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 제작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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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2.08.1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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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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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DUMMY

- 쏴아아


이른 아침.

매섭게 내리는 빗소리에 눈을 떴다.

오늘은 4월 9일.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날이겠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소방 공무원 필기시험.

D-day.


책상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떼어냈다.

오늘은 결전의 날.

내 인생이 바뀌는 중요한 날이다.


- 턱


그렇게 시험을 보기 위해 마지막으로 가방을 확인하던 도중 이상한 책 한 권이 바닥에 떨어졌다.


표지가 마치 피처럼 붉은 책.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제목을 읽었다.


불타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뭐지?

내가 이런 책을 빌린 적이 있었나?

살면서 처음 보는 책.

그러나,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날짜가 적혀있는 거로 보아 누군가가 연필로 직접 쓴 일기.

그 두께가 엄청나서 책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글씨체.


아침 일찍 일어나서 피곤한 상태지만, 내 글씨체라는 것을 단방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일기를 쓴 적이 없었고 그것조차 어디로 간지 기억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시뻘건 표지에 글을 쓴 적은 더욱 없었다.


내가 쓴 적이 없는데, 내가 쓴 일기가 있다니.

갑자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 삐빅, 삐빅


휴대폰 알람이 빨리 시험장으로 가야 한다고 재촉하는 듯이 울렸다.

내 글씨체로 적혀있는 일기의 내용이 궁금하긴 했지만, 한가롭게 일기를 읽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시험에 늦는다.


꺼림칙한 오래된 일기를 책상에 올려두고 집을 나갔다.

시험을 보고 나서 긴장이 풀린 상태로 천천히 과거를 회상해도 상관없었다.


#


지하철이 우렁찬 소리를 내며 정지했다.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사람들.

다들 눈이 풀린 채로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기는 자신 있었기에 필기만 합격하면 나도 저 사람들처럼 당당하게 출근할 수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겨우 열차에 올라탔다.


시큼한 땀 냄새와 후덥지근한 날씨.

흔들리는 열차 안.

게다가 비까지 내려서 바닥이 미끄러웠다.

그야말로 공부를 할 수 없는 지구상의 최악의 공간이었다.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혼돈 속의 열차 안.

누군가 이어폰을 쓰지 않고 뉴스를 보는지 뉴스 진행자의 목소리가 열차 안을 가득 채웠다.


“이대로라면 20년 안에 지구가 멸망합니다. 마인드를 바꿔야 해요! 당장 대안을 세워야 합니다.”


주변이 너무 시끄러웠다.

1년을 코피 나도록 공부했는데, 고작 이정도로 시험 보기 전의 컨디션을 망칠 수 없었다.


“후우...”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 환경이었지만, 합격을 위해 집중해야 한다.


어?

앞으로 맨 가방에서 한국사 책을 꺼내려다가 놀라고 말았다.

아까 분명히 책상 위에 올려놓은 붉은 일기가 가방에 있는 것이 아닌가.


뭐지?

귀신에게 홀렸나?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아까 그 일기였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우선 가방에 일기를 다시 넣고 한국사 공부를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

고작 이런 일기장에게 망가 질 수 없었다.


시험장까지 15분.

충분히 한 번은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지하철에서 내려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어차피 전날 미리 한 번 와봤기에 길은 이미 외웠다.

3번 출구로 올라오니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시끄럽게 연설을 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종말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이번 시험에 떨어지면 당장 내가 굶어 죽게 생겼는데, 지구가 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애초에 이미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리는 귀에 박히게 들어서 익숙하다.


근데, 미래를 아는 것도 아닌데 지금까지 이룬 모든 걸 때려치우고 하루하루 놀면서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오늘만 사는 것보다 다가올 미래 아니 내일을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닌가?


- 짝


두 손바닥으로 양쪽 볼을 세게 쳤다.

시험 전에 이런 잡생각에 빠지면 안 된다.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


현관문을 열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시험은 나름 쉬웠다.

역시 꾸준히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이정도라면 가볍게 합격이다.


