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연재수 :
400 회
조회수 :
16,439
추천수 :
1,480
글자수 :
2,061,634

작성
23.05.15 10:00
조회
21
추천
3
글자
12쪽

75. 아직 끝나지 않은 불행 - 6

DUMMY

성의 디저트 요리사라... 나쁜 제안은 아니다. 그런데 이 제안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무엇 때문일까.


“날 내 세계로 보내줄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보내 줄 수 없습니다만.”


역시나 현과장의 느낌, 아니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여왕은 현과장의 인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직 그의 붕어빵에만 흥미가 있을 뿐. 오히려 붕어빵을 먹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그의 귀환을 방해할 게 불 보듯 뻔했다.

현과장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부엌칼, 아니, 단검을 꺼내들었다. 현과장을 중심으로 점점 퍼져가는 긴장감. 여왕을 비롯한 세 사람 뿐만 아니라, 벌레들을 정리하던 키토도 경직된 얼굴이 되어 현과장을 바라보았다.


“싫어.”

“잘못 들었습니다만.”


여왕은 현과장의 대답을 부정하듯, 다시금 되물었다. 하지만,


“싫다고. 여왕님이라고 대접해주니까, 아주 그냥 뭐 좀 되는 줄 아시네. 여보세요, 내가 머리를 숙이는 건, 다 집에 가려고 그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현과장의 당돌한 태도에, 조금씩 당황하기 시작한 여왕. 그녀의 당혹스러움은, 이내 그 앳된 얼굴 위로 뚜렷하게 드러났다.


“난, 여왕입니다만!”

“보니까, 모두 그쪽에게 반말하더만.”

“그... 그쪽?”


당혹스러움 위로 살며시 올라오는 분노. 그러나 현과장은 전혀 개의지 않은 것인지, 그대로 늪 주인의 곁으로 다가가 벌레를 잡기 시작했다. 그의 손에 쥐어진 그 단검으로.


“지금 뭐하는 겁니까? 나랑 이야기 중이었습니다만!”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렇게 왔지. 난 그쪽에 볼 일이 없어요.”


여왕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자,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진 채야와 갓패치. 오직 어흥선생만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여왕을 바라보았다.


“현과장은 보통내기가 아니다냥. 우리보다 한 수 위다냥.”


짤막한 조언을 건네는 어흥선생이었지만, 그는 절대로 여왕을 향해 다가가지 않았다. 마치 그 둘 사이에 두꺼운 벽이 있는 것처럼.


“무례합니다만! 무례합니다만!”

“무례는 무슨. 아니, 세상 어느 누가 그런 공갈협박에 넘어가? 나 현과장, 그 어떤 테러리스트의 위협에도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

“테, 테, 테러리스트?”


여왕은 테러리스트라는 말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모양인지,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원더랜드의 여왕을 향해 테러리스트라니. 기가 막혀 아무런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테러리스트. 틀린 말은 아니랄까나.”

“제정신이야? 완전 맞는 말이지.”


채야와 갓패치는 키득거리며 여왕을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비웃음 가득한 두 사람이었지만, 겉으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그들의 눈동자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이미 지난 일이다냥. 두 사람 그쯤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냥.”

“제정신이야? 저 꼬맹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데!”


어흥선생의 이야기에, 갓패치의 눈 속에 담겼던 분노가 밖으로 쏟아져 흘러나왔다. 그러자,


“난, 모두 원더랜드를 위해서 한 일입니다만!”


자리에서 일어나 강렬한 눈빛을 갓패치에게 보내는 여왕. 서로를 향한 증오 가득한 시선이 불꽃을 튀기며 부딪쳤다.


“그렇게 노닥거릴 시간에, 여기 와서 벌레나 잡으세요.”


그 두 사람을 향해 다그치듯 말한 현과장은, 늪 주인을 향해 달려오는 그 작은 위협들을 다시금 열심히 잡아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 봤자 소용이 없습니다만.”

“소용이 있는 지 없는 지는 해봐야 아는 법. 갓패치, 뭐해? 와서 벌레 안 잡고?”


현과장은 여왕을 가뿐히 무시한 채, 갓패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지금 제정신이야? 그렇게 잡는다고 뭐 달라져?”


투덜대며 현과장을 향해 다가오는 갓패치. 얼굴은 불만투성이였지만, 현과장을 향한 그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볍게 보였다.


“그러지 말고, 우리 늪 주인을 안전한 곳으로 옮길까?”

“제정신이야? 지금 늪 주인에게는 안전한 장소는 없어! 어딜 가나 마찬가지라고.”


늪 주인 곁에 도착한 갓패치도 현과장과 함께 벌레들을 잡기 시작했다. 동물들을 견제하는 어흥선생과 채야. 그리고 벌레들을 정리하는 현과장과 갓패치 그리고 키토. 여왕은 완전히 혼자였다.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예전 동료인 그녀 자신에게.


