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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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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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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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더욱 진해지는 예언

DUMMY

갓패치가 곽자에게 정신교육을 행하고 있을 무렵,

성으로 돌아온 여왕은 침실에 앉아 깊은 시름에 잠겨있었다.

잊어보려고 해도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 오늘의 일들. 마치 악몽처럼 자꾸만 자꾸만 그녀의 생각 속으로 엄습해 왔다.

불길을 못 잡은 그녀의 냉기 때문은 틀림없이 아니었다. 오전 내내 숲을 헤맨 과로가 불러일으킨 작은 나비효과임이 분명했으니까. 그렇다면, 현과장이 요리사 제안을 거절해서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똑똑.]


그렇게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바로 그때,

누군가가 그녀의 침실문을 살며시 두드렸다. 시녀나 하인들이 버릇없게 주인의 방에 노크를 할리 없었다. 그렇다면 신하들인데. 그들 역시 이미 모두 물러간 늦은 시간인 지금, 도대체 누가 남아서 자신의 침소에 발을 들이려고 하는 것일까.


“밤이 늦었습니다만.”


마침 짜증이 올라오고 있던 차에, 그녀는 마음속에 담긴 짜증을 전부 담에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러자,


- 소인, 요간입니다.


나지막이 들려온 늙은 남자의 목소리. 순간, 여왕의 얼굴에 먹구름이 더욱 짖어졌다.


“알현실에서 기다렸으면 좋겠습니다만.”

-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이어서 복도를 떠나가는 구두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들려왔다. 그 구두소리가 옅어지자,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나는 여왕. 그녀는 그대로 침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전혀 원치 않은 만남을 위해.


***


“산책은 즐거우셨습니까?”


늙은 남성은 왕좌에 앉은 여왕을 바라보며 머리를 조아렸다.

작은 키, 덥수룩한 수염, 낮은 어투. 그리고 어울리지 않은 붉은색 정장. 그의 눈매에서는 강한 욕망과 욕심이 가득이 느껴졌다.


“즐거웠습니다만. 요간님은 어쩐 일로?”

“진언을 드리려고 잠시 들렀습니다.”


진언이라는 그의 말에, 여왕은 아무런 말없이 요간을 바라보았다.


“제가 조사한 바로는, 그 현과장인가 하는 인물. 죽지 않는다는데. 이만 붉은색을 내려놓으심이 어떠하시옵니까?”


그의 말에, 순간 안색이 굳어진 여왕. 그녀의 발밑을 중심으로 차가운 기운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말해 보시겠습니까만?”

“여왕님, 이제 인정하셔야 합니다. 그분들과는 더는 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간의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더욱 세차가 뿜어져 나오는 냉기. 여왕은 그 냉기를 멈출 마음이 전혀 없는 듯했다.


“붉은색을 빼앗은 사람들입니다. 이건 도전입니다, 여왕님.”

“색에 관한 권리는 원래 갓패치가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만.”

“하지만, 지금 원더랜드의 주인은 여왕님이십니다.”


냉기가 발끝까지 다가왔음에도 전혀 생각을 굽히지 않는 요간. 생각을 돌린 쪽은 오히려 여왕이었다.

알현실 바닥에 짙게 깔린 지독한 냉기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진언 감사합니다만,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중요한 이야기라는 여왕의 말에, 요간은 얼굴을 들어 여왕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갓패치와 그 일행보다 중요한 안건이 어디 있을까. 요간은 살며시 의심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여왕의 말에 완전히 날아가 버린 그의 의심. 그의 얼굴에 낮은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원더랜드에 용이 태어났습니다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헛소문입니다! 원더랜드는 용이 태어날 수 없는 곳입니다!”


요간은 격분어조로 여왕의 말을 부정했다. 용이라니 가당치 않은 존재였다.


“내 눈으로 봤습니다만.”

“그 파멸이 상징을 말입니까, 여왕님?”


요간은 도무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원더랜드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용이라는 존재. 적어도 근 1000년 동안에는 그 모습이 발견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여왕의 시대에 용이 태어나다니. 이건 길조일가, 아니면 흉조일까.


“내가 말한 예언대로입니다만.”


