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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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산책
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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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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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1화 엄마의 이름으로

DUMMY

“예찬이 어머니요.”


준영은 커피 한 모금을 마신 다음 말을 시작했다.


“아! 이희진 씨요!”


그는 예찬이가 한의원에 왔던 일을 진혜리에게 말했다.


“그랬군요. 아마 원장님께 한약 짓기 힘들 거예요.”

“역시 경제적 이유 때문이겠죠?”

“예.”

“사실은 예찬이도 예찬이지만 이희진 씨도 문제가 있어요.”


그는 이희진 씨 본인에게는 하지 못했던 말을 진혜리에게 꺼냈다.


“희진 씨도 진맥 하셨어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냥 눈으로 봐도 문제가 있던데요.”

“그래요? 어떻게요?”

“간이 많이 안 좋아 보였어요.”

“맞아요. 이희진 씨, 간암이에요.”

“알고 계셨군요?”

“그럼요. 원장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니! 얼굴만 보고 간암인 걸 어떻게 아셨어요?”

“아뇨. 간암인 걸 알았다는 건 아니고, 그냥 간이 안 좋다는 정도!”


그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간암인 걸 알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몸으로는 식당에서 일을 하면 안 될 텐데요?”

“그렇게 말씀 하시니까 우리가 무슨 악덕 업주처럼 느껴지네요.”

“아뇨. 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니에요.”

“농담이에요. 사실은 우리도 할 수 없이 일을 시키는 거예요.”

“무슨 말이에요?”

“우연한 기회에 희진 씨 딱한 사정을 알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려고 해도 안 받으려고 하는 거예요. 자존심이 얼마나 센지! 하는 수 없어서 일을 시키는 시늉만하고 돈을 주는 거예요. 그렇다고 희진 씨가 일하는 시늉만 내는 건 아니에요. 열심히 해요. 그래서 더 안쓰러워요.”

“그랬군요.”

“돈이 없어서 항암치료도 못 받는데, 예찬이 한약을 어떻게 먹이겠어요?”

“그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가요?”

“원장님이 상상하시는 그 이상으로요.”


그는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분 말씀으로는 남편과 이혼한지 오래 됐다고, 예찬이를 혼자 키운다고 하던데요?”

“아아! 그 개노무 새X!”


진혜리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린 후 다시 떼더니,


“어머, 죄송해요. 그 개자X만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서, 저도 모르고 그만 욕이······.”

“괜찮아요. 잘 어울리는데요, 뭐.”

“으응. 원장니이임.”


진혜리는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콧소리를 냈다.


우욱!


“콧소리는 내지 말고 원래 목소리로 말씀 계속해보세요.”


진혜리는 눈을 흘기더니 말을 이었다.


#


그들 부부가 예찬이 자폐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 시간은 그냥 오지 않았다.


고통과 노력을 요구했다.


예찬이 아버지 성재철은 이런 시련 앞에 일찍 무릎 꿇었다.


그는 예찬이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들 모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술을 마셨을 때나 안 마셨을 때나······.


“이래도 버틸래!”


이희진의 입에서 그만 이혼하자는 말이 나올 때까지, 이혼해달라고 싹싹 빌 때까지 괴롭혔다.


이희진은 버텼다.


자폐아인 예찬이를 아버지 없는 아이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성재철은 자신이 이희진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그는 작전을 바꿨다.


그 다음부터 그는 희진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부탁이야! 제발 날 놔줘. 나라도 살 게. 나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게 제발 놔 달란 말이야.”


희진은 소송까지 가지 않고 그의 요구에 응했다.


남편으로서, 아이 아빠로서의 책무를 던져버린 남자를 법이라는 족쇄를 채워 옆에 붙잡아 두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양육권은 합의의 대상도 아니었다.


자폐아들을 감당할 수 없어 떠난 남자인데.


양육비도 요구하지 않았다.


줄 능력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이기를 포기한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으로 예찬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이혼은 비교적 간단하게 마무리 됐다.


그리고 희진은 예찬이를 홀로 키워야하는, 그 외롭고 험한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2년 후.


예찬은 성예찬에서 이예찬이 되었다.


희진은 예찬이 성재철의 아들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임을 세상을 향해 선언했던 것이다.


여자가 혼자 아이를 키운 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


진혜리의 말을 들은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이 말랐다.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진혜리는 물 한 컵을 다 마신 후 말을 이었다.


#


이혼 후, 예찬이 모자는 아주 낡은 한옥 집에 세 들어 살았다.


그녀의 형편으로만 따지면 산동네에서도 맨 꼭대기, 하늘 밑의 집에 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거동이 다른 사람에 비해 부자연스러운 예찬이에게 산동네를 오르내리는 것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모자에게 작은 행운이 찾아왔다.


지인의 소개로 이 한옥 집에 세 들어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집 주인은 여든이 넘은 할머니였다.


