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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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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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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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화해

DUMMY

열흘 동안 한약을 복용하고, 대여섯 번 치료를 받았을 뿐인데 증상이 많이 사라졌다.


호진은 준영이 지어준 한약 파우치 팩을 가위로 자른 다음 컵에 따랐다.


그런 다음 한약을 천천히 마셨다.


매핵기.


목에 뭔가가 걸린 것 같은 답답함이 대부분 사라지고, 약간의 이물감이 느껴질 뿐이었다.


숨도 덜 찼다.


소화에도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숙면을 취할 수 있어 좋았다.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악몽도 꾸지 않았다.


그는 꿈에서 더 이상 새가 되지 않았다.


비상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추락할 일도 없었다.


그는 이미 새가 되어있었다.


지상에 발을 디디고 서 있는 하얀 새.


그를 위해서라면 불구덩이도 뛰어 들 것 같았던 미래당의원들은 연락이 없었다.


빈말로도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의원도 없었다.


서운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서운함은 잠깐 머물렀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는 그런 일에 대해 불평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도 선배정치인에게 그런 식으로 대했다.


간혹 인터뷰 요청을 하는 기자들이 있었고,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출판하자는 제의가 있었을 뿐이다.


그는 이 모든 요청을 거절했다.


그래도 전화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은 명순이었다.


-아침은 자셨어요?-

-몸은 좀 어때요?-

-한약 꼭 데워 드세요. 찬 거 그냥 드시지 마시고요.-


마누라 세상 떠난 지 오 년째라 명순의 잔소리가 한 편으로는 정겹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귀찮기도 했다.


#


재상 역시 많이 좋아졌다.


언어장애가 많이 해소됐다.


팔다리의 마비 상태도 많이 좋아져 걷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물론 발병 전 상태로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는 허준영 한의원에서 박호진과 세 번 만났다.


세 번 전부 우연이었다.


그는 호진과의 만남이 편치 않았다.


서울에 널린 게 한의원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한의원에서 치료 받는 건 내키지 않았다.


그는 준영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박호진 의원님 몇 시에 치료 받으러 오시나요?”


재상은 한의원의 두 선생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매 번 다르세요. 두 시에도 오시고, 세 시에도 오시고요.”

“네 시 이후에도 오시나요?”

“아, 그러고 보니 네 시 이후에 오신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재상은 며칠 째 다섯 시 이후에 치료 받으러갔다.


그는 며칠 후 복직할 생각이었다.


출근 후에도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계속 치료를 받을 생각이었다.


허원장이 그만 다녀도 된다고 할 때까지.


재상은 앞으로는 잔머리 굴리지 않고 살 생각이었다.


그는 잔머리 굴리다가 뇌경색이 온 거라고 생각했다.


정계진출의 꿈은 버렸다.


계속 언론인으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으로.


#


명순은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들 정현과 호진의 화해.


부자가 정치적 진영을 떠나서 화해 할 수만 있다면 정말이지 더 바랄 게 없었다.


-저기, 아범.-


그녀는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범!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했지?-

-예. 많이 아프네요. 치료 받아도 그 때 뿐이고, 지금도 아파서 의자에 앉지 못하고 서서 일하고 있었어요.-

-저런! 그렇게 아파서 어쩌누!-

-평생 안고 살아야 될까 봐요. 어머니.-

-저기 그래서 말인데, 내가 자주 다니는 한의원이 있거든. 그 한의원 원장님이 정말 침을 잘 놓으시거든. 한약도 잘 짓고 말이야.-

-소용없어요. 한의원에서 침도 여러 번 맞아봤는데, 안되더라고요.-

-여기 원장님은 다르다니까. 나한테 속는 셈치고 한 번만 같이 가서 치료 받아보시게. 다음부턴 가지말래도 아범이 알아서 갈 걸.-


#


명순과 정현이 탄 차가 한의원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려 건물로 향하는데, 박호진이 앞에 서 있었다.


정현은 그제야 알아차렸다.


명순이 자신을 이곳으로 데려온 이유를.


호진 역시 여기서 정현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모든 일이 명순이 꾸민 일이라는 걸 뒤늦게 알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정현은 호진앞으로 다가갔다.


그런 다음 고개 숙여 인사했다.


호진은 뭐라 한마디 따뜻한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하얘졌다.


단 한마디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호진은 정현 앞으로 다가갔다.


손으로 정현의 어깨를 다독여 주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때였다.


퍽!


어디선가 날아온 계란이 정현의 가슴을 때렸다.


깨진 계란은 정현의 가슴팍에 누런 자국을 남기고 땅위에 떨어졌다.


“이정현! 이 나쁜 놈!”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한 남자가 정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나쁜 놈! 내 손에 죽어 봐라.”


남자는 손에 든 칼로 정현을 찔렀다.


정현은 용케도 남자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남자의 완력은 만만치 않았다.


남자는 정현의 손을 뿌리친 다음 다시 한 번 더 칼을 휘둘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호진이 정현 앞을 막아섰다.


호진은 정현과 달랐다.


남자를 막아 낼 기력이 부족했다.


남자의 칼은 호진의 왼쪽 가슴을 찔렀다.


으윽!


호진은 왼쪽 가슴을 움켜쥐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호진을 찌른 남자는 당황했다.


엉뚱한 사람을 찌른 것이다.


“의, 의원님!”


남자는 칼을 집어던지고 달아났다.


정현은 쓰러진 호진을 안았다.


“아버지! 아버지!”


호진과 정현을 실은 구급차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도로 위를 질주했다.


의사 여러 명이 호진을 실은 스트레쳐카를 밀었다.


그 뒤를 정현이 달렸다.


그의 얼굴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아버지. 아버지, 제발!”


