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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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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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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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2화 고물장수의 아들

DUMMY

“왜 새치기를 햐나고요?”


그때 준영이 대기실에 모습을 드러냈다.


상황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를 본 건물주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처럼 기세를 올렸다.


“원장님. 마침 잘 나오셨네. 내가 침구실로 들어가려는데 이 사람이 내 팔을 확 잡아당기는 바람에 다친 것 같으니 한 번 봐 주시죠.”

“어디 한 번 볼까요?”


그는 건물주의 팔 여기저기를 만져봤다.


“괜찮으시네요. 멀쩡합니다.”


그의 말에 건물주는 서운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명준님. 최문규님. 침구실로 들어가시죠. 그리고 황사장님 내외분은 보자······ 약 40분 정도 기다리시면 되겠네요.”

“아니, 원장님. 내가 중요한 점심 약속이 있어서 빨리 가봐야 하거든요.”

“저도 들었습니다. 그러면 기다리시는 동안에 진료비 결제부터 먼저 하시는 게 좋겠네요. 단 일분이라도 아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건물주는 몹시 당황했다.


“차 선생님. 황종우님 미리 결제하시겠다니 도와 드리세요. 아! 어제, 그제 결제 안 하신 것도 한 번에 다 하세요. 그래야 시간을 아끼실 수 있으니까요.”


그는 눈으로 건물주를 접수대 앞으로 안내했다.


“알겠습니다, 원장님. 황종우님.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오늘 치료비까지 한 번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건물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접수대 앞으로 갔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건물주 내외는 그 후로는 며칠 째 오지 않았다.


모욕감을 느껴서인지, 공짜 치료가 차단당해서인지, 아니면 다 나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


오전에 잠깐 비가 왔다.


그래서인지 공기가 비교적 맑은 오후였다.


할머니 한 분이 오셨다.


치료 받으러 오신 건 아니었다.


“아! 며칠 전에 여기 선생님한테 침 맞았던 고물장수할머니요.”

“아아! 남명순 할머니요?”

“맞아요 맞아? 나하고 성님 동생하고 지낸지 20년이 넘었어요.”

“그러시군요. 그런데······?”

“그 성님이 오토바이를 피하다 다쳤어요. 병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뼈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며칠 째 꼼짝을 못하고 드러누웠어요.”

“아, 그렇습니까?”


워낙 고령이라 안 좋으신 모양이었다.


“아유! 이 성님이 여기 전화번호도 모르고, 한의원 이름도 모르고, 그냥 선생님만 찾는데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선생님? 왕진 오실 수 있나 모르겠네요?”

“왕진이요?”

“그 성님 형편이 어려워 왕진비도 못 드리는데, 그래도 괜찮을라나 모르겠네요.”


예찬이 모자가 살던 한옥은 이에 비하면 호화주택이다.


좁은 길을 몇 번 꺾어서야 앞서 가던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찾을 것 같았다.


“여깁니다, 선생님.”


마당도 없다.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내 불이 켜졌다.


길과 방사이에 문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쪽방집!


이런 집을 쪽방집이라고 하나?


그는 몸을 한껏 낮추어 방으로 들어갔다.


역한 냄새가 훅, 끼쳤다.


“성님. 선생님 모시고 왔어요. 성님이 그렇게 애타게 찾던 한의사 선생님이요.


잠든 듯이 있던 남명순 할머니가 꿈틀거렸다.


“오셨수? 이렇게 누추한 데 오시라고해서 죄송해요, 선생님.”

“아니에요, 많이 아프세요?”

“아니! 오토바이에 부딪힌 것도 아니고 그냥 피하다가 넘어졌는데 이렇게 아플 수가 없네요. 차라리 죽으면 좋을 텐데, 죽지도 않고······.”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제가 한 번 살펴볼게요, 할머니.”


그는 할머니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눌러도 보고 만져도 봤다.


원래도 몸에 냄새가 심하게 나던 할머니가 며칠 째 씻지도 못해서인지 참기 어려운 역한 냄새가 났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했다.