“난! 여왕입니다만!”

“여왕이고 나발이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조건을 내거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 사람이 이끄는 나라라. 참 나라꼴 잘만 돌아가겠다.”


현과장의 말이 비수처럼 날아가 여왕의 가슴에 꽂혔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맞는 말이었다.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래, 예전 그녀 역시 말이다.


***


“난 이해 못 하겠습니다만!”


접대실 안으로 미우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퍼졌다. 그 맑은 목소리 안에 가득 실린 불만. 그녀의 찡그린 표정으로 미루어 볼 때, 하루 이틀 불만이 쌓인 것은 아니었다.


“그대의 이해가 필요한 건 아니다, 미우.”


어흥선생은 단호한 표정으로 미우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단호한 표정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는 불안함. 그래, 이렇게 미우를 달래고 있는 어흥선생 역시, 미우와 같은 생각이었다.


“갓패치의 말은 절대적이랄까나. 어쩔 수 없다랄까나.”


채야는 고개를 저으며 탁자 위의 찻잔을 들었다. 살며시 떨리는 그녀의 손. 일렁이는 찻잔 속 찻물이 그만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실수랄까나. 실수.”

“이해한다, 마녀. 이해해.”


시녀들이 달려오기도 전에, 바닥에 흐른 찻물을 직접 닦아내는 어흥선생. 그는 다가왔던 시녀들을 전부 돌려 보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는.”


그 이후 작은 침묵이 흘렀다. 선뜻 나서지 못하는 세 사람. 그들은 서로 조차 바라보지 못했다. 눈빛을 보내는 것만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만 같아서. 그런 그때,


“내가 하겠습니다만.”


담담하게 손을 올리는 미우.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결연한 의지는, 남은 두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반대한다. 미우는 어리다.”

“나도 반대한다랄까나.”


부끄럼 탓일까.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두 사람. 그러자, 미우는 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내 몸에 두르고 있는 색은 행동의 붉은색. 행동을 하는 몫은 언제나 나였습니만.”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은 아무런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안타까운 눈빛으로 미우를 바라보는 수밖에.


“그렇게 바라봐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이미 난 결심했습니다만.”


말을 마친 그녀는 그렇게 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문 앞에 다다른 미우. 그녀는 접대실 안의 두 사람을 바라보며, 살며시 웃었다. 전부 초연한 것처럼.


“내가 얻을 것만큼, 나도 희생하겠습니만. 원더랜드를 위해.”


***


현과장의 말에 예전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녀 역시 그렇게 생각한 때가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갓패치의 폭정을 막기 위해. 원더랜드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사랑과 진실, 어둠을 뿌리고 다니는...? 뭔가 좀 이상한데.

어쨌든, 원더랜드를 위해 자신을 바쳤던 여왕, 미우. 그러나 지금 그녀의 모습은 폭정을 펼쳤던 갓패치와 전혀 다를 것이 없었다.


“제정신이야? 제대로 잡아야 할 거 아니야?!”

“그건 갓패치가 흘린 거고! 내가 흘린 게 아니라고!”


바뀐 것은 원더랜드가 아니라, 바로 갓패치. 왕좌에서 내려와 고군분투하던 그가, 지금은 눈빛조차 주지 않았던 일들에 열을 내며 달려들고 있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무엇이 그를 이렇게 변하게 만든 것일까?


“갓패치는 나쁜 사람입니다만!”


여왕은 열심히 벌레를 잡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알고 있어요, 여왕님.”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현과장. 잔뜩 독이 오른 여왕의 눈빛과 담담한 현과장의 눈빛이 서로를 향했다. 그렇게 어느 한 쪽 물러섬이 없던 두 사람.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은 또 한 번 여왕을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여기 누구보다 자비로울 걸.”


현과장의 말에, 채야와 어흥선생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현과장의 말에 동조하듯이.


“갓패치가 그럴 리 없습니다만!”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일도 해볼 만큼 해봤어. 이 정도는 딱 보면 안다고.”


말을 마친 현과장은, 단검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기지개를 켰다.

사뭇 진지하게 돌아가는 분위기. 이런 상황에서, 현과장이 어떤 말을 꺼내 놓을지는, 뭐, 3류 영화의 클리셰처럼 뻔하고 당연한 듯이 느껴졌다.

여왕의 모자란 부분을 말하고, 갓패치를 치켜세우며, 여왕이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말하겠지. 그래, 이게 이야기의 올바른 패턴 되시겠다.

하지만, 여긴 원더랜드. 그런 어설픈 이야기의 클리셰나 패턴이 통하지 않는 엉망진창의 세계. 이후 이어지는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우리들의 인생처럼.


“갓패치가 개새...”

“제정신이야?! 현과장! 단검! 단검!!”