자취방으로 들어와 매트리스에 몸을 맡겼다.

머리를 써서 그대로 자고 싶었지만, 아까 봤던 일기가 떠올랐다.

마침 할 것도 없었기에 천천히 정독하기 시작했다.


일기를 넘기며 넘길수록 내가 썼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만 아는 비밀.

남에게 알려줄 수 없는 나만 아는 이야기.

내가 아니면 모르는 이야기.


그것이 명확하게 일기에 적혀있었다.

게다가 일기면 보통 과거의 일이 담겨있어야 하는데, 이건 미래의 일이 적혀있었다.


2025년 10월 10일.

일기의 제일 첫 번째 부분.

지금으로부터 6개월 후 태양 폭풍에 의해 지구가 멸망한다고 적혀있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대중매체에서 지구가 망한다고 했지만, 그게 내 일기에 적혀있으니 웃기긴 했다.


종말이 일어난다는 일기.

세세한 묘사에 나도 모르게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다만, 미래 일기에는 내가 필기시험에 떨어진다고 적혀있었다.


일기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이 일기가 과연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일기를 꼼꼼하게 살펴봤다.

다행히 사실을 증명할만한 글이 적혀있었다.


복권 번호.

이거라면 이 일기의 말이 사실인지 증명할 수 있을 거다.


일기를 다 읽고 책상에 올려놓았다.

일기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나는 10년 동안 아포칼립스 속에서 살아남다가 죽게 된다.


그렇지만, 나같은 일반인이 단순히 재앙이 다가온다고 알아도 태양 폭풍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는 건지.


- 타닥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

갑자기 일기가 불타기 시작했다.

분명 책상 위에는 불탈만한 물건이 없는데?


당장 옷장에 있는 외투를 꺼내 일기 위에 덮어서 불을 껐다.

아주 빠르게 대처했지만, 야속하게도 일기는 완전히 불타서 재가 되어버렸다.


이러면 답이 없는데···.


- 띠링


[ 일기의 주인 최관우 님을 확인했습니다. 동기화를 시작합니다. ]


일기가 완전히 재가 되어버린 후 게임처럼 푸른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거기에는 내 이름이 적혀있었다.


[ 일기의 내용을 시스템을 통해 언제든지 간편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이거 혹시?

목을 가다듬고 진지한 표정으로 외쳤다.


“상태창.”




- 째깍, 째깍


고요한 자취방에는 빗소리와 시계 소리만 들려왔다.

기껏 상태창을 외쳤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허공에 대고 상태창을 외쳤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침착하게 다시 시스템을 확인해봤다.


[ 동기화 진행 중 1% ]

[ 동기화 완료 시 제작 능력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제작 능력?”


뭘 만드는 거지?

총이라도 만들 수 있는 건가?


[ 오직 당신만이 재앙을 끝낼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할 수 있습니다. ]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다고 기록돼서 그런가?

평범했던 인생이 바뀌고 있는 순간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동기화가 되어야 일이 진행될 것 같았다.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할 게 없으니 복권이나 사러 나갔다.


#


- 쏴아아


여전히 비는 멈출 기세가 없었다.

4월에 비가 이렇게 오는데, 태양 폭풍으로 타죽는다니.

과연 일기의 말이 사실일까?


“어이.”


저 멀리 안경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오는 친구 녀석.

이왕 복권 사러 나온 김에 같이 공부하던 친구 녀석을 불러서 저녁이나 먹기로 했다.


정말로 지구가 망한다면 이렇게 친구와 만나 술 한잔하는 것도 이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야, 시험 잘 봤냐?”

“어?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질문에 당황했다.

미래 일기에서 내가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적혀있었기에 시험에 붙은 것 같다고 당당하게 대답할 수 없었다.


“너는?”

“나는 완전 망한 듯.”


녀석의 얼굴에 그늘이 져 있었다.

같이 필기시험을 봤지만, 녀석은 아무래도 망한 모양이다.


침울해하고 있는 친구 녀석을 데리고 고깃집을 향했다.

시험 망한 친구를 위로하는 데에는 술과 고기가 최고다.


