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하추풍검 - 5분 후 갈라져 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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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렉스
작품등록일 :
2023.05.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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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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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2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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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변발도공 영힐 2

DUMMY

초풍의 상처가 용총의 몸 위를 가로질렀다.


그는 내가 죽였다.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맴도는 듯했다.


나는 잠시 그의 주검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제 다른 호법들을 추적하죠."


그리 말하며 철존을 보았다.


철존의 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았다. 녹유단으로 회복한 뒤에도 훔권에 두 번이나 맞았고, 마지막에는 용총과 절초로 대결하느라 크게 다쳤다.


한수가 작봉착화로 외상은 치료해 주었지만, 내상은 치료하지 못해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물론 철존은 그런 몸 상태로 나서려고 했지만,


"타갈! 민폐 끼치지 말고 구석에 처박혀 있어라!"


한수가 철존을 꾸짖었다.


한수에게 했던 말이 그대로 돌아오는 상황에 철존은 굴욕감을 숨기지 못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한수도 그걸 알고 곧장 너그러운 투로 목소리를 바꾸었다.


"괜찮다. 제주도 무림에는 수많은 맹자猛者들이 있다.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그러니까 자네는 쉬고 우리에게 맡겨라."


"···칫."


철존은 혀를 차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우리는 출발하지."


한수는 나와 함께 말을 타고 당산봉을 내려갔다.


둘이 도로를 달리는데, 멀리서 싸움이 일어난 것이 보였다.


"용수교차로 쪽이군."


한수의 말에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폈다.


처참한 현장이었다.


노루미의 호법인 서침 영힐이 포졸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길 한복판에서 버티고 있었다.


그의 발도 한 번에 포졸 서넛이 누워 버리니 포졸들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방도가 없었다.


노루미를 쫓으려면 저 길은 피해 가는 게 낫겠지만···.


"저 녀석, 계속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두고 볼 수 없었다.


"멈추지 않으면 수많은 희생이 일어날 거예요."


"그렇군."


한수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저 자는 내가 맡을 테니 소협은 노루미를 추적하도록 하게."


나는 영힐을 잠시 바라보다 한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한수에게 전음이 왔다.


"어, 명윤, 무슨 일이지?"


명윤인 듯했다.


"음, 음, 한 명은 확인되었는데, 다른 한 명은 아직 도주하는 중 아닌가?


음··· 알았다. 우리 쪽에서 둘 다 처리하지."


한수는 전음을 끊고 대화한 내용을 내게 알려주었다.


"명윤이 신무림 관아에 항의해서 제주시에서 노루미를 잡을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는군."


"그건 좋은 소식이군요."


"우리가 노루미를 쫓기에는 너무 머니까 그 근방의 포두들에게 연락하여 쫓도록 했는데, 우리에게는 아직 마을 안에 있는 호법 두 사람의 처리를 부탁했다."


"그 중 한 사람이 저 녀석이로군요."


"그래,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패천당을 무너뜨린 녀석이지."


'정황상 란저라는 호법이겠군.'


한수가 주먹을 우두둑 꺾었다.


"소협,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다른 녀석을 쫓으러 갈 테니, 저 녀석을 자네가 상대해주면 좋겠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한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길로 떠났다.


이제 이곳엔 나 혼자만 남았고, 이 길 너머에는 영힐이 있었다.


나는 피바람이 부는 현장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갔다.


달려가는 동안 잡생각이 들었다.


용총, 그가 죽기 전에 내게 남긴 말.


루아를 구한 것처럼 노루미도 구해달라던 말.


항쟁을 끝내달라던 말.


필요하다면 세존을 쓰러뜨리라던 말.


'미안하다, 용총이여.'


나는 고개를 저어 그의 목소리를 떨쳐냈다.


나는 루아의 가족 같은 호법들을 죽였다.


나는 루아에게 자유를 주겠다고 했지만,


알고 있다. 그건 도피에 불과하고,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내게 암살을 지시한 원흉들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들을 죽이지 않는다면 나와 루아는 영원히 도망쳐야 한다.


용총, 네 말을 듣고 느낀 게 있다.


역시 도망치기보다는 맞서 싸워야 한다.


싸워서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


항쟁 자체를 끝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죽이고, 세존도 죽여야 한다.


그리고, 노루미 역시 죽여야 한다.


나는 점점 영힐에게 가까워졌고, 어느 순간 그가 나를 눈치챘다.