“밤에는 나 혼자 지내기가 너무 무서워. 아파트도 아니고 한옥집이다보니 도둑이 들까 무서워서 살 수가 없어.”


할머니는 이 모자를 마음에 들어 했다.


“예찬이 엄마 인상이 참 좋더라고. 정이 가는 얼굴이야.”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할머니는 보증금과 월세를 산동네 수준으로 낮춰졌다.


비록 낡고 작은 한옥이었지만, 두 모자가 살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예찬이가 피아노를 마음 놓고 쳐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다.


“하이고, 고 녀석! 어쩌면 피아노를 저렇게 잘 치누! 예찬이가 오고부터는 사람 사는 집 같네.”


이웃의 항의받기 딱 좋은 피아노 소리도 귀가 어두운 주인 집 할머니 에게는 아득한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처럼 들렸다.


예찬이는 하루 종일 피아노를 쳤다.


예찬이에게는 이 낡고 비좁은 한옥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씻기 싫어하는 예찬이를 씻겨야했다.


한 번 씻기고 나면 온 몸에 진이 다 빠졌다.


그러나 늘어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간단하게나마 예찬이 아침 식사 챙겨주고, 자신도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그녀는 예찬이를 특수학교에 데려다 주었다.


그런 다음 학교 인근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다.


분식집. 반찬가게, 빵집, 식당


그녀의 대학 전공은 사회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었다.


예찬이 때문에 전공을 살려 취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교에 맞춰 학교로 간 그녀는 예찬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집으로 돌아온 예찬이는 그 때부터 피아노를 친다.


간혹 할머니와 놀아 줄 때도 있지만 피아노 치는 걸 훨씬 좋아했다.


그런 예찬이를 두고, 희진은 다시 일하러 가야했다.


이번에는 집근처의 식당으로.


그렇게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11시가 다 된다.


희진에게 유일한 휴식은 공휴일이나 주말, 예찬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다.


그런 날도 그녀는 온전히 하루를 쉬지는 못했다.


평소보다 예찬이를 돌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일하러 가는 시간이 조금 줄어드는 것뿐이다.


그런 날은 예찬이는 하루 종일 피아노를 친다.


희진은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아주 짧지만 더 없이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예찬이가 작곡을 시작했다.


공원을 산책을 하다가도 악상이 떠오른다고 집에 와서 피아노로 작곡했고, 라면을 먹다가도 라면을 위한 곡이라며 작곡했다.


한 번은 사랑하는 엄마 희진을 위한 곡이라며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하기도 했다.


“세상에! 이 노래가 나를 위한 노래야? 고마워, 예찬아. 너무 너무 아름다운 노래네.”


희진이 감동하자, 예찬이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예찬이는 이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예뻐.”

“그래? 세상에! 엄마 감동 받았어. 우리 예찬이 눈에는 김태희보다 엄마가 더 예쁘구나?”

“아니. 김태희가 더 예뻐.”


그러더니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김태희를 위한 노래를 작곡하기 시작했다.


희진을 위한 노래는 3분짜리로, 김태희를 위한 노래는 5분짜리로 만들었다.


놀라웠다.


3분짜리 노래는 3분여 만에 작곡했고, 5분짜리 노래는 5분여 만에 작곡했다.


퀼리티가 아주 뛰어난 작곡 자판기.


이예찬!


#


한옥에 산 지 3년 째 되는 어느 날.


희진의 전 남편, 성재철이 찾아왔다.


그가 어떻게 이 집을 알고 찾아왔는지는 묻지 않았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좁은 마당 한 귀퉁이에 놓인 나무 의자에 앉아 방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문은 열려 있었고, 예찬이는 그 방안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마루에 걸터앉아 재철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아빠. 나, 피아노 잘 치지? 내가 만든 노래야.”

“그래! 노래 좋네.”


일하고 돌아온 희진이 다가가자, 그는 일어섰다.


“오랜만이야?”


그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두 사람은 집 근처의 놀이터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는 커피숍에서 그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마신 커피가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그와 커피 마실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삼겹살을 사서 예찬이 구워주고 싶었다.


“날 아직도 미워하는 거야?”

“미워하는 것도 애정이 남아 있어야 하는 거야.”


재철은 피식 웃었다.


“좋아할 거라 기대했어? 설마!”

“그런 건 아니지만 날 조금은 이해해줄 줄 알았지.”

“그래서 헤어진 거잖아. 나, 당신 원망 안 해.”

“나, 그렇게 나쁘게만 생각하지 마. 솔직히 어떤 놈이 자폐증이 있는 자식을 좋아하겠어?”

“그 얘기 하려고 몇 년 만에 찾아 온 거야?”

“희진아.”

“나, 당신 원망 안 한다고 했잖아! 그딴 소리할 거면 가. 다신 찾아오지 마. 몰라서 그래? 우린 이젠 남이야.”

