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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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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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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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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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첫 승리

DUMMY

무림맹에선 무림의 구파와 일방 그리고 당문, 제갈세가의 수장들이 각각 이백 명씩을 인솔하는 상단을 꾸려 단파를 향해 나아갔다.


불새단의 인원 육백여 명이 3개조로 편성되어 관도를 피하고 산길로 숨어들었다. 구파일방에 속하지 않는 협객 오백여 명도 2개조로 나뉘어 불새단의 뒤를 따라갔다.


이로써 총 삼천오백여 명의 정파 인물들이 서녕을 향해 길을 떠난 것이다.


서녕으로 향하는 관도에 각양각색의 차림새를 한 상단이 커다란 깃발을 앞세우며 수레를 끌고 개미떼처럼 길게 늘어서서 지나갔다.


행인들은 어마어마한 상단의 규모에 놀라 모두 한쪽으로 비켜서서 구경하며 떠들었다.


“상투를 틀은 사람들이 상단을 차렸네, 먹고살기가 힘든 모양이야.”

“그러게, 저길 좀 봐! 대머리들도 오네, 염불 만해선 배에 거미줄을 치는 모양이지?”


“어중이떠중이들이 모두 모였군.”

“어쩌다 세상이 이지경이 되었는지··· 말세로군, 말세야.”

“그러게 말일세.”


시간차를 두고 도사와 스님들 그리고 협의의 무림인들은 모두 무기를 감추고 사람들의 야유에도 화를 삭이며 묵묵히 걸어갔다.


단파의 외곽, 청해성을 거쳐 기련산으로 향하는 길목. 넓은 들판에 무림맹의 협객들이 모두 모였을 때, 조서방의 대원이 급히 달려와 속보를 전했다.


감숙성에 있는 대마혈궁의 부하들 천오백여 명이 단파로 오고 있다는 정보였다. 무림맹의 수뇌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했다.


비교적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개방의 부방주 타구신개(打狗神丐) 굴헌이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감숙에서 단파로 오려면 깊고 긴 협곡을 지나는 지름길이 있는데,

놈들은 행적을 숨기려고 그곳을 지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곳에서 공격을 한다면 적에게 치명타를 안겨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서둔다면 그 협곡에 먼저 도착할 수가 있으니 절호의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갈 군사가 눈빛을 번쩍이며 굴헌의 의견에 동조했다.


“전투에 있어서 선제타격이 승패에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겁니다.

지난번에 결성했던 기동타격대 오백여 명이 미리 숨어 있다가 그들을 공격하십시오.

후방에 천여 명이 대기하여 빠져나오는 놈들을 일망타진하겠습니다.”


이어서 두성이가 정찰대주 홍조심에게 당장 준마를 타고 출발하여 적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연락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끌고 온 수레의 포장을 걷어내고 준비해온 활과 화살을 챙긴 기동대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두성이는 개방의 부방주 굴헌과 함께 오백 명의 기동대를 지휘하여 협곡을 향해 달려갔다.


이들은 한 시진을 달린 후에는 잠시 쉬며 체력을 보강하고 다시 몸을 날렸다. 협곡이 가까워지자 말에서 내려 숲속에 말을 숨겨두었다.


이 지방의 산길을 잘 아는 굴헌은 선두에 서서 관도를 버리고 산속으로 숨어들어 경공을 펼치며 화살처럼 나아갔다.


밤이 지나고 동녘이 훤히 밝아올 무렵 이들은 계곡의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계류의 흐름을 따라 굽이굽이 절경을 이룬 협곡, 그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는 허공을 향해 가지를 펼친 노송과 활엽수들이 위태롭게 서있었다.


이들은 굴헌의 인솔로 협곡의 능선으로 올라갔다. 황금빛 햇살이 산마루에 비추이자 자욱한 안개가 걷히며 서서히 드러나는 협곡과 준봉은 독기를 내뿜듯 짙푸르렀다.


