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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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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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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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0화 돌대X리!

DUMMY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잠도 자는 둥 마는 둥했다.


몸이 무거웠다.


마음은 더 무거웠다.


그는 한의원 진료실에 앉아 있어도 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부모님이 전세보증금을 찾기 위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걸 방관자처럼 보고만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이럴 때는 당분간 휴진하고 250 채의 집주인을 잡으러 디녀야 하는 거 아냐?’


한의원을 찾아오는 분들만 환자가 아니다.


‘내 부모님이 병들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폐가 내 부모님을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런데 자식이라는 나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다니!’


그는 죄책감에 사로 잡혔다.


‘안 되겠어! 오늘 까지만 진료하고 당분간 250 채의 집주인을 잡으러 다녀야겠어.’


그는 그렇게 결심했다.


인터폰이 울렸다.


-원장님. 신환입니다.-


연규선. 50세, 남자.


원장실로 들어오면서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의자에 앉은 남자.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몇 달 전부터 머리가 아파서요. 잠도 잘 안 오고, 입도 마르고요.”

“그렇습니까? 뇌 정밀 검사는 해보셨나요?”

“몇 년 전에 CT를 한 번 찍기는 했습니다. 그 때는 별 이상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요!”


그는 환자의 왼쪽 팔에 혈압계 커프를 감으며 물었다.


“평소 혈압은 어떠셨나요?”

“정상이라고 하던데요. 110에 70. 보통 그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몇 달 전부터 머리가 아파서 재봤더니, 약간 높을 때도 있고, 괜찮을 때도 있고요. 높을 때는 140에 85까지 나오기도 했어요.”

“지금은 수축기 혈압이 113이고, 확장기 혈압이 76이네요. 이 정도면 정상범위입니다.”


그는 환자의 왼쪽 손목의 맥을 짚었다.


그의 미간이 좁혀졌고, 표정이 약간 심각해졌다.


“제가 뒷목과 어깨근육 상태를 좀 확인해봤으면 좋겠는데요?”

“그러시죠.”

“조금 추우시더라도 윗옷을 좀 벗어 주시겠어요?”


그는 연규선이 윗옷을 벗자, 뒤로 돌아가 촉진을 시작했다.


뒷목과 양 어깨, 그리고 견갑골 안쪽까지 꼼꼼하게 만져보았다.


“뒷목과 어깨 근육이 심하게 뭉쳐 있네요. 이렇게 되면 뇌로 혈액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게 되겠죠. 산소공급도 당연히 잘 안될 수밖에 없고요.”

“아 예.”


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 쓰시는 일이 많으신가 봐요?”

“사는 게 다 신경 쓸 일 아니겠습니까?”

“제가 침을 놔 드릴 테니 맞으시고, 한약을 같이 드시는 게 좋습니다.”

“한약이요?”

“많이는 아니고, 한 제 정도만 드셔도 많이 좋아지실 것 같습니다.”


남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제가 형편이 좀 어려워서요. 한약을 꼭 먹어야 낫습니까? 사실은 여러 군데 한의원에서 침을 맞았는데 효과가 별로 없어서 일부러 찾아왔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배우 윤지현 씨 아시죠?”

“아 예. 윤지현 씨와 친분이 있으신가요?”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요. 윤지현 씨가 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원장님 칭찬을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찾아온 겁니다. 서울에 널린 게 한의원인데도 말이죠.”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한약은 일단 보류해두시고, 오늘은 침을 맞으시죠.”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환자가 침을 맞기 위해서 침구실로 가려했다.


“저기, 연규선님!”


그가 연규선을 불러 세웠다.


연규선이 돌아보았다.


“혹시 복통이 있지는 않습니까?”

“아뇨! 최근에는 없었는데요.”

“소변은 잘 보십니까? 혈뇨가 있지는 않고요?”

“혈뇨요? 아뇨.”

“그래요!”

“왜 그러시죠?”

“마지막으로 비뇨기과에서 진료를 받으신 게 언제였나요?”

“비뇨기과라! 글쎄요. 한 번도 진료를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는 입을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연규선이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아니, 무슨 이상이 있으면 말씀을 해주셔야지, 하다 말면 어떡합니까?”