알현실에 낮게 깔리는 여왕의 목소리.

그랬다. 그녀가 침실에서부터 깊게 고민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본 예언. 그녀는 이제 곧 원더랜드에 닥쳐올 무시무시한 일들 때문에 도무지 마음을 편히 먹을 수가 없었다.


“예언이라고 하심은...”

“인간체스를 제압한 자가 원더랜드를 무너뜨린다.”


여왕의 말에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는 요간. 그녀가 말한 예언에는 용이란 존재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여왕님, 그 예언은 용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만. 있습니다만.”


진지하게 요간을 바라보는 여왕. 그를 향한 그녀의 눈빛에는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과 공포가 가득 차 있었다.


“내가 본 예언에는, 작고 하얀 용이 인간체스장 위를 날고 있었습니다만.”


***


햇볕이 따스하게 파고드는 이른 아침.

이제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가 현과장의 머리맡에 누워있다.

한 마리는 키토. 그리고 다른 한 마리는 늪 주인.


“부럽다냥! 정말 부럽다냥!”


이런 현과장을 바라보며 부러움의 눈빛을 마구마구 보내는 어흥선생. 부러움이 넘처 이제는 샘이 날 지경이었다.


“그만 일어나라냥! 더는 날 부럽게 만들지 마라냥!”


어흥선생의 닦달에 그제야 침대에서 일어난 현과장. 기지개를 켠 그는, 자신의 침대 위에 벌어진 작은 난장판에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어흥선생 옆에 섰다.


“아니, 저 둘이 왜? 나 분명 문을 닫고 잤는데?”

“창문으로 들어온 것이 분명하다냥.”


어흥선생은 손가락으로 현과장의 방의 구석에 있는 작은 창문을 가리켰다. 그의 추리대로 완전히 열려있는 방의 창문. 군데군데 검은 털과 발톱자국이 보이기도 했다.


“이 정도 추리실력이면, 사건하나 금방 해결할 수 있겠어, 어흥선생.”

“과찬이다냥.”


추리실력? 사건? 이 사람들이 또 그런다! 내가 누누이 말했잖아. 사람들은 추리 소설 싫어한다니까! 돈이 안 된다니까! 그냥 보고 즐기는 걸 좋아하셔요! 독자님들은!


“칫, 아무래도 추리 여행은 다음에 해야 할 것 같다냥. 누가 쫑알쫑알 시끄럽다냥.”

“누가? 누가 시끄러운데, 누가?”


현과장은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본다고 보이냐, 현과장?


“현과장, 그런 모습 보기 추하다냥. 그냥 잊어라냥. 우리에겐 추리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까냥.”

“중요? 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현과장은 고개를 멈추고 이내 어흥선생을 바라보았다. 사뭇 진지한 어흥선생의 표정. 그런데 도대체 중요한 게 뭐야? 내가 준비한 이야기의 흐름에는 지금 그렇게 중요한 게 없는데.

그러나, 어흥선생은 달랐다. 무척이나 진중하고 진지한 그의 얼굴. 마치 일생일대의 전장에 출진하는 것처럼, 그는 비장하기까지 했다.


“잘 들어라냥.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건, 지금...”


***


거실에 앉아있는 현과장, 채야, 그리고 어흥선생.

그들의 얼굴에는 엄숙한 비장감이 가득했다.

그들 못지않게 진지하게 앉아있는 키토.

오직 진지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늪 주인 그 혼자뿐이랄까.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나도 그렇다냥.”

“두 번 다시없을 줄 알았다랄까.”


말을 마친 세 사람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늪 주인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는 우리의 늪 주인. 현과장의 허벅지 위에 털썩 누워있던 그는, 있는 힘껏 하품을 하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키토님은 활기찬데, 늪 주인님은 얌전하다냥. 뭐 성깔은 한 성깔하시지만.”


어흥선생의 날카로운 추리에, 긍정의 눈빛을 보내는 키토. 이어서 그는 어흥선생의 머리 위로 올라가, 이마를 툭툭 건드렸다.


“난 정말 이대로만 살고 싶다냥. 여긴 천국이다냥.”


어흥선생의 얼굴에 행복 가득한 미소가 은은하게 번져 나갔다.


