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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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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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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9화 탑스타 윤지현

DUMMY

꾸준하게 공치다가 하루 세 명이나 신환이 와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만큼 피곤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평소보다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진료시간이 끝나고 차 선생도 퇴근하고, 백반집 여사장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끌려가 공짜 저녁도 먹었다.


고등어구이에 돼지고기 볶음에 간장 게장에, 계란 프라이 두개까지.


“아, 같은 백반인데 상차림이 왜 이렇게 달라요? 손님 차별하는 거요 뭐요?”


돈 주고 사 먹는 옆 테이블 손님으로부터 항의를 받을 만큼 상차림이 화려했다.


얻어먹은 게 있어서 그런지 한의원에서 진혜리를 기다리는 것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대기실에 앉아 예능 프로그램 시청도 포기하고, 원장실 진료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펴놓고 공부도 했다.


진혜리가 언제 들이 닥치더라도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게 원장실 문도 활짝 열어 놓았다.


옛날 서당에서 하늘 천, 따 지, 천자문 공부하듯 소리도 가끔 내면서 책을 읽었다.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는 이 정도 민망함은 감수해야한다.


#


9시 쯤.


진혜리가 한의원에 왔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오 마이 갓!


이 시대 최고의 탑스타 윤지현.


요즘 가장 핫한 여자 연기자 중 한 명.


“제가 너무 늦었죠, 원장님?”


혜리는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아이유, 별 말씀요.”


말은 혜리와 주고받는데 눈은 자꾸 윤지현 쪽으로 간다.


진혜리도 미인이다.


하지만 윤지현은 달랐다.


윤지현이 신계(神界)의 미인이라면, 진혜리는 인간계(人間界)의 미인이다.


“친구하고 같이 왔어요.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 제가 선생님 자랑을 많이 했더니 자기도 오고 싶다고해서요. 괜찮죠, 원장님?”

“그럼요. 괜찮고말고요.”

“안녕하세요, 윤지현이에요. 혜리한테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윤지현 씨. 반갑습니다. 저 팬이에요. 하하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드라마나 CF를 통해서만 보던 스타를 눈앞에서 보다니!


“원장님. 너무 하세요. 저는 못 알아보더니 지현이는 금방 알아보시고, 서운해요.”


진혜리의 밉지 않은 투정에 그는 손사래를 치며,


“아, 아니. 죄송합니다. 이런 미인을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을 한꺼번에 뵙게 되니 제 심장이 놀라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요, 하하하.”

“이해해요. 하긴 지현이야 최고의 스타니까 알아보시는 것도 당연하죠, 뭐.”


윤지현은 진혜리의 어깨를 툭, 밀며,


“그만 해. 사람 민망하게.”


윤지현은 몇 년 전,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드라마가 대박이 나는 바람에 스타덤에 올랐다.


후속 드라마도 대박이 나는 바람에 최고의 스타가 됐다.


CF 출연 수입만 해도 일 년에 백 억 가까이 된다는 기사도 본적이 있었다.


그러니 윤지현을 모른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잡 생각은 이 정도에서 멈춰야한다.


“그나저나 안면신경마비는 좀 어떠세요?”


그가 혜리에게 물었다.


“너무 많이 좋아졌어요. 감쪽같아요,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행이네요.”

“혜리가 구안와사가 왔다고 말을 해서 알았지 아니면 저도 몰랐을 거예요. 우리 일주일이 멀다하고 만나는 친군데 알고 봐도 얼굴에 마비가 온 줄 모르겠던데요. 선생님. 정말 대단하세요.”


윤지현도 거들었다.


“감사합니다. 제가 봐도 많이 좋아졌네요.”

“저기, 부탁 말씀 하나 드릴 게 있는데요. 저 침 놔주시고 나서 얘도 한 번 봐주시면 안 될까요?”


혜리는 입가에 애교를 담뿍 담아 말했다.


‘왜 안 되겠나? 환자를 납치해도 시원찮은 판에. 더구나 탑스타 윤지현인데.’


그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게 하죠. 우선 진혜리 씨 침부터 놓고요. 침구실로 들어가시죠.”


진혜리에게 자침을 한 후, 그는 윤지현과 다시 마주 앉았다.


“평소 불편하신 곳이 있으신가요?”

“특별히 불편한데는 없는데. 피로를 많이 느껴요.”

“일을 많이 하셔서 그러신 거 아닌 가요?”

“우리 일이 바쁠 때는 잠도 못 잘 정도로 바쁘지만 일이 없을 때는 몇 달씩 그냥 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집에서 쉬어도 피로를 많이 느껴요. 병원에서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습니까? 어디 한 번 진맥부터 해보겠습니다.”


윤지현은 왼쪽 손을 내밀었다.


맥법도 여러 가지 맥법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맥법은 손목 위의 요골동맥을 진맥하는 방법이다.


환자의 왼쪽 손을 진맥하는 경우, 요골돌기에서 손목 안쪽으로 흐르는 요골동맥위에 중지를 올려놓고, 손목 방향으로 검지, 팔꿈치 방향으로 약지를 올려 맥을 짚는다.


이 때 손목에서부터 팔꿈치 방향 순으로 촌(寸,) 관(關), 척(尺)이라고 한다.


촌, 관, 척 세 부위를 다시 부(浮), 중(中), 침(沈)으로 나누어 진맥한다.


그는 맥 상태를 찬찬히 짚었다.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 그의 표정을 살폈다.


일분 정도 지났을까?


그는 눈을 뜨더니 말했다.


“이번에는 오른손의 맥을 짚어보겠습니다.”


그녀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오른손의 맥도 살핀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지금 생리를 하시나요?”

“예?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생리가 멈추지 않았나요?”