연규선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실은 결석이 있습니다.”

“결석이요? 제 몸 속에 돌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연규선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결석은 뭐더라? 초음파나 CT나, 뭐 그런 걸로 검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조금 전에 제가 연규선님의 맥을 짚어봤지 않습니까?”

“맥만 짚고도 결석이 있다는 걸 안다고요?”

“매우 어려운 일인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말을 멈췄다.


‘다른 한의사들은 모르지만 저는 압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오늘 침 맞으시고, 가급적 빨리 병원에 가셔서 정밀검사를 받고 치료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언제 복통이 올지 모릅니다. 물론 아무 고통 없이 자신도 모르게 결석이 배설될 수도 있지만요.”

“허 참!”


연규선은 그를 미친 놈 쳐다 보듯했다.


“결석이 어디 있다는 겁니까?”

“대개는 신장이나 요관, 방광, 요도 부위에 생기는 건 아시죠?”

“저는 어딥니까?”

“그것까지는 저도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부위인지는 모른다!”

“죄송합니다.”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결석이라는 건 장담할 수 있습니까?”

“의사는 병을 두고 장담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그럼 뭐요? 오진일수도 있다는 말 아니요?”


연규선은 눈을 부릅뜨며 언성을 더 높였다.


“물론 오진일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나하고 장난 하자는 거야 뭐야? 아니, 윤지현이 하도 칭찬을 해서 왔는데, 이거 뭐야? 순 돌팔이 아냐.”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연규선님.”

“말은 당신이 지나치잖아! 결석이라고 했다가 오진일수도 있다고 했다가, 이게 장난이지 뭐야?”

“오진일수도 있지만, 일단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여? 당신 같은 돌팔이 말을 믿고 병원에 가서 웃음거리 되라고? 이게 뭐하자는 개수작이야?”

“개수작이라뇨! 말씀 삼가해 주세요.”


마침내 그도 언성을 높였다.


“에이 씨이. 이걸 확!”


연규선은 그를 때릴 것처럼 팔을 들었다가 내렸다.


“아우우우! 정말 재수 없으려니까 별 거지같은 게!”


연규선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원장실을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에이 씨X ! 저런 게 의사라고! 퉤퉤퉤.”


연규선은 침도 맞지 않고, 침만 뱉고 한의원을 나가버렸다.


놀란 차 선생이 원장실로 들어왔다.


“워, 원장님! 무, 무슨 일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찰비도 안 내고 그냥 가셨는데요!”

“그냥 둬요. 억지로 받아내려다가 차 선생 다칠지도 몰라요.”


#


윤지현이 한의원에 왔다.


“어쩐 일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메말라있었다.


부모님 걱정으로 잠도 잘 못자고 신경을 쓴데다가, 조금 전 연규선과 실랑이를 벌여서 더 피곤한 상태였다.


“어쩐 일은요? 기미요. 기미 벗겨 줄 테니 오라면서요?”

“아아! 기미요? 그거 농담이었는데요?”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농담을 그렇게 심하게 해요? 여자 가슴을 있는데도 다 후벼 파고······.”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어떤 남자 분이 오셔서 지현 씨 얘기하고 가셨는데······. 가신 지 한 10분 쯤 됐나?”

“그래요? 누군데요?”

“잠시만요.”


그는 진료차트를 확인했다.


“연규선 씨요. 남자 분이시고, 올해 50세.”

“연규선? 모르는 사람인데······. 날 안데요?”

“아, 아니 그건 아니고, 지현 씨가 전에 인터뷰하면서 나 칭찬했다고, 그 인터뷰보고 절 찾아왔대요.”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론 인터뷰하면서 내 칭찬 좀 그만해요.”

“치이. 준영 씨 칭찬 안 한지 오래 됐거든요. 요즘은 욕하고 다니거든요.”


그는 피식 웃었다.


지현이 보기엔 웃는 모습이 어색해 보였나보다.


“왜 그래요, 준영 씨? 무슨 일 있어요?”

“아뇨. 별 일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얼굴이 완전 똥색이구만. 의사 선생님 안색이 똥색인데 누가 치료 받으려고 하겠어요? 오던 환자도 다 도망가겠네.”

