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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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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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4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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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0화 건물주 디스카운트

DUMMY

건물주 황종우 씨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준영의 허리가 맥없이 푹 꺾였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건물주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아유, 오랜만에 뵙습니다, 원장님.”


그는 건물주가 내민 손을 두 손으로 정성스레 감싸 쥐었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별고 없으시죠?”


마치 뵙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말이 튀어 나왔다.


진심은 아니다.


한의원 임대차 계약이후 처음 마주하는 거다.


임차인 입장에서 건물주를 자주 만나는 건 달가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불편한 속내는 최대한 감췄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아, 내가 한 일주일 정도 사이판에 있으면서 골프를 좀 쳤거든요. 관광도 하고요. 그런데 골프를 좀 무리하게 쳤더니 왼쪽 발목이 얼마나 아픈지! 사이판에서 집까지 오는데, 아파서 혼났지 뭡니까? 아무래도 발목을 삐었나 봅니다.”

“X- ray는 찍으셨어요?”

“예. 오전에 찍었는데, 뼈에는 이상 없대요. 병원에서는 깁스나 압박 붕대를 하자고 하는데, 그냥 원장님께 침 맞으려고 곧바로 이쪽으로 왔어요. 발목 삔 데는 침이 제일 아닙니까, 하하하.”


그는 건물주가 호소하는 발목의 통증 부위와 그 주변부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행이 상태가 심하지는 않네요. 며칠 침 맞으시면 좋아질 것 같습니다. 당분간 무리하지 마시고요.”

“무리하지 말라고요?”

“예.”


건물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건물주요.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몇 년 전부터 건물 세 받아서 생활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늘이 무너져도 월세는 제때 입금 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며칠만 늦어도 곧바로 전화와요. 월세 빨리 보내라고요.”


진혜리가 그렇게 귀띔해 준 적이 있었다.


부동산 임대업을 하시는 분이 무리할 일이 뭐가 있다고 저렇게 난감해할까?


건물주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일주일 후에 괌을 가야하거든요. 고등학교 동창들하고 괌으로 골프여행 가기로 했거든요.”

“아 예. 그러시군요.”

“해마다 가는 골프 여행인데 코로나 때문에 중단 됐다가 오랜 만에 다시 가는 거라서 꼭 가야됩니다. 우승 상금이 500만원이고, 안 가면 벌금이 200만원이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야됩니다. 하하.”

“상금도 있다고요?”

“여섯 명이 가는데, 각각 100만 원 씩 내고 골프를 치는데, 1등한 사람한테 그 돈을 다 몰아주기로 했으니까 상금이 500만원인 셈이죠.”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 전에 회복하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괌에서도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요.”

“감사합니다.”


발목의 염좌는 한의원에서 가장 많이 치료하는 통증질환 중 하나이다.


건물주의 발목 상태도 심하지 않아, 하루만 치료해도 많이 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나흘 정도 치료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원장님.”

“자! 침을 놓겠습니다.”


그는 아시혈(阿是穴: 통증이 있는 부위의 혈) 위주로 침을 놓았다.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침구실의 베드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건물주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우리 원장님. 명의라고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아유, 과찬이십니다.”

“환자가 그렇게 많다면서요?”


그의 명치에 무언가가 치받혔다.


‘많다니! 눈으로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건물주는 하던 말을 계속했다.


“재계약 하실 때 월세 쪼매만 올려주십시오. 하하하.”

“예?”


이럴 때는 자존심이고뭐고 다 팽개쳐야한다.


아무리 환자가 미어터져도 일단 죽는 소리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죽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추상준, 김인석의 농간에 휘말려 폐업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났다.


‘이제 겨우 열 명 안팎으로 회복한 상황인데, 환자가 미어터지다니!’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데도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죽는 소리가 안 나온다.


아직 배가 덜 고파서 그런가?


“워, 월세 이, 인상이요?”


한다는 소리가 겨우 이 정도 말이었다.