“우린 남이지만······.”

“남이지만 뭐? 이제와서 예찬이 양육권을 주장하는 건 아닐 테고.”

“아까 예찬이 나한테 아빠라고 했어.”


희진은 피식 웃었다.


“저기, 여보. 예찬이 엄마. 돈 좀 있어?”

“돈? 얼마나?”


희진은 지갑을 열었다.


“백 원? 천원? 설마 나한테 백만 원. 천만 원을 말하는 건 아닐 테고······.”


희진은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재철 앞에 내밀었다.


“예찬이! 아까 보니까 작곡 해 둔 노래가 꽤 많던데?”

“그래서?”

“아니? 내 말은 대중음악 쪽으로 줄이 닿으면······.”

“뭐?”

“예찬이를 작곡가로 데뷔 시키는 거야. 노래 한 곡만 히트하면 저작권료가 장난 아니거든. 당신도 알잖아?”

“그래서 아까 마당에 앉아 예찬이가 작곡한 노래 듣고 있었구나? 아니, 노래를 들은 게 아니라 돈을 듣고 있었던 거구나?”

“예찬이, 음악에 소질이 있어. 보통이 아냐. 나 음악 했잖아. 내가 음학할 때 우리 만났잖아.”


희진은 피식 웃었다.


“예찬이 날 닮았어. 내 음악적 재능을 그대로 물려받은 거야.”

“몰랐네. 네가 예찬이를 자식이라고 생각하는 줄······. 어쩌지? 나, 너한테 감동 받았나봐. 눈물이 흘러 주체를 못 하겠네.”


재철은 희진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여보. 희진아!”


희진은 재철의 손안에 있던 자신의 손을 재빨리 뺐다.


그리고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재철을 노려보았다.


“그 더러운 입에 내 이름 올리지 마.”

“여보.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난 다만 예찬이 재능이 그냥 묻히는 게 너무 아까워서 키워 주자는 것뿐이야.”

“키워서? 돈이 되면? 그 돈 뜯어 먹고, 안 되면 다시 버리게?”

“에이. 같은 말을 해도 천박하게 뜯어 먹는다는 게 뭐야? 당신 왜 이렇게 변했어? 당신 원래 이런 여자 아니잖아?”

“나, 원래 이런 여자야. 몰랐어? 난, 더한 짓도 할 수 있어. 우리 예찬이 건드리면 누구라도 가만 안 둬. 널 죽여 버릴 수도 있어. 알았으면 꺼져, 이 자식아.”


진혜리는 거기에서 하던 말을 멈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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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화 엄마의 이름으로 23.05.23 2,335 31 12쪽
30 30화 가난 23.05.23 2,358 38 12쪽
29 29화 이예찬 23.05.22 2,457 40 12쪽
28 28화 보디가드 허준영 +1 23.05.22 2,518 38 12쪽
27 27화 복수 23.05.21 2,522 37 12쪽
26 26화 세상은 요지경! +1 23.05.21 2,546 37 12쪽
25 25화 마동수와 윤지현 23.05.20 2,558 42 12쪽
24 24화 마동수와 각종 얼라들 23.05.20 2,504 41 12쪽
23 23화 마동수! 23.05.19 2,597 37 12쪽
22 22화 협박! 23.05.19 2,589 40 12쪽
21 21화 적과의 동침 23.05.18 2,606 45 12쪽
20 20화 세계최강 브라질! 23.05.18 2,630 40 12쪽
19 19화 다시 일어서다! 23.05.17 2,661 38 12쪽
18 18화 아악! 송현민! 23.05.17 2,696 39 12쪽
17 17화 허준영! 카타르 월드컵에 가다! 23.05.16 2,771 42 12쪽
16 16화 초인적인 정신력 23.05.16 2,781 42 12쪽
15 15화 축구선수 송현민 23.05.15 2,853 45 12쪽
14 14화 미친 짓! 23.05.15 2,840 41 12쪽
13 13화 표 박사의 100배 가치! 허준영 +1 23.05.14 2,905 40 11쪽
12 12화 의문의 한약 +1 23.05.14 2,906 40 12쪽
11 11화 아이 낳고 싶어요. +1 23.05.13 2,942 43 12쪽
10 10화 10억을 드리겠습니다! 23.05.13 2,983 42 12쪽
9 9화 탑스타 윤지현 23.05.12 3,090 45 12쪽
8 8화 탤런트 진혜리 23.05.12 3,302 45 12쪽
7 7화 허준영 한의원 23.05.11 3,382 43 12쪽
6 6화 고문 +1 23.05.11 3,122 43 12쪽
5 5화 억울 23.05.10 3,059 43 12쪽
4 4화 홀라당 벗은 허준영 23.05.10 3,191 39 12쪽
3 3화 생사의 경계 23.05.10 3,330 4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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