“일단 마셔.”


- 치이익


영롱한 빛깔을 내며 구워지는 삼겹살.

시험을 본 후 먹는 고기는 그야말로 꿀 맛이었다.


고기와 술이 들어가니 나도 모르게 오늘 아침에 읽은 일기 이야기가 절로 나오기 시작했다.


“미래 일기?”

“그래, 6개월 후에 내가 직접 연필로 적은 것 같더라.”


내 진지한 표정을 보던 친구는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너 그냥 소방관 하지 말고 소설이나 써라. 웃기네.”

“아니 진짜야.”


믿기지 않겠지만, 내 글씨체와 나의 비밀이 적혀있었기에 내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일기였다.


“그래서 그 일기에는 뭐라고 쓰여 있는데?”

“세상이 망한다는데?”

“하...”


녀석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주를 들이켰다.

아무래도 시험이 망한 충격이 큰 것 같았다.


“어차피 시험도 망했는데, 이딴 세상 망했으면 좋겠네. 근데, 뭐로 망하냐? 질병? 좀비?”

“태양.”


친구가 삼겹살을 굽던 집게로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야, 오늘만 해도 비가 많이 와서 강남이 잠겼는데, 홍수가 아니라 불에 타죽는다고?”

“어...”

“요새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서 헛걸 본 거야. 지구가 망한다면 벌써 이상징후가 있어야지.”


일반인에게 태양 폭풍이 발생해서 지상의 모든 것이 불탄다고 하면 믿을 녀석이 얼마나 될까.


“아무튼, 미래 일기면 뭐, 복권 번호나 그런 거 알려주는 거 아니야?”

“아, 그래서 하나 샀어.”


일단은 복권을 사긴 했지만, 다만 일기에 적혀있는 번호가 많이 이상했다.

일기에서 특이한 번호라서 기억한다고 적혀있지만, 솔직히 말이 안 됐다.


“제1427회 복권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때마침 가게 구석에 있는 텔레비전에서 복권 추첨 방송이 시작했다.

투명한 볼 안에서 굴러가는 각양각색의 공들.


정말 복권에 당첨되긴 하는 건가?

내 주변에 당첨됐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이 번호는...


“이번 복권 추첨 번호는 1, 2, 3...”


어라?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4, 5, 6. 추가 번호는 7입니다.”


1번부터 7번까지 순서대로 나왔다.

이게 가능한 건가?

말도 안 되는 번호에 시끄럽게 밥을 먹던 식당이 조용해졌다.


정적을 뚫고 옆에서 고기를 구워 먹던 아저씨들의 짜증 소리가 들려왔다,


“복권 번호가 어떻게 저 모양이냐. 나라 망했네.”

“복권도 완전 짜고 치는 거네.”


순간적으로 술이 확 깼다.

미래 일기에서 말한 번호와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보너스 번호까지 같았다.


1,2,3,4,5,6.


눈을 비비고 내 지갑에 들어있는 복권을 꺼내서 다시 화면과 대조해서 보았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번호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복권.

내가 복권에 당첨되었다...


일기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

그러나, 해맑게 웃을 수 없었다.

정말 6개월 후면 지구가 멸망해서 그러냐고?


그것보다는 그동안 노력했던 필기시험에 떨어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다시 소주를 들이켰다.


“번호 틀렸지? 저게 말이 되는 번호냐?”

“하...”

“미래 일기인지 뭔지 그게 있어도 나는 저 번호로 안 쓴다.”


친구는 한숨을 쉬고 있는 내게 계속 술을 따라주었다.


“저런 번호를 수동으로 당첨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웃기겠다. 그치?”

“그래...”


친구 녀석은 내 맘도 모르는지 번호를 비웃기 시작했다.

6개월 후면 지구가 망하고 필기시험에 떨어지고...


오늘따라 술이 쓰다.

어쩐지 문제가 쉽더라...


[ 동기화 진행 중 98% ]

[ 동기화 진행 중 99% ]

[ 동기화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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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타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22.08.21 22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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