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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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5.1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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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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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1화 고물장수

DUMMY

“위경련이요?”


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관혈((四關穴))에 침을 놓았다.


양 손의 엄지와 검지가 만나는 곳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자리의 합곡(合谷).


양 발의 엄지와 검지가 만나는 곳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자리의 태충(太衝).


이 두 혈을 합쳐서 사관혈이라 하는데, 우리 몸의 기혈을 순환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는 혈자리이다.


사관혈에 놓았던 침을 발침한 후, 그는 이번에는 침통에서 장침을 꺼냈다.


중완에 자침하기 위해서였다.


혜리의 눈이 커졌다.


그는 중완에 장침의 끝을 살짝 찔렀다.


우선 복부의 표피부터 살짝 뚫었다.


살이 많은 부위라 힘들지 않았고, 부드럽게 들어갔다.


이를 감지한 그는 장침을 조금씩 밀어 넣었다.


침이 들어가다가 뻑뻑하거나 걸리는 느낌이 있으면 정확한 혈자리가 아니다.


사람마다 약간의 변형이 있기 때문에, 중완이 똑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


정확한 혈은 의사의 숙련도와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침을 정위(正位)에 놓았을 경우에는 침이 부드럽게 들어간다.


환자의 몸이 침을 빨아 당기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같은 혈자리에 자침 하더라도 정위냐 부정위냐에 따라 치료효과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


중완에 놓은 침이 3센티 정도 들어갈 때까지 그의 손끝에 느껴지는 감각이 좋았다.


뻑뻑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몸이 침을 밀어내지도 않았다.


“헉! 그렇게 깊게 넣어도 괜찮아요?”


혜리는 저도 모르게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졌다.


“죄송해요.”


그녀는 그가 화를 내는 걸로 오해했다.


그 정도의 말에 집중력이 흐트러지지는 않는다.


그는 집중력을 더 높이기 위해 얼굴을 일그러트린 것이었다.


“괜찮아요.”


그는 혜리의 오해를 풀어주었다.


그는 장침을 조금 더 밀어 넣었다.


5센티 정도 들어갔다.


‘침이 복막에 닿으려면 얼마나 남았을까?“


아직은 괜찮다.


‘그러나 많이 남아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보이지도 않는 복막의 위치를 가늠해보았다.


그는 장침을 조금 더 밀어 넣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느낌이 그의 손끝에 전해졌다.


‘됐다. 멈춰야한다.’


그는 침병에서 손을 뗐다.


여기서 더 밀어 넣으면 복막에 닿을 게 틀림없다.


복막에 닿는다고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거기서 더 들어가는 건 안 되지만.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위험은 커지고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친 다음 한의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차 선생. 우리 한의원에 꿀 있죠?”

“예. 원장님”

“그 꿀 머그컵에 반 컵만 담아서 식당으로 가져 오세요. 그리고 소건중탕 산제(散劑) 두 봉지도 같이 가져 오세요. 최대한 빨리요.”

“예. 알겠습니다.”


침을 놓은 지 오 분 정도 후.


할머니의 비명은 멈췄다.


사그라지던 의식도 돌아왔다.


백지장처럼 창백하기만 했던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아! 눈 떴다. 할머니가 눈 뜨셨어.”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할머니의 뒤틀렸던 손발이 반듯해졌다.


차 선생이 식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꿀이 담긴 컵에 소건중탕 두 봉지를 다 넣었다.


그리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차 선생. 이거 잘 저어 주세요.”


그는 할머니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배가 움직임에 따라 장침도 따라 움직였다.


장침이 처음 놓았을 때보다 훨씬 더 탄력적으로 움직였다.


그는 경련을 일으켰던 위장이 정상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중완에 놓았던 장침을 천천히 뺐다.


장침을 밀어 넣을 때 못지않게 정성을 다해 발침했다.


“세상에 말도 안 돼. 아니. 저 긴 침이 다 들어가는데도 아무 일 없네!”


주변에 둘러 서 있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와,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 일 없기는. 할머니 병이 나았는데 왜 아무 일 없다는 게야?”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웃음이 또 한 번 터졌다.


웃기지도 않는 말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는 건, 지켜보던 사람들의 마음이 편해졌다는 뜻이다.


“멀쩡해 지셨는데. 허허허!”