"물러나세요!"


내가 포졸들에게 소리쳤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그 순간 영힐의 두 눈이 번뜩였다.


발도.


"일광."


무인 풍양보.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올라 그의 검격을 피했다.


공중에서 몇 바퀴 돌고 착지하여, 그와 대치하였다.


바람이 불어와 나와 영힐의 옷가지를 흔들었다.


"서침 영힐."


내가 말했다.


"노루미는 진작 떠났는데 혼자 여기서 뭐 하는 거죠?"


그 말에 영힐은 무언가 느낀 듯 어깨를 움찔거리더니, 한 박자 늦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보면 모르겠나?"


그가 뽑았던 검을 납도했다.


"끝까지 충의를 지키는 중이다."


그리고 발도하여 공격했다.


"후우!"


나 또한 검지에 입김을 불며 일시에 범람을 발도했다.


그와 나의 검격이 도중에 부딪혀 불똥을 퍼뜨렸다.


"풍양보."


나는 그의 머리 위로 날아올라,


쌍수인 범람.


범람 한 자루를 더 만들어 영힐에게 내리쳤다.


그는 검집을 뽑아 범람을 막아내었다.


나와 그의 기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서로 갈아내는데,


영힐이 납도하며, 검집의 방향을 틀어 범람을 흘렸다.


그의 검집은 바닥을 찍었고,


발도.


용수철처럼 검집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무인 풍양보.


즉시 뒤로 몸을 뺐지만, 가슴부터 어깻죽지까지 자상을 입었다.


그 사이에 영힐은 다시 납도했다.


납도하는 동안 그의 소매가 발도의 후폭풍에 흔들렸다.


발도술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착.


그 정도의 집요함이 있었기에 그는 자기만의 무공을 만들어 냈고, 노루미에게 인정받았으리라.


뇌단법은 집착을 먹고 성장하는 무공.


원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뇌단법은 암살에 대한 집착을 먹고 자라났다.


영힐의 목표는 참격이고, 살인은 그 뒤로 따라오는 부차적인 현상.


그러나 나의 무공은 살인이 곧 목표.


베는 속도에선 뒤지더라도,


죽이는 속도로 그에게 뒤질 일은, 죽어도 없다.


무인 풍양보.


접근과 동시에 범람을 그의 허리 왼쪽에 휘둘렀다.


예상외로 영힐은 피하거나 막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


범람이 그의 허리를 베었으나, 상처는 깊지 않았다.


'단단하다!'


풍양보의 궤적을 비틀어 그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는데, 그가 곧장 발도했다.


나는 범람으로 쳐내려 했으나,


그 속도는 예상 이상이었다.


"큭!"


내 범람은 그의 검을 완전히 튕겨내지 못했고, 오른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고 말았다.


단숨에 오른쪽 팔을 못 쓰게 되었다.


'젠장.'


영힐은 평소보다 기의 축적이 빨랐다.


'베일 때 범람의 기를 다소 빼앗아 갔나. 납도 상태에서의 기습 대책이로군.'


허를 찔렸다.


납도 상태에서도 완전히 무방비한 건 아닌 듯했다.


그러나 절대 못 벨 정도는 아니었다.


풍양보.


다시 한번 날아가, 왼손에 달린 범람으로 그의 허리 왼쪽을 베고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가 칼집을 세워 범람을 막아내었고, 나는 다시 방향을 틀어 그를 돌아보았다.


"좌광挫光."


영힐이 수직으로 발도했다.


"!"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참살의 예감.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빼서 피했지만, 영힐의 검이 내 가슴을 길게 베고 내려갔다.


다행히 상처는 얕았다.


'속도도 그렇지만, 궤적이 말이 안 된다.'


슬슬 그가 어떤 무공을 다루는지 윤곽이 잡혔다.


발도 시 검에 기를 둘러 순간적으로 검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 기본.


기를 많이 모을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거리도 늘어난다. 이는 곧 변형의 정도도 늘어난다는 뜻.


다만 속도가 너무 빨라서인지 미리 지정해놓은 위치로 밖에 검을 날릴 수 없고, 도중 변형은 불가능하다.


납도 시에는 기로 신체를 강화하여 공격을 버티는데, 적의 공격으로부터 기를 빼앗아 발도의 위력을 더할 수 있다.


'구무림··· 흡성법의 이치까지 익혔군.'


