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펠 블리츠
다시 1940년 10월 모스크바로 돌아가자. 독일군은 어린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민간인들과 의료진들을 안전하게 소련군의 진영으로 옮기기 위하여 소련군과 잠시 교전을 중지하기로 협의했다.
집행유예 부대원 하이에가 오펠 블리츠 트럭에 민간인들을 태우고 소련군의 진영으로 가기로 했다. 물론 독일군 소련군 양 측에서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여 저격수와 기관총 사수들이 각자 자리를 잡고 예의 주시한다.
블라슈크 또한 각 저격수에게 말했다.
"명령 전까지는 절대로 사격하지 말게!!"
지난 번에도 이런 방법으로 민간인을 포격 지점으로부터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었고 혹여나 돌발적으로 사격이 시작되는 일만은 막아야 했다. 저격수들은 다들 평소때보다 긴장했다.
'이번에도 민간인 대피시키는거 맞겠지?'
'파시스트는 믿을 수 없다!'
'이거 한 번 사격 시작되면 난리날텐데...일단 조심하자...'
나타샤 또한 모래주머니를 쌓아 놓은 건물 창가에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나타샤는 반대편 건물 여기저기를 조준해보았다. 반대편 건물에 어두컴컴한 창가 어디 독일군이 자리 잡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 때, 멀리 보이는 골목에 독일군의 오펠 블리츠 트럭이 진입하는 광경이 보였다. 오펠 블리츠 트럭 측면에는 커다란 붉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었고, 뒷부분의 차체는 목재로 만들어져 있었다.
오펠 블리츠 트럭에는 커다란 흰 깃발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트럭이 오는 길목 저쪽 구석에는 독일군 한 명이 엎드린 채로 머리를 내밀어 정찰하고 있었다. 나타샤는 총을 발사할 생각은 없었지만 호기심에 그 독일군의 머리를 조준해보았다. 여태까지 나타샤는 단 한번도 사람을 사살해 본 적이 없었다.
'빵야!!'
독일군은 땅바닥에 엎드린 상태로 계속해서 골목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다. 실전에서 독일군은 재빠르게 자리를 이동하기 때문에 이렇게 제대로 저격하기 좋은 기회는 거의 없다. 나타샤는 자신이 파블리첸코나 바실리 자이체프라고 상상하며 방아쇠를 살짝 건드렸다.
'빵야!!'
나타샤는 보다 대범하게 맞은편 건물을 스코프로 훑기 시작했다. 그 때, 한 독일군이 창가에서 거울을 통해서 이 쪽을 정찰하고 있었고, 거울에서 반사된 빛이 나타샤의 눈을 부시게 했다.
'어머!'
나타샤는 실수로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
쉬잇!! 탁!!!
나타샤가 실수로 발사한 총알은 독일군이 있는 건물의 외벽에 박혔다.
"저격이다!!!"
독일군 소련군 양 측에서 누구 할 것 없이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타앙! 탕! 쉬잇!!
드르륵 드르르륵
하이에는 좁은 길목을 통하여 오펠 블리츠를 운전하고 있었기에 후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하이에는 재빨리 사거리에서 오펠 블리츠를 우회전했다.
'으아악!!!'
오펠 블리츠 뒷칸에는 많은 어린 아이들과 의료진이 타고 있었다. 이들의 고함 소리가 하이에의 귀에 들려왔다.
"으아악!! 살려줘!!!"
"나 맞았어!! 맞았어!!"
"으아앙!!으아앙!!!"
"꺄아악!!!"
계속해서 총알은 오펠 블리츠의 뒷칸으로 날아왔다.
탕! 타앙! 탕! 타앙!!
오펠 블리츠의 뒷칸은 목재로 만들어졌고, 총알은 손쉽게 이를 관통했다. 여기저기 생긴 총알 자국으로 햇살이 들어왔고, 어린이 병원에서 근무하던 의사는 그야말로 지옥도로 변해버린 이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으아아아악!!!!!!!!!!"
오펠 블리츠 트럭의 뒷칸은 사방에 피로 뒤범벅이 된 상태였다. 한 꼬맹이는 배에 총알을 맞고는 얼마 전에 기껏 치료를 받았던 복부의 내장이 다 헤집혔다. 오펠 블리츠 트럭이 급하게 회전하느라 러시아인 의사는 그만 넘어지고 안경이 떨어져서 박살이 났다.
끼이이익!!!
포격으로 다리를 잃어버려서 구석에 누워있던 꼬맹이의 얼굴이 짓밟혔다. 여태까지 수 많은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조차 이런건 처음 목격했다.
한편, 소련군이 점거한 건물에서 블라슈크가 외쳤다.
"뭐야!!! 왜 쏜 거야!!"
블라슈크는 페리스코프를 이용하여 주위를 정찰했다. 독일군이 점령한 건물의 창문 여기저기서 기관총과 저격총이 불꽃을 뿜고 있었다. 양쪽에서 총을 발사했기에 이미 연기로 사방이 뿌옇게 보이는 상황이었다. 블라슈크가 울부짖었다.
