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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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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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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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궤멸 潰滅

DUMMY

희미한 달빛아래 번뜩이는 병장기가 난무했고, 삼백여 명이 구르는 발걸음에 지축이 요동을 쳤다.


안에서 대문으로 향하는 넓은 길에는 곳곳에 갈 지 자로 세워진 목책이 앞을 막았다. 낭인들은 목책을 건너뛰거나 돌아서 달려오느라 서로 부딪치며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이들의 뒤에서 갑자기 횃불을 든 사람들이 나타나더니 낭인들을 향해 횃불을 던지며 암기를 무작위로 쏟아 부었다.


낭인들의 옆에 늘어선 전각 뒤에선 사명명과 제자들이 지네, 전갈, 독사 등의 독물을 던지고 마비독을 뿌렸다.


게다가 이때까지 거짓으로 싸우고 있던 당가와 홍조심, 육강수의 부하들이 합심하여 뛰어드는 낭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당가의 독문무기인 우모침이 어두운 밤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며 거침없이 낭인들의 옷을 파고들었다.


낭인들 중에 무공이 출중한 조장들은 마동탁과 초대봉이 맡아서 피를 튀기는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뒤편에서는 염룡채의 번쾌수와 수적들이 낭인들의 뒤를 공격하였고, 비교적 무공이 약한 당가의 제자들은 긴 창으로 놈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오봉방의 정예군 삼십 명은 무공도 뛰어났지만 억센 힘으로 커다란 도와 쇠노를 사정없이 휘두르며 낭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낭인들을 이끌고 있는 대장 살수검(殺手劍) 나철웅은 당치평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이를 갈았다.


“이런 육시랄 놈, 네놈들이 우릴 배반했구나! 네놈부터 모가지를 잘라버릴 테다!”


눈을 부릅뜬 나철웅의 검세는 흉맹하고 난폭했으며 공격 일변도였다.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맹수처럼 달려드는 나철웅의 공격에 당치평은 공격할 시점을 놓치고 몸을 피하며 공격을 막기에 바빴다.


당가의 장로들이 협공하자 겨우 몸을 뺀 당치평이 숨을 고르고, 심기일전하여 나철웅을 향하여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은 검과 일직선이 되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나철웅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갔다.


기세가 심상치 않자 나철웅은 검을 밖으로 후리며 공격을 막았으나, 날아오는 당치평의 기세가 워낙 강해 팔뚝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허연 뼈를 드러낸 팔뚝에선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나철웅은 품속에서 검은 자기병을 꺼내 병속의 액체를 한 입에 삼켰다. 그러자 바로 눈에서부터 붉은 마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철웅은 하늘을 향해 비장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 우리에겐 내일이 없다. 이제 피의 잔치를 벌이자!”


나철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낭인들의 조장, 십자검 채이평을 포함한 열 명도 똑같이 병을 꺼내 훌쩍 마시더니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피의 잔치를 벌이자!”

“피는 영원하다!”


이들이 마신 액체는 몸속의 진기를 일시에 끌어올려 공력을 높이는 대마혈궁의 독문 영약이었다.


이 약을 마시면 아픔을 전연 느끼지 못하고 내력이 다할 때까지 피에 굶주린 야차로 변한다.


이들 열한 명은 모두 눈에서 붉은 광기를 발산하며 주위의 적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들의 몸놀림과 힘은 배나 빨라져 절정의 경지에 들어섰다.


나철웅은 장로들의 연합공격에 다리와 배를 찔렸지만 전연 개의치 않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어붙였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장로들이 뒤로 물러났고 당치평 또한 나철웅의 검에 허벅지를 찔려 절룩거리며 싸우고 있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뒤에서 도와주던 두성이가 섬전같이 달려들어 목을 베어버린 후에야 만신창이가 된 강철웅의 몸뚱이가 털썩 앞으로 쓰러졌다.


나머지 열 명의 조장들도 마찬가지였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야차처럼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그러나 목이 떨어져나간 후에는 모두 움직임을 멈췄다.


대마혈궁의 약은 인간을 야수나 야차로 변형시키는 약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악랄하고 끔찍했다.


대장과 조장들이 죽어 자빠지자 아수라장이 된 싸움터는 차츰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군의 피해도 상당해서 이백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


싸움이 승리로 끝나자 두성이와 마동탁, 초대봉과 탁일문은 말을 타고 낭인곡으로 향했다.