“물가가 얼마나 오르는지, 우리 마누라가 그러더라고요. 마트에 가기가 겁난다고요. 월세 올려도 물가 감안하면 오히려 손해에요. 하하.”

“예에. 물가가 많이 오르기는 했죠. 저, 정말 큰일입니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40분 후.


차 선생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저기, 원장님. 황종우 씨요. 그냥 가셨는데요.”

“응? 아, 내가 다른 환자 분 진료하는 사이에 가셨나보네요. 알았어요.”

“그게 아니라 치료비를 안 내고 그냥 가셨다고요.”

“뭐? 치료비를 안 내셨다고요?”

“예. 원장님께서 내지 마시라고 하셨어요?”

“아뇨.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한방 치료의 진료비는 급여와 비급여로 나뉜다.


급여는 의료보험인 셈이다.


급여의 경우, 환자가 총 진료비의 일부를 부담하고, 나머지 부분은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한다.


건물주 황종우가 받은 치료는 급여에 해당한다.


그러나 환자에게 진료비를 받지 않은 경우엔 건강보험공단에도 나머지 진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


나중에 적발되면 환수 조치된다.


그러니 경제적 측면으로만 따지면, 그는 헛 치료를 한 셈이다.


“깜빡 잊고 그냥 가셨겠죠. 내일 오셔서 다 지불하시겠죠.”

“예. 알겠습니다.”


차 선생은 진료실을 나갔다.


#


건물주는 다음날도 내원했다.


“야아! 원장님 정말 명의시네, 명의셔. 아, 어제 원장님께 침 맞고 한의원을 나서는데 벌써 발목이 아주 가뿐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하나도 안 아파요. 하나도. 하하하.”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나도 침은 많이 맞아본 사람인데, 최고야 최고. 원장님이 최고야.”


그는 운동선수 워밍업 하듯 제자리에서 뛰었다.


“이것 봐요. 이래도 안 아프다니까요. 하하하.”


건물주의 너스레를 듣고 있는 그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 마누라도 같이 왔습니다. 밖에서 접수했는데!”


그는 전자차트를 확인했다.


“박정옥님 이신가요?”

“예. 맞습니다, 원장님.”

“아, 안녕하세요. 사모님은 처음 뵙네요.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제가 2년 전에 왼쪽 어깨에 오십견이 와서 한동안 고생했거든요.”


나이 오십이 되면 발병한다고 해서 오십견이라고 하지만, 공식 의학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일반인에게는 오십견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하다.


그래서 그도 환자들과 대화할 때 오십견이라는 용어를 쓴다.


오십견은 오십대에만 발병하는 것은 아니다.


20대나 30대의 젊은 사람들에게도 발병한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오른 쪽에 또 왔어요. 머리감기도 힘들고, 옷 입을 때도 힘들어 죽겠어요.”

“오른 팔을 위로 한번 올려보세요.”


그녀는 오른 팔을 올려보지만, 반도 올라가지 않는다.


“등이 가렵다고 생각하시고 손으로 긁는 자세를 취해 보시겠습니까?”


그녀는 오른 손을 등으로 가져갔다.


“아유유, 이게 안돼요.”


그는 그 후로도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박정옥님. 밤에 통증이 더 심하시죠?”

“예. 밤에는 쑤셔서 잠을 못 잘 정도에요.”


진단이 끝났다.


“사모님은 기가 잘 돌지 않습니다. 기가 잘 돌지 않으면, 혈액순환에 장애가 올수 밖에 없고요. 그런 일이 장기화되면 어혈(瘀血)이 생깁니다. 이 어혈 때문에 밤에 더 통증이 더 심한 겁니다.”

“그러면 어떡해야 하나요?”

“부항으로 피를 좀 뽑고, 한약을 드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침과 뜸 치료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환부를 항상 따뜻하게 하시는 게 좋고요. 오십견에 도움이 되는 운동기구도 안내해 드릴 겁니다.”

“한약은 보험 약을 주시나요? 다른 한의원에서는 보험 약은 공짜로 주던데요.”


보험 약은 액체 상태가 아닌 가루로 만든 한약을 말한다.


