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4. 06일 금요일 유학생활 열 번째날
2012. 04. 06일 금요일 유학생활 열 번째날
신입생 세미나9시 30분에 학교로 집합이기에 일찍일어나야했지만 너무나도 귀찮았다. 주말까지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여야한다는 귀찮음이 기상의 귀찮음으로 까지 이어졌다. 게다가 숙소배정표를 보니 희애나 은아, 혜연이 유선이 명인이 같은 경우엔 한국코스를 배우고있는 일본 학생들과 같은 방이라 밤새 재미있는 이야기꽃을 피울것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반면 나는 룸메 철이와 남자교직원 한 명이 끝이었다. 남자교직원은 일을 위해 숙소에서 거의 쉬지 않을것이므로 나랑 철이 단 둘이 쓰는거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코스의 일본인들은 한 명 빼고 죄다 여자라서 그런것인데 그 한 명의 남학생이라도 우리 방에 넣어줬으면 얼마나 좋은가. 기상의 귀찮음을 부르는 또 하나의 녀석은 바로 차가운 물 이었다. 오늘 아침만 저 차가운 물을 참으며 씻으면 돌아왔을때는 고쳐져 있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정해놓은 기상데드라인까지 그냥 누워있었다. 일어나서 차가운 물로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감았다. 제발 내일 돌아올땐 급탕기가 고쳐져있길.
집합장소인 도서관에 도착해서 교직원들의 일장연설을 들으며 출발했다. 버스6대가 출발하는데 국제교류학과3대, 국제문화학과 3대. 이렇게 있었다. 버스좌석관계상 유학생들은 국제교류학과 버스에 타라고 한다. 뭐? 우린 국제문화학과인데??? 이때까지는 그냥 버스만 따로 타는줄 알았다. 견학장소나 이런데에선 우리 소속인 문화학과랑 같이 행동하리라 생각했다.
버스에 탑승해서 앉아 있는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일본인남학생 무리가 들어왔다. 저녀석들은 뭐지? 하는 행동을 볼 때 흔히 말하는 나대는 애들처럼 보였다. 그걸 표시하듯 초,중,고딩 수학여행 일진자리라는 맨 뒤에 자리잡고 앉아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어디서 났는지 심지어 휴대용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게 시작했다. 고등학교 이후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어린이들의 허세였다. 짜증난다기보다 그냥 하는짓이 가소로웠다. 결국 교수님의 저지를 받고 마이크를 집어넣었다. 이제 카모가와로 출발이다.
혜연이, 유선이, 희애, 은아는 그 나대는 녀석들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한국인이 신기했는지 많은 관심을 보였다. 혹시라도 이상한 말이나 짓거리를 하면 바로 다가가서 응징해줄 준비를 했는데 대화내용을 들어보니 어디까지나 순수하게 호기심 가득한 질문이었다. 한국을 꼭 한번 가보고싶다 또는 한국어는 참으로 멋있게 들린다. 또 아는 한국어를 최대한 발휘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버스안은 이 나대는 녀석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두 시간 정도 달려 카모가와 캠퍼스에 도착했다. 빈 자리에 대충 찾아앉으라길래 마침 미야노의 옆이 비어 그쪽에 앉았다. 밥은 도시락을 주었다. 생선이 너무 맛있어서 철이꺼 까지 먹었다. 일본의 생선요리는 정말 맛있다. 은혜가 방사능 묻어있을테니 생선만큼은 그렇게 먹지 말라고 했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다시 신입생들을 위한 웹이수인가 뭔가를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또 오리엔테이션이다. 물론 나랑은 관계없는 이야기다. 이럴거면 일주일동안 오리엔테이션은 왜 그리 많이했나 싶다.
각자의 명찰을 만들어서 달게 하고 본격적인 일정을 위해 버스에 올라야하는데, 나의 버스는 우리 과 버스가 아닌 국제교류학과의 버스이기 때문에 따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있는 국제교류학과 쪽이 끝나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게 뭔 개경우인가. 결국 국제문화학과, 즉 우리과 버스는 떠나서 따로 일정을 치르고 우린 국제교류학과랑 같이 행동을 하는 꼴이 되었다. 이래선 언제 같은 과 일본인 친구를 사귄단말인가. 뭐 서두를 필욘 없지만 이런식으로 분리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간다고 간 곳이 조사이대학의 설립자라는 미즈타미키오의 생가이다. 대단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문화재로 지정될일은 없겠지만 그래도그렇지 설립자의 생가를 내가 왜 보고 있나. 그렇게 생각하며 투덜투덜 걷고 있는데 옛날 일본의 집이 그대로 보존되있는 것을 실제로 보자 아까의 불만은 사라지고 여기저기 구석구석 보고싶었다. 재건축하지 않은, 옛날에 짓고 지금까지 그대로 살아있는 집이라고 한다. 들어가는게 허용된다고 하니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일본사극에서나 보던 그런 집이었다. 아키바 교수님에게 물어봤다.