정현과 명순이 병원복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담당의사가 다가왔다.


“칼이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갔으면 정말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현이 물었다.


“빨리 수술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면 빨리 수술 해 주십시오.”


정현이 다급하게 말했다.


“그래야죠.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수혈을 해야 하는데, 박호진님이 Rh― 혈액형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Rh― 혈액병은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 1% 밖에 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병원에도 Rh― 혈액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정현은 탄식했다.


“다른 병원에 알아봐야 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선생님. 저도 Rh― 입니다. 아마 등록이 되어 있을 겁니다. 제 피를 수혈해 주십시오.”

“아! 그렇습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그러면 박호진님 보호자분들에게 빨리 연락해 주십시오. 수술 동의서에 서명해야 하거든요.”

“저, 그게, 의원님이 5년 전 사별하셨습니다. 그리고 따님이 한 분 계신 걸로 아는데,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러면 어떡하죠?”

“제가 서명하면 안 될까요?”

“장관님이요?”

“제가 모든 걸 다 책임질 테니 빨리 수술 해주십시오. 일분일초가 급하지 않습니까?”

“예. 알겠습니다.”


정현은 침대 위에 누워있었다.


그의 몸을 빠져나온 피가 튜브를 통해 팩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그는 흐르는 눈물을 닦지 못했다.


박호진을 찌른 남자는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이정현. 그 놈 때문에 의원님이 정계은퇴를 하셨어요.”


진실이 뭐든, 남자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내 손으로 이정현을 죽이고 싶었는데······.박호진 의원님이 대통령이 되시는 걸 이 두 눈으로 꼭 보고 싶었는데······.”


남자는 조사를 받으며 펑펑 울었다.


“내 칼에 의원님이 다치시다니! 괜찮으신 거죠? 의원님 수술은 잘 되신 거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정현은 바쁜 와중에도 호진을 자주 찾아왔다.


“불편하신데는 없으세요?”

“그럼. 없어.”

“식사는 잘 하시구요?”

“너무 잘 먹어서 탈이야. 체중이 늘면 안 되는데 큰일이야.”

“그래도 잘 잡수셔야 해요. 그래야 빨리 회복하죠, 아버지.”


그는 호진의 휠체어를 밀면서 병원 주변을 산책하기도 했다.


“저 나무는 수령이 몇 년이나 되었을까?”


그는 밀던 휠체어를 멈추고, 호진이 바라보는 나무를 함께 바라보았다.


호진의 뒤에 서서 같은 방향을 보면서.


“한 70, 80년은 되어 보이네요.”

“그래! 그러면 저 나무가 내 친구네.”

“하하하. 그러네요. 아버지.”


그는 뒤에서 호진을 가만히 끌어안았다.


호진의 손이 그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명순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약간 맺혔다.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을 들키지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애썼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눈물을 조금 흘렸다.


······


사실은 아주 많이 흘렸다.


#


안재상의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다.


“저 자신은 아주 미세하게 불편을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젠 제 발음이 이상하다고 못 느끼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듣기에도 아주 좋은데요.”

“그렇죠? 원장님. 하하하.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족의 운동기능도 80% 정도는 회복이 된 상태였다.


“며칠 전부터 하루 2만 보정도 걷습니다. 웬만한 거리는 일부러 걸어 다니고요. 교통비도 아끼고, 좋던데요.”

“술 담배는요?”

“딱 끊었죠. 우리 신문사 사람들한테 술 마시러가자는 말 아예 하지도 말라고 엄포 놨죠.”

“잘 하셨네요.”

“건강 한 번 잃으니까, 정신이 번쩍 들던데요.”

“길게 보면, 뇌경색으로 액땜 하신 거네요!”

“그런 셈입니다. 이게 다 원장님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그는 어느 날 후배 기자를 한 명 데리고 내원했다.


“제가 예전에 사회부에서 근무할 때 같이 일했던 후배 기자입니다.”

“안녕하세요. 문수영 기잡니다. 선배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명의라고 그렇게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아이유. 과찬이십니다.”


그는 침구실로 가서 재상에게 자침한 다음 다시 수영과 마주 앉았다.


“사실은 제가 8년 전에 딸아이를 출산했습니다. 당시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할 때라 많이 무리했죠. 배가 남산만한데도 밤에 경찰서도 몇 번 들락날락거리기도 했었거든요.”

“경찰서를요?”

“예? 아, 아니 사고를 쳐서 경찰서를 드나든 게 아니라요. 제가 그때 경찰서를 담당했거든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임신부를 경찰서에 드나들 게 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다가 만일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그러니까요. 먹고 살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요. 신문사에서도 문화부로 발령 내주겠다고 했는데, 그게 이런 저런 이유로 늦어지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요?”

“출산예정일 45일 앞두고 휴가내고, 출산하고 또 45일 휴가 냈죠.”

“규정이 그런가 보죠?”

“예. 맞아요. 그런데 아기를 출산한 이후로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요. 몸에 찬기가 돌아 이건 살 수가 없어요. 어떨 때는 등줄기로 찬물이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고요. 한 여름에도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을 못 쐴 정도로 추워요. 그러면서도 더워서 땀은 또 나거든요. 그러니 에어컨을 틀수도 없고, 안틀 수도 없고요. 사무실에 나 혼자 일하는 것도 아니니, 끄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에요.”

“정말 힘드시겠군요.”


출산 후유증.


일반인들에게는 산후풍(産後風)이라는 용어가 더 친숙하다.


그는 지금까지 산후풍으로 고생하는 아기 엄마들을 많이 경험했다.


그러니 이 정도만 들어도 어떤 상태인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호소를 끊지 않고 다 듣고 있었다.


그러니 한 환자를 너무 오래 진료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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