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히틀러
피터로프 소대장은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소냐라는 착하고 귀여운 아가씨와 결혼을 했다. 정말 행복해 보이는 커플이었다.
표도르 또한 이를 축하했다. 그런데 다른 하급장교들이 이를 씁쓸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수근거렸다.
"혼자가 편할텐데..."
"좋은 여자같은데 안타깝군..."
표도르는 장교들의 대화를 듣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저런 소리를 하는거지?'
그 날 밤, 표도르는 또 다시 취사장에 숨어들어서 장교들이 먹으라고 만들어둔 사과 파이 둘을 긴빠이쳤다. 취사반장 동지는 거대한 방망이를 옆에 둔 채로 코를 드르렁거리고 있었다. 얼마 전 그는 앞으로 먹을거를 서리하는 녀석은 뼈도 못 추리게 만들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드르렁 드르렁
다음 날, 표도르는 주말을 맞아서 디아나에게 사과 파이를 건네주고는 언덕에서 데이트를 했다. 디아나는 사과 파이를 먹었고 표도르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일주일에 두 번 전차로 훈련을 받는 것도 재미있었고, 표도르는 소련의 전차가 최강이라고 믿었다.
'그래! 돈을 모으고 언젠가는 꼭 장교가 될거다!그리고 디아나와 결혼해야지!'
표도르가 소속된 부대는 주기적으로 이동을 해야했다. 그렇기에 다음 부대 이동 전까지 디아나에게 청혼을 해야했다. 앞으로 표도르의 인생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데이트를 마치고 다음 날, 표도르는 침대 위에 매트리스 대용으로 쓰는 짚더미를 정리하며 훈련을 준비했다. 여전히 매트리스는 보급받지 못했고 보급받으리란 보장도 없었다. 그러면 어떠랴? 일주일에 두 번이나마 전차 훈련을 받는 것이 중요했다. 점점 표도르와 동료들의 실력도 좋아지고 있었고 전차 성능도 만족스러웠다. 그 때 대대장 동지가 들어왔다.
"오늘은 대민 지원을 간다!"
이제 파종 시기였던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있던 훈련은 모두 취소되었다. 표도르는 돼지에게 사료를 주고 똥을 치우는 것 뿐만 아니라 파종까지 해야했다. 농사일은 엄청나게 힘들었고, 손에는 굳은 살이 박혔다.
그래도 표도르는 대민지원 또한 열심히 했다. 그렇게 집단 농장에서의 일을 마치고 완전 기진맥진해서 막사로 돌아갔는데 새로운 세탁부가 보였다.
'저...저 분은?'
놀랍게도 피터로프 소대장과 결혼한 그 참한 아가씨가 부대의 세탁부로 일하게 된 것이었다.
부대원들은 모두 어색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 새로운 세탁부를 바라보았다. 피터로프 소대장님이 자리에 계시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막사에서 표도르는 동료들과 수근거렸다.
"어째서 세탁부로 온거지?"
"하급장교 부인은 부대 이동할때마다 같이 남편 따라 이동해야하네! 그러니 부인들은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네!"
"그래도 저 분은 다행이지. 다른 부대의 소대장 부인은 부대 청소부로 취직했네."
"뭐...뭐라고?"
"청소부던 세탁부던 제대로 직업 구했으니 된거지. 내가 들었는데 5년 전에 3중대에서는 말일세!"
한 부사관이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쉿! 그 이야기는 꺼내지 마!"
뒷 이야기가 궁금했던 표도르는 의아해했다.
'뭔 일이 있었던거지?'
표도르는 흙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군화를 벗었다. 구두약과 솔은 여전히 배급받지 못하고 있었다. 표도르는 지푸라기로 만든 침대에 몸을 뉘었다. 그래도 겨울이 아니었던지라 막사 생활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이번 겨울까지는 난방장치 설치해주겠지?'
며칠 뒤 표도르는 디아나와 데이트를 했다. 디아나는 마을에 재단소에 취직했다고 했다. 표도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잘됐다!"
'재단소에 취직하면 부대 이동할때 못 따라올텐데...'
디아나가 생글거리며 말했다.
"내 친구가 이번 달에 결혼해서 내가 옷을 재단해주기로 했어."
