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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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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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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화 투량환주(偸梁換柱) (7)

DUMMY

193화 투량환주(偸梁換柱) (7)




다음날 효친왕부의 모든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어도, 세자 주문은 대전의 옥좌에 앉아 식사도 거른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술시 초(저녁 7시 무렵)에 별궁 나인이 노 총관을 통해 효친왕이 승하했다는 말을 전해 왔다.


그럼에도 일 왕자 주문은 옥좌를 지키고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이상했는지 노 총관이 물어왔다.


"전하."


"아직 보위에 오른 것이 아니다."


"저하.

별궁으로 나가보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임종은 마쳤으니 조금 늦은들 무슨 일이 있겠느냐? 그보다 아우들은 지금 어디 있기에 아직 들지 않는 것이냐?”


"소식을 전했으니 곧 드실 것입니다."


"아우들만 대전으로 들라 이르고, 왕부의 출입을 금한다 이르거라. 날이 밝은 뒤에 왕야의 장례 절차를 논의할 것이다."


"예, 저하.

곧바로 알리겠습니다."


일 왕자 주문은 옥좌에 앉은 채, 탁자에 두 팔을 괴고 양손을 모아 턱을 받치고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아우가 정한 시간은 분명 다음날 축시였다. 무려 세 시진이나 앞당겨진 이유를 일 왕자 주문은 알 수 없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어야 했다.


세 아우가 모여 계략을 꾸미고 있다 해도, 뒤를 지켜준다는 약속을 믿고 움직이지 않았다. 왕부의 소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아우였으니, 지금으로서는 궁 안에 거처하는 아우들의 옹립을 받아,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르는 것이 최선이라 여기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 총관이 소식을 전하지 않았을 까닭이 없었는데, 왕자들 가운데 단 한 명도 대전으로 들지 않았다. 이 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옹립을 받기 전에는 자리를 떠날 수 없었으니, 기다림은 점차 조바심으로 바뀌어 갔다.




"장 위장,

네놈이 지금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나 알고 이러는 것이냐?"


"구 왕자 저하,

이리 흥분해 움직이시면 소장의 손에 든 칼이 미끄러질 수 있소이다."


"뭐라~!

네놈이 감히 왕자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더냐?"


"어찌 소장이 감히 왕자님을 해하겠습니까? 다만 이리 흥분하시면 소장의 손이 실수를 저지를까 염려되어 드린 말씀입니다."


"그래 어디 연유나 들어 보자. 약조는 어찌하고 이리 배반한 것인지 말하거라."


"참으로 난감한 말씀이나, 구 왕자 저하와 약조하기 전에 맹세한 선약이 있어 소장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이놈아 그게 말이 되는 소리더냐?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와 약조하지 않았어야 맞는 것 아니냐?"


"소장과 선약을 맺으신 분께서 구 왕자 저하께서 약조를 걸어오시면, 무조건 받아들이라 하셨으니 다시 한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자가 누구냐?"


"구. 왕. 자. 저. 하.

알. 려. 는. 드. 릴. 것. 이. 나. 살. 아. 서. 돌. 아. 가. 시. 지. 는. 못. 하. 실. 것. 이. 오."


알고 나면 죽일 것이라는 말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귓바퀴에 대고 말하자, 장 위장의 말에 구 왕자 주혁은 사타구니에서 따뜻한 뭔가가 찔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무려 수백에 이르는 무인들이 활짝 열린 효친왕부의 대문으로 들어온 것이, 효친왕이 죽음을 맞았던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검은색 경장에 몽면을 쓴 무인들의 가슴을 두른 흉배에는, 색(索) 자와 살(殺) 자가 적힌 무리와 구름 문양이 새겨진 무리들이었는데, 지나치는 곳마다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객사에 머물던 무인들 가운데 검은 경장의 무리들이 들어서자, 신속하게 그 무리 뒤로 빠져나가는 무인들 말고는, 들어선 검은 경장에 몽면을 쓴 무인들과 접전을 벌여야 했다. 다른 곳은 몽면 무인들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거침없이 베어 가고 있었지만, 두 곳에서는 오히려 몽면 무인들이 밀리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것이 그나마 이런 기습이 무인으로서 부끄러운 줄은 아니 다행이로구나."


"왕부에 숨어 목숨을 부지하는 말코가 할 말은 아니지."


원몽 진인은 몽면인들 가운데 자신의 비밀을 아는 놈이 있는 것 같자, 전력을 다하지 않고서는 오늘 밤 살아남기 어렵다 여겼는지, 구하청풍장법에 비접장을 섞어 몽면인들을 상대해 가다, 조금만 위태로워지면 암기인 천왕보심침을 날려 몽면인들을 쓰러트렸다.


