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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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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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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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걸개법사와 탈혼수

DUMMY

각자 상대를 골라 싸웠는데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사흘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순간적인 방심이나 실수로 패한 사람들은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말릴 틈도 없이 자결을 했고 이긴 사람들만 남았다.


비록 적이었지만 싸우면서 정이 든다는 말처럼, 한순간에 죽어 너부러진 시체를 본 사람들의 마음엔 인생의 허무함이 깊게 파고들었다.


조금 전까지도 악다구니를 쓰고 떠들던 사람들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서 모두들 처연한 심정으로 말이 없었다.


계속 싸워서 마지막에 혼자만 살아남는다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결국엔 극심한 고독과 상실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할 것인데, 천하제일인이란 칭송을 듣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악인이고 선인이고 간에 정상에 오르면 어느 길로 해서 정상에 올랐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상에서 천하를 내려다보는 심정은 모두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높고 아찔한 정상에서 죽음을 마주했던 사람들은 가려져 있던 높은 벽을 뛰어넘어 새로운 정신세계로 발을 디밀고 있었다.


권세와 부귀며 명예는 이제 마음에서 지워졌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어 서로 의지하며 은거하기로 결정한 다섯 사람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바깥세상과 담을 쌓고 살아온 것이다.



팔방풍우 진정일의 말이 끝나자 두성이가 물었다.


“혹시 천면노인 요오성이라고 아시는 지요.”

“요오성? 아, 생각났어. 죽은 나대성의 수제자였는데, 사부가 자결하자 유해를 모시고 울면서 산을 내려갔지.”

“지금 십대고수의 일인이신데 제 사부님이십니다.”

“뭐야? 이런 우연이 있나. 그 친군 지금 어디에 있나?”

“개인적인 일로 사부님과 헤어진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허허, 그동안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럼 이곳 동굴 속엔 모두 몇 분이나 살고 계십니까?”


두성이의 물음에 차를 한 잔 마신 진정우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는 이곳까지 오면서, 생활고로 길거리에 내쫓긴 여인들과 아이들을 거두었네. 모두 삼십여 명이나 되었지.

원래 이곳 근처에는 산적들이 진을 치고 있었는데 그들을 일망타진하고 구해준 인원이 스무여 명,

우리까지 합해서 모두 예순두 명이 이곳에 살고 있다네.”

“......”

“생각보다 많은 인원입니다, 생활에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적극 돕겠습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그렇지만 우린 불편한 건 없으니 염려 말게. 참 독수방에 대해 알 만한 사람이 있네.”


그러자 난데없이 귀에 거슬리는 날카로운 음성이 들려왔다.


“나를 찾는 거라면 난 이미 와있다네.”


두성이가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새 천장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힐끗 올려다보니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이 높은 천장에 붙어서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내려오게.”


천장과 벽은 날카로운 바위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지만 그 사람은 거미처럼 달라붙어서 옮겨 다녔다.


진정일의 말에 천장에 붙어있던 사람이 소리도 없이 툭 떨어지며 바닥에 내려섰다.


그 사람은 머리를 박박 깎아 스님처럼 보였는데 옷은 알록달록한 색깔이어서 소수민족의 전통의상 같았다.


그러나 두성이는 스님일 거라고 생각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두성이 노선배님을 뵙습니다.”


“생긴 것도 허여멀끔하고 입에 꿀을 발랐는지 언사도 매끄럽구나. 난 걸개(乞丐)법사란다.”


“걸개법사는 전국을 유람하다가 우연히 이곳에 들렸는데 의술을 비롯해 진식 등 박식한 분이네, 여러 방면에서 우리와 죽이 맞아 이곳에 머물기로 했지.”


“독수방인가 하는 패거리들과 같이 온 소청천이란 자에 대해 궁금한 것인가?”

“네에? 소청천이 그들과 같이 왔습니까?

“그자가 우리들이 있는 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는 말하지 않더군.

하여간 그자는 아주 음흉한 놈이더구나.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제 자랑을 잔뜩 늘어놓더니 밥상에 슬쩍 숟가락을 올려놓고 우릴 조정하려고 해서 혼쭐났지.

알고 봤더니 놈의 특기가 삼십육계 줄행랑이더군,

간신히 목숨은 부지했겠지만 안으론 골병이 들었을 것이야.”


걸개법사의 말소린 날카롭고 빨라서 처음엔 무척이나 듣기에 거북했으나 듣다보니 참을 만은 했다.


“도망을 쳤다면 혹시 어디로 갔는지 짐작이 가십니까?”

“그 자는 우리한테 자랑처럼 서쪽에 숨은 세력이 때를 기다리고 있다더군.