이십여 장 높이의 절벽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굽이도는 좁은 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들은 잠시 숨을 고른 후, 주위에 있는 돌멩이와 바윗돌을 주워 모으고 아름드리나무를 베어 절벽의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놓았다. 그때 홍조심이 수하들과 절벽위로 올라와 보고했다.


“놈들의 선발대가 한 시진 후면 이곳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들의 척후병이 지나갈 때가지 우린 기척을 숨기고 있어야 합니다.”

“한 시진이나 남았다면 그동안 충분히 준비를 끝낼 수 있습니다. 자, 서둘러 바위를 더 모읍시다.”


두성이의 명령에 대원들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오백여 명이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자 베어낸 통나무와 바윗돌이 상당한 양이 되었다.


이제 다들 기척을 숨기고, 숨어서 적들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굽이치는 산길을 따라 십여 명이 누런 흙먼지를 끌며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 모두들 절벽위에 납작 엎드려 숨을 죽이고 척후병의 거동을 훔쳐보고 있었다.


주위를 세밀히 살피던 척후병들이 앞으로 달려가고 한 놈은 뒤로 돌아갔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려고 돌아간 것이리라.


잠시 후, 길을 가득 메운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들은 햇빛에 번쩍이는 창검을 들고 왁자지껄 떠들며 의기양양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것이 인생이라 했던가? 이들은 목전에 죽음을 놓고도 무사태평하게 으스대며 죽음의 문턱으로 향하고 있었다.


놈들의 행렬이 충분히 화살의 사정권아래 들어오자 마침내 두성이의 명령이 떨어졌다.


활시위를 바짝 당기고 있던 오백여 기동대원들의 손에서 적들을 향해 화살이 쏟아졌다. 굵은 장대비가 내리치듯 일시에 오백여 개의 화살이 적들의 몸을 꿰뚫었다.


정수리, 눈, 코, 가슴, 팔다리에 사정없이 들이박히는 화살은 인정사정없었다. 협곡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비명이 난무하였다.


그러나 화살은 무정하게 계속 내리꽂혔다. 앞에선 비명과 아우성을 지르며 죽어나자빠지는데, 뒤따라오던 놈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앞사람의 등을 밀며 걸어왔다.


눈치가 빠른 놈들은 절벽에 딱 붙어서 화살을 피했으나 대부분은 이리저리 피하다 꼬치가 되었다.


자리를 옮겨가며 화살을 쏘던 기동대원들이 화살이 거의 바닥이 났다. 두성이는 통나무를 굴려 떨어뜨리라고 명령했다.


아름드리 통나무가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자 우왕좌왕하던 놈들은 혼비백산하여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서로의 몸짓에 걸려 넘어지거나 죽은 시체에 걸려 넘어져 꼼짝달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르르르르!”

“우당탕탕!”


절벽에서 떨어지는 커다란 나무는 절벽에 위태롭게 서있는 나무들과 부딪치며 요란한 굉음을 울리면서 떨어져 내렸다.


커다란 통나무에 맞은 적들은 개구리처럼 납작하게 엎어지거나 나무에 깔려 꼼짝을 못했다.


뒤이어 굴러 떨어져 내리는 바윗돌이나 돌멩이에 머리가 터지거나 가슴뼈가 부러져 죽는 자들로 좁은 길을 가득 메웠다.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놈들의 신음소리가 협곡 안을 가득 메워 협곡은 그야말로 지옥을 연상시켰다.


뒤쪽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고 다시 뒤로 돌아가려해도 꾸역꾸역 밀고 오는 통에 속절없이 돌멩이나 통나무에 맞아 죽을 수밖에 없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듯 한차례 거센 피바람이 불고 간 자리에는 죽은 자와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는 자, 그리고 막중한 부상으로 신음하는 자들로 그 참상은 차마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운이 좋아 살아서 도망친 자들은 어림잡아 사백여 명에 불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달아나는 길 앞에는 천여 명이 지키고 있었으니 그들의 운도 다했다고 할 수 있었다.



