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원 삼총사
한스 파이퍼는 SS 본부로 들어갔다. 본부 마당에는 붉은색 바탕의 검정색 하겐크로이츠가 그려진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치당의 세력이 너무 커지는 것은 좋지 않다...'
비록 한스 또한 히틀러에 충성했지만 전쟁은 군인들의 몫이라는 것이 한스 파이퍼의 확고한 생각이었다. SS 본부 건물에 들어가자 히틀러의 초상화와 빌헬름 3세의 초상화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병사들은 한스 파이퍼를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경례했다. 한스가 원수봉을 살짝 까딱이며 말했다.
"쉬게."
국방군 장성으로서 한스는 검정색 제복을 입은 보초병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되느니 차라리 나치당의 지지율이 적당히 떨어지고 황권이 강화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세계대전까지만 해도 황권이 강했으니 이렇게 정치인들의 입김이 세지 않았었고 전쟁 영웅이 추앙받았다!'
지금 히틀러는 SS 간부들과 함께 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스는 한시가 급했기에 회의장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SS 장교 한 명이 하얀 이빨이 보이도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만 대기해주십시오. 오시느라 목이 마르지는 않으셨습니까! 마침 맛좋은 프랑스산 와인이 있습니다!"
사무적인 친절을 보였지만 이는 대놓고 한스 파이퍼에 대한 무시였다. 한스가 말했다.
"커피로 하지."
'왜 청색 작전이 안되는지 설명해야하는데 절대 흥분하면 안된다...'
그렇게 한스는 다과실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대기했다. 잠시 뒤, 장교가 와서 한스를 안내했다.
"따라오십시오."
한스는 장교를 따라 히틀러의 방으로 들어갔다. 히틀러는 집무실에서 자신의 애완견인 셰퍼드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리고 히틀러 옆자리에는 힘러가 앉아 있었다. 한스는 속으로 힘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군사적인 것은 기본도 모르는 얼간이 녀석...'
힘러가 군 사령관 자리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한스는 알고 있었다. 한스는 태연한척 히틀러 앞에서 원수봉을 들어올리며 경례를 했다. 힘러가 말했다.
"편하게 대화 나누시도록 저는 잠시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힘러는 목인사를 하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도저히 힘러 저 새끼가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한스로서는 알 수 없었다.
'힘러는 사령관 자리에 욕심이 있지만 군사쪽은 문외한이다...저런 녀석은 사령관 자리를 꿰차기 위하여 무조건 옳다고만 하겠지. 히틀러에게 필요한 것은 나처럼 전술을 잘 아는 충신이다!'
쭈뼛거리는 한스에게 히틀러가 입을 열었다.
"여기 앉게!"
히틀러가 전우라고 부르자 한스는 안심하며 자리에 앉았다.
"식사는 했나?"
"다과실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히틀러가 웃으며 말했다.
"편히 말하게. 전우여. 현재 4군 상황은 어떠한가?"
히틀러가 이야기하자 한스는 편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술적 후퇴를 하며 놈들의 기갑 부대를 격파하기 좋은 위치까지 끌어들이는 작전은 잘 수행되고 있네. 병력과 중장비도 거의 보존하는데 성공했어."
"육군참모총장보다 야전 사령관직을 좋아한다는 말이 있던다 그 이야기가 맞군!"
그 말에 한스는 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아하하!! 아하하하!!!"
"농담일세. 자네에겐 더 큰 자리가 맞지. 그건 그렇고 고작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최전선에서 여기까지 왔는가?"
평소 한스 성격대로라면 절대로 최전선을 냅두고 본토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 이었다. 한스는 쭈뼛쭈뼛하다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보게 아돌프. 지금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기회는 딱 두 번 주어지네. 첫번째는 올해 1940년 첫 모스크바 공세였고 실패로 돌아갔네. 그리고 마지막 기회가 내년 두번째 공세일세. 이 기회를 놓치면 독일 제국은 소련군의 역습을 막아낼 수 없네."
히틀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한스는 모형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물론 내년 총공세때 소련군은 우리가 모스크바를 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걸세. 하지만 세계대전때 파리 공세를 떠올리게! 모든 전력을 총동원해서 전격전으로 모스크바를 점령하는 것, 이게 유일하게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이네. 물론 캅카스를 노림으로서 소련의 석유 자원을 빼앗는 것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네. 소련 또한 이를 예상하지 못할테니 모스크바 공세를 하는 것 보다는 우리 쪽에 수월하겠지. 하지만"
한스는 모형 지도에서 독일군을 상징하는 깃발들을 움직이고 소련군을 상징하는 깃발로 포위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처음에야 놈들도 당황하겠지만, 우리 쪽 목표가 카프카스라는 것을 눈치챌걸세. 이 곳 스탈린그라드를 보게. 여기가 볼가강일세! 내가 주코프라면 기다렸다가 여기서 포위망을 형성할걸세. 하나의 군 전체가 녹아내릴 수 있는 포위망을 말일세!"
한스는 기왕에 우크라이나에 관련된 것까지 말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보게 아돌프. 석유 자원을 얻기 위해서 캅카스까지 진격하는 것 보다는 외교를 통해서 전략 물자를 얻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네. 지금 우크라이나와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네. 하지만 현재 동맹국들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하네. 난 매일마다 최전선을 시찰하고 통역사를 대동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네. 그들은 자신의 국가를 갖고 언어를 쓰는 것을 원하고 있네. 절대 가만히 앉아서 합병을 당하지는 않을걸세."
히틀러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한스는 기왕에 자신의 모든 생각을 다 말하기로 했다.