가루한약 역시 공짜는 아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공짜나 다름없다.


“사모님 상태가 심해서 보험 약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가 말했다.


“그래요? 여보, 어떡해요? 한약 지어요?”


그녀는 기대에 찬 시선으로 건물주를 쳐다보았다.


부부가 몇 십 년을 살다보면 여자에게 경제적 주도권이 넘어가기 마련인데?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다.


건물주는 잠깐 뜸을 들였다.


“원장님. <건물주 디스카운트>는 없나요?”

“예? <건물주 디스카운트>요?”

“아니, 방송 보니까 <연예인 디스카운트> 라는 것도 있나보던데, <건물주 디스카운트>는 없나 해서요?”


그는 할 말을 잃었다.


“원장님. 저만 고쳐주시면 원장님한테 치료 받으러 올 사람들 많아요.”


박정옥 씨까지 거들고 나섰다.


두 사람은 분위기를 띄워놓고 그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건물주 디스카운트>. 그런 거 없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연예인 디스카운트>도 없습니다, 우리 한의원은 그렇습니다.”


박정옥은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건물주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사람이 저렇게 앞뒤가 꽉 막혀서야, 원.”


건물주는 저 혼자 하는 말처럼 했지만 다 들릴 정도였다.


“예? 뭐라고 하셨어요?”


그 역시 못 들은 척 되물었다.


“아,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은 부항만 하지, 뭐.”


건물주는 어제처럼 침을 맞았고, 박정옥 씨는 부항치료만 받았다.


#


그가 진료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는데, 한의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대기실이 시끄러웠다.


아직 침구실에는 건물주 내외가 유침중이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귀에 익은 여자의 목소리다.


‘진혜리의 목소리인 것 같은데!’


그는 대기실로 나갔다.


“원장님. 빠, 빨리 좀 가 주세요.”

“무슨 일입니까? 혜리 씨.”

“하, 할머니가 배를 움켜쥐고 우리 식당에서 떼굴떼굴 구르고 있어요.”


갈 때 가더라도 자초지종을 알아야하지만 그럴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알았습니다.”


그는 응급함과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나, 식당에 내려 갔다 올 테니 침구실에 계신 두 분, 십 분 후 발침하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요.”

“알겠습니다, 원장님.”


식당 바닥엔 할머니 한 분이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쥔 채 웅크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날카로운 비명이 끝도 없이 귀를 찔렀다.


얼굴이 백짓장처럼 창백했고, 얼굴과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식당 바닥에 검은 자국을 만들었다.


얼핏 봐도 상황이 심각했다.


그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 명치가 아프세요?”

“아구구, 아구구! 나, 죽겠네, 아이고 배야.”


통증이 얼마나 심했던지 속 시원한 대답도 하지 못하고 비명만 질러댔다.


그 주위로 식당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 네댓 명이 걱정스런 얼굴로 할머니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청진기를 할머니의 배에 갖다 댔다.


배꼽 위, 중완부위, 명치 아래도. 그리고 심장과 폐 부위도 청진했다.


“할머니 평소 병이 있으세요. 지병이 있으시냐고요?”


이번에도 속 시원한 대답은 하지 못했다.


할머니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할머니는 점점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는 진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커졌다.


“혜리 씨. 할머니 양말 좀 벗겨 주시겠어요? 양쪽 다요.”

“아, 알았습니다.”

혜리가 양말을 벗기는 동안, 그는 응급함을 열었다.


그는 삼릉침으로 열 손가락 끝을 아주 빠르게 찔렀다.


십선혈(十宣穴)에 자락술을 행한 것이다.


십선혈은 열 손가락 끝의 침자리인데 주로 응급혈로 많이 활용한다.


그런 다음 그는 두 손으로 열 손가락을 차례로 꽉 눌렀다.


열 손가락 끝에서 새까만 피가 방울방울 삐져나왔다.


“급하게 드시더니 체하신 건가요?”


혜리가 물었다.


“위경련입니다.”


그는 긴 숨을 토해내며 그렇게 말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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