“여기가 미즈타선생님이 유소년 시절을 보냈던 집이라고 했죠, 그 분이 유소년이면 언제일까요”
“음, 지금 살아계신다면 120세 정도일거니까, 메이지시대가 끝날 쯤 정도겠네”
“그럼 1910년정도란 말씀이시네요”
문화재 안으론 좀처럼 들어올 수 없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기분이었다.
미즈타미키오 생가 견학을 끝내고 드디어 숙소를 들어가게되었다. 키치무호텔이라는 곳으로, 방에 들어가자마자 깜짝놀랐다. 일본전통식으로 되어있었고 바다가 보이는 굉장한곳이었다. 같은 방을 쓰게 된 이하시센세가 차를 끓여주었고 나랑 철이는 전통일본식 방에서 차를 들며 사진을 찍었다. 놀라긴 아직 일렀다. 저녁식사를 하라고 3층에 올라갔더니 엄청 넓은 방에 한 사람씩 상을 차려놨는데 굉장한 반찬수와 음식들에 경악을 금치못했다. 학교가 돈좀 썼구나. 기모노를 차려입은 직원들이 정중하게 갓 튀긴 튀김들을 각자의 상에 올려놓아주었다. 몇가지는 먹는 방법을 몰라서 해맸는데 마침 내 옆에 일본인 센세가 계셔서 물어보며 먹었다. 아마 귀여워보였을 것이다.
우리과와의 교류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나도 당황스러울 정도의 급전개에다 대환영이었다. 갑자기 한 명의 여성이 나한테 달라붙더니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했다. 좋다고 했더니 지는 더 좋아서 죽을라고 한다. 그걸 시작으로 다섯명 정도의 여학생들이 너도나도 사진을 찍자고 했고 번호교환까지 바쁘게 해댔다. 이 무슨 인기란 말인가. 물론 그냥 한국남자가 신기해서 그런것이란걸 알지만 난데없는 이성의 관심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내가 잘생겼다란다. 엄마나 아줌마들을 제외하곤 여학생에겐 거의 처음듣는 신선한 말이었다. 샤이니의 민호를 닮았대나? 차가운 내 동생도 내가 살쪘을 때 오빠는 살 빼면 샤이니에 민호를 닮았을것같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어서 나름 신빙성이 가는 칭찬이었다.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는게 그렇게 좋은지 마치 연예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래 나도 너희들이 좋다. 으허허허 특히 토모미라는 아이는 글자 그대로 대놓고 들이댔는데 살을 조금만 빼면 상당히 귀여운스타일이 될 것 같았다. 난 올해 왜 이리 살찐애들이 대시해 오는건지 모르겠다. 유선이랑 혜연이가
“와 ~ 오빠 인기 많네요! 살 빼고 진짜 멋있어요~” 하며 놀림조로 지나갔다.
한가지 놀라운건 얘들이 모두 자기들이 지은 한국이름을 가지고 있고 한국 그 자체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난 일본어가 그저 재미있고 어디까지 취직을 하는데 있어 최대의 무기로 삼을 생각인 걸 생각하면 이 일본학생들과는 참 대조적이다. 바꿔말해 내가 일본식이름으로 멋대로 이름을 짓고 ‘나카무라라고 불러주세요’라면 어떨까?? 국내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난 그대로 국가의 적 취급을 받을 것이다. 참 순수하게 우리나라를 좋아해 주는 일본인이 이렇게 있다는게 고맙기도 하고 앞으로의 생활이 더욱 기대되게 만들었다.
일본인 학생들은 불쌍하게도 시간표를 짜는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고 유학생들은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나랑 철이랑 타이완 유학생 세이우는 9층의 호텔목욕실에가서 목욕을 즐기고 일본식 가운을 걸쳤다. 이 옷을 걸치니 제법 일본 고급 호텔에 온 기분이 났다.
문제는 그 다음에 할 것이 없었다. 아까도 썼듯이 여자애들은 한국코스 애들과 한 방이므로 수다를 떨거나 친구를 사귀거나 할텐데 지금 방엔 나랑 철이 둘 뿐이다. 철이는 내가 인기가 많은게 참으로 뿌듯했다니, 그 중에서 아스카가 제일 이뻤다느니, 코즈에가 이뻤다드니 수다를 떨 수 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지루해서 그냥 자기로 결정했다. 시각은 10시. 다른 애들은 한창 재밌게 놀 시간이었다. 철이는 이미 자고있었고 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자지못하는 습관 때문에 늘 하던대로 텔레비전을 틀고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억지로라도 잠을 자기로 결정하여 누웠다. 오늘 사귄 일본인 친구들을 생각하니 그래도 기분좋게 잠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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