"안돼!!!"
하지만 블라슈크가 외치는 소리는 총 소리에 묻혀서 전혀 들리지 않았다. 안나 등 신참 저격수들은 모두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제대로 조준도 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총을 발사하고 있었다. 나타샤 또한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뿌연 연기 속에서 간헐적으로 보이는 발사광을 향해 총을 발사했다.
골목 쪽에 숨어있던 독일군들은 오펠 블리츠가 무사히 복귀할 수 있도록 연막탄을 던져주었다. 후퇴하는 오펠 블리츠 트럭이 연막 속에 휩쌓였다.
총격 속에서 블라슈크가 외쳤다.
"저 트럭으로 쏘지마!! 저 트럭으로 쏘지 마!!!"
하지만 양측의 저격수와 기관총 사수들은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탕! 타앙! 탕! 탕!!!
그리고 이 순간 루크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우하하하!!!! 아하하하하!!! 내가 못 쏘는게 아쉽군!!"
잠시 뒤, 하이에는 독일군이 점령한 지역으로 돌아온 다음 트럭에서 내린 다음 재빨리 트럭 뒤로 달려갔다. 시뻘건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트럭 차체에는 이미 여기저기 총알 자국이 난 상태였다. 하이에는 오펠 블리츠 트럭의 뒷문을 열어보았다.
'!!!'
집행유예 부대 헤어만 중대장이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빌어먹을!!! 그 망할 로스케 놈들 때문에 내 진급이 날아갔어!!"
헤어만 중대장은 펄펄 뛰기 시작했다.
"민사 작전을 하면 뭘하나!! 이 벌레 같은 로스케 새끼들!!! 이 새끼들은 지들 민족의 목숨도 파리처럼 여기는군!!!"
하이에는 헤어만 중대장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내려치고 싶었다. 위생 소대가 와서 오펠 블리츠 트럭 안에 생존자를 치료해주기 시작했다. 헤어만 중대장이 외쳤다.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나? 지금 이 친구는 어떤가?"
하지만 위생병이 말했다.
"푸...이건 두 시간도 못 살 것 같습니다. 장기가 다 엉망이 되었습니다."
헤어만 중대장은 욕설을 퍼부으며 오펠 블리츠 차체 내부를 바라보았다. 여기저기 총알 자국에 피가 튀기고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루크는 좋다고 달려와서 이 광경을 보고 외쳤다.
"정말 멋지군!!"
오토 또한 동료들과 함께 이 광경을 구경했다. 볼프강이 말했다.
"로스케 저 잔인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애초에 이런 민사 작전을 왜 한 거야?"
"자기쪽 민간인을 사살할거라고 누가 상상했겠냐?"
우크라이나 군 녀석들이 와서 이 광경을 보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내가 그랬잖아! 러시아 이 새끼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독일군은 우크라이나 출신들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군은 자신들의 말을 입증되자 무척이나 기뻐했다. 한 우크라이나의 베테랑 저격수는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의 시체를 보고는 말했다.
"꼴 좋군!"
오토와 전차병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 게오르크가 말했다.
"도...도대체 소련 놈들이 어떤 짓거리를 했기에 저렇게까지 증오하는거지?"
헬무트가 말했다.
"우리야 알 수 없지."
전쟁에서 느낀 것은 우크라이나군은 정말 투지가 강한 전사들이었고 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이들과 함께 싸울수록 슬라브인에 대한 인종차별 의식은 없어졌다. 하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군과 이야기를 할수록 러시아인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감은 점점 커져갔다. 오토 또한 오펠 블리츠 안에서 총을 맞고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보고도 벌레가 으깨진 것을 보는 듯한 감정이 들었다.
SS와 SD가 전선에서 전쟁 범죄를 단속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군, 벨라루스 군은 소련군과 파르티잔의 거시기를 절단하는 등 잔혹 행위를 저지르고 있었다. 여성 파르티잔의 경우는 산채로 배를 가르기도 했다.
독일군은 우크라이나 녀석들이 저러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를 눈 감아주고 있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파르티잔은 같은 슬라브인들이 처리하도록 두는 것이 맞는 것 같군...'
오토는 동료들과 함께 중대 대피소로 돌아와서는 전선 신문을 읽었다. 프랑스와 불가침 조약에 체결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다행이군...'
한편, 소련군 진영 쪽에서 저격수들은 도대체 누가 먼저 왜 쏘았는지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안나가 말했다.
"난 아냐! 크세니야 너야?"
"나도 아냐!"
나타샤도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아냐! 난 다들 쏘니까 그 다음에 쐈어!"
"독일군이 먼저 쏜거 아냐?"
"맞아! 놈들이 이번에 속임수를 쓴게 분명해!"
"비열한 파시스트 놈들!!!"
나타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맞장구쳤다. 그 때, 독일군의 항공기가 고고도 비행을 하면서 수많은 삐라를 뿌렸다. 블라슈크가 외쳤다.
"줍지 마!! 절대 건드리지 마!!!"