새벽녘에 낭인곡 앞에 말을 메어놓고 두성이와 일행들이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왔지만 낭인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여태껏 이곳에 와서 감히 시비를 건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한 낭인이 궁금한지 턱으로 마동탁을 가리키며 물었다.


“어이, 그 덩치를 갖고도 빌붙을 때가 없어 여기까지 왔군. 우선 신고부터 하게!”

“난, 마동탁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두목은 어디에 있는가?”

“두목이라니? 곡주도 모르고 온 걸 보니 완전 촌놈이구나?”

“시끄럽고, 곡주든 두목이든 어디 있냐고!”


느닷없이 다가와 멱살을 잡고 번쩍 치켜들자 놈은 기겁해서 바동거렸다.


“으 으, 말로 합시다. 곡주님은 대전에 계십니다.”

“네가 앞장서거라.”


마동탁이 엉덩일 걷어차면서 명령하자 놈은 고개를 숙이고 안내했다. 곡주가 있다는 곳은 제법 규모가 큰 이 층 전각이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낭인들이 앞을 막았다. 양손으로 두 놈의 멱을 잡고 손을 모으자 두 놈은 머리가 깨져 정신을 잃어버렸다.


마동탁과 초대봉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고 두성이는 점잖게 그 뒤를 따라갔다.


넓은 팔선탁 위에 지도를 펼쳐놓고 부하들과 의논하고 있던 곡주 설악귀는 갑자기 들어온 마동탁과 초대봉, 탁일문과 두성이를 보더니 역정을 내었다.


“지금은 바쁘니 나가있다가 부르면 들어와라!”

“흥!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있다니···, 무슨 일이지? 같이 의논 좀 해보자.”


두성이가 다가가자 부하들이 앞을 막았다. 두성이가 손을 들어 가볍게 밀치는 시늉을 하자 부하들은 얼떨결에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두성이의 기세가 범상치 않았고, 뒤에 있는 마동탁과 초대봉에게서 품어져 나오는 위세에 주위의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설악귀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눈초리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시오, 여긴 무슨 일로?”


설악귀의 말투가 공손하게 바뀌었다. 두성이가 씩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당신의 죄를 묻고자 왔지.”


설악귀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


“호 혹시 대마혈궁에서 명을 받고 오신 분이십니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몰라서 물어? 쓸데없이 사천당가로 대원들을 보낸 것 말야.”

“우린 정확한 정보를 입수하고··· ”

“거짓 정보를 믿고 부하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보내다니 멍청한 놈!”


설악귀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성이는 옆의 부하들에게 냉엄한 표정으로 명령했다.


“곡주를 포박하라!”


두성이의 명령에 부하들은 당황해서 우물쭈물했다. 설악귀가 눈을 부릅뜨더니 오히려 이를 갈며 큰소릴 쳤다.


“흥! 그동안 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했고,

막대한 자금을 보내주며 본궁을 위해 힘써왔는데 뭐 뭐라고?

멍청하다고?

그럴 리가 없다, 본궁에서 사자로 왔다면 영패를 보여라!”


일이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복병을 만난 것이다.


영패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보여주겠는가. 난처해진 두성이가 머뭇거리자 마동탁이 나섰다.


“영팬지 문팬지 별 거 아닌 걸로 빠져나갈 생각은 말고 어서 꿇어라!”

“이런 개 같은 새끼들이 어디서 공갈을 치는 거냐?

여봐라! 사자의 영패도 모르는 저놈들은 가짜다. 사지를 잘라버려라!”


고함소리에 몰려든 낭인들이 두성이와 마동탁, 탁일문과 초대봉을 가운데 넣고 공격을 퍼부었다.


두성이는 훌쩍 낭인들의 머리를 뛰어넘어 뒤에 있는 설악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설악귀도 질세라 양손을 뻗었다. 순간 설악귀의 소매 속에서 날카로운 네 자루의 비도가 튀어나왔고, 동시에 허리에 찬 검도 눈앞으로 튀어나왔다.


검을 잽싸게 거머쥔 설악귀가 두성이의 목을 노리고 수평으로 검 빛을 뿌렸다. 이 절묘한 한 수에 숱한 무림의 고수가 목이 달아나고 혼백이 구천을 헤맸다.


두성이가 다급하게 검을 뽑아 날아드는 네 자루의 비도를 쳐내며 검을 가슴 앞에 세워 설악귀의 검을 막았다.


