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일행의 대탈출 작전
소련군 정치 장교 안토노프는 주변 정찰을 하러 간다고 하고는 슬그머니 벙커의 문을 열고는 나갔다. 이 벙커 근처에 있는 보병들은 죽을 고생을 하며 고립된 벙커를 지키고 있었다. 한 소련군 스나이퍼는 온 몸에 나뭇잎을 붙이고 있었다.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정말 덤불로 보일 정도로 기가 막힌 위장이었다.
어떤 녀석은 파란색 풍선에 열심히 수소 가스를 펌프질을 하고 있었다. 바람을 최대한 불어넣으면 직경 1m정도까지 부풀어오르는 이 풍선은, 신호탄 대신 아군에게 연락을 취하기 위한 용도였다. 현재 통신선이 절단되었으니 이 풍선으로라도 아군과 연락을 해야했던 것 이다.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소련군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었던 것 이다. 안토노프는 자신의 차량을 숨겨둔 곳으로 슬쩍 걸어갔다. 아직 GAZ-61 차량은 무사했다.
'지금 빨리 도망치자!!'
안토노프가 GAZ-61의 문을 열려고 하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정치 장교 동지!"
소련군 전차장 표도르였다. 안토노프가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망할 새끼!! 왜 지금 불러!!'
"무슨 일인가?"
"이 차량을 이용해서 주변을 정찰하고 인근 벙커와 연결되는 통신망을 깔 수 있을 것 입니다!"
안토노프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만 이 차는 연료가 다 떨어졌네."
표도르는 낙담을 했고 안토노프는 GAZ-61 차량에서 비싼 와인을 꺼내서 표도르에게 내밀었다.
"이걸 벙커 안으로 가져가서 동료들이랑 한잔씩 하게."
표도르는 와인을 받고도 주변을 살펴보며 미적거렸다. 안토노프는 표도르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저 시발 놈의 새끼!!!'
그 때, 독일군 전차의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트르릉 트드드등 트르릉
표도르가 사색이 되어 벙커로 뛰어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고는 안토노프에게 외쳤다.
"정치 장교 동지!! 빨리 이 쪽으로 오십시오!!"
안토노프가 권총을 들고는 외쳤다.
"나는 여기서 보병들과 싸우겠네!!"
표도르가 욕설을 퍼부으며 혼자 벙커로 달려갔다.
'저 멍청한 새끼!!'
표도르가 벙커로 달려가자 안토노프는 서둘러 GAZ-61 차량의 문을 열고는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시동은 잘 걸렸다.
'좋았어!!!'
그 때, 표도르는 벙커 밖으로 나오는 표도르, 파벨, 글리에르를 발견했다.
"판터가 이 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판터가 벙커를 향해 고폭탄을 발사하는 소리가 들렸다.
티이잉!!
쿠과광!! 콰과광!!
벙커가 박살났고 사방이 뿌옇게 되었다.
"뛰어!! 빨리!!"
그렇게 표도르는 드미트리, 파벨, 글리에르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 때, 안토노프의 GAZ-61가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것을 발견했다.
'저 새끼!!! 연료 떨어졌단거 거짓말이었다!!!'
"기다려!! 기다려!!"
"정치 장교 동지!!!"
안토노프는 백미러를 통해서 자신을 향해 양팔을 필사적으로 흔들며 따라오는 표도르 일행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시하고 신속히 앞으로 질주했다.
'네 놈들이 날 싫어했던건 잘 알고 있다!! 망할 반동분자놈들! 여기서 죽어라!!'
파벨이 외쳤다.
"도움을 요청하러 간거 아닐까요?"
표도르가 외쳤다.
"저 시발 새끼 연료 없다고 거짓말치고 혼자만 튄거다!!"
"그게 정말입니까!!"
드미트리가 앞서가는 안토노프의 GAZ-61차량에 뻐큐를 날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저 시발놈!!!"
표도르는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를 이끌고 허리를 숙인채로 도망갔다. 이제 저 앞에는 풀이 빽빽하게 1m 높이까지 솟아 있는 초원 지대가 보였다. 표도르는 자신의 전차병들과 함께 잽싸게 롤반을 가로질러 건넜다.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는 팬티에 오줌을 지리며 자신의 전차장을 따랐다.
'으아아!!!'
그리고 표도르 일행은 엎드린 상태로 초원 지대를 기어갔다. 이대로 동쪽으로 계속 기어간다면 탈출이 가능할 것 이었다. 표도르는 여태까지 밍기적거렸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진작 탈출했어야 하는건데!!!'
