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힘법사가 된 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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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작품등록일 :
2022.07.23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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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2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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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그날의 기억

DUMMY

생각해보면, 모든 일은 그때 시작되었지. 내가 이렇게 된 것도 전부 그날의 일이 원흉이었다. 나이도 젊은데 잠시 그날의 일을 떠올려 보자. 나이들면 기억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다. 이거, 경험담이다. 아무튼,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면 좋으려나······


비가 주룩주룩 잘도 내린다. 천둥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아무튼 꼭 뭔가 하려고만 하면 비가 온다. 어쩌면 내 인생 가장 빛나는 날이 될 지도 모르는데, 조금 맑은 날씨면 어디가 덧나나? 아니지,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지금 비가 오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모든 일을 마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비가 그치고 해가 쨍쨍 비치고 있는 거다. 음, 그렇게 생각하니 궂은 날씨에도 기운이 난다. 후우, 내 상상이 현실이 되려면 우선 그 '모든 일'을 끝내어야 하겠지.

나는 지금 마왕의 앞에 서 있었다. 마왕 녀석, 나이도 나보다 무진장 많으면서 젊고 건강해 보인다. 확실히 인간이 아니긴 한가 보다. 마족이 외견상 젊어보인다는 사실을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보니 괜히 화가 치민다. 나랑 비교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이곳에는 나 혼자서 왔기 때문에 나와 마왕을 비교할 자는 없다. 그러니까, 이것은 자격지심인 거겠지. 마왕을 잡는 것은 젊은 용사,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마왕이 뉘집 개 이름도 아니고, 어디서 굴러먹다 온 말뼈다귀인 줄도 모르는 애송이가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나는 피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나이도 꽤 먹어서, 지금 여기 서 있는 나는 무려 80살의 노인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마왕을 보며 자격지심이 드는 것이다. 자꾸보니 화만 늘어난다. 나이가 들면 화를 참는 것도 중요하다. 더 혈압이 오르기 전에 저 마왕이라는 자식을 죽여버려야겠다.

마왕을 죽이기로 결심한 나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 가까이 다가갈 필요는 없다. 나는 전사가 아니니까. 나이 많은 내가 힘이 어디있어서 검을 들고 휘두르겠나? 상식적으로 그건 말이 안 된다. 검을 휘두르고 다니는 녀석들은 다들 젊은 혈기에 제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바보들 뿐이다. 나는 무식하게 힘만 써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지성, 바로 이 머리를 이용해 싸우는 마법사이다. 원거리에서 싸우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된다. 오히려 거리를 벌려야겠지만, 내가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간 것은 내가 대단히 자신감에 절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왕이 시종일관 방관하는 것을 보니 건방져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저 시건방진 태도를 아주 싹 고쳐 주겠다는 마음으로 나는 한 발자국 나아간 것이다.

한 발자국 나아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저 마왕을 혼내주어야 할까?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너무나도 많아서 오히려 고민된다. 젊었을 때는 뭐든 많이 배우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는데, 그때는 뭘 모르던 시기여서 그랬다. 나이가 들고 실력이 붙은 다음 생각해 보면 역시 중요한 건 양이 아닌 질이다. 특히 마왕 같은 괴물 녀석을 상대하려면 하나를 쓰더라도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내가 고민하는 이유는 내 마법이 양만 많기 때문인 것은 아니다. 분명 사용할 줄 아는 마법은 많지만, 나는 그 많은 마법을 전부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세계에서도 드문 대마법사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마왕을 쓰러트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지하에 틀어 박혀서 마법만을 연구해 온 나였기에, 세간의 평가 따위는 몰랐다. 그러나 드디어 때가 되었나 싶어서 세상 밖으로 나오니, 나는 위대한 대마법사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칭호따위 나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내 목적은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가지, 저 눈 앞의 마왕을 쓰러트리는 것이니까.