진맥도 했다.


예상했던 대로다.


일흔이 넘은 분이 몸을 아끼지 않고 힘든 일을 했으니 몸이 성할 리 없다.


그런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피하다 넘어졌으니 운신도 못하고 드러누워 계시는 거다.


골절이 아닌 게 다행이다.


만약 골절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할머니. 제가 침을 놔 드릴게요. 당분간은 일 나가지 마시고 집에 계세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일 안하면 어떡해요?”

“그래도 일하시면 안돼요. 제 말 들으셔야 해요.”


그는 자침했다.


그는 다음날도 남명순 할머니를 치료하러 갔다.


미로 같은 길이라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용케도 찾았다.


할머니는 어제보다 상태가 조금 나아보였다.


“어제는 앉지도 못하시더니 오늘은 일어나 앉으시네요. 죽도 몇 숟갈 자셨고요.”


주영임 할머니는 침을 놓는 준영의 옆에서 그렇게 말했다.


“내가 그랬잖아. 이 선생님이 침을 제일 잘 놓으신다고. 신침(神針)이야 신침!”

“아닙니다, 할머니. 아무튼 좋아지셔서 다행입니다.”


치료를 마치고 방을 나서는데 주영임 할머니가 따라나섰다.


“아직 저녁 안 자셨죠? 요 밑에 국밥 잘하는 집이 있으니 거기 갑시다. 우리 성님이 선생님 맛난 거 사드리라고 돈도 주셨으니까요.”

“아유, 아닙니다. 제가 알아서 먹으면 됩니다.”

“이 먼 곳까지 치료해주시느라 수고 하시는데, 그냥 보내면 사람 도리가 아니죠. 못 이기는 척하고 내 동생하고 같이 가셔요, 선생님. 그 식당이 보기엔 그래도 음식 맛은 좋아요. 먼데서도 찾아오는 뎁니다. 어서 가서 저녁 자셔요. 그래야 내가 덜 미안하지 안 그러면 치료도 못 받아요.”


남명순 할머니의 간청을 뿌리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일 또 치료하러 올 테니 몸조리 잘 하세요, 할머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식당은 허름했지만 국밥 맛은 제법이었다.


주영임 할머니는 수육에다 소주도 한 병 시켰다.


그는 소주 한 잔을 입안으로 털어 넣은 다음 수육 한 점을 입에 넣었다.


비계와 살코기가 적당히 섞인 데다, 육즙도 풍부해 입에 착 달라붙는 게 보통 맛이 아니었다.


“여기 소주 한 병 더 줘.”


소주 한 병을 다 비운 주영임 할머니는 그렇게 소리치더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국밥 한 그릇을 다 비운데다 소주까지 몇 잔 마셨더니 취기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집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


명순은 부모를 일찍 여의였다.


그 후로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대학에 합격했다.


1학년 겨울 방학 때, 외할머니마저 돌아가셨다.


이젠 자신이 돈을 벌어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해야했다.


돈을 번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버텨나갔다.


대학 2학년 때 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명순은 그 남자를 통해 갈증을 채우려했다.


남자는 그녀에게 갈증을 해소하고도 남을 사랑을 주었다.


그의 품안에서 그녀는 행복했다.


아기가 생겼다.


그러자 남자는 덜컥 겁이 났다.


명순은 남자에게 자신을 다 내줘도 아까울 게 없었지만, 남자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자신도 아직 대학생 신분이었고, 군대도 갔다와야하고, 취업도 해야 했다.


두려움이 커졌고, 이런 상황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고 일어났다.


“명순아.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낳는 건 무리야. 낳으면 어떻게 키울 거야?”

“그래도 낳고 싶어. 우리 둘이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키우면 돼.“


여대생이 아이를 낳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시대가 아니었다.


잘못하면 퇴학을 당할 수도 있다.


“우리 부모님도 반대하셔. 널 절대로 며느리로 인정할 수 없대. 아기는 나중에 다시 가지면 되잖아.”


