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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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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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3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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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0화 가난

DUMMY

“예찬이가 지금 대기실에 있는 한약장의 한약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있는 것 같네요?”

“예. 맞습니다. 원장님.”

“아하! 그렇군요.”


지금의 한약장은 그가 병원에서 근무할 때의 그것과 동일한 순서로 만들어졌다.


그러니 이 한약장의 한약배치순서는 그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도 이 한약장의 한약 위치를 순서대로 외우지는 못한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공부해야 할 게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찬이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동안 다 외웠나보네요.”

“그 많은 걸요?”


그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안 많아요. 쉬워요.”


대답은 예찬이가 했다.


잘난 척하면 미울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그는 예찬이에게 씨익 웃어준 다음 말을 이었다.


“한약장의 한약 이름이 다 한자로 되어 있는데, 예찬이가 한자도 아나요?”

“예. 가르친 적은 없지만 꽤 많이 알아요.”


그는 놀란 표정으로 예찬이를 바라보았다.


예찬이는 한약장의 한약 이름을 신나게 읊어대고 있었다.


“그만 해. 예찬아.”

“아니에요. 어머니. 좀 더 지켜보고 싶은데요.”


예찬이의 한약 이름 외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조금의 막힘도 없었다.


그 때, 인터폰이 울렸다.


-원장님. 대기실에 환자분들이 기다리고 계세요. 세 분이나요.-

-알았습니다.-

“밖에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나 보네요. 죄송해서 어쩌죠?”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제 다 끝나갑니다.”


그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예찬이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하려했다.


“왜요?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 거 같은데······.”

“아닙니다.”


그는 다시 예찬이를 보며 말했다.


“예찬아. 이제 진맥 할 거야.”

“진맥? 나, 진맥 알아.”


진맥을 하는 그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허맥(虛脈)과 미맥(微脈)이 겨우 잡혔다.


그리고 규맥(芤脈)


규맥은 흔히 출혈맥이라고 해석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경험에 의하면 면역력이 떨어져도 규맥이 자주 나타난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으로 한약 처방이 떠올랐다.


한약으로 서울의 공기를 맑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찬이의 면역력을 높일 수는 있다.


서울의 이 지독한 공기 속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독한 놈들이 많다.


미세 먼지보다 더 지독한 놈들이다!


예찬이도 그 놈들처럼 지독한 놈으로 거듭 태어나게 만들어야한다.


한약으로.


그리고 그는 한 가지 치료법을 머리에 떠올렸다.


뜸((灸).


예찬이에게는 침보다 뜸을 뜨고 싶었다.


그는 한의학적으로 예찬의 아토피는 열로 인해 발병하는 것이라 보았다.


열에는 실열(實熱)과 허열(虛熱)이 있다.


실열은 나쁜 기운, 사기에 의해 생기는 것이고, 허열은 허약해서 발생하는 열이다.


그러니까 허열은 가짜 열인 셈이다.


체온계에는 잡히지 않는 열.


예찬이의 열은 허열에 속한다.


그는 예찬을 소음인이라 확신했다.


그는 소음인에게 쓸 수 있는 여러 처방 중에 보중익기탕(補中益氣湯)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부족한 기를 돋우어 허열을 잡는 것이다.


인삼 황기 백출 당귀

진피 자감초 곽향 소엽


이제마 선생이 사상의학에서 제시한 보중익기탕이다.


동의보감에도 보중익기탕이 나온다.


그러나 두 가지 보중익기탕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동의보감의 보중익기탕에는 승마와 시호가 들어간다.


그러나 사상의학에서는 승마는 태음인에게만 쓰는 약이고, 시호는 소양인에게만 쓰는 약이다.


사상의학에서의 소음인 보중익기탕에서는 승마와 시호를 빼고 대신 곽향과 소엽을 넣는다.


그는 예찬이에게는 이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보중익기탕이 다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는 사상의학의 보중익기탕을 쓸 생각이었다.


그 쪽이 더 다이내믹한 효과가 날 거란 믿음이 있었다.


물론 체질이나 원인을 잘못 진단했을 때는 부작용도 그만큼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했다.


또 한 가지 뜸 치료를 병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의원에서 뜸 치료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


뜸 치료를 위해서는 침 치료실과 구별되는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 좋다.


닥트나 환기통도 만들어야한다.


그래도 한의원 내에 쑥 냄새가 진동을 한다.


문제는 또 있다.