그나저나 나도 나이를 참 많이 먹기는 했다. 적을 눈 앞에 두고 이리 잡념이 들다니 말 다했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드는 이유가 있기는 했다. 내 나이도 나이이니, 나는 이번 토벌이 내 마지막 모험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마지막이니 옛날 생각도 나고 미련도 생기고 그러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 그정도는 너그러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정말 딴 생각은 되었다. 허구한날 마법 연구만 해대어서 그렇다 할 추억도 없다. 정말이지 마법으로 시작해서 마법으로 끝나는 인생이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고, 남들 다 기른다는 흔한 제자 하나 없다. 내가 이룬 업적이래야 마법에 대한 것밖에 없는데, 전수가 안 되니 이룬 게 없는 것이 된다. 내가 죽고 나면 말이다. 누가 내 이름을 기억해주기는 할까? 마왕을 잡는다면 이름 정도는 남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정말이지 노인네가 주책이군. 언제부터 그런 사소한 걸 신경 써왔다고 그러는 거지? 늘 마왕 토벌만을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역시 죽을 때가 되니 아쉽다. 왜 이런 삶을 선택했을까 후회가 생긴다. 그깟 마왕 토벌이 뭐라고 말이야, 어렸을 때 누구나 부리는 객기였는데 나는 그것을 굳이 이루어 내겠다고 오기를 부려서 이 지경까지 왔다. 도중에 그만 둘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상하게 집착이 생겨서 그만두지 못했다.

아마 마왕을 잡든 잡지 못하든 나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겠지. 마왕을 못 잡으면 말할 것도 없고, 잡더라도 기력이 다 해 쓰러질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마왕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전력을 다해 상대해야 할 것이다. 젖먹던 힘은 이미 다 써버린 것 같다. 그래서 남은 기력이나마 전부 끌어다 와서 싸울 생각이다. 이제와서 생의 미련따위, 없다고 말하고 싶다. 자, 심호흡 한번 하고, 좋아 지금이다!

나는 곧장 마법의 영창을 시작했다. 마법을 모르는 자, 정확히는 룬어를 모르는 자가 듣는다면 그저 웅얼거리는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마치 외국어를 듣는 느낌이려나? 하지만 마왕은 마법을 사용할 줄 아니까, 내 영창에 대비해 무언가 수를 쓸 것이다.

나는 영창을 하면서 마왕이 어떤 수를 쓰나 흘깃 올려다 보았다. 그런데 마왕은 아까 그 오만방자한 태도 그대로이다. 내 눈앞에 떡하니 서서는 양팔을 허리에 올리고, 시시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아무리 늙은 노인이라지만,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 나도 안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래뵈도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몸이다. 몸 주위에 느껴지는 아우라, 마법의 기운, 뭐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자라면 더욱 잘 느낄 수 있겠지. 그런데 마왕의 태도는 나를 완전 무시하는 태도이다. 마치 나의 마법 따위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좋아, 이렇게 되면 계획 수정이다. 처음에는 적당히 간만 보려고 했는데, 저 시시껄렁한 자세를 아주 조금은 고쳐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는 파이어볼의 영창을 관두고, 플레임의 영창을 시작했다. 이놈, 마왕이라고 오만하기는. 말 안 듣는 마족들을 다스리려면 늘 그리 오만하게 행동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딴 거 알 바 아니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너를 죽일 것이란 말이다!

한 노인이 60년 동안 키워온 원한이 지금 이곳에서 폭발한다. 아까 양만 많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원래 사용하려던 파이어볼은 딱 양만 채우는, 그런 별 볼일 없는 견제구 정도의 마법이다. 그러나 플레임은 질을 중시한 마법이다. 마왕이래도 이거 맞으면 별 수 없을 거다. 지금까지 맞지 않은 놈은 있지만, 맞아서 멀쩡했던 녀석은 없었다. 마왕 녀석, 조금은 나에게 인사도 좀 건네고 했으면 처음부터 이리 강세로 나서지는 않았을 텐데. 네 죄를 스스로 알렸다. 네가 죽는 이유는, 너의 그 방자한 태도 때문이다!