블라슈크는 서둘러 자신의 철모에 삐라를 주워 담으며 옆에 있던 글리에르에게 외쳤다.
"이봐 자네!! 빨리 회수하게!"
"하지만 건드리지 말라고 하셨잖습니까? 삐라를 회수하기 위해 삐라를 잡아도 되는지 허락받아도 되는지 여쭈어도 될지 궁금해해도 될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닥치고 빨리 회수해!!"
삐라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독일 제국은 프랑스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 지금 소련은 전세계에서 외교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빨리 항복하라!]
블라슈크는 서둘러 삐라를 주운 다음 모두 소각했다. 모든 삐라를 소각했고, 아무도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이 프랑스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게 되었다. 블라슈크가 프랑스가 우익화되면서 혹시나 독일을 선제 공격하여 독일이 양면 전선을 형성하게 되는 것에 희망을 걸었었다.
'이런 조약 따위는 파기하면 그만일 것 이다...하지만 프랑스, 영국 둘 다 지금 전쟁이 최대한 길어져서 양측의 전력이 모두 소모되기를 원할 것 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군과 벨라루스 군, 러시아 백군이 소련군 포로들을 상대로 벌이는 일에 대해서는 블라슈크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잡히느니 차라리 독일군에게 잡히는게 나을 것 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지금 상황에서 민족도 다른 독일과 같이 싸우는지 블라슈크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망할 파시스트들...'
하지만 블라슈크는 이들이 파시스트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현재 우크라이나군이나 벨라루스군에 있는 병사들은 파시즘이 뭔지도 모르는 농민들이 대다수였다. 소련의 잘못된 농업정책으로 수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아사하게 된 대가를 지금 치루는 것 이었다. 블라슈크는 안토노프에게 삐라를 모두 소각했다고 보고했고 안토노프가 말했다.
"자네도 그 삐라 내용을 읽었는가?"
"파시스트들의 프로파간다일 뿐입니다!"
"파시스트 놈들이 프랑스와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 것은 맞네. 이미 뉴욕타임즈 등 해외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었네."
"하..하지만 그것은 조약일 뿐입니다! 이탈리아가 발칸 반도에서 과욕을 부리면 영국이 참전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안토노프가 파이프를 씹으며 말했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탈리아와 영국이 그리스를 침공하지 않기로 비밀리에 협상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네."
'!!!'
안토노프가 앉아있는 자리 위에는 스탈린의 초상화가 크게 걸려 있었다. 블라슈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례를 하고는 안토노프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한편, 소련군 여자 저격수들은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크세니야가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에게 잡힐 것 같으면 꼭 자살하겠다고 약속하자. 서로 죽여주는거야...알겠지?"
다들 우크라이나군에 몸서리를 쳤다. 나타샤는 속으로 스탈린과 소련에 대해 이를 박박 갈았다.
'도대체 스탈린이 어떻게 했기에 우크라이나인들이 이렇게 우리를 증오하는거야?'
나타샤는 여전히 손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까 전에 자신의 실수로 벌어진 엄청난 사태에 대해 애써 위안하고 있었다.
'도...독일 놈들은 분명 우리를 공격하려고 했을거야!'
그 때, 독일군이 확성기를 통해 이렇게 외쳤다.
"독일 제국군은 인도주의적인 목적으로 민간인들을 안전한 구역으로 이동하고자 하였고, 민간인의 안전 보장을 위하여 교전을 중지한다고 상호 협의했다! 이를 믿고 우리는 민간인을 보낸 것 인데, 소련군 측에서는 비겁하게 먼저 총을 사격하여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
안나가 외쳤다.
"웃기지 마! 거짓말이야!"
크세니야가 말했다.
"파시스트들은 저런 식으로 우리 사기를 떨어트리려는 거야!"
계속해서 확성기에서 독일군이 어설픈 러시아어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소련군의 비겁한 행동 때문에 어린 아이 17명과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진 3명이 사망했다!! 소련군은 자국 민간인들을 전혀 보호하지 않는다!! 네 놈들은 스탈린과 공산주의를 지키기 위한 소모품을 뿐이다!!"
류드밀라가 말했다.
"포병 녀석들은 뭐 하는거야? 저 파시스트들 확성기 좀 박살내면 안되나?"
하지만 그 뒤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나타샤는 부들부들 떨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 잘못이 아냐...내 잘못이 아냐...'
나타샤는 잠시 뒤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우크라이나 군이나 독일군에게 붙잡힐 수도 있는 상황이 되면 백병전을 치뤄야할 것 이었다. 나타샤는 자신의 총에 달린 총검을 바라보았다.
'이...이걸로 사람을 찔러야 해?'
얼마나 세게 찔러야 사람이 죽을지 나타샤는 알 수 없었다. 마침 옆에는 짚더미가 있었고, 나타샤는 총검으로 짚더미를 푹푹 찔러보았다.
'난 절대 안 죽어!!!'
아까 전 수 많은 총알을 맞고 달려간 오펠 블리츠 트럭이 떠올랐다. 나타샤는 절대 그렇게 죽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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