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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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최근연재일 :
2023.09.14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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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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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억울

DUMMY

칼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손에 물을 적신 다음 튕겨보았다.


지지직.


물맛을 본 칼이 거친 음을 토해냈다.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잠시 기다린 다음 다시 한 번 더 물을 튕겼다.


이번에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그는 칼을 자신의 얼굴 가까이 갖다 댔다.


얼굴에 닿을락말락할 때까지.


칼의 열기를 재려는 마지막 단계였다.


“됐다.”


그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세자저하의 배를 갈랐다.


벌건 피선이 세자의 배위에 드러났다.


그는 칼을 좀 더 깊숙이 찌른 다음 천천히 배를 갈랐다.


신중하고도 단호했다.


오른쪽 배의 바깥쪽 비스듬한 근육과 평행하게 칼을 그었다.


곧바로 피가 올라왔다.


그는 그 아래의 비스듬히 달리는 근육과 옆으로 달리는 근육을 벌렸다.


복막이 드러났다.


임치두도 수십 년의 의원 생활을 했다,


볼 꼴 못 볼꼴 다 본 의원이라 장담했다.


그러나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었다,


들은 적도 없었다.


그에게 스승이 펼치는 수술은 신세계였다.


임치두의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침을 꼴깍 삼켰다.


두 손을 자신도 모르게 움켜쥐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복막을 갈랐다.


그러자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충수돌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심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이미 부패가 심하게 진행 중임이 틀림없었다.


임치두가 보기에는 살이 잔뜩 오른 지렁이 같았다.


“이 놈이 세자저하의 속을 썩인 놈이다.”

“그렇습니까?”


임치두는 더 잘 보기 위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얼굴을 빼라. 세자저하의 뱃속에 땀이 떨어진다.”

“아 예. 송구합니다, 스승님.”


임치두는 재빨리 얼굴을 뺐다.


“땀을 닦아라.”


임치두는 손등으로 자신의 얼굴에 맺힌 땀을 훔쳤다.


“내 얼굴! 내 얼굴의 땀을 닦아달란 말이다. 이놈아! 네가 뭘 했다고 땀을 닦느냐?”

“예? 아 예. 스승님.”


임치두는 수건을 집어 들고 스승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주었다.


그는 맑은 얼굴로 충수돌기의 상태를 다시 한 번 더 살폈다.


‘지금이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안 된다.’


충수돌기는 터지기 직전상태였다.


그는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았다.


“실을 다오.”


그의 요구에 따라 임치두는 깨끗한 명주실을 내밀었다.


그는 받아든 명주실로 충수돌기를 단단히 묶었다.


그런 다음 세자저하의 얼굴을 살폈다.


잠든 것 같은 세자의 모습이다.


“저하. 제 말이 들리십니까?”


세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은 상태.’


그는 마침내 칼로 심하게 부패한 충수돌기를 잘랐다.


배를 갈랐던 그 칼이 아니라 다른 칼로.


악액이 흘렀다.


조금 전보다 더 심한 악취가 방안으로 퍼져 나갔다.


욱.


임치두가 참았던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그도 이번에는 임치두를 나무라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병자의 고름을 받아낸 그였지만 이렇게 심한 악취는 처음이었다.


“뭐하고 있느냐? 악액이 보이지 않느냐?”


임치두는 깨끗한 천을 악액에 갖다 댔다.


천은 악액을 부드럽게 빨아들였다.


그는 충수돌기의 자른 부위를 실로 재빨리 봉합했다.


그런 다음 인두로 봉합 부위를 재빨리 지졌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세자의 얼굴을 살폈다.


세자가 움찔했다.


그러나 얼굴을 일그러트리지는 않았다.


‘마취가 풀리기 시작한 것인가?’


아니면 인두로 지지는 통증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심해서일까?


“송구하옵니다, 세자저하.”


그의 말에도 세자는 말이 없었다.


움직임도 없었다.


‘망설여서는 안 된다. 머지않아 마취가 풀릴 것이다. 그 전에 수술을 마무리해야한다.’