"흑해 재해권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를 독일 제국으로서는 언젠가 수복해야 할 영토로 보는 것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난 군사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네. 그냥 우크라이나를 친독 자립국으로 두는 것이 더 효용성있다고 생각하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전쟁 명분도 서지 않네!"
"계속해보게."
한스는 모형 지도를 보며 내년 모스크바 공세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을 히틀러에게 장광설로 늘어놓았다. 히틀러가 물었다.
"원하는게 뭔가?"
"청색 작전을 취소하고 내년에 모스크바로 모든 전력을 집중하게! 역사에 남을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머쥐게 될 것을 내 약속하네!"
한스는 히틀러의 집무실에 있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초상화를 보고는 말했다.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가 거두었던 그런 승리를 거머쥐게 될걸세. 나폴레옹조차 결국에는 패배했지만 말일세! 향후 인류는 계속해서 내가 썼던 전술을 연구하겠지!"
"한스 자네는 역사에 남을 위대한 전투를 하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군."
"난 천직이 군인이라 어쩔 수 없네. 내게 육군 참모 총장직을 다시 주게."
속마음 같아서는 제국 원수직도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건 명분이 서지 않았기에 일단 육군 참모 총장 자리부터 달라고 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
한스가 이등병이던 시절 아돌프 히틀러는 찌질했던 한스에게 화술에 대한 조언을 해준적이 있었다. 때로는 열 마디 말보다 침묵이 더 효과적이라는 그 조언은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불편한 정적이 흐르고 히틀러는 모형지도가 있는 커다란 테이블 위에 놓은 4군을 상징하는 깃발을 손으로 집으며 말했다.
"자네에겐 이게 체스말이군."
'???'
히틀러는 연설할때와 같은 고음이 아니라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귀관의 의견은 참고하겠네. 그만 나가보게."
한스는 쫄았지만 여기서 잠자코 물러나지는 않기로 했다.
'군사적인 것은 내가 더 잘 안다!!'
"만약 청색작전이 그대로 진행된다면 나는 모든 직에서 물러나겠네."
"파이퍼, 나는 부탁하는게 아닐세."
'!!!'
한스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르는 상태로 집무실 밖으로 나왔다. 프란츠가 한스를 따라왔고 응접실에는 힘러가 앉아 있었다. SS 본부 밖으로 나가는데 다시 히틀러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왔다.
한스는 SS 본부 앞마당을 따라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프란츠가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 소득이 없으셨나보군.'
마당에서는 붉은색 하겐크로이츠 깃발이 겨울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한스가 하겐크로이츠 깃발을 보고 코웃음쳤다.
"풉!"
한스는 차량에 탑승했고 프란츠가 운전대를 잡았다. 한스가 입을 열었다.
"이보게 프란츠. 자네는 나치당 당원이 아니지?"
"그렇습니다."
프란츠는 그 어느 정당의 당원도 아니었다. 프란츠는 몰랐겠지만 그것 또한 한스가 프란츠를 부관으로 뽑은 이유 중에 하나였다.
"국가 사회주의, 황실, 나치당...인간은 나약하고 그 신념 또한 어리석어서 충성할 대상이 못되지."
프란츠는 식은 땀을 흘리며 한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나는 황실에게도 히틀러에게도 충성하지 않네. 제 아무리 뛰어난 정치인이라 한들 어차피 역사의 파도 속에서 넘실거리는 나룻배에 지나지 않아. 내가 믿는 것은 전쟁의 신 오딘뿐이네."
잠시 뒤 공중전화 박스 옆에 차량이 정차했다. 한스는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1940년 12월 영국에는 토마스, 헤르만, 페터라는 독일인들이 살고 있었고, 이들은 한스 파이퍼쪽 줄을 타고 있는 폴프 장군에게 받은 무전을 해독했다.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이 자에 대해 조사하라는거지?"
"신학자인데 이 자가 영국 쪽에 우리 쪽 정보를 넘겼다는건가?"
토마스, 헤르만, 페터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생긴거만 봐도 뭔가 잘 싸울 것 같지도 않았고 상당히 쉬운 타겟 같았다.
"일단 주소는 알고 있으니 녀석의 동선부터 조사하지."
토마스는 대머리처럼 보이는 가발을 쓰고는 코 밑에 수염을 붙였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동선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일주일 정도는 미행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번 미행마다 다른 사람으로 보이게끔 분장을 해야 할 것 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토마스 일행은 디트리히 본회퍼가 하숙집을 나오는 것을 확인했다. 대머리 가발을 쓴 토마스는 자전거를 타고 은밀하게 디트리히 본회퍼를 추적했다.
'...'
근데 디트리히 본회퍼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길거리 상점 유리창을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토마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유리창에 사람이 비치는 것을 이용해서 미행이 붙는지 확인하는군!'
토마스는 일부러 디트리히 본회퍼를 앞질러서 자전거를 운전했다.
'미행에 서투른 녀석들은 타겟의 뒤를 쫓아가지! 하지만 나처럼 먼저 자전거를 타고 앞서나가면서 타겟이 내 뒤를 따라오게 하면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지!'
토마스는 디트리히 본회퍼보다 7~8m 정도 앞서서 자전거를 운전했다. 그리고 사거리가 나오자 토마스는 일부러 자전거를 멈추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는척 하면서 미적거렸다. 그런데 한창을 미적거려도 디트리히 본회퍼는 보이지 않았다.
'어...어떻게 된거지?'
토마스는 자전거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디트리히 본회퍼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 새끼 튀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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