나는 드디어 영창을 끝마쳤다. 이리 긴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영창이지만, 마왕이 끝까지 저 양 다리 벌리고 허리에 손 올린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방해 받지 않고 영창을 마칠 수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영창 시간이 긴 마법은 실전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당연히 마법사가 영창하는 걸 그냥 보고 있는 적은 없다. 어딘가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변신하는 걸 공격하지 않고 기다린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거 같은데, 여기는 그리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니다. 저 마왕은 긴 영창을 중간에 방해하지 않았으니, 이거 맞고 죽어도 할 말 없겠지.

아까 영창이 길면 중간에 방해 받아 사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그만한 위험을 짊어지고도 이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영창 시간이 긴 마법일 수록 그 위력이 강력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서 마법사들에게 통용된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영창 시간이 긴 마법은 영창에만 하루가 걸린다는 소문이 있는데, 그런 마법 쓰는 사람 아무도 없기 때문에 진위 여부는 확인 불가능하다. 나는 애초에 배우지도 않았다.

이 플레임 마법도 영창 시간이 제법 긴 편이니 맞으면 꽤 아플 거다. 날아가는 마법을 보면서 나는 그리 생각했다. 그런데 저 마왕이라는 놈은 끝까지 자기 자세를 유지할 생각인가 보다. 플레임과 파이어볼의 공통점은, 둘 다 불덩어리를 적에게 날리는 마법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파이어볼과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역시 그 화력에 있겠지. 파이어볼이 그냥 맞히고 끝인 마법인 반면에 플레임은 맞히고 나면 폭발하는 아주 예술적인 마법이다. 화염과 함께 폭발해서 보통은 시체도 남지 않는다. 그런 마법을 마왕은 정면으로 맞을 생각인가 보다. 뭐, 본인의 생각은 존중해 주자.

플레임이 눈 앞까지 다가왔는데, 마왕은 오히려 씨익 웃고 있다. 도대체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이쯤되면 정말 궁금하다.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오래 살아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면 조금은 부럽구만.

나의 소명도 이것으로 끝이겠지. 플레임은 상당히 강력한 마법이다. 영창 시간과 비례하는 것은 위력 뿐만이 아니다. 마력의 사용량도 비례한다. 내가 아무리 대마법사래도 한계가 있다. 나이가 드니 더욱 절실히 한계가 느껴진다. 이제 대규모 마법은 커녕 파이어볼도 간당간당할 것이다. 그래도 뭐, 마왕이 죽고 싶어서 안달인 것 같으니 다행이다. 솔직히 간단히 피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마왕이 늙은 내 모습을 보고 동정해주나 보다. 그래, 너는 충분히 오래 살았으니 이제 다음 세대로 마왕 자리를 넘겨줄 때도 되지 않았니? 너 딸도 있잖아. 딸도 나보다 나이가 많긴 한데, 너보다는 적으니까 젊다고 할 수 있겠지. 젊은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주지 않고 오래 버티는 것도 민폐라고, 임마.

뭐, 이리 불평해도 마왕에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플레임 마법은 이미 그 주위의 공기마저 연소시켜 마왕은 소리를 전달받을 수 없을 것이다. 잘가라, 마왕. 너와 나의 질긴 악연(대부분, 아니 사실 전부 나 혼자 그리 생각하는 것이지만)은 이제 이것으로 끝이다. 이제 그만 종지부를 찍자. 나도 나이가 너무 많아서 이제 그만 쉬고 싶다. 젊었을 때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 죽음이 휴식이니 안식이니 하는 말들이 정말 와 닿는다. 살아있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인 것인지 살다보면 저절로 알게 된다.

결국 끝까지 자세를 풀지 않은 마왕에게 플레임은 격돌, 그대로 엄청난 소리를 내며 플레임은 주위 공간을 폭발시키겠지. 잠깐 귀 좀 막을까? 저 소리 언제 들어도 참 우뢰같이 크단 말이야.