그는 갈랐던 배를 역순으로 봉합하기 시작했다.


수술 경험이 수 백 번은 되는 노련한 의원의 솜씨같았다.


그의 손은 침작하되 재빨랐다.


임치두는 스승이 부리는 마술을 그저 넋을 놓고 보고만 있었다.


그는 일각을 기다렸다가 마지막으로 마취 침을 발침했다.


수술을 끝낸 그는 그제야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스승님.”

“그걸 어찌 아느냐?”

“예?”

“수술을 한 나도 아직 모르겠는데 옆에서 구경만 네가 어찌 아느냐 말이다?”

“그, 그냥 느낌이. 스승님 표정이 밝으신 것을 보고······. 성공한 게 아닙니까?”

“애들 앞에서는 찬물도 함부로 못 마신다더니 네 앞에서는 밝은 표정도 함부로 지으면 안 되겠구나.”

“그래도 수술이 잘 된 건 맞지요?”

“의원이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 기다려 보는 수밖에. 하늘이 어떤 결정을 할지, 나도 궁금하다.”

“예. 제가 경솔했습니다, 스승님.”

“그런데 내 몸이 왜 이러냐?”

“왜요?”

“수술이 끝나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날씨는 제법 따뜻한데 왜 이리 몸이 으슬으슬한지, 한기가 드네. 아무래도 고뿔이 걸린 모양이다.”

“저, 스승님. 발가벗고 계셔서 추운 건 아닌지요?”


그는 자신의 몸을 살피더니 탄식처럼 말했다.


“그렇구나! 어쩐지.”


그는 임치두를 쳐다보더니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민망하구나. 어서 입자.”


두 사람은 방 한구석에 던져두었던 옷을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고 기도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신이시여!”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


상궁은 크고 깨끗한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의원님. 쉬고 계십시오.”


그는 물러나는 상궁에게 말했다.


“시장합니다. 먹을 거라도 좀 주시겠소?”

“준비하고 있습니다. 곧 올리겠습니다.”


세자저하의 마취가 깨는 것을 확인하고 이곳으로 건너왔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친 것 같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며칠 더 지켜봐야한다.


하지만 느낌이 좋았다.


모든 일이 다 그러하겠지만, 의원 노릇도 오래 하다보면 ‘감’이라는 게 생긴다.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기는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게 ‘감’이다.


시장기를 해결하고 잠시 눈을 붙인 다음, 세자에게 가봐야 한다.


회복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긴장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긴장했던 모양이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누우면 다시는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상궁이 약속했던 밥은 오지 않았다.


밥보다 먼저 온 게 있었다.


장정 몇이 그가 쉬고 있던 방에 들이닥쳤다.


그는 힘겹게 눈을 떴다.


눈앞에 얇은 막을 씌운 것 같았다.


그가 침입자들을 알아볼 수 있기 까기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칼을 찬 무관과 포졸 몇이었다.


무관은 장희재는 아니었다.


“자네가 허준영인가?”


무관이 한걸음 앞으로 다가서며 무겁게 물었다.


“그렇소만? 무슨 일로 그러시요?”


무관은 포졸들에게 명했다.


“저자를 끌고 가자.”


포졸들이 달려들어 그의 양팔을 잡았다.


“이거 놓으시오. 놓지 못하겠소?”


그는 포졸들의 손을 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게요?”

“닥쳐라, 이놈아.”


그는 무관의 으름장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소? 사람을 끌고 가더라도 이유는 말해줘야 할 거 아니오? 도대체 내가 뭘 잘못 했소?”

“뭔 말이 이렇게 많으냐? 가보면 알게 될 일. 어서 끌고 가자.”


무관 일행은 어디론가 그를 끌고 갔다.


#


그들은 준영을 임금 앞으로 데려갔다.


좌우로 여러 신료가 늘어서 있었다.


“뭣들 하는 게냐? 어서 그 놈을 무릎 꿇리지 않고?”


신료들 중 한 사람이 그렇게 소리쳤다.


무관이 칼집으로 그의 오금을 후려갈겼다.


