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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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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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3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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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1화 아이 낳고 싶어요.

DUMMY

준영은 벌떡 일어났다.


거하게 차려진 상을 딛고 올라섰다.


그런 다음 최인혁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녀석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윽.


또 주먹을 날렸다.


“윽. 이게 무슨 짓이야? 미쳤어?”

“그래. 미쳤다. 나 미친놈이야. 몰랐니? 내가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너만큼 미친놈은 아니야.”

“이 자식이! 너, 죽고 싶어?”

“나도 널 한 방에 보내버리고 싶은데 도저히 안 되겠다. 세 방은 날려야 화가 풀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는 파이널 펀치를 녀석의 턱에 꽂았다.


파이널 펀치를 맞은 최인혁은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아아! 간만에 힘 좀 썼더니 배가 고프네. 집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겠다.”


그는 최인혁에게서 떨어져 나온 다음, 음식상을 넘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한 봉지에 10 억짜리라면. 맛이 죽이거든.”


그는 방을 나갔다.


#


후회를 한 건 사실이다.


최인혁과의 식사자리에서 있었던 일.


후회가 안 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식의 오만함이 불쾌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주먹을 날리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냥 10 억을 주겠다는 최인혁의 제의를 거절하고 조용히 나왔어야했다.


그랬다면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 텐데.


‘내가 누군가에게 주먹질을 하다니! 미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그가 법적 책임을 물을까?’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나름의 판단은 섰다.


가진 게 많은 사람은 매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는 나를 자극할 수 있는 일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제의가 폭행을 유발했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은 뻔한 일 아닌가!


‘그러나 내게 맞은 세 방을 두 배로 되돌려주고 싶어 할 수는 있다.’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그러나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많은 것을 가졌고, 나는 가진 게 조금 밖에 없다. 두 사람이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진흙탕 싸움을 벌이면 내가 이긴다.’


그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도 나를 고소하지는 못한다.


은밀하게 보복을 할지는 몰라도.


이유야 어쨌든!


명색이 의사가,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의사가 주먹을 휘둘렀다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래서 준영은 마음이 불편한 것이었다.


다시 만나면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겠다.


‘그러나 그를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없었으면 좋겠다.


#


최인혁을 다시 만날 일이 있을지는 몰라도 윤지현을 다시 만날 일은 있었다.


고급 한정식 집에서 고급스런 음식을 앞에 두고 고급스럽지 않은 대화를 주고받던 끝에 정말 고급스럽지 못한 주먹을, 고급스런 최인혁의 턱에 날렸던 그 며칠 후였다.


윤지현이 전화를 걸어왔다.


한의원으로.


-죄송합니다만 진료가 끝나고 난 뒤 찾아뵀으면 좋겠습니다. 직원도 퇴근하고, 혼자 계실 때요.-


그녀의 목소리는 간절했고 정중했다.


-저 혼자 있을 때요?-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 잘 알지만 제 입장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장님, 안 될까요?-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얼굴이 알려진 스타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은 잘 알겠지만 번번이 이러는 건 곤란하다.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7시까지 진료하니, 7시 30 분에 오시죠.-

-감사합니다. 그 때 뵙겠습니다.-


그녀는 약속시간에 맞춰서 한의원으로 찾아왔다.


“선생님께 임신이라는 말씀을 듣고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임신이 맞더라고요.”

“아 예. 그렇습니까?”


그는 최인혁을 만났다는 말, 그를 통해서 이미 알고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임신을 축하 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정말 놀라워요. 어떻게 진맥만으로 임신을 알 수 있는지? 대단 하세요.”


이런 찬사 역시 최인혁에게 들은 이후였다.


하지만 그는 상체를 약간 숙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


“제가 원장님을 믿고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네요.”

“의사는 환자의 의료정보에 대해 외부에 발설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말씀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걱정이 되시면 말씀하지 마세요. 저 역시 부담스러우니까요.”


윤지현은 잠깐 동안 고심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뇨. 말씀 드릴게요. 사람을 잘 믿는 편은 아니지만 원장님은 믿습니다.”

“윤지현 씨의 믿음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사실은 제가 유산 경험이 있어요.”

“아 예.”

“그것도 두 번이나요.”


그는 최인혁을 떠올렸다.


두 번 다 상대는 최인혁이었을까?


아니면 이번 만인가?


궁금했지만 차마 물을 수는 없다.


사생활 영역이지 의학의 영역은 아니다.


“처음엔 2개월 만에, 두 번째는 3개월만에요.”

“자연 유산이었나요?”

“예. 의사 선생님이 걱정하시더라고요. 이러다 습관성 유산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요.”

“혹시 친정어머니께서, 아! 아직 결혼을 안 하셨죠?”

“예.”

“죄송합니다. 결혼을 안 하셨으면 친정어머니라는 표현은 좀 그러네요.”

“괜찮습니다.”

“어머니께서도 유산을 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유전적인 경우도 있거든요.”

“아뇨. 제가 알기로는 없어요. 그리고 결혼한 언니도 애를 둘이나 낳았는데 순산했어요. 조카들도 건강하고요.”

“그렇습니까?”