* * *



한편, 대마혈궁을 나온 풍만해는 귀계자와 부하 네 명과 함께 말을 타고 단사로 달렸다.


부지런히 말을 달려 단사와 오십 리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에 도착해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주위에는 장사꾼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풍만해는 귀계자와 한쪽 구석에 자릴 잡고 간단한 요리와 술 한 병, 그리고 소면을 주문했다.


떠들며 식사를 하던 장사꾼이 옆 좌석의 장사꾼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자네들 소식 들었나?

단사의 계곡에서 대마혈궁의 군사들이 몰살을 당했다네.

지금 그 근처는 시체를 태우는 연기로 하늘이 온통 시꺼멓다고 하던데. 유언비언지 몰라도 정말로 그럴 리가 있겠나?

혹시 본 사람 있는가?”

“흠, 사실일지도 모른다네.

우리들이 그곳 계곡으로 들어가려고 하니까 정파의 무인들이 길을 막았다네.

시꺼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하늘이 검게 물든 것은 사실이네.“

“그럼, 그 연기라는 게 시체를 태운 연기란 말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허어! 이게 웬 궤변이람.”

“에이, 밥맛 떨어지네.”


그 얘길 들은 풍만해는 앞에 차려진 음식을 보고도 입맛이 떨어져 젓가락을 들지 못했다.


위용을 자랑하는 대마혈궁의 무사들이 전멸했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했다.


안색이 변한 풍만해가 빈속에 강술을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음식 값을 상위에 놓고 벌떡 일어났다.


귀계자와 네 명의 부하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국수 가락을 입에 문 채 황급히 뒤를 쫓았다.




말을 숲속에 메어놓고 절벽 위로 올라간 풍만해는 절벽 밑에 보이는 광경에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을 막을 수가 없었다.


정파의 무인들이 군데군데 시체를 모아놓고 불을 지르고 있었다.


그 수가 좁은 길을 따라 쭈욱 이어졌고, 피어오르는 시꺼먼 연기는 땅속에서 뚫고나온 지옥의 검은 구렁이처럼 계곡을 따라 누비고 있었다.


정말로 천오백여 명의 병사들이 전멸하다니 이건 분명히 악몽이었다. 대마혈궁에 돌아가 이 사실을 보고한다면 결과는 뻔했다.


궁주는 사전에 대비를 못했다고 자신을 제물로 삼아 목을 베어버릴 것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도 눈앞에 훤히 보여 풍만해는 뒷목을 잡으며 움찔거렸다.


우습게 봤던 정파의 힘을 목격하고 나니 자신에게 남은 길은 단 하나였다.


싸움이 결판날 때까지 심산유곡에 숨어 있다가 세상이 잠잠해지면 나와 다시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이다. 지금 당장 도망가야 했다.


풍만해는 대마혈궁의 부하 넷을 손짓해 불렀다.


“가까이 와라! 비밀얘기가 있다.”


네 명의 부하들이 무슨 얘긴가 해서 풍만해 주위로 모여들었다. 네 명이 주춤거리며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풍만해는 순식간에 검을 뽑으며 횡으로 휘둘렀다.


“으, 으, 으, 윽!”


눈 깜짝할 사이에 네 명은 목을 움켜쥐며 뒤로 쓰러졌다. 풍만해는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귀계자를 손짓하며 절벽 밑으로 내려갔다.



* * *



무림맹의 군사들은 일차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자 기세등등하여 북쪽을 향해 진군했다.


일단 서녕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기련산에서 출발하는 대마혈궁의 정예부대를 맞서 싸우거나, 아니면 직접 놈들의 본거지인 기련산으로 쳐들어갈 계획이었다.


기련산(祁連山)이라는 이름의 ‘기련’은 흉노족의 언어로 「하늘」이라는 뜻이라 기련산은 「천산」이라고도 이름이 붙여졌던 것이다.