표도르는 굳은 표정으로 막사에 돌아갔다. 피터로프 소대장의 아내는 양말도 신지 않고 커다란 바구니에 빨랫감을 잔뜩 넣고 힘들게 걸어가고 있었다.
꽈당!
"어머!"
표도르와 동료들은 황급히 빨랫감을 주워주었다.
"고맙습니다!"
그 때, 피터로프 소대장이 막사에 들어왔다. 피터로프 소대장은 굳은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소대장과 부인이 막사 밖으로 나갔고 표도르와 동료들은 이 불편한 분위기에 식은 땀을 흘렸다.
그 날 밤, 자기 전에 표도르는 자신의 동료에게 가서 물었다.
"이보게 자네!"
"뭔가?"
"5년 전에 3중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건가?"
지푸라기 침대에서 졸고 있던 동료가 눈을 번쩍 떴다. 그 녀석은 다른 녀석이 훔쳐듣지는 않는지 주위를 둘러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 소위가 결혼을 하고 1년 뒤, 아들이 태어났다. 모두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해보이던 그는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선물을 구입해서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아내가 정치 장교에게 매춘을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정치 장교는 창문으로 도망갔고, 그 소위는 부정한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 죽이고 자살했다.
표도르는 이 이야기를 듣고 식은땀을 흘렸다. 또한 표도르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파벨, 드미트리 등 전차병들도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했다.
"그..그래서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디아나와는 헤어졌지. 하급 장교의 봉급으로는 아내와 자식을 먹여살릴 수 없네. 하물여 부사관은 하급 장교보다도 봉급이 적다네. 내가 사랑하는 여인이 그런 힘든 생활을 하게 할 수는 없었지."
드미트리가 말했다.
"정치 장교 부인은 실크 스타킹 신고 다닌다던데..하급 장교 부인은 양말도 못 신는구나."
'훈련 수준 떨어지는게 이유가 있었군...'
"우리도 제대로 훈련만 받았다면..."
그렇게 표도르와 전차병들은 다시 개구멍으로 건물 밖으로 나갔고, 소련군은 다시 방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고층 건물 옥상에는 대공용으로 쓰기 위한 4연장 대공 기관총들도 여기 저기 설치되었다.
GAZ-AAA 트럭에도 맥심 4연장 기관총이 설치되었다.
한편 독일의 육군참모총장 한스 파이퍼는 소련군에게서 노획한 64.3kg의 맥심 중기관총을 끌고 직접 운반해보았다. 상당한 무게였지만 바퀴가 장착되어 있어서 운반이 쉬웠다.
그리고 한스는 69kg의 독일군 슈판다우포 중기관총을 직접 끌어보았다. 소련군의 기관총과는 달리 바퀴가 없어서 끄는 것이 불편했다.
'기관총에 바퀴를 설치하는 것이 좋겠군..또한 현재 보병 분대는 지나치게 기관총에 의지하는데 이는 기관총을 못 쓰게 되면 치명적이다. 이렇게 기관총에 너무 의존하는 보병 교리는 보완이 필요하다.'
예전에 한스가 냈던 의견대로 독일군은 현재 민간인으로부터 동계물자를 충분히 지원받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스는 지금부터 빨리 동계용 군화의 생산라인을 돌릴 것을 건의했다. 독일군의 군화는 징이 박혀 있었고, 금속은 열 전도성이 높기 때문에 겨울에 이런 군화를 신으면 발에 동상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또한 독일군 군화에 박힌 징은 실내에서는 쿵쿵거리는 엄청난 소리를 내기 때문에 시가전에서 위치가 발각되는 단점이 있었다.
'일본과 기술을 교환하면 좋을지도...레이더 설계도를 주고 천연고무를 받는 것이 좋겠군... 근데 항로가...'
한스가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을때 부관이 한스의 귀에 뭐라고 속삭였다.
"뭐라고!!!"
이 시각 동부전선, 얕은 가랑비가 내린 이후 오토가 소속된 24차량화 군단의 보병들은 거의 늪으로 변한 뻘밭을 힘들게 지나고 있었다. 전차들은 임시로 통나무로 만든 길을 통해 기동했지만 보병들은 그 통나무길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야포와 탄약을 운반하는 말들은 진흙으로 범벅이 되었고 아예 옆으로 쓰러져버리기도 했다. 병사들이 모두 달려들어서 진흙에 파묻히기전에 말과 야포를 꺼내고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빨리 끄집어내! 진흙이 굳으면 못 꺼낸다!"