“호르몬 검사에서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고요. 자궁경관이 무력하면 아기를 잘 간직하지 못해 유산을 할 수 있다고 하던데, 저는 그 경우도 아니고요. 아무튼 딱히 꼬집을만한 이유도 없는데, 두 번이나 유산 했거든요.”


그는 그녀가 뭘 원하는지 짐작이 갔지만 듣고만 있기로 마음먹었다.


“원장님. 저 이번에는 아기를 낳고 싶어요. 유산을 방지할 수 있는 한약이 있지 않나요?”

“예. 있습니다.”

“그 한약 저 좀 지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유산만 막을 게 아니라 이왕이면 건강한 아기를 출산하시면 좋지 않을까요?”

“그러면 더 바랄 게 없죠.”

“이왕이면 총명한 아이면 더 좋지 않을까요?”

“아! 총명탕 말씀이신가요? 저도 들어봤어요. 그런 한약이 있다는 말. 그렇게 지어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예쁘고 건강한 아기 꼭 낳고 싶어요.”


윤지현은 일어나더니 허리를 완전히 접어 감사를 표했다.


놀란 그도 벌떡 일어나 같이 인사를 나눴다.


어쨌든 최고의 스타에게 인사를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


숙지황 8g

당귀, 천궁, 볶은 건강, 살짝 볶은 애엽, 볶은 감초 각 4g

향부자, 백작약, 백출, 사인, 소엽, 진피 각 4g

박하, 천마 2g,


윤지현, 그리고 그녀의 뱃속 태아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약의 처방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이 처방에 3가지 약을 추가했다.


그래야 이 약이 효과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장희재에게 납치되어 조선으로 끌려갔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임치두도 떠올렸다.


애제자 임치두!


“스승님. 마취제의 처방 구성을 알려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임치두는 매달리며 간청했다.


“안 된다. 아이에게 칼을 쥐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그 때 제자의 간청을 매몰차게 뿌리쳤던 허 의원의 심정이 이해됐다.


그래서 그도 이 세 가지 약물은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간혹 조선의 최고 명의 허준영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영인가? 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영이 지금의 나인가?’


그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


10 여일 후.


윤지현은 준영을 찾아왔다.


“제가 지어드린 한약을 잘 드시고 계시나요?”

“아뇨.”

“아니, 왜요?”


윤지현은 한참동안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그를 바라보았다.


“저, 유산했어요.”


그녀의 눈 가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를 책망하는 눈빛이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유산을 하셨다고요? 그럴 리가요?”

“원장님이 지어주신 한약, 정말 열심히 챙겨 먹었어요. 집에서는 물론이고, 드라마 촬영장에서도요. 가급적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드라마 촬영에만 응했어요. 이미 방영중인 드라마라서 안 할 수가 없거든요.”

“그럼요. 저도 그 드라마 잘 보고 있습니다.”


사실이었다.


평소 드라마를 꼭 챙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는 꼭 챙겨봤다.


재미있었고, 그녀의 연기도 좋았고, 시청율도 높았다.


드라마에 대한 기사, 그녀에 대한 기사도 눈에 보이면 꼼꼼히 읽었다.


“원장님이 지어주신 한약! 느낌이 좋았어요. 원장님을 믿는데다가 순산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서 그런지 맛도 좋았어요. 기분상 그런지는 몰라도 피로도 덜하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전보다 훨씬 수월했고요.”


이런 경우는 종종 있다.


약이 자신에게 잘 맞으면 쓰디 쓴 한약도 꿀맛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한약을 복용하고 유산이 됐다니!’


그는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한약 때문에 유산이 되었다고 단정 짓는 것은 경솔하다.


한약을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산이 됐을 수도 있다.


한약의 효과보다 유산의 힘이 더 강하면?


그럴 수 있다.


브레이크를 밟아도 주행 속도가 높으면 앞차를 들이받게 되는 것처럼.


또한, 한약의 효과는 즉각 나타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한약의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유산이 될 수도 있다.


윤지현이 어느 경우인지는 아직은 알기 어렵다.


그녀의 말을 좀 더 들어봐야 하고, 다시 살펴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지어준 한약 때문에 유산이 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는 그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 누가 알아주겠나!


당신의 주장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대라면, 그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윤지현이 그가 지어준 한약 때문에 유산이 됐다고 주장하면, 억울하지만 당할 수밖에 없다.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런데 나흘 전부터 아랫배가 살살 아팠어요. 느낌이 안 좋았어요. 지난번에 말씀 드렸지만, 전에 유산할 때도 그랬거든요.”


그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 다음날 아침. 자고 일어났더니 팬티가 다 젖어있었어요. 깜짝 놀라 살펴보니 하혈을 했더군요. 얼마나 하혈을 많이 했던지, 패드는 물론 침대 시트까지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어요.”


그녀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운지 어깨를 들먹였다.


“말씀하시기 힘드시면 잠시 쉬었다가 하셔도 됩니다.”


그녀는 숨을 고른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다행히 드라마 촬영이 없는 날이라서 산부인과에 갔더니 유산 됐다고 하더라고요.”


“안타깝군요.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어드린 한약 때문은 아닙니다. 그 약에는 임산부한테 써서는 안 되는 약은 한 가지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이 말이 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한의사로 비쳐질 뿐이기 때문이고, 이 말이 오히려 그녀의 화를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만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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