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4. 14일 토요일 유학생활 열 여덟 번째날
2012. 04. 14일 토요일 유학생활 열 여덟 번째날
광표는 교환학생이 아니라 ‘프로젝트 연구’라는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하는데 그거에 관한 서류를 내러 가야한다고 했다. 토요일인데 불쌍하다. 그래서 나보고 같이 가주지 않겠느냐고 부탁을 했다. 토요일이지만 나는 보통 일찍일어나는 편이고,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알았다고 했었지만, 막상 오늘 아침이 되니 여간 귀찮지가 않았다. 일어나보니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 도쿄로 놀러가지도 않았다. 일본의 일기예보는 정말 정확하다. 비가 온다고 하면 반드시 비가 왔다. 한국에서는 비가 온다고 해도 그냥 무시하고 나갔었는데, 여기서 그러면 큰일난다. 아무튼 비가 내리기에 자전거로 학교까지 갈 수는 없겠구나,,,광표는 학교를 굳이 갈까? 알게뭐냐, 때되면 전화오겠지. 라고 생각하며 광표의 전화가 올 때 까지 더 자기로 했다. 좀 더 자다보니 역시 광표의 전화가 왔다. 비가 오기에 자전거로 갈 수없어서 지금 혼자 학교로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딱하긴 했지만 덕분에 난 푹 더 잤다. 완전히 일어난건 10시 쯤이었는데 철이는 아직 자고있을터이기에 휴대폰 DMB로 TV를 틀었다.
아니라는 뮤지컬 주인공을 따기 위해 연습하고 있는 여러 소녀들을 취재한 방송을 하고 있었다. 겨우 10살 정도의 어린 아이들인데 꿈을 위해서 매일 연습하고, 또 떨어진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난 무엇을 목표로 하고 살고있는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철이가 일어나서 같이 밥을 먹고 계속 텔레비전을 보았다. 밖에는 계속 비가 내렸고 굳이 어딜 나갈 이유가 없었다. 이것저것 계속 텔레비전만 봤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지쳐버려서 피곤해졌다. 낮잠을 자기 위해 누웠다. 잠은 금방 왔고 몇시간이나 잤을까, 카카오톡 알림소리에 깼다. 토모미였다. 아르바이트가 잠깐 쉬는 중이라고 했다. 나도 텔레비전 보는거 잠깐 쉬는 중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또 텔레비전을 돌려보다가, 영어공부를 했다. 사람이 할게없으니 살짝 미치는가보다. 내가 영어공부라니, 그런데 일본에 와서 좋은점은 영어공부에도 있었다. 한국에선 다 영어를 잘하고 내가 못해서 짜증났는데, 여기선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못한 사람도 꽤 있는 것 같았다. 고만고만하니 공부하는것도 재미있었다. 어쩌면 이번기회에 영어에 대한 증오를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꾸준히 조금씩 하면 극복할 수 있겠지.
텔레비전만 보다보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역시나 반찬은 언제나 똑같이 고추장, 김, 김치이다. 단백질이 너무 없어서 지난번에 사온 두부 역시 꾸준히 뜯어서 먹고 있다.
이 와중에 명인이가 자기네들은 피자를 먹는다고 사진을 보내왔다. 제기랄 너무 부러웠다. 요새 자꾸 피자나 치킨이 땡긴다. 치킨이야 학교식당의 카라아게로 대체할 수 있지만 피자가 너무나도 먹고싶다. 난 피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밤 늦은 시간인데 누군가 띵동띵동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뭐지? 아무나 함부로 문을 열어주어서는 안된다. 모니터로 보니 그냥 꺼먼 화면만 보일뿐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척을 하려 했으나 불이 다 켜져있고 텔레비전 소리가 나니 하나마나였으므로 일부러 한국어로 ‘누구세요’라고 물어봤다. 그러나 대답이 없었다. 당연히 문은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바로 내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예상은 했지만 명인이랑 지은이였다.
“뭐냐, 니네 누구냐고 물어봤는데 왜 대답도 안해”
“어? 안들렸는데, 우린 초인종 눌러도 답 없길래 너네 없는줄 알았어”
얘들도 오늘 하루종일 그냥 심심하게 지냈다고 한다. 원래는 치바역에 가기로 했으나 비가 오는 관계로 그마저도 취소했다고 한다. 우리집에 온 이유는 내일도 일요일이라 할게 없는데 과연 무엇을 하며 지낼지 같이 상의하러 왔다고 한다. 환영이다. 그냥 일요일도 이런데 골든위크때는 정말 미쳐버리는게 아닌가 싶다. 토가네 안내책자 등을 봐도 딱히 답이 안나왔는데 회전스시집을 가기로했다. 조금 비싸도 일본에 왔으니 가기로 했다. 내가 아낀다는건 군것질거리나 이런거지 스시는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니 아깝지 않다. 스시를 먹은다음이 뭘 할지 문제였지만 일단 스시를 먹는다는 스케쥴이 생긴게 어디인가. 이렇게 휴일에 할게 없어서 힘들어하지만 또 월요일이 되면 학교 가기가 귀찮아지겠지?
여느때처럼 막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쩌다 철이의 여자친구 얘기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되었고 이는 꽤나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철이는 보람이랑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사귀고 있는데 보람이는 철이가 군대를 가도 제대 할 때 까지 기다렸고, 철이는 제대를 하고 단 한학기만 같이 보람이랑 지낸뒤 다시 유학으로 또 떨어져버린 것이다. 군대도 기다려주고 유학까지 기다리는 여자가 있다니 철이는 참 행복하겠다. 하지만 철이는 이미 예전의 마음만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았고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도 않는다 했다. 군대에 유학까지 기다렸으니 헤어진다면 철이가 나쁜놈이 되지만, 헤어져야한다면 올해를 넘기지 말아야한다. 어차피 헤어질건데 유학까지 다 기다려버리게 만들면 너는 희대의 나쁜놈이 되고 보람이의 상처를 이루 말할 수가 없어진다. 너에게는 지금 프로포즈냐, 이별이냐 두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철이의 휴대폰이 울렸고 보람이의 카카오톡이 와 있었다. 차가운 표정의 그림과 ‘...’이라는 문자가 찍혀있었다. 우리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에 이런 문자가 오니 모두 놀랄 수 밖에없었다. 혹시 듣고있나? 소름이 돋았다. 철이도 놀라서 스카이프가 연결되있나를 확인했다. 알고보니 철이가 전화를 너무 안받아서 그런걸 보낸거였는데 타이밍이 너무 끝내줬다.
새벽 1시 가까이가 돼서야 명인이랑 지은이는 돌아갔다.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데 철이는 보람이의 문제로 생각이 많은 듯 했다. 더 이상은 내가 무슨말을 하겠나, 알아서 헤어지겠지. 철이는 이제부터 솔로로 간주하겠다.
오늘의 지출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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