두고 보자며 이를 갈았지, 필경 다리를 절룩이며 그리로 도망쳤을 거네.”


걸개법사의 말을 듣고 보니 해룡방은 청성산 등 중국의 서부지역에 따로 비밀 세력을 숨겨둔 것 같았다. 앞으로 그곳을 조사할 예정이다.


“소청천의 무공도 심상치 않은데 누구한테 혼이 났습니까?”

“탈혼수 문염장에게 된통 당했다네.”

“노선배님, 다섯 분의 십대고수 중 다른 세 분은 누구시죠?”

“무혈검(無血劍) 염복마와 탈혼수(脫魂手) 문염장 그리고 비운선자 와룡미가 있지.

무혈검은 이곳 깊숙한 지하계곡 어딘가에서 폐관수련을 하고 있고, 탈혼수는 무공은 물론 환술을 다루는 괴인이지.

그러나 중요한 때가 아니면 절대 나타나질 않아 찾기가 힘들다네.”


“소청천 그놈은 이곳에 왜 온 겁니까?”

“이곳에 비밀기지를 만들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하더군,

대신 이곳에 필요한 물자를 모두 대준다고 하며 많은 금덩이와 보석들을 내놨어.”

“그래서요?”

“하하하, 우리들한테 돈이니 보석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흑무정이 금덩이와 보석을 소천석한테 집어던졌지.”

“안 봤어도 뻔하네요. 놈들은 분수도 모르고 참지 못했죠?”

“그래, 그래! 놈들이 어쭙잖게 독을 뿌리고 환술을 썼으나 반대로 된통 당하고 줄행랑을 놓았지.”


놈들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곳에 비밀기지를 만들어 대마혈궁의 비약을 연구하고 제조하려고 한 모양이었다.


두성이는 다른 분들도 만나보고 싶었지만 할아버지의 행방을 뒤쫓는 게 급선무라 다음을 기약하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일행들이 계곡을 빠져나오는데 까마득한 절벽 위에 매달려 있던 괴한이 두성이와 일행들을 발견하고 겁도 없이 뛰어내렸다.


그 괴한은 밑으로 떨어져 내리면서 한 마리 커다란 새처럼 양손으로 날갯짓을 하였다. 옷자락을 표표히 휘날리며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신선이 하강하는 듯했다.


상상불허의 신묘한 경공술에 모두들 깜짝 놀라는 사이 그들 앞에 사뿐히 내려선 괴한은 키가 컸고 도사차림을 하고 있었다.


긴 얼굴에 말코, 눈은 길게 째졌고 귀는 길었으며 주름이 많아 결코 편안한 인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목소리는 쩌렁쩌렁했다.


“웬 놈인데 이 어르신의 고행 수련을 방해하는 것이냐!

‘이곳에 함부로 들어오면 죽는다.’는 법을 모르는 게냐?

너희들 스스로 목숨을 끊어라, 그럼 시체만은 정성껏 묻어주마!”


두성이는 기가 차서 그 괴한을 노려보며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따위 돼먹지 않은 법이 어딨소? 누가 정한 법이요?”

“흐흐, 내가 말하면 곧 법이니라.”


그 말에 뒤에 있던 마동탁이 참지 못하고 두성이 앞으로 나서면서 삿대질을 했다.


“돼먹지 못한 늙은이가 입이 노망이 났나, 아니면 죽을 때가 되어 헛소리를 하는 건가. 퉷!”

“죽기 전에 할 말이 있으면 아끼지 말고 몽땅 털어놓아라, 죽은 뒤 후회하지 말고.”

“에잇!”


마동탁이 빠르게 짓쳐들어오자 괴한은 순간적으로 모습을 감춰 보이지 않았다.


두성이는 물론 마동탁과 초대봉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시커먼 구름이 뭉게뭉게 몰려와 천지가 깜깜해 졌고, 공중에서 느닷없이 천둥소리가 터지며 번갯불이 지면에 내리꽂혔다.


뒤이어 흑룡이 붉은 눈을 번쩍이며 공중에서 두성이 일행을 향해 다가오자 모두들 혼비백산하여 우왕좌왕했다.


흑룡은 꼬리를 길게 끌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발톱을 내밀며 엄청난 속도로 공격해왔다. 두성이와 일행들은 암기를 던지고, 칼과 몽둥이로 흑룡을 공격했다.


흑룡은 이들의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입에서 시뻘건 불을 토하며 공격해왔다.

마동탁의 머리가 불이 붙어 손으로 털어냈지만 연기가 났다.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미친 듯이 칼부림을 하며 거꾸러뜨리려고 맞서 싸웠다.


정신없이 칼질을 해댔지만 흑룡은 공중을 마음대로 누비며 갈수록 사나워졌다.