현과장이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찰나, 다급하게 그의 발밑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 갓패치. 순간, 현과장은 뭔가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감지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벌레가 단검을 가지고 도망치는 건가? 아니면? 그 순간, 뒤통수부터 정수리까지 스트레이트로 날아온 단 하나의 기억. 그건 바로, 은빛 불꽃이었다.

현과장은 서둘러 자신의 발밑을 바라보았다.


“이게 왜?!”


아니나 다를까, 그의 예상대로 은빛 불꽃이 일렁이는 자신의 발밑. 단검으로 죽인 벌레의 시체들이 찬란한 은빛 불꽃을 뿜어내며 싱그럽게 불타고 있었다.


“아니, 왜 불이 일어나냐고!”

“제정신이야? 그거야 현과장이 단검을 썼으니까 일어나는 거지!”


현과장과 갓패치가 어찌 할 새도 없이, 불꽃은 늪 주인의 주변으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그런 불꽃을 보며, 철없이 박수를 치는 키토. 하긴 얼핏 보기엔 정말 아름다운 불꽃이기는 했다.


“키토님!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거 아니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키토. 그 역시 현과장을 도와 불꽃을 진화(鎭火)하는 것에 열을 올렸다. 불꽃을 향해 흙을 덮고, 물을 뿌렸다. 하지만,


“그런 거로는 이 독성 강한 불꽃은 사라지지 않습니다만.”


여왕의 말대로 전혀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들. 오히려 그 은빛의 화염들은 더욱 강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 불은 오직 저만이 끌 수 있습니다만.”

“그럼 말만 하지 말고 좀 꺼 봐요!”


현과장은 거들먹거리는 여왕을 향해 윽박을 질렀다. 그러자,


“요리사가 된다면 꺼 줄 수도 있습니다만.”


도리어 거래를 걸어오는 여왕. 아니, 지금까지 했던 그 길고 긴 인생의 강의를 어떻게 받아들인 거야? 분명 조금 반성하는 듯 했잖아?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난 그럴 때입니다만.”


여왕은 아랑곳없이 현과장을 향해 거래를 걸어왔다.

그렇게 즐겁지 않는 담소를 나누고 있는 사이, 어느새 늪 주인의 몸에까지 번진 은빛의 화염. 하얀 늪 주인의 피부에 마치 불꽃이 스며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현과장을 향해 다시금 제안을 해오는 여왕. 그녀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 어떻게 할 겁니까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74 74. 아직 끝나지 않은 불행 - 5 23.05.14 28 3 12쪽
73 73. 아직 끝나지 않은 불행 - 4 23.05.13 24 3 11쪽
72 72. 아직 끝나지 않은 불행 - 3 23.05.12 27 3 11쪽
71 71. 아직 끝나지 않은 불행 - 2 23.05.11 20 3 11쪽
70 70. 아직 끝나지 않은 불행 - 1 23.05.10 29 3 12쪽
69 69. 도움의 대가는... 붕어빵 중독? 23.05.09 28 3 12쪽
68 68. 도움의 손길, 그 정체는? 23.05.08 27 3 12쪽
67 67. 만년필? 정말? - 4 23.05.07 29 3 12쪽
66 66. 만년필? 정말? - 3 23.05.06 31 3 11쪽
65 65. 만년필? 정말? - 2 23.05.05 31 3 11쪽
64 64. 만년필? 정말? - 1 23.05.04 34 3 12쪽
63 63. 인생은 한방 가챠 카지노! - 3 23.05.03 35 3 12쪽
62 62. 인생은 한방 가챠 카지노! - 2 23.05.02 30 3 11쪽
61 61. 인생은 한방 가챠 카지노! - 1 23.05.01 36 3 12쪽
60 60. 돌아온 일상 23.04.30 29 3 11쪽
59 59. 갑자기 전설급 능력이?! 23.04.29 30 3 11쪽
58 58. 원수는 동굴 안에서 23.04.28 34 3 11쪽
57 57. 능력 가챠 - 2 23.04.27 36 3 12쪽
56 56. 능력 가챠 - 1 23.04.26 33 3 12쪽
55 55. 결성! 미드나잇 클럽! 23.04.25 34 3 12쪽
54 54. 암살 23.04.24 30 3 12쪽
53 53. 포상 - 3 23.04.23 30 3 12쪽
52 52. 포상 - 2 23.04.22 27 3 12쪽
51 51. 포상 - 1 23.04.21 28 3 12쪽
50 50. 코스프레 대회, 그리고... 23.04.20 27 3 12쪽
49 49. 코스프레 대회 - 3 23.04.19 32 3 11쪽
48 48. 코스프레 대회 - 2 23.04.18 29 3 12쪽
47 47. 코스프레 대회 - 1 23.04.17 33 3 12쪽
46 46. 키토의 다이어트 - 2 ... 아니잖아?! 23.04.16 35 3 12쪽
45 45. 키토의 다이어트 - 1 23.04.15 34 3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