장침은 들어갈 때처럼 뺄 때도 걸림 없이 부드럽게 빠져 나왔다.


할머니는 길게 숨을 토했다.


마치 병을 토해내듯이.


“좀 어떠세요, 할머니?”

“휴우. 살겠네요. 이제야 좀 살겠네요.”

“정신이 좀 드세요?”

“선생님이 절 살려주셨어요? 아유,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할머니 위경련이에요. 전에도 이런 일 있으셨어요?”

“아뇨. 처음이에요.”

“평소 지병이 있으세요?”

“하이고 참. 선생님도. 몇 십 년 동안 궂은 일 마다않고 산 칠십 넘은 노인네가 병이 없다면 그게 이상한 거죠. 고혈압에 당뇨에 관절염에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안 아픈데 가 없어요.”

“알겠습니다. 할머니 일어나 앉으세요. 이 약 드시고 우리 한의원에 가서 침대에 누워서 좀 쉬시다 가세요. 배에 핫백도 해 드릴게요. 여기는 식당이라 계속 있기에는 곤란하거든요.”

“아유! 내가 식당에 폐를 끼쳤네. 미안해요, 아가씨.”


할머니는 혜리를 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할머니. 원래대로 돌아와서 다행이에요.”


그는 한약을 복용한 할머니를 업고 한의원으로 갔다.


식당 안에는 남자 손님도 여럿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 할머니 몸에 손을 대려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의 몸에서는 심한 냄새가 났고, 옷도 더러웠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리어카를 끌고 온 동네를 다니는 고물장수였다.


그는 혼자 할머니를 업고 한의원 침대에 누인 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할머니 침대에 누워 좀 쉬었다 가세요. 차 선생. 할머니 배위에 핫백 하나 올려 드리세요.”


깨끗하게 세탁한 침대시트가 더러워진데다가 냄새가 나는 할머니를 데려온 것이 못마땅한 차 선생은 입이 대빨은 나왔다.


그러나 어쩌겠나! 원장님의 지시인데.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는 전쟁을 치른 것 같았다.


당 보충의 필요를 느낀 그는 커피믹스를 타서 한 잔 마셨다.


노크소리.


조 선생이 진료실로 들어왔다.


“원장님. 황종우씨하고 박정옥씨요.”

“아! 그 두 분 가셨나요?”

“예. 원장님 백반 집에 가셨을 때요.”

“그랬군요.”

“그런데 오늘도 치료비 안 내고 그냥 가셨어요. 두 분 다요.”

“예?”


뒤통수로 뭔가가 확 치받쳐 올랐다.


“제가 대놓고 오늘은 치료비 결제해달라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랬더니요?”

“나, 이 건물주인이야, 그러더니 휙 가던데요.”


그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기 위해서 이를 악 물었다.


으으윽!


조 선생은 진료실을 나가려다가 돌아섰다.


“그런데 황종우님. 왜 저한테 반말이에요? 원장님도 저한테 존댓말 하는데 왜 꼬박꼬박 반말이야?”

“다음에 오시면 꼬박꼬박 존댓말 해달라고 하세요.”


삼 십 분 정도 지났을까?


그는 할머니가 걱정됐다.


침구실로 갔다.


할머니는 대자로 누워 주무시고 계셨다.


코까지 골면서.


할머니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할머니.”


꿈쩍도 않으신다.


“할머니이!”


그가 목소리를 높이자, 할머니는 겨우 눈을 뜨셨다.


“잉? 여기가 어디요?”

“여기 한의원이에요, 할머니. 아까 식당에서 위경련으로 쓰러지셨는데, 기억 안 나세요?”

“기억나지. 암 기억나고말고. 아까 날 고쳐주셨던 그 선생님이시네. 고맙수.”

“예. 이젠 댁으로 가셔야죠. 무리 하지 마시고 일찍 들어가세요.”

“아유, 아녀요. 저기 리어카에 실은 거 다 넘기고 가야지, 그냥 가면 똥 누고 뒤 안 닦은 거 같아 찝찝해서 안 되우.”

“그러면 마무리만하고 들어가세요. 위경련은 또 재발할 수 있거든요.”


“치료비 얼마 드려야해요?”


할머니는 접수대 앞에서 지갑을 열었다.