하지만 발도에 필요한 힘의 축적에도 기를 동원하기에, 방어의 강도는 그리 높지 않다. 같은 곳을 범람으로 한 번만 더 베면 내장까지 닿으리라.


내 오른쪽 소매가 피범벅이 되고,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오른팔을 다친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건 왼손의 범람뿐.


더 이상 실수해서는 안 된다.


그는 항상 공격 후에 방어를 취했다.


그렇다면···


'방어할 틈 자체를 주지 말자.'


나는 그냥 달려들었다.


영힐은 이미 납도를 끝마친 상태였고,


"일광一光."


즉시 발도하여 공격했다.


'지금이다.'


풍양보.


나는 검격을 피해서 그의 옆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공격과 동시에 내가 반격한다.


"!"


그는 내 속도에 미처 대처하지 못했고, 나는 아까 베었던 허리 왼쪽을 또 베며 지나갔다.


이번엔 닿았다.


내 범람이 그의 대장을 베었다.


영힐도 상상 이상의 충격과 고통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그는 꿋꿋이 납도했고,


"역광逆光."


등 뒤에 있던 나를 곧장 발도로 추적했다.


목을 떨어뜨리기 위한 필사의 일격.


나는 범람을 휘둘러 그의 검을 쳐올렸다.


그의 검은 내 목숨 대신 머리칼 몇 가닥만을 거두어 갔다.


범람의 기를 흡수했음에도 위력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기의 축적이 모자란 것도 있었지만, 그가 내장을 쏟지 않도록 허리 쪽에 많은 기를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기회다.


나는 달려갔다.


영힐이 다시 발도했다.


물론 나는 그것을 풍양보로 피했고, 그의 머리 위를 점했다.


이걸로 끝이다.


내가 죽인 다른 살수들처럼, 그도 오늘 삶을 다하는 것이다.


-네가 루아 아씨를 구원했듯이, 루미 아씨도 구원해 주었으면 한다.


"!"


최후의 순간, 용총의 목소리에 정신이 깨었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지금 이 녀석을 죽이면 일이 감당 안 되게 흘러간다.'


범람을 그의 목에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목을 친 것은 칼날이 아니라 손이었다.


"커헉!"


영힐은 충격에 앞으로 쓰러졌다.


그는 죽지 않았고, 나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왜···."


영힐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 날 죽이지 않는 거지?"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당신을 협상의 패로 쓰겠습니다."


"뭐라고?"


냉정하게, 영힐을 죽이고 봉금조를 멸한다고 쳐도 노루미가 나와 루아의 추적을 그만둘 거라고는 생각이 안 들었다.


노루미의 세력은 루아보다 크다. 영힐과 란저가 죽어도 비슷한 호법으로 다시 채울 수 있다.


노루미를 죽여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죽으면 그녀의 충성스러운 부하 수십, 수백이 나를 죽이려고 눈에 불을 켤지도 모른다.


항쟁을 끝내겠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죽일 수도 없는 노릇.


그러니 지금은 봉금조도, 노루미도 죽이지 않고 살려서 이용해야 한다.


죽이지 않고도 노루미로부터 자유로워질 방법을 나는 찾았다.


···용총의 목소리가 나를 방해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노루미에게 연락하세요. 그 녀석과 담판을 짓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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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인왕작열권 용총 2 +1 23.07.18 66 2 12쪽
52 인왕작열권 용총 1 23.07.17 65 2 15쪽
51 진眞 패천논검 4 +1 23.07.14 85 3 14쪽
50 진眞 패천논검 3 +1 23.07.13 71 4 14쪽
49 진眞 패천논검 2 23.07.12 71 2 14쪽
48 진眞 패천논검 1 +1 23.07.11 7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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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벽력전야霹靂前夜 3 23.07.07 70 3 14쪽
45 벽력전야霹靂前夜 2 23.07.07 65 3 13쪽
44 벽력전야霹靂前夜 1 23.07.06 76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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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패천논검 5 - 흡성검 종혁 2 +2 23.07.04 84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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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천상천하 유아독존 5 +1 23.06.20 113 6 16쪽
31 천상천하 유아독존 4 23.06.19 112 4 11쪽
30 천상천하 유아독존 3 +2 23.06.16 151 5 12쪽
29 천상천하 유아독존 2 23.06.15 121 5 12쪽
28 천상천하 유아독존 1 23.06.14 132 5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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