표도르는 뒤를 돌아서 자신을 따라오는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를 쳐다보았다. 이 녀석들까지 포로가 되거나 사살당한다면 그것은 모두 자신의 책임이었다. 표도르는 잠시 멈추어서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전차의 포가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 근처에는 적군이나 아군도 없는 듯 했다.
표도르는 초원 지대에서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가 재빨리 다시 엎드렸다.
'이 쪽으로 계속 가면 되겠군...'
표도르는 자신을 뒤따라오는 파벨에게 손짓했고 드미트리와 글리에르는 제각기 동료의 꽁무니를 쫓아서 엎드려서 기어갔다. 그 때
스르륵 스르르륵
풀이 움직이며 누군가가 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표도르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다.
'정지!!'
표도르는 뒤따라오던 녀석들에게 멈추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파벨 녀석은 계속 기어가다가 표도르의 엉덩이에 대가리를 박았다.
"윽!!"
뒤이어 드미트리가 파벨의 엉덩이에, 글리에르가 드미트리의 엉덩이에 대가리를 박았다.
"시발!!!"
"왜 멈춰!!"
"쉬이!!!"
스르륵 스르륵
분명히 우측에서 누군가 초원지대를 헤치며 기어오고 있었다. 표도르는 소리에 집중하고는 단도를 꺼냈다. 그리고, 풀 사이에서 뚱뚱한 정치 장교 안토노프가 나타났다. 안토노프의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GAZ-61 차량으로 탈출하면서 서둘러 운전하다가 나무에 차를 박은 것 이었다. 안토노프는 표도르 일행을 보고는 처음에는 안도했지만 표도르 일행의 분노에 찬 표정을 보고는 당황했다.
"나..나를 데려가는게 좋을걸세!"
표도르 일행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안토노프가 필사적으로 말했다.
"자네들끼리만 도망갔다간 무사히 탈출에 성공해도 탈영병으로 몰릴 수 있네! 내가 자네들이 파시스트와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증언하겠네!!"
그렇게 표도르 일행은 안토노프와 함께 계속해서 초원 지대를 기어갔다.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는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저 망할 새끼!!'
'그냥 냅두고 가는게 좋을 것 같은데!!'
한참을 가다보니 얼굴과 몸에는 온갖 벌레들이 들러붙었다.
'분명 파시스트 놈들의 포위망에도 빈틈은 있을터...그 곳을 통해 신속히 야간에 빠져나간다!!'
뒤따라오던 안토노프는 잠시 멈추어서 오줌을 쌌다.
쉬이이
안토노프는 오줌을 싸면서 앞서가는 글리에르에게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기..기다려!!"
이제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고, 초원 지대도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기어간 끝에 표도르는 초원 지대에서 빠져나와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표도르는 자신을 겨누고 있는 MP40 기관단총을 바라보았다.
'!!!'
하이에가 MP40을 들고 표도르를 겨누고 있었던 것 이다. 그리고 표도르의 뒤를 이어서 파벨이 기어나왔다. 파벨도 완전히 사색이 되어서 표도르를 따라서 양손을 들고 항복했다. 그리고 드미트리, 글리에르도 포로가 되었다.
'좆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덩치 크고 뚱뚱한 안토노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기어나왔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면 되나? 으악!!!"
안토노프는 하이에를 보는 순간 바지에 오줌을 지리며 양손을 들었다. 그렇게 표도르 일행과 안토노프 정치 장교는 하이에에게 포로로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잠시 뒤, 안토노프 정치 장교는 만토이펠 대대장의 대대 지휘소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만토이펠 대대장은 안토노프 정치 장교의 당원증을 보았다.
'정치 장교로군...'
안토노프는 식은 땀을 흘렸다. 하지만 놀랍게도 만토이펠 대대장은 커피 당번을 불러서 안토노프 정치 장교에게 커피를 내주었다.
"한 잔 드시겠소?"
커피 당번병이 안토노프의 앞에 놓인 잔에 커피를 따랐다. 하지만 안토노프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만토이펠 대대장의 눈치를 보았다.
'분명 약이 들어있을거다!!'
하지만 커피 당번병이 만토이펠 대대장의 잔에도 커피를 따르자 만토이펠은 이를 마셨다. 안토노프는 자신의 컵을 보았다.
'어쩌면 내 컵에만 약이 묻어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태까지 탈출하느라 목이 말랐던 탓에 안토노프는 커피를 마셨다. 약은 없는 듯 했다.