매량 거사의 상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몽면인들의 무공이 약한 것도 아니었는데, 숫자가 끝을 모르고 이어지니 차륜전 아닌 차륜전이 되어 버려, 들고 있는 선장으로 복호대라겁법을 펼쳐 내고, 금정면장에 적하신장까지 펼쳐 보이고도, 온몸 곳곳에 자상으로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몽면을 쓰고 있어도 분명한 것은 몽면인들의 무공이, 정파인 구파일방의 무공을 고루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매량 거사는 아미파 제자로 처음 아미파의 포옥검법으로 공세를 펼쳐 온 몽면인의 무공에, 자파 무공이었으니 누군가 싶어 잠시 여유를 준 것이 화근이 되어, 몽면인들보다는 분명 높은 무위를 지니고서도 발걸음이 무거워지더니, 청성파 봉신곤법에 정강이뼈가 부러지고, 아미파의 복호권에 뒤통수가 깨져 절명했다.


어디서 이런 놈들이 나타났는지 분명 정파의 무공을 쓰고 있어도, 결코 정파인이라 부를 수 없는 비열한 무리들이었다. 원몽 진인도 살자니 암기까지 날려 대고 있었지만, 이놈들은 사지마다 한 놈씩 달라붙어 갈고리에 사슬까지, 온갖 무구를 다 동원해 공세를 펼쳐 왔다. 다가선 놈의 가슴에 천왕보심침을 깊이 박아 넣은 것이 실수였다.


천왕보심침이 박혀 곧 죽을 놈이 오히려 달려들어 원몽 진인을 끌어안은 채 쓰러지자, 순식간에 몽면인들이 내지른 검날에 원몽 진인의 몸은 벌집으로 변해,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음을 맞아야 했다. 원몽 진인이 죽자 몽면인 누군가가 원몽 진인의 시신을 걷어차며 말했다.


"너무 쉽게 죽었구나. 남은 원한은 저승에서 치러 주마."


객사에 머물던 무인 삼십여 명이 죽었고, 몽면인들도 이십 명이 넘게 죽어 갔다. 효친왕부 곳곳에서 무수한 싸움이 벌어지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몽면인들은 싸움이 끝나자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거둬, 왕부를 나가더니 순식간에 종적을 감췄다.


객사에 빈객으로 머물던 무인 서른둘이 몽면인들의 손에 죽었고, 왕부의 마름들 둘과 하인 여섯, 거기에 노비 열둘이 죽어 갔다. 가장 많이 죽었으리라 여겼던 위사들은 단 한 명도 죽은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위사들이 몽면인들을 피해 달아났던 것은 아니었지만, 위사들이 무인은 아니라 여겨서인지 아무튼 다행히도 위사들의 희생은 없었다.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삼 왕자 주양을 비롯한 왕자들 모두가 대전으로 들었다. 노 총관이 지난밤 싸움에 죽은 사람들의 명부를 올렸는데, 노 총관으로서도 왜 그들이 죽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객사에는 죽은 빈객들보다 훨씬 많은 무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도 살아남은 무인들은 다친 곳 하나 보이지 않았고, 죽은 무인들은 온몸에 자상이 가득했다. 그래도 무인이라고 큰소리치던 놈들이 마치 목숨을 구걸하려고, 두 무리의 다툼에 상관하지 않고 구경만 한 듯 여겨지는 것에, 노 총관은 은근히 분노했다.


마름 둘은 삼 왕자 주양의 사람이었으니 그러려니 할 수 있었지만, 하인 여섯은 왜 죽였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위사들이야 별궁에서 일이 있고, 곧바로 위장들이 세자 주문에게 숙였으니 이해가 되지만, 왕부에서 허드렛일만 하는 노비들은 왜 그리 많이 죽였는지 의아했다.


죽은 자들의 명부를 살피던 일 왕자 주문은 형제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인정하겠느냐?"


"삼 왕자 주양이 일어나 허리를 굽히고 말했다."


"소제들은 왕야께서 생전에 대형을 세자위에 올리셨으니, 선왕의 지엄한 명이 그대로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세자이신 대형께서 효친왕부의 왕위를 이으시기를 아우들은 진심으로 청합니다."


"선왕께서 임명한 세자로서 왕위를 계승함에 있어, 형제들의 옹립을 기쁘게 받아들이겠도다."


"대형께서 효친왕위에 오르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왕자들의 옹립에 주문이 받아들이자, 노 총관은 엎드려 절하며 감축인사를 올렸다.


"전하,

효친왕이 되신 것을 감축드립니다."


"밤사이 있었던 일은 모두 잊거라.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아우들은 모두 과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적극 도와주기 바란다."


"예, 전하."


"노 총관."


"예, 전하."


"선왕의 장례 준비를 서둘러 시행하거라."