“으억!‘


그의 무릎이 맥없이 꺾였다.


“전하. 하문 하십시오.”


신료 중 한 사람이 임금에게 고했다.


임금은 무릎 꿇고 있는 그를 내려다볼 뿐 말이 없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도 망측한 일이라 짐이 입에 담기도 곤란하구나. 우의정이 심문하시오.”


임금은 그의 얼굴을 보려하지 않았다.


노여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예, 전하. 네 이놈. 허준영이라 했겠다?”


우의정의 흰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렇습니다.”

“네가 저지른 죄를 네 입으로 아뢰어라.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두렵다.”

“나으리.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권상궁. 자네가 말씀해 보시게.”


준영은 고개를 들어 권상궁이라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중궁전(中宮殿)의 그 상궁이었다.


그에게 뜨거운 물이 담긴 세숫대야를 갖다 주었던 바로 그 상궁.



그리고 그 옆에 임치두가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예. 전하. 저 자가 중전마마 앞에서 옷을 벗었사옵니다.”


상궁의 말에 주위가 술렁거렸다.


“뭐라? 중전의 옷을 벗겼다고?”


임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 아니옵니다. 중전마마의 옷을 벗긴 게 아니라, 중전마마 앞에서 저 자가 옷을 벗었사옵니다, 전하.”

“그거나 그거나? 망측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그렇사옵니다, 전하.”


임금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네, 이놈. 허준영. 사실이냐? 중전마마 앞에서 옷을 벗었다는 게 사실이냔 말이다?”


우의정이 임금 대신 물었다.


“그건 세자저하의 병을 치료하느라 어쩔 수없이 그리했던 것입니다.”


그는 머리를 조아린 채 아뢰었다.


“어허! 이 무슨 고약한 말이냐? 이놈아. 세자저하를 치료만하면 되지 왜 옷을 벗었느냐?”


우의정은 조금 전보다 언성을 더 높였다.


“옷에 더러운 것들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것들이 세자저하의 몸에 들어가면 큰 변고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리했던 것입니다. 이건 중전마마께도 다 말씀 올렸습니다.”

“더러운 것은 무얼 말하는 게냐? 흙이나 먼지를 말하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이놈. 흙이나 먼지는 밖에서 털고 들어가면 될 일. 그게 두려워 옷을 벗었다는 말이냐? 그것도 중전마마 앞에서? 어허, 이것 참. 망측해서 입에 올리기도 민망하구나.”

“밖에서 터는 정도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벌레 같은 것도 염려가 되옵니다. 실은 흙먼지보다 벌레가 더 큰 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벌레? 어떤 벌레?”

“눈에 보이는 벌레도 위험하지만 보이지 않는 벌레가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 그런 것도 있더냐?”


전하가 하문했다.


“예. 그렇사옵니다, 전하.”

“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는 내 평생 처음 들어본다.”

“그럴 것이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를 너는 어떻게 본다는 게냐?”


임금은 하문을 멈추지 않았다.


“저도 볼 수는 없습니다.”

“뭣이라? 네 놈도 볼 수 없다고?”

“그렇사옵니다, 전하.”

“허어. 저 자가 술을 마셨나? 무슨 술주정을 저리 한단 말인가?”


임금의 말에 권상궁이 대답했다.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은 것으로 아옵니다, 전하. 술상을 받기 전에 이리 끌려왔습니다.”


준영은 권상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면 미친 자로구나. 눈에 보이는 벌레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벌레를 걱정해? 허어! 짐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이곳에 계신 신료들은 저 자의 말이 이해가 됩니까?”

“이해 안 되옵니다, 전하.”


신료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그렇지 않사옵니다, 전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벌레는 분명이 있고 때로는 큰 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벌레보다 더 무섭사옵니다.”


우의정이 이번에는 임치두를 쳐다보았다.


“오, 그래. 임의관. 자네가 저 자의 밑에서 의술을 익혔다 들었네. 사실인가?”


스승에게로 향하던 화살이 방향을 틀어 자신에게로 날아오자, 임치두는 몹시 당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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