“그 정도로 안 좋아요?”

“그렇다니깐요. 그것도 해맑은 똥색이 아니라, 푸르죽죽 거무튀튀한 게, 한 십 년 묵은 똥색이요.”

“아, 그만 좀 똥똥 거려요. 되게 똥똥거리네, 정말. 더러워 죽겠어.”

“또 여자한테 차인 거예요?”

“생뚱맞게 여자한테 차인 건 또 뭐야?”

“아, 그 못 생긴 얼굴에 여자한테 차이는 거야 당연한 거지 그만한 일에 상처받고 그래요. 앞으로 그런 일 엄청 많을 텐데 그때마다 상처받아서 죽을상하고 있을 거예요?”

“우이 씨이. 여자한테 차인 거 아니거든요.”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얼굴에 다 씌어 있는데, 뭘요. 여자 포기하고 그냥 혼자 살아요. 이번 생은 포기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면서······.”

“그게 아니라, 사실은 우리 부모님이요.”

“부모님도 여자 포기하고 혼자 살라고 하셨죠? 좋은 부모님이시네요. 부모님 입장에서 그런 말씀하기 쉽지 않으실 텐데, 그래서 낙담한 거예요?”

“그게 아니라는데 자꾸······ 그러네. 우리 부모님이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어요.”

“어머! 세상에. 무슨 일인데요?”


그는 부모님이 전세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처해있다는 말을 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었으면 진작 나한테 말을 했어야죠.”

“지현 씨한테 하면 뭐해요? 잠적한 집주인 잡아 줄 거예요?”

“그럼요.”

“예? 지현 씨가 어떻게 그 사람을 잡아요? 경찰도 며칠 째 못 잡고 있는데······.”

“내가 아니라 마 대표요. 마 대표 젊을 때, 그런 일 많이 한 거 모르셨어요? 그 쪽으로는 아시아에서는 최고예요.”

“그래요? 마 대표가 그 정도예요? 우와, 세상에 사람 겉으로 봐선 모르겠네.”

“직접 찾아 나서는 건 아니고, 밑에 부리는 사람들한테 시킬 거예요. 이렇게 이렇게 해봐라, 하고요.”

“아 예.”

“지난번에 봤잖아요? 그 누구지? 예찬이 아버지. 성재철 씨 뒷조사해서 구린데 찾아내는 거요. 경찰보다 마 대표가 더 빨리 찾을 걸요.”

“아! 그러네. 아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왜 못 했겠어요? 머리가 나쁘니까 못 했지.”

“뭐라고요?”

“준영 씨 한의대 들어갈 때 미달이었죠?”

“아, 정말! 한의대가 미달이었던 적 한 번도 없었거든요.”

“아니면 행정 착오로 다른 사람이 합격할 걸 대신 합격했거나, 아니, 저 머리로 어떻게 한의사 됐나 몰라!”


그는 뒷목을 잡더니,


“아우 정말 말 다했어요?”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빨리 내놔요.”

“뭘요?”

“집 주인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핸드폰 번호. 뭐라도 내놔야 사람을 찾던가 말든가 할 거 아니에요?”

“아! 그렇지.”

“이거 봐. 이래도 머리 나쁘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지.”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우리 아파트 집 주인이요. 누가 잡아 준다고 해서요.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하고, 아무튼 아시는 대로 다 말씀해주세요.-


그는 아버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문주형. 주민등록번호가 700*** 1******이요. 핸드폰 번호가?-

-뭐라고요? 그 사람 사진도 확보했다고요? 그럼 좋죠. 그 사람 사진은 SNS로 보내주세요. 곧바로요, 아버지.-


그는 메모지를 지현에게 건네주었다.


“아! 사진이 도착했네요. 내가 이 사진 지현 씨 폰으로 보내줄게요.”


그는 폰으로 도착한 집 주인의 사진을 확인했다.


“가만! 이 남자 낯이 익은데?”


그는 곧바로 기억을 해냈다.


아. 연규선!


조금 전,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간 연규선.


사진 속의 집 주인, 문주형은 연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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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38화 전세 사기 23.05.28 2,154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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