흑룡이 커다란 입을 벌리며 이들을 한입에 삼키려할 때마다 이들은 벼락에라도 맞은 것처럼 몸뚱이가 오그라들고 으스스한 공포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바동거렸지만, 머리통은 혼미해지고 기혈이 차츰 차츰 막혀오고 숨이 가빠지면서 쓰러지기 일보 전이었다.


두성이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걸개법사가 말한 환술을 부린다는 탈혼수를 떠올렸다.


“이게 환술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모두 허상이다. 움직이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정신을 집중하자.”


두성이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입속으로 중얼거리는 주문 같은 진언이 들려왔다.


두성이는 그 거리를 어림짐작하고 먹이를 발견한 매처럼 날렵하게 몸을 날렸다.


한차례 칼빛이 번쩍이는 가운데 참담한 비명소리가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


바위 뒤에 정좌하고 주문을 외던 괴한이 어깨를 베어 옆으로 쓰러져 있었고 두성이가 그의 목을 검으로 겨누고 있었다.


먹물을 뿌려놓은 듯 깊은 어둠에 잠겨있던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눈앞이 환해졌고, 검은 비늘을 번쩍이며 사납게 달려들던 흑룡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허공에서는 검은 종이로 오려 만든 흑룡과 금빛 종이로 만든 번개가 꽃잎이 흩날리듯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종이는 고작해야 서너 치 크기였는데 그런 보잘 것 없는 종잇조각이 어떻게 흑룡과 번개로 둔갑했는지 참으로 신기했다.


마동탁을 비롯한 일행은 기진맥진해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때 팔방풍우 진정일과 걸개승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내더니 좌우로 손을 저었다.


“장 공자, 서로 오해한 것이니 손을 멈추게.”


탈혼수 문염장은 소청천의 무리처럼 두성이와 일행들이 멋대로 들어와 이 일대를 휘젓고 다닌다고 오해하여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문염장은 새파란 애송이한테 체면을 구기자 정식으로 겨뤄보고 싶었지만 진정일이 말리자 화를 내며 사라졌다. 모든 걸 내려놨다고 하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두성이는 진정일과 걸개승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추명성의 안내로 성도의 객잔에 방을 얻은 두성이는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막연히 서쪽에 해룡방의 숨은 세력이 있다고 했으니 일단 가까운 곳에 있는 청성산의 청성파를 먼저 탐색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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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제110화, 아, 취영아! - 완결- 23.11.01 125 4 16쪽
109 제109화, 무공을 폐하다 23.10.30 120 5 10쪽
108 제108화, 성녀 설중매 23.10.28 134 3 10쪽
107 제107화, 궁주 혁밀지 검을 뽑다 23.10.27 139 3 10쪽
106 제106화, 기동대의 활약 23.10.25 146 4 10쪽
105 제105화, 유아독존 (唯我獨存) 23.10.23 155 3 10쪽
104 제104화, 시간이 멈췄다 23.10.21 153 4 11쪽
103 제103화, 첫 승리 23.10.20 166 5 12쪽
102 제102화, 정사대전의 서막 23.10.18 164 5 10쪽
101 제101화, 척살대 척살하다 23.10.16 185 5 10쪽
100 제100화, 혈미상단 23.10.14 191 4 10쪽
99 제99화, 두 개의 장원 23.10.13 202 3 11쪽
98 제98화, 마동탁의 활약 +3 23.10.11 202 4 10쪽
97 제97화, 신궁 神弓 23.10.09 206 5 11쪽
96 제96화, 재회 23.10.06 213 4 10쪽
95 제95화, 독수방 방주 노팔보 23.10.04 226 3 12쪽
94 제94화, 궤멸 潰滅 23.10.02 235 3 10쪽
93 제93화, 낭인부대와 전투 23.09.30 253 3 10쪽
92 제92화, 낭인곡 십자검 채이평 23.09.29 249 4 10쪽
91 제91화, 모홍강의 말로 23.09.27 235 4 10쪽
90 제90화, 소인배 모홍강 23.09.25 240 4 11쪽
89 제89화, 오독교주 사명명 23.09.23 242 4 10쪽
88 제88화, 오독교 23.09.22 259 4 10쪽
87 제87화, 지피지기 백전불태 23.09.20 276 5 10쪽
86 제86화, 사천당문 23.09.18 282 4 11쪽
85 제85화, 외나무다리 23.09.16 310 5 11쪽
» 제84화, 걸개법사와 탈혼수 23.09.15 317 4 11쪽
83 제83화,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 23.09.13 316 7 11쪽
82 제82화, 지하동굴의 노인 23.09.11 3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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