 장치가 있는 것 같아.”
“뭘까? 연못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르지. 그건 우리가 알아봐야 하겠지?”
“그리고 저긴 왜 동그라미를 쳤어?”
“연이가 그랬어. 그린섬에 자동차가 비밀스럽게 드나드는 통로가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교통 흐름과 함께 계속 주시해 봤어. 그랬는데 그린섬 빌딩의 건너편, 그러니까 정원을 담으로 하고 있는 도로 쪽을 봐.”
사진 상으론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일방통행로였다.
정원 쪽에서 그린섬 쪽으로 일방통행인 도로였다.
“이곳 도로는 일방통행로야. 차량이 지나가면 대부분 오른쪽 빌딩 주차장으로 빠져. 그런데 이곳. 이곳은 그린섬 정원이잖아. 건물이 아냐. 여기를 보면 차량이 진입할 곳이 없어. 봐, 없잖아? 그런데 만약 차들이 들어오는 비밀통로가 있다면 어디일까? 내가 자세히 봤는데 여기, 이 건물의 주차장으로 통하는 곳이 있어. 이 건물의 지하주차장으로 해서 그린섬 지하로 차가 진입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추측을 하고 있어.”
“그런데 지하주차장이 있는데 왜 굳이 다른 건물의 비밀통로를 이용한다는 거지?”
“좀 더 은밀하게 숨길 것이 있으니 그렇겠지?”
“비밀통로는 조금 더 알아보면 될 것 같고, 지하에선 뭘 발견했어? 어때? 그 이야기를 해줘야지.”
“지하에 가서 정말 너무 놀랐어.”
“일단 매우 세련된 공간이야. 신성성도 느껴지고 대단히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었어.”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니야, 이것도 매우 중요한 말이야. 지하는 매우 세련되고 신성스런 곳이야. 그리고 첨단장치들이 있었어.”
“어떤?”
“복도처럼 생긴 곳을 걸어갔는데 나중에 보니 그 벽면이 전체가 움직이는 거라든지?”
“벽이 움직였어? 벽 뒤에 뭔가 있었구나. 뭐가 있었어?”
“벽 뒤에 뭔가 있었어. 우리가 본 것은...”
“뭔데? 뭘 봤어?”
“벽이 전체가 다 올라갔어. 그리고 그 뒤로 전체에 유리벽이 있었어.”
“유리벽?”
“거대한 유리벽이었는데 몇 개의 칸이 있었어. 그 칸에는 각각 꽃들이 있었어.”
“꽃들?”
“꽃들이 각 칸마다 가득 채워 있었어.”
“꽃들이 있는 게 무슨 놀랄 일이야?”
“아니야. 특수한 유리상자에 꽃이 담겨있었어. 그리고 그 꽃은?”
“혹시, 때죽나무, 라일락, 수국?”
“맞아. 바로 그 꽃들이 유리상자를 가득 채우고 있었어. 그 꽃들은 살아있는 꽃들이었어. 아마도.”
“우리가 자세히 보지는 않았는데 꽃들은 생화였어. 아마도 드라이아이스로 냉동 보관한 것처럼 보였어.”
“그런데 꽃을 왜? 굳이 꽃을 왜?”
“아무리 생각해도 그 꽃 뒤에 뭔가 있는 것 같았어.”
“혹시 그 꽃들 뒤로 실종된 피해자가 있는 건 아니었을까?”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들이 놀란 거였어. 눈에 보였던 것은 거대한 꽃상자였는데 어쩐지 꽃들을 치우면 그 뒤로 피해자들이 누워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거든. 그래서 우린 그 광경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던 거지.”
“자세히 보고 오지.”
“어떻게 보고 와.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이 다시 벽을 내리고 올라갔는데.”
“사람들이 있었어?”
“아 맞아. 사람들이 있었어. 무슨 부장? 그리고 박 여사라고 하던데?”
“혹시 성 부장요?”
“성 부장이 있어?”
“재인 씨 일을 봐주는 사람이에요. 박 여사는 펜트하우스를 관리하는 분이에요.”
“그럼 확실해. 재인의 일을 봐주는 두 사람이 지하에 있었어. 그렇다면 재인이 이 일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확실해.”
“우리, 다시 그곳에 가봐야 해요. 어떻게 가죠? 같이 가 봐요. 확인해봐야겠어요. 꽃 뒤에 실종 피해자가 있는 것인지.”
“들은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추측해보면 그 유리 상자 칸막이는 시체가 안치된 칸일지 몰라요. 충분히 추측 가능해요.”
“무섭다. 이건 단순한 실종사건이 아냐. 조금 더 서둘러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민수와 명훈은 그린섬 지하로 연결되는 비밀통로를 알아보기로 했다.
연이는 김 교수와 사유를 인터뷰하면서 그린섬 멤버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벼리는 그린섬 정원에 가서 연못과 나무들의 비밀을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재인의 동선에 대해서도 알아보기로 했다.
벼리는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재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그린섬 건물의 제일 높은 층에 있었다.
이 건물의 지하엔 커다란 비밀이 있었다.
재인이 오지 않아서 재인의 방에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도심의 도로도 조금은 통행이 적어진 시간이었다.
특히 일방통행의 도로는 차량 통행이 거의 적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자동차 불빛이 지나는가 싶더니 연이어 자동차가 나타났다.
그 불빛들은 그린섬 반대편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빌딩은 아직 건축이 다 끝나지 않은 공사 중 건물이었다.
민수가 자동차가 들어갔을 만한 건물이라고 말한 곳이었다.
아직 공사 중인 곳이라서 차들이 들어갈 이유가 없는 건물이었다.
차량 여러 대의 불빛이 줄줄이 이어서 그 빌딩으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그린섬 멤버들이 밤에 회합을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들은 회합이 있을 때 그린섬 주차장을 이용했다.
저렇게 비밀스런 곳으로 드나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다.
벼리는 오래도록 정원 쪽을 보고 있었다.
불빛은 건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벼리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 있다 잠든 것이었다.
새벽이었다.
깜짝 놀라 일어나 재인의 방으로 갔다.
정원 쪽을 바라봤다.
새로운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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