“난 밭일 도와주는 키토님이 있어서 살 것 같다랄까나.”


이어지는 채야의 칭찬에, 살며시 그녀를 바라보며 윙크를 날리는 키토.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채야는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귀엽고 아름다운 키토가 윙크라니! 나도... 제발 나도! 이거 상상만 해도 무지 행복하잖아!


“어흥선생, 못 봤지? 키토님이 나에게 윙크를 했다랄까나~”

“할매, 거짓말은 못 쓴다냥. 어디서 먹히지도 않을 거짓말을 하냥?”

“진짜랄까나~ 진짜랄까나~”


순간, 어흥선생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니, 할매라는 말에 아무런 반응이 없다니. 그렇다면, 채야의 말이 모두 사실? 어흥선생의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지금 이곳에서 그 누구보다 키토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자신인데, 어째서 윙크는 얼굴만 번지르르한 채야에게 하는 것일까. 속상함이 눈앞을 가렸다.


“어흥선생, 그만 풀 죽어있어. 키토님이 어흥선생 머리 위에 있으니까 당연히 윙크를 못 받잖아.”

“아! 그렇다냥! 그건 거다냥?!”


사랑은 사람을 눈을 멀게 하고 멍청하게 만든다. 어떻게 아냐고? 지금 어흥선생을 보면 알 수 있잖아. 저 모습이 어떻게 원더랜드 최고의 두뇌야. 그냥 동네 아는 형이지.


“자자, 이제 집중. 오늘 이렇게 모인 이유는 따로 있으니까.”


현과장의 진중한 목소리가 거실을 가로지르자, 모두의 시선이 현과장을 향했다. 아, 단 한 존재, 늪 주인 빼고.


“자, 그럼 이제 새로운 가족이 된 늪 주인님의 이름을 정해보도록 합시다!”


이름이라는 소리에, 살짝 실눈을 뜬 늪 주인. 아무래도 숲 주인인 친구가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 내심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누가 먼저 발표해볼래?”

“내가 먼저다냥!”


현과장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을 번쩍 드는 어흥선생. 역시나 그의 주인님들을 향한 사랑은 참이다, 참 사랑.


“귀염뽀작 하얀 용, 어떠냥?”


그래, 사랑이 깊다고 해서 네이밍 센스가 탁월한 것은 아니다. 그래, 어떨 때는 의욕만 앞설 때도 있는 법이다, 그래.


“자, 다른 의견.”


가뿐히 어흥선생의 말을 무시한 현과장. 하지만 어흥선생은 싱글벙글. 왜냐면 아직도 키토가 그의 머리에 앉아있기에.


“늪 주인이니까, 늪쥔 어떨까나?”


늪쥔? 그거 그냥 늪주인 빠르게 발음한 거잖아. 현과장의 얼굴에 살며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아니, 좀 직관적이고 딱 들으면 아! 하고 느낌표가 딱 설만한 그런 이름 없어? 봐봐 키토, 얼마나 좋아? 안 그래 키토님?”

[짝짝짝!]


현과장의 말에, 앞발로 박수를 치는 키토.

그래 봤자 토끼를 거꾸로 한 거잖아. 키토, 이런 모사꾼의 말에 속으면 안 된다고.


“자자, 다음다음! 빨리 빨리!”

“그럼 매끈매끈 새끈새끈 아기용은 어떠냥?”

“아니면, 늪쥔장? 늪쥔장은 어떨까나?”


뭐가 매끈매끈이고 뭐가 쥔장이야, 젠장! 아니, 이 인간들 네이밍 센스 왜 이래? 현과장의 얼굴에 시름이 가득 차올랐다. 이러다가 또 혼자 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바로 그때,


“제정신이야? 이런 중요한 일에 날 두고 회의를 해?”


어디서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어느새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갓패치. 뭐 사실은 아침밥을 얻어먹으려고 온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그 역시 늪 주인의 이름에 당당하게 출사표를 내밀었다.


“제정신들이야? 이름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모두를 향해 자신만만한 미소를 내비치는 갓패치. 모두의 시선이 갓패치를 향했다. 심지어 늪 주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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