마법은 제대로 마왕에게 격돌하였다. 그리고 제대로 폭발하는 것도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 보았다. 귀는 막았지만 눈은 막지 않았다. 나의 승리인가, 아니 나도 쓰러질 거니까 비긴 것이 되나? 모르겠다. 이제 돌아갈 기력도 없고, 죽기 전까지 조금 누워서 쉬자. 최후의 최후에 이런 휴식 정도는 허락되는 것이겠지.

누워서 나는 마왕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마왕 녀석, 많이 아프겠지. 아니 어쩌면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소멸했을지도 모른다. 어느쪽이든 나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마왕을 죽였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나는 순간 마왕이 죽기 전에 환영 마법을 걸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공격류면 몰라도 저런 환상 계열 마법은 시전자가 소멸하면 함께 사라진다. 그렇다면, 저것은 진짜 마왕이라는 말이 된다.

"이건 있을 수 없어!"

없는 기력 끌어 모아서 힘차게 외쳤다. 이것으로 수명이 반은 줄어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것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아니, 저 마법을 맞고도 살아있는 사람이 정말 있나? 아니지, 일단 사람이 아니기는 한데······

이런 젠장. 혼란스러워서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누워서 혼자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마왕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나에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걸 보니 잘은 몰라도 퍽이나 즐거웠나 보다.

"하하하, 그리도 놀라운 것인가?"

저 마왕, 입이 장식은 아니었나 보다. 그는 나에게 다가와서 뭐가 그리 놀랍냐고 물었다. 그래, 뭐가 그리 놀라우냔 말이지?

"어, 어떻게 살아있을 수가 있지? 그 마법을 정통으로 맞고······"

마치 젊었을 적 술집에서 주정 부릴 때처럼 난폭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이미 반이나 줄어든 수명에 그런 짓을 했다가는 남은 반마저도 사라진다. 우리 몸은 스스로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나의 목소리에서는 내 의도와는 다르게 개미 기어가는 듯 다 꺼져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하하,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 나, 마법이 통하지 않거든."

하하하는 그가 좋아하는 웃는 방법인가 보다. 아니, 그런 것보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니, 그게 어떻게 된 일이지?

"증오에 눈이 멀어 문제의 핵심을 꿰뚫지 못했나. 마법사는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현자는 되지 못했나 보군. 도대체 무엇이 자네를 이리도 분노케 만들었는가?"

그런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다. 딱히 분노하고 자시고 한 것도 아니다. 그냥 어린 날 부렸던 객기일 뿐이다.

"······뭐, 됐다. 아무튼 나에게는 마법이 통하지 않아. 마법 차단이라는 걸 지니고 있거든."

마법 차단이라니, 그런 거 듣도보도 못했다. 정말 억울하다. 듣도보도 못했기에 뭐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름만 봐도 마법이 안 통할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 말고 물리 공격을 익힐 걸 그랬다. 뭐, 이럴 줄 몰랐으니 마법을 배운 것이지만. 매우 거부감이 들지만 이번만은 그를 인정해 주어야 겠다. 나는 아무래도 현자는 되지 못했나 보다.

아아, 신이시여. 듣고 계십니까? 죽음이 가까우니 왠지 그분이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것도 노인네의 주책일까.

"그래, 보이는구나."

아니, 주책 아닌가 보다. 뭐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 아니. 신이시여. 정말 존재하셨던 것입니까······?"

나는 마법을 연구했지 신학을 연구하지 않았다. 당연히 마법을 믿지 신을 믿지 않는다. 정말 존재했냐니, 본인이 들으면 매우 무례한 말이겠지만 자신은 마법사이니 신도 너그러이 이해해 줄 것이다.

"그래, 정말 존재하니 너의 앞에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지."

이것봐라. 역시 신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솔직히 나였으면 화 냈을 것 같다.

"나는 모든 이의 죽음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아아, 역시 저는 죽었나 보군요."