뜸 치료에는 직접구가 있고 간접구가 있다.


직접구는 맨살에 직접 쑥뜸을 뜨는 방법인데, 화상을 유발하는 치료법이니 당연히 뜨겁다.


요즘 세태가 미용에 신경을 많이 쓰는 추세이니, 화상 상처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잘못하면 병 고쳐주고 항의 받을 수 있고, 피해보상을 요구 받을 수도 있다.


게다가 화상부위가 짓무르는 경우도 있다.


뜸을 떠서 짓무르는 것은 뒤탈이 거의 없지만, 물이 닿아서 짓무르면 덧 날 수 있다.


샤워를 자주하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이래저래 맞지 않는 점이 많다.


그래서 요즘은 간접구를 활용한다.


옛날에는 마늘이나 생강을 앏게 썰어 뜸 부위에 놓고 그 위에 쑥뜸을 올려놓는다.


그러나 요즘은 간접구를 간편하게 할 수 있게 여러 가지 형태의 뜸 도구들이 많이 나와 있다.


간접구는 직접구에 비해 뜨거움도 훨씬 덜하고 화상의 위험도 낮을 뿐만 아니라 상처도 흐릿하다.


그러나 간접구도 냄새 문제는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


더 난감한 문제가 있다.


뜸은 보통 30분이나 1시간 정도 걸린다.


침은 자침한 후 특별한 일이 없다면 다른 일을 하다가 발침할 때만 환자에게 가면 된다.


그러나 뜸을 뜰 때는 뜸 치료가 끝날 때까지 사람이 환자 옆에 붙어 있어야한다.


뜸 치료를 하는 동안 환자가 움직이면 쑥뜸이 굴러 맨살에 떨어질 수도 있고, 옷이나 침대 커버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더구나 자폐증의 예찬이에게 뜸을 떠놓고 혼자 내버려 두는 것은?


아!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이건 가스통 옆에서 담배 피우는 것만큼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한의원 경영측면에서만 따지면 뜸은 뜨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러나 그는 예찬에게 뜸을 뜨고 싶었다.


예찬의 아토피가 나을 수만 있다면, 그는 이 정도의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예찬이와 엄마를 설득해야하고, 차 선생과 조 선생도 설득해야한다.


남자에게 관심이 많을 나이의 두 선생이 옷에 쑥 냄새를 묻히고 데이트에 나가려할지?


그가 머릿속으로 이런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인터폰이 또 올렸다.


-원장님. 기다리시던 세 분 다 돌아가셨고요.-


약간 삐진 것 같은 차 선생의 말투다.


-1시간 반 기다리다가 가신 환자 분은 욕도 하셨어요. 어떤 욕 하고 가셨는지 말씀 드려요?-

-아니 뭐 그럴 거까지는 없고······.-

-그리고 새로 두 분이 오셨는데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냐고 물으시네요.-

-조금만 기다리시면 된다고 전해 주세요.-

-원장님. 30분 전에도 그 말씀 하셨거든요.-

-이번에는 진짜에요.-


그는 차 선생이 또 뭐라고 할 것 같아 인터폰을 재빨리 끊어버렸다.


“환자 분이 기다리시다가 가셨나 봐요? 죄송해서 어쩌죠?”


예찬이어머니는 정말 울상이 되어 말했다.


“아닙니다.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그거는 그 사람들 문제지 예찬이 어머님 잘못은 아니에요. 자아! 그건 그렇고, 지금부터 예찬이 치료 방침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의 치료 방침에 대해 다 들은 예찬의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면 치료비가 많이 들겠죠?”

“예? 예. 아, 아무래도 비용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예찬이어머니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원장님. 마음 같아서는 다 해주고 싶은데 형편이 허락하지 않네요.”

“예. 그러시군요.”

“오늘은 그냥가고 며칠 좀 생각한 후에 다시 찾아뵈면 안 될까요?”

“왜 안 되겠어요. 그, 그렇게 하세요.”

“정말 죄송해요. 환자들도 여러 명 기다리다 그냥 돌아가셨는데요.”

“아유, 괜찮습니다. 그 분들 다 다시 오실 테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예찬아. 선생님께 인사드리고 가자.”


예찬이는 의자에서 일어서더니 배꼽 인사를 하고는 원장실을 나갔다.


“잠깐만요. 예찬이 어머님.”


그는 탕제실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더니 뭔가를 꺼냈다.


요구르트 병만한 약통이었다.