명순 역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하지만 아기에 대한 사랑이 불안감을 덮어버렸다.


명순은 남자의 제안을 거부했다.


남자와 그의 부모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명순은 잠적했다.


그리고 아기를 낳았다.


부모도 없는 대학생이 혼자 아기를 키우고 대학도 다닌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이 모든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했는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뒤늦게 겁이 덜컥 났다.


‘이대로라면 며칠 못가 우리 모자는 굶어 죽을 게 뻔해.’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할 때 쯤, 알고 지내던 언니가 제안을 해왔다.


“아기 나줘. 내가 잘 키울게.”


결혼한 지 십 년이 다 되었지만 임신을 하지 못하던 언니였다.


명순은 고심 끝에 결심했다.


아이의 장래를 우선 생각하기로.


“약속해 줘요, 언니. 우리 아기 잘 키우겠다고요.”

“너도 한 가지 약속해줘. 평생 아이 앞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날 엄마로 알고 살 수 있게 말이야.”


명순은 약속했다.


아이 앞에 절대 나타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켰다.


그러는 것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이의 소식을 모르고 살지는 않았다.


언니는 잘 키우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아이는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명순은 너무나 기뻤다.


아이 앞에 나타나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었다.


언니에게 고맙다고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참았다.


언니가 약속을 지켰듯이 자신도 지키고 싶었다.


오로지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아이가 몇 년 후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도, 검사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도 참아야만 했다.


그녀는 아이가 검사 생활을 하던 십여 년 동안 근무했던 곳을 다 꿰고 있었다.


아이가 결혼을 할 때도 결혼식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먼발치에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갔지만 혹시 언니와 마주칠까봐 결혼식장 건물 밖에서 서성거리기만 했다.


#


“끝내 아들 얼굴도 못 보고 결혼식장에서 돌아와 펑펑 울던 성님 모습이 선한데 벌써 이십 년이 다 되가네요.”


주영임할머니는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그 아들 지금도 검찰에 있나요?”

“몇 년 전 검찰에서 나와 정치에 뛰어들었어요. 지금은 국회의원 하죠.”

“아 예.”

“이제 곧 장관 될 거예요.”

“그래요?”

“아, 이정현 의원 모르세요?”

“이정현의원은 알죠.”


정치에 별 관심이 없는 그도 알 정도면 꽤 유명한 의원이라고 봐도 된다.


“며칠 전 보건복지부장관에 지명된 그 사람 말이죠?”

“맞아요. 그 이정현이 우리 성님 아들이에요.”

“아아. 그래요?”


이정현.


사십대 젊은 정치인.


그는 이제 겨우 초선의원에 불과한데도 차기 대권주자중 한 명으로 거론되는 정치인이었다.


보건이나 복지 분야에 전문가가 아닌 검사 출신이 보건복지부장관에 지명되자,

야당은 연일맹공을 퍼부었다.


<여권의 강력한 대권주자에게 날개를 달아주려는 것이다.>


정치를 좀 안다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의견이었다.


그런 만큼 야당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이정현의 날개를 꺾는 것은 물론 이 참에 목을 확 비틀어버리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는 주영임 할머니의 말을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의문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술주정이라기에는 제법 그럴듯했다.


할머니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할머니 많이 취하셨어요. 그만 집으로 가셔야죠. 저도 집에 가서 쉬어야하고요.”


그러나 할머니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


미래당의 차기 대권주자인 박호진은 어이없으면서도 불쾌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차기대권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자신이 선두였다.


2위인 여권주자와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 났다.


그때만 해도 이정현은 3%를 넘지 못해 여권주자 가운데서도 4, 5위 정도였고,


여야대권주자를 통틀어서 8, 9위 정도였다.


그러니 박호진의 입장에서는 이정현은 관심인물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40대 중반이고, 초선의원이다.


5선의원이고, 지난 대선에서 1% 이내의 차이로 패배한 자신과는 어느 모로 보나 경쟁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정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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