"그래, 죽었지."

신이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아니, 잠시만. 나는 왜 그를 신이라고 믿는 것일까?

"궁금한 것이 많겠지. 그런데 나도 바빠서 말이야. 죽는 게 한 둘이 아니야."

그렇겠지, 나 말고도 죽는 사람 꽤 있겠지. 그렇다면 그를 오래 잡아 끌 수는 없다. 정말 그가 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자신은 죽었으니 이제 아무래도 좋다. 이게 사기든 아니든 손해 볼 것도 없다. 일단 믿어주리고 하자.

"신이시여, 어찌하여 저희들의 죽음 앞에 나타나시는 것입니까."

"아아, 모든 자들의 앞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대리를 보내고, 특별한 경우에만 직접 현신하지."

"특별한 경우요?"

"그래. 예를 들면 너. 마왕을 토벌하다가 사망하였더군."

"그, 그렇습니다. 마왕이 마법 차단 기술을 가진 덕분에······"

생각하니 억울하다. 마법 차단이라니,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무시무시한 기술이 단 4글자밖에 안 되다니.

"그래, 60년이나 마법을 배워왔더구나. 인간에게 60년이면 거의 인생의 전부이겠지. 그것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아, 60년을 쏟아부은 시간이 전부 무용이 되었다. 신이 확인 사살하니 이제 더 할 말도 없다.

"너의 원한이 상당하구나. 평생을 마왕 토벌을 위해 마법 연구만 하였는데 이리도 허무한 결말이라니. 위에서 바라보는 나도 시시해서 그만 직접 내려와 버렸다."

"예, 예······?"

위에서 보다가 내려왔다고? 이게 무슨 말이야?

"신이라고 해도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왜, 너희 인간들 허구한 날 신이 자신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불만이지 않은가?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 일이 복잡해지기 때문이지. 그래서 워낙 지루하단 말이다. 인간 세상을 자주 내려다 보는데, 재미있는 꼬마가 하나 있더군, 마왕을 토벌하겠다는."

아, 그거 아무래도 내 이야기인가 보다.

"그래서 잠시 지켜봤지. 60년 정도 나에게는 찰나와 같다. 그런데 이리도 재미없는 결말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너, 다시 시작해라."

"다시 시작하라구요?"

"그래. 이대로는 찝찝해서 안 되겠어. 너, 죽기 전에 차라리 물리 공격 배울 걸, 그리 생각했지? 그렇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라."

아니, 이 신이라는 작자가 무슨 황당한 소리야? 분명 그리 생각하기는 했지만, 아니지, 정말 신이라면 딱히 황당한 소리도 아닌가?

"내가 너를 환생시킬 터이니 너는 다시 마왕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나의 무료함을 다음에야말로 확실히 달래 주는 것이다."

환생이라니, 정말인가? 진짜 신이라면 불가능한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또 한번의 삶이 주어지는 것인가? 저 가증스러운 마왕 녀석, 다시 한번 쳐 죽이러 갈 수 있는 건가? 신이시여!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니, 신은 앞에 있었지. 직접 말하면 되잖아.

"신이시여!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 됐고 심심하니까 빨리 시작하자."

"예, 에? 아, 예······"

아무리 신이래도 너무 나를 무시하는 거 아닌가? 신에게 통할지는 모르지만, 마법이라도 날려 볼까?······관두자, 어떻게 얻은 환생 기회인데. 달게 받아 들여야겠지.

"좋아, 그럼 간다······, 얍!"


뭐, 이렇게 된 이야기다. 듣고보면 별 거 없네. 마왕을 만나 죽었고 나는 다시 환생했다. 이제 나는 젊은 몸으로 다시 돌아왔다. ······늙은 채로 오래 지내서 그런지 허리 굽히는 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우선 젊은 몸에 익숙해지는 것부터 시작하자.


작가의말

Eternal Grand Story와 동시 연재합니다. 양쪽 모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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