"예, 전하."


"삼 제."


"예, 전하."


"삼사에 선왕의 부고를 전하고, 황실에 알리게 하거라."


"넷째."


"예, 전하."


"아문에 간밤에 있었던 일을 알리고 검시를 받거라. 객사 무인들 서른둘에 마름 둘, 하인 여섯이로구나. 노비들은 왕부의 물건이니 한곳에 모아 태우거라."


"예, 전하."


효친왕 주문에게 가장 기쁜 하루임에 분명했지만, 그렇게 바라던 왕위에 올랐어도 돌아보니 자신의 주위를 채워 줘야 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별청에서 아우가 보내온 장문의 두루마리에도, 죽은 놈들이 죽어 마땅한 이유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서로 원수처럼 목숨을 걸고 다투던 형제들도 왕위에 오르자 축하 인사를 올렸건만, 정작 함께 기뻐하리라 여겼던 아우에게서는 단 한 글자의 축하 글도 적혀 있지 않았다.


효친왕 주문은 별청의 사정을 모르고 있었지만, 때가 이르렀다 판단한 사황 주고는 별청을 비우고, 사해련의 총타를 중원으로 옮겨 가고 있었다. 서역의 범선들만큼이나 커다란 배가 별청 앞 바다에 떠 있었다.


별청에는 처음 별청을 지었을 때 있던 그대로 남겨두고, 사황 주고의 물건들 모두가 옮겨졌다. 물론 별청에 머물던 모두는 범선에 올라야 했다. 배가 먼바다로 나가 뱃머리를 북으로 향하자, 지난밤 죽은 무인들의 장례가 치러졌다.


섬에서 같았으면 그저 멀리 던져 물고기 밥으로 만들었겠지만, 그나마 시험을 통과하고 색귀단(索鬼團), 살귀단(殺鬼團), 유혼단(幽魂團) 대원이 되어, 첫 임무를 성공리에 마치고 죽어 갔으니, 간소하게나마 예를 갖춰 장례를 치러 주고 있는 것이었다.


색귀단은 사해련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찾아내고 분석해, 살귀단과 유혼단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무단이고, 살귀단은 단의 이름 그대로 사해련의 적을 쳐내는 무단이고, 유혼단은 영육이 하나라는 이름처럼 사해련의 뒤를 책임지는 무단이다.


색귀단 열하나에 살귀단 열둘 유혼단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불과 한 명 차이였지만 색귀단원들과 살귀단원들의 표정이 달랐다. 유혼단이야 어느 순간에도 표정에 변화가 없는 그야말로 귀신같은 놈들이니 예외로 치고, 시신의 수를 헤아리던 색귀단원의 표정이 흉측히게 변했다.


열하나가 아니라 열둘이었으니, 색귀단원의 표정이 일시에 변하자, 함교에서 큰 소리가 울려 나왔다.


"마지막 한 구는 따로 장례를 치를 것이니 신경 쓰지 말거라."


이제 동료를 보내야 할 시간이 되었다. 갑판 난간에 걸쳐진 칠성판에 동료의 시신이 올려지면, 죽어 간 동료의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쳐 불러 주는 것이 장례의 끝이었다. 첫 시신이 칠성판에 올려지고 친했던 동료가 흐느끼듯 죽은 자의 명복을 빌자, 칠성판이 세워지고 시신은 바다로 떨어져 갔다.


같은 절차가 무려 스물세 번에 걸쳐 치러지고, 단 한 구의 시신만이 남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대원들이 함교를 바라보자, 모두 물러가라는 듯 누군가 손을 내저었다. 범선이 다시 움직이고 몇 시진의 시간이 더 지나서야, 갑판으로 나온 사황 주고는 시신을 향해 말했다.


"옷은 겹겹이 입혔으니,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이곳은 죽은 사내들조차 없는 곳이니,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이승의 일을 두고 누가 누구를 죄인이라 하겠소이까? 부디 천상 복락을 많이 받으시고, 다음 생에는 우리 서로 만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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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194화 소림 하산 (1) +2 24.07.23 801 14 13쪽
» 193화 투량환주(偸梁換柱) (7) +2 24.07.22 641 14 12쪽
192 192화 투량환주(偸梁換柱) (6) +1 24.07.21 621 11 12쪽
191 191화 투량환주(偸梁換柱) (5) +1 24.07.20 641 15 14쪽
190 190화 투량환주(偸梁換柱) (4) +1 24.07.19 714 16 16쪽
189 189화 투량환주(偸梁換柱) (3) +1 24.07.18 729 16 13쪽
188 188화 투량환주(偸梁換柱) (2) +1 24.07.17 735 14 12쪽
187 187화 투량환주(偸梁換柱) (1) +1 24.07.16 810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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