기련산에 웅크리고 있는 대마혈궁, 궁주 아수라혈검 혁밀지는 탁자 위에 지도를 펴놓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서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단사에 모든 병력을 집결시키고, 서장과 밀약한 대로 서장의 군사 오만 명이 도착하면 무림맹과 일전을 벌인다는 계획이었다.


일류무사를 피에 굶주린 마인으로 만드는 비약은 이미 백 개나 준비되어있다.


일당백의 능력을 발휘하는 마인 한 명이 최소한 스무 명만 처치한다고 해도 이천 명의 목숨이 달아나는 것이다.


서장의 군대와 합세하여 무림맹의 군사들을 쳐부수고 감숙과 청해 그리고 사천과 운남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서장의 대군이 사천성에 주둔하면 든든한 뒷배를 둔 우리 대마혈궁은 떳떳하게 중국전역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생각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서장에 사자를 보내놨으니 지금쯤은 서장의 군대가 만반의 준비를 갖췄을 것이다.


이제 단사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지난번 정사대전에서 당했던 수치를 확실히 갚아주겠다며 혁밀지는 주먹을 굳게 쥐었다.


그때 부하가 헐레벌떡 들어와 엎드렸다.


“궁주님, 환영영주님이 마교의 성녀를 붙잡아 데리고 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가장 좋은 소식이구나. 출정식 때, 성녀를 제물로 삼아 그 피를 마신에게 바친다면 우리의 승리는 불을 보듯 뻔하구나.

으하하하하!”


혁밀지의 웃음소리는 넓은 궁 안을 휘저으며 길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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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제110화, 아, 취영아! - 완결- 23.11.01 125 4 16쪽
109 제109화, 무공을 폐하다 23.10.30 119 5 10쪽
108 제108화, 성녀 설중매 23.10.28 133 3 10쪽
107 제107화, 궁주 혁밀지 검을 뽑다 23.10.27 138 3 10쪽
106 제106화, 기동대의 활약 23.10.25 146 4 10쪽
105 제105화, 유아독존 (唯我獨存) 23.10.23 154 3 10쪽
104 제104화, 시간이 멈췄다 23.10.21 153 4 11쪽
» 제103화, 첫 승리 23.10.20 166 5 12쪽
102 제102화, 정사대전의 서막 23.10.18 164 5 10쪽
101 제101화, 척살대 척살하다 23.10.16 184 5 10쪽
100 제100화, 혈미상단 23.10.14 191 4 10쪽
99 제99화, 두 개의 장원 23.10.13 202 3 11쪽
98 제98화, 마동탁의 활약 +3 23.10.11 202 4 10쪽
97 제97화, 신궁 神弓 23.10.09 206 5 11쪽
96 제96화, 재회 23.10.06 213 4 10쪽
95 제95화, 독수방 방주 노팔보 23.10.04 225 3 12쪽
94 제94화, 궤멸 潰滅 23.10.02 234 3 10쪽
93 제93화, 낭인부대와 전투 23.09.30 252 3 10쪽
92 제92화, 낭인곡 십자검 채이평 23.09.29 248 4 10쪽
91 제91화, 모홍강의 말로 23.09.27 234 4 10쪽
90 제90화, 소인배 모홍강 23.09.25 240 4 11쪽
89 제89화, 오독교주 사명명 23.09.23 241 4 10쪽
88 제88화, 오독교 23.09.22 259 4 10쪽
87 제87화, 지피지기 백전불태 23.09.20 275 5 10쪽
86 제86화, 사천당문 23.09.18 282 4 11쪽
85 제85화, 외나무다리 23.09.16 310 5 11쪽
84 제84화, 걸개법사와 탈혼수 23.09.15 316 4 11쪽
83 제83화,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 23.09.13 316 7 11쪽
82 제82화, 지하동굴의 노인 23.09.11 3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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