“그냥 가세요, 할머니.”


그가 말했다.


“그냥 가다뇨? 말도 안 돼요. 치료를 받았으면 치료비를 내야죠.”

“괜찮습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

“아이고, 아녀요. 옛 말에 공짜로 치료 받으면 효과가 없다잖아요.”

“이미 효과는 보셨으니 안 내셔도 되죠.”

“호호호. 그런가!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못 쓰지. 여 선생님들. 치료비 얼마요?”


그가 뭐라 하기 전에 차 선생이 냉큼 나섰다.


“할머니 존함과 주민등록번호 말씀해 주세요.”


할머니는 기어코 치료비를 내고 가셨다.


삼 십분 후 할머니는 다시 오셨다.


손에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계셨다.


“요 앞에 보니까 떡집이 있더라고. 출출하실 때 드셔. 자, 난 갑니다.”


인절미, 시루떡, 찰떡.


세 사람이라고 떡을 세 개나 사 오신 모양이었다.


“어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게 맛있겠다. 원장님 드릴까요? 지금 드실래요?”

“그럽시다. 안 그래도 배가 출출하던 참인데요.”


그는 쟁반에 떡을 담아 진료실로 들어갔다.


#


다음날 출근한 지 십 분도 되지 않아 신환 3명이 같이 왔다.


“어제 요 아래 일층 백반 집에서 할머니 고쳤다는 한의원이 여기 맞죠?”

“예. 맞아요. 치료 받으시게요?”

“여기 선생님이 그렇게 신통하다고해서 침 맞으러 왔어요.”


이십 분 후 또 한명, 십 분 후 또 한명.


그런 식으로 열한시도 되기 전까지, 할머니를 고쳤다는 소문을 듣고 여덟 명의 신환이 내원했다.


할머니와 무관하게 온 환자들도 여럿 있어, 한의원은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두 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몸놀림도 가벼웠다.


환자가 너무 많은 것도 피곤하지만 너무 없으면 더 피곤한 법이다.


순간적으로 환자가 몰리는 바람에, 치료베드가 부족한 상황이 됐다.


대기실 의자도 부족해서 몇 사람은 서서 기다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자리가 날 거예요.”


기다리다가 지쳐 한 명이라도 그냥 돌아갈까 봐, 두 선생은 그 바쁜 와중에도 있는 친절, 없는 애교 사정없이 발사했다.


준영만 느긋했다.


그는 환자들이 기다리든 말든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진료에 정성을 다했다.

당연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건물주 내외가 왔다.


건물주 내외는 어제와는 사뭇 다른 한의원의 상황에 깜짝 놀랐다.


“어머!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여보?”


박정옥이 놀란 얼굴로 원내를 두리번거렸다.


“그러게. 우리 원장님 돈을 아주 갈고리로 끌어 모으시네. 허허.”


건물주는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대기실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침구실에서 치료를 다 받은 두 명의 환자가 대기실로 나왔다.


“이명준님. 최문규님. 침구실로 들어가세요.”


조 선생이 그렇게 말하자, 호명된 두 사람은 대기 의자에서 일어나 침구실로 들어가려했다.


그러나 건물주가 먼저 침구실로 들어갔다.


이명준 환자가 건물주에게 말했다.


“이것 보슈. 우리보고 들어가라는 말 못 들었소? 댁들은 조금 전에 왔잖소. 우린 한 시간도 넘게 기다렸다가 이제 들어가는 거란 말이오.”

“내가 중요한 점심 약속이 있어서 그래요. 먼저 치료 좀 받읍시다.”

“난 뭐 할 일이 없어서 한 시간이나 기다린 줄 아쇼?”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곧바로 치료 받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웬 환자가 이렇게 많은지! 시간 맞춰 왔는데 이렇게 되면 약속 시간에 못 맞춰서 그래요. 그러니까 그 쪽이 좀 양보하쇼. 들어갑시다, 여보.”


침구실로 들어가려는 황종우의 팔을 이명준이 잡았다.


“어딜 들어가요?”


황종우의 몸이 휘청거렸다.


“어라! 이 사람이! 이게 무슨 짓이야? 이거 못 놔!”

“못 놓는다. 어쩔래?”


건물주가 반말을 하자, 이명준도 맞받아 반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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