“예. 그렇기는 하지만, 저는 생리가 워낙 불규칙해서 제 때하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4, 5일 늦어지는 건 보통이고 심할 때는 보름까지 늦어지기도 해요.”

“알고 있습니다. 생리불순도 심하시네요. 생리양도 아주 적고, 점도도 높을 텐데요.”

“맞아요. 말씀하신 그대롭니다.”

“윤지현씨.”


그는 침구실에서 유침(침을 꽂은 상태)중인 진혜리에게 들리지 않게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윤지현 씨. 임신입니다.”

“??? 예?”


윤지현은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놀란 눈은 가리지 못했다.


그녀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는 그런 윤지현이 오히려 이상했다.


“임신 인줄 모르셨습니까?”

“예, 몰랐어요.”


성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미성년자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성인 여성이 임신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은 반응을 보이다니!


그는 그런 윤지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원장님. 어떻게 아세요? 아, 아니 제가 임신한 게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라, 제, 제 말은 그러니까······임신 테스트기나 혈액검사나 초음파 검사나, 뭐 그런 걸로 검사를 해야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해서요?”

“맞습니다. 하지만 진맥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진맥이요?”

“조금 전에 재가 윤지현 씨를 진맥했잖습니까?”

“그, 그렇죠. 아! 그러고 보니 사극에서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그건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 아닌가요?”

“물론 진맥만으로 임신 여부를 안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임신 맞습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는 이 대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결혼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임신이 그녀에게 기뻐할 일인지, 원치 않은 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축하드립니다, 라는 말은 하지 않고 사실만 말한 것이다.


복잡한 표정을 짓는 윤지현.


“조금 전에 선생님이 말씀 하셨듯이, 진맥만으로 임신여부를 안다는 게 쉽지 않다면, 오진은 아닌가요?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불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임신은 맞습니다. 댁에 가셔서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해 보시죠.”


그녀는 어두운 표정만 지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


신환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사장의 소개로 왔던 신환의 입을 통해서 또 신환이 온 것이었다.


그는 벼랑 끝에서 희망의 빛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차 선생도 희망을 본 모양이었다.


그녀는 업무에 최선을 다했고, 새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직원 한 명 더 뽑아야겠어요, 원장님. 이러다 저 혼자는 도저히 안 되겠어요, 호호.”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나 심장마비 걸려 이 자리에서 쓰러지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에요.’


환자가 조금 늘어 이제 겨우 하루 7, 8 명 수준인데 직원을 더 뽑다니!


차 선생은 기어코 이 한의원이 망하는 꼴을 보겠다는 말인가?


‘아! 잔인한 사람.’


그러나 그는 속내를 감추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차 선생을 보며 말했다.


“하루 스무 명 넘어가면 그 때 생각해보죠.”

“예. 알겠습니다.”


차 선생이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나오자, 그는 약간 불안했다.


‘혹시 스무 명 넘어가면 직원을 더 뽑겠다는 말로 잘못 들은 거 아냐? 그냥 생각은 해보겠다는 말인데. 한 번 더 말해 줘야 하나?’


아! 정말 구질구질하다.


사람이 치사해진다.


적어도 사람이 쩨쩨하게 굴지 않을 만큼은 돈을 벌어야 하나?


‘그래. 어느 정도는 돈을 벌어야 최소한의 품위는 유지할 수 있겠구나!’


#


진혜리는 닷새 만에 다시 한의원에 왔다.


그는 그녀의 얼굴부터 살폈다.


며칠 전만해도 구안와사로 고생하던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놀랄 만큼 말끔했다.


“죄송합니다, 원장님. 치료 받으러 매일 와야 되는데 요 며칠 동안 좀 바빴거든요.”

“바빠지셔서 다행이네요.”


그녀는 준영 앞에 뭔가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혜리 씨?”

“아이유, 별 거 아니에요. 넥타이에요.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아이고. 아닙니다. 치료비 다 받았는데요, 뭐. 그리고 식당에 가서 공짜 밥도 얻어먹었고요. 이러시면 제가 부담스러워요.”


말을 이렇게 뱉었다면 포장된 선물을 집어 그녀에게 돌려줘야한다.


그런데 그의 손은 까딱도 안 하고 입만 움직였다.


안 그래도 넥타이 하나로 거의 한 달을 버티고 있던 중이라 필요하긴 했다.


“아니에요. 제가 선생님 덕을 얼마나 많이 봤는데요. 거기에 비하면 넥타이는 아무 것도 아니죠, 뭐.”

“허어, 이것 참.”


그는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사실은 저 CF 찍었어요.”

“그래요? 축하드립니다.”

“혹시 원장님 침 맞으면 이런 좋은 일이 막 생기고 그런 효과도 있나요?”

“설마요!”

“농담이에요. 사실은 CF라고 해봤자 메인은 아니고요. 그냥 살짝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여러 번 봐야 아! 저 사람이 진혜린가 할 정도로 나와요. 하지만 너무 기분 좋아요. 저 연기 생활 10 년이 다 되가는데 첫 CF 거든요. 호호. 그러니 부담 갖지 마시고 받으세요. 선생님이 제 얼굴 안 고쳐 주셨으면 드라마도 못하고, CF도 다 날렸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선생님은 이 선물 받으실 자격 충분하세요.”


거절도 심하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러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겠습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이 넥타이만 매겠습니다.”

“그러세요. 그나저나 얼굴 치료는 언제까지 해야 하나요? 이젠 전혀 불편하지 않거든요.”

“오늘까지만 치료 하시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중에 안 좋으면 다시 오겠습니다.”

“예. 그러셔도 되겠네요.”


그는 침구실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한 사람이 떠올랐다.


윤지현!


그녀의 소식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았다.


#


윤지현이 다녀간 지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한 남자가 찾아왔다.


퇴근 시간 바로 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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