불똥이 튀며 검과 검이 부딪치는 가운데 설악귀가 몸을 틀며 왼발을 들어 올리자 신발 끝에서 튀어나온 얇은 면도(面刀)가 두성이의 배를 향해 쏘아져나갔다.


두성이가 뒤로 물러서며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면도를 잡아 반대로 설악귀의 가슴을 향해 날렸다.


설악귀가 상체를 푹 숙이며 날아오는 면도를 피하는 순간, 설악귀의 등에서 두 자루의 날렵한 비도가 용수철의 탄력을 받아 세찬 기세로 두성이의 배를 향해 쏘아졌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두성이의 신형이 별안간 눈앞에서 사라졌다.


설악귀는 온몸이 검으로 이루어졌다는 검수귀란 별명답게 몸 구석구석에 검이 숨겨져 있었다.


설악귀는 두성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알 수 없는 공포가 밀려오며 뒷골이 서늘해지자 무조건 앞으로 굴렀다. 뒷머리가 한 움큼이나 잘려나가 공중에서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임기응변이 조금만 늦었어도 머리칼 대신 목이 떨어져 내렸을 것이다.


등허리에 식은땀이 식기도 전에 그림자처럼 따라붙은 두성이의 발길질에 엉덩이를 채인 설악귀는 일 장 정도의 거리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마동탁은 마지막 남은 낭인을 한손으로 쳐들고 접시처럼 돌리고 있었다.


주위에는 부하들의 병장기가 흩어져 있었고 가슴과 팔다리에 초대봉의 암기가 박힌 놈들이 신음소릴 내뱉고 있었다.


두성이는 쓸어져 있는 설악귀의 입을 벌려 환약을 강제로 넣어주고 지긋이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먹은 약은 당가의 비전 독약으로 한 달 이내에 해독약을 먹지 않으면 내장이 썩어문드러지는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내 일에 협조만 한다면 해독약을 주고 앞으론 관섭하지 않겠다.”


“자칭 정파라는 놈이 독약을 써서 사람을 핍박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내 입으로 내가 정파라고 했느냐? 난 정파고 사파고 개의치 않는다.

다만 선량한 사람을 헤치지만 않는다면 내가 간섭할 일도 없겠지.”


할 말이 없어진 설악귀가 잠자코 있더니 겨우 입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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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제110화, 아, 취영아! - 완결- 23.11.01 125 4 16쪽
109 제109화, 무공을 폐하다 23.10.30 119 5 10쪽
108 제108화, 성녀 설중매 23.10.28 134 3 10쪽
107 제107화, 궁주 혁밀지 검을 뽑다 23.10.27 138 3 10쪽
106 제106화, 기동대의 활약 23.10.25 146 4 10쪽
105 제105화, 유아독존 (唯我獨存) 23.10.23 154 3 10쪽
104 제104화, 시간이 멈췄다 23.10.21 153 4 11쪽
103 제103화, 첫 승리 23.10.20 166 5 12쪽
102 제102화, 정사대전의 서막 23.10.18 164 5 10쪽
101 제101화, 척살대 척살하다 23.10.16 184 5 10쪽
100 제100화, 혈미상단 23.10.14 191 4 10쪽
99 제99화, 두 개의 장원 23.10.13 202 3 11쪽
98 제98화, 마동탁의 활약 +3 23.10.11 202 4 10쪽
97 제97화, 신궁 神弓 23.10.09 206 5 11쪽
96 제96화, 재회 23.10.06 213 4 10쪽
95 제95화, 독수방 방주 노팔보 23.10.04 225 3 12쪽
» 제94화, 궤멸 潰滅 23.10.02 235 3 10쪽
93 제93화, 낭인부대와 전투 23.09.30 252 3 10쪽
92 제92화, 낭인곡 십자검 채이평 23.09.29 249 4 10쪽
91 제91화, 모홍강의 말로 23.09.27 234 4 10쪽
90 제90화, 소인배 모홍강 23.09.25 240 4 11쪽
89 제89화, 오독교주 사명명 23.09.23 241 4 10쪽
88 제88화, 오독교 23.09.22 259 4 10쪽
87 제87화, 지피지기 백전불태 23.09.20 275 5 10쪽
86 제86화, 사천당문 23.09.18 282 4 11쪽
85 제85화, 외나무다리 23.09.16 310 5 11쪽
84 제84화, 걸개법사와 탈혼수 23.09.15 316 4 11쪽
83 제83화,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 23.09.13 316 7 11쪽
82 제82화, 지하동굴의 노인 23.09.11 3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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