안토노프는 잔뜩 경계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장교인 나에게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낼 것 이다! 절대로 꽁으로 정보를 주지는 않겠다!'
만토이펠은 서류에 무언가를 기입하면서 러시아어로 물었다.
"최대한 편의는 봐드리겠소. 아무래도 부대원들과 같은 숙소를 쓰는 것이 편하겠군."
"그...그렇소."
'왜 심문을 하지 않지?'
한편 표도르와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는 상당히 괜찮아보이는 건물에 작은 방에 갇혔다. 드미트리가 말했다.
"우..우리는 일반 포로인데 왜 이런 곳에 가둔겁니까?"
보통 포로들은 좁은 공간에 마구잡이로 쑤셔넣게 마련인데 표도르 일행은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방 안에 넣어진 것 이었다. 글리에르가 말했다.
"뭔가 이상합니다."
파벨이 의자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일단 살고 봐야지."
표도르는 방을 살펴보았다. 이 방에는 해바라기 그림이 그려진 액자가 걸려 있었다.
'이..이건?'
표도르는 그 액자로 걸어가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액자 뒤에는 이상한 전선줄이 연결되어 있었다. 드미트리가 말했다.
"지금 우리 대대 녀석들은 잘 버티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동 걸리는 전차도 몇 대 없..."
"쉬잇!!!"
표도르가 전차병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다음 액자에 연결된 전선줄을 가리켰다. 파벨이 이걸 보고 경악했다.
'도..도청 장치를 설치해둔건가?'
글리에르는 일부러 도청 장치를 발견하지 않은 척 하기 위해 방구를 꼈다.
부릉 부르릉
"아하하!! 자네는 냄새가 지독하군!!"
"그..그러게 말일세!!"
그 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
안토노프 정치 장교가 방 안에 들어왔고, 만토이펠 독일군 대대장이 말했다.
"여기서 편히 쉬십시오!"
문이 닫히자 안토노프 정치 장교는 안심하면서 의자에 주저앉고는 말했다.
"다..다행일세!! 어떻게던 탈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하네! 내일 저녁 8시에 수송기가 올걸세! 여기서부터 비행장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이지만 오늘 밤 내로 탈출하면 그 쪽까지 갈 수 있을걸세!"
표도르와 전차병들은 안토노프 정치 장교에게 입 닥치라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댔지만 안토노프는 창문을 살피며 아래로 내려갈 방법을 찾았다.
"2층이면 야간에 내려갈 수 있겠군! 내가 자네들도 수송기에 탑승할 수 있도록 해주겠네!"
표도르,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 얼빠진 안토노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만토이펠 대대장은 도청을 통해 이 정보를 듣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얼간이 같은 놈들...'
다음 날 저녁 8시, 독일군의 매서슈미트 편대는 소련군의 PS-84(리수노프 Li-2의 초기 제식명)를 격추시켰다. 거대한 PS-84(리수노프 Li-2의 초기 제식명)는 하늘에서 엄청난 불꽃과 함께 폭발하여 시커먼 비행운을 남기며 추락했다.
쿠과광!! 콰과광!! 쿠구궁!!!
표도르,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 그리고 안토노프 정치 장교는 수많은 포로들과 함께 울타리 속에 갇혀 있었다. 하도 포로가 많았기에 독일군은 크게 울타리를 쳐두고 그 안에 모든 포로들을 넣어두었다. 안토노프 정치 장교는 하늘에서 추락하는 PS-84(리수노프 Li-2의 초기 제식명)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내 잘못이 아니다!!!'
표도르와 수많은 소련군 포로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음식이 부족했던 것 인지 독일군은 소련군 포로들에게 거의 음식이나 물을 주지 않고 있었다. 안토노프는 구석에 주저앉아서 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몰래 초코바를 꺼내 먹었다.
한편, 오토와 전차병들은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PS-84(리수노프 Li-2의 초기 제식명)가 폭발하는 소리는 천둥소리 마냥 쇠망치로 대기층을 두들겼고, 전차병들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제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던 소련군은 통신선, 보급이 완전히 끊기고 8개의 작은 포켓으로 나뉘어진 상태였다. 그렇게 고립된 소련군은 하나씩 항복하고 있었다. 마르틴 또한 이 광경을 보며 들떴다.
"우..우리가 해냈어!! 해냈다고!!"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더도 이런 승리는 못 거두었어!!"
오토가 말했다.
"독일 제국군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대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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