그리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 그 약통을 예찬이어머니 앞에 내밀었다.


“이거 제가 순수 한약으로 만든 연고인데요. 하루 두 번씩 예찬이 환부에 발라주세요. 이것만 발라도 훨씬 덜 가려울 거예요.”

“감사합니다, 원장님.”

“이 약은 반드시 냉장 보관 하시고 삼 개월이 지나면 아깝더라도 버리세요. 방부제가 들어 있지 않아서 오래 사용하시면 안 되거든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얼마 드려야······?”

“그냥 드리는 겁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머! 저거 비싼 약인데······.”


조 선생이 혼잣말처럼 한 말이지만 그의 귀에 들렸다.


그는 눈빛으로 조 선생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다.


“예? 아, 아니 이러시면······.”

“괜찮습니다. 저, 환자 진료해야 하거든요. 안녕히 가세요. 다음 분 내 방으로 들어오시라고 해요.”


그는 예찬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후 원장실로 들어갔다.


#


예찬이어머니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한의원에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예찬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꽤 바쁜 일상속에서도 그들 모자가 문득문득 떠올랐다.


예찬이 어머니는 남편하고 오래전에 이혼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백반 집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한다.


예찬이는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보호의 손길이 필요하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예찬이네 경제형편이 어려울 거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 예찬이에게 비싼 한약을 권했으니 뒤로 나자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이 더 무거웠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그 모자에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토요일은 평일보다 일찍 진료를 마친다.


그는 퇴근길에 진혜리와 마주쳤다.


“원장님. 퇴근하시나봐요?”

“예. 퇴근합니다. 아! 드라마! 저기 뭐냐? <종합병원 사람들>! 혜리 씨, 그 드라마에 나왔었죠?”

“어머! 그 드라마 보셨어요? 저, 거기 나온 줄 아무도 모르는데!”

“야아! 혜리 씨 연기 정말 기가 막히던데요? 온몸으로 소름이 쫘악 끼칠 정도로요. 그 정도면 연기 대상을 받아도 세 번은 받을 수 있을 만큼 기가 막힌 연기던데요.”


진혜리의 표정이 돌변했다.


“원장님. 지금 저 놀리시는 거죠?”

“예? 아, 아닌데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치이.”

“죄송해요. 난 혜리 씨가 좋아할 줄 알았죠.”

“우이 씨이. 정말 너무해요.”


진혜리가 화내는 이유?


드라마 <종합병원 사람들>의 남자 주인공이 버스위에 오른다.


남자 주인공은 버스 통로를 따라 뒤편으로 들어간다.


그 때 남자 주인공의 좌우로 네댓 명의 승객이 프레임 안에 잡힌다.


그 네댓 명의 승객 중 한명이 진혜리다.


그게 전부다.


정말이지 그게 다다.


그 드라마 끝날 때까지, 진혜리는 다신 안 나온다.


그런 그녀에게 연기가 기가 막히더라고 했으니 화 낼만도 하다.


“혜리 씨. 저하고 차 한잔하실래요?”

“싫어요.”

“왜요? 저녁 식사 시간 전이라 안 바쁘지 않아요?”

“안 바빠요. 저, 지금 너무 한가해요. 그래도 원장님하고 차 마시기 싫어요.”

“왜요?”

“몰라서 물으세요? 사람 놀리기나 하고······.”


키킥!


“미안해요. 장난 한 번 친 거예요. 아!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그 드라마에 혜리 씨 나온 것도 모르는데 전 알았잖아요. 그것만 해도 어디에요?”


두 사람은 한의원 근처의 커피숍에 마주 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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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26화 세상은 요지경! +1 23.05.21 2,547 37 12쪽
25 25화 마동수와 윤지현 23.05.20 2,558 42 12쪽
24 24화 마동수와 각종 얼라들 23.05.20 2,505 41 12쪽
23 23화 마동수! 23.05.19 2,597 37 12쪽
22 22화 협박! 23.05.19 2,589 40 12쪽
21 21화 적과의 동침 23.05.18 2,606 45 12쪽
20 20화 세계최강 브라질! 23.05.18 2,630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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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6화 초인적인 정신력 23.05.16 2,781 4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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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미친 짓! 23.05.15 2,840 41 12쪽
13 13화 표 박사의 100배 가치! 허준영 +1 23.05.14 2,906 40 11쪽
12 12화 의문의 한약 +1 23.05.14 2,906 4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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