군마들의 상태는 딱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아무리 끌어도 주저 앉아 버리거나 아예 옆으로 자빠졌다. 병사들이 기를 쓰고 군마의 궁둥이를 때리고 이끌었고 군마는 진흙으로 된 늪을 홀가분하게 빠져나왔다.
가랑비가 잠시 왔을 뿐인데도 우크라이나 토질의 특성때문에 이런 뻘밭이 된 것이었다. 오토가 생각했다.
'클라이스트 기갑집단 있는 지역이 더 늪지대라고 들었는데...제대로 기동할 수 있을 것인가?'
얼마 전에 소대장으로 복귀한 하이에 녀석은 다시 장교 군복을 입고 철십자 훈장과 함께, 자랑스러운 전차 격파장도 팔에 차고 있었다. 하이에의 보병 소대도 24차량화 군단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하이에의 소대원들은 자신의 소대장을 열렬히 환영했고 형벌 부대원들도 하이에의 복귀를 축해했다.
의리있고 사나이 중에 사나이인 오토는 티거 상부 해치 위에 상체를 내민 채로 질투심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하이에를 쳐다보았다.
'나는 여태까지 소련군의 전차를 몇 대나 격파했는데!'
오토는 동기들과 함께 허쉬 초콜릿과 스팸 통조림을 먹었다. 아까 통조림을 운반하던 말이 진흙탕에 자빠지는 바람에 통조림 겉에는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내용물은 무사했다.
스팸은 구워야 맛있지만 구워먹을 여건이 아니라서 생으로 먹어야했다. 이 허쉬 초콜릿과 스팸은 최고의 인기 보급품이었다. 오토와 동기들은 이 통조림을 보면서, 머나먼 미국에서 떼돈을 벌었을 양키들을 저주했다.
'망할 양키들...'
이제 점점 더워지기 시작했다. 전차병들은 모두 전차 옆에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태양빛을 피했다. 어떤 녀석들은 전차 그늘 옆에 짚단을 깔아두고 그 위에 자빠져서 잠시나마 눈을 붙였다.
오토는 페인트로 위장색을 칠해둔 자신의 소대 전차들을 보았다. 이제 시가전에 들어가야하니 다시 페인트를 칠해야할 것이었다.
그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마르틴! 네가 여기 왜 있냐?"
마르틴 히틀러, 히틀러의 아들이 슐레프 중대에 게오르크 3소대에 장전수로 온 것이었다. 어린 시절 밀리나와 함께 자주 놀고는 했었다. 마르틴은 오토에게 경례를 했다.
슐레프 중대장은 이 상황에 엄청나게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이게 내 진급에 좋은건가? 절대로 저 녀석이 부상당하면 안되는데!'
17살의 마르틴은 안 그래도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주목받는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정치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미대에 진학하고 싶어했다.
오토가 마르틴에게 말했다.
"우리 중대에 온 것을 환영해! 궁금한거 있으면 다 물어보라고!"
그때 하늘에서 Hs123가 저공비행을 하며 엔진 소리가 들렸다.
드드득 드드드득 드드득
"으악!"
마르틴이 움찔하며 바닥에 엎드렸고, 오토가 말했다.
"저건 아군이야!"
마르틴이 일어나서는 초저공비행을 하는 Hs123을 보았다.
"왜 기관총 소리가 나는거지?"
"Hs123의 엔진 소리야! 구식처럼 보여도 나름 든든한 녀석이라고!"
Hs123은 천천히 저공비행을 하며 근접지원을 해줄 것이었다.
마르틴은 생각보다 열악한 최전선의 상황에 놀라면서도 기대를 하는 눈치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아가씨들이 손을 흔들고 염소젖을 주었어!"
"당연하지! 우리는 이들을 소련의 압재로부터 해방할 해방군이니까! 모두 우리에게 고마워할거라고!"
오토의 말에 마르틴도 뿌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부대는 계속해서 빠른 속도로 남쪽으로 향했다. 이제 앞에 보이는 광활한 개활지만 지나면 소련군과 시가전을 치뤄야할 것이었다.
조종수 마티아스가 좁은 관측창을 보면서 말했다.
"진짜 넓네."
포수 에밀이 말했다.
"여기만 점령하면 앞으로 식량 보급은 나아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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