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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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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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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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성녀 설중매

DUMMY

혁밀지가 빠르게 다가오는 무량진인을 향해 검을 횡으로 휘두르자 무량진인이 말에서 공중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분노한 듯 끓어오르는 불길이 길게 호선을 그리며 무량진인의 발밑을 지나 말의 목을 베며 지나갔다. 그 기세가 워낙 흉험하여 뒤에서 쫓아오던 기동대의 말들도 사정없이 베었다.


“히히히힝!”

“쿵, 쿵, 쿵!”

“털썩, 털썩, 털썩!”

“으아악!”


말들이 목에서 피를 뿜으며 달려오던 속도로 기수들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무량진인이 두 손으로 검을 잡고 들어 올린 후 장작을 패듯이 내려쳤다. 산을 쪼갤 듯 엄청난 압력이 칼날을 위로 들이민 혁밀지의 검과 맞부딪쳤다.


“스악!”


무량진인의 검이 싹둑 잘려나갔다. 혁밀지의 장검은 쇠도 두부처럼 잘라버리는 전설의 보검이었다.


깜짝 놀란 무량진인이 몸을 틀면서 공중제비를 돌아 옆으로 내려설 때, 화산파의 목불견이 혁밀지의 앞을 막아섰다.


무량진인을 해치울 절호의 기회에 목불견이 대신 나서자 혁밀지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런 쥐새끼가?”

“네 얼굴이나 보고 얘기해라.”

“에이! 시부랄노마!”

“네 놈이 할 소리냐?”

“너 이놈!”


지지 않고 이죽거리는 목불견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혁밀지. 불길이 이는 검을 사납게 휘두르자 목불견은 감히 달려들지 못하고 거리를 두며 요리조리 피하기만 했다.


그 바람에 주위에서 싸우던 병사들이 거센 불길에 온 몸이 타들어가며 목이 떨어지고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그러는 사이에 두성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네놈은....?”

“무림맹주 장두성이요.”

“흐음.”


혁밀지는 두성이의 대답에 안색을 굳히며 눈빛을 번득였다.


(어떤 놈일까 궁금했는데 어린놈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아, 깊이가 보이지 않는군. 우선 이놈을 제압하고 보자.)


혁밀지가 두성이를 노려보며 내력을 끌어올리자 엄청난 위압감이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지근거리에서 혼전을 벌이던 병사들이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심지어 목불견 같은 고수도 눈이 따갑고 숨이 막힐 것 같아 뒤로 물러날 정도였다. 주위사람들이 물러나자 혁밀지와 두성이를 중심으로 반경 삼 장 정도의 빈터가 만들어졌다.


혁밀지의 눈에선 마기와 혈기가 흘러넘쳤고, 인간의 한계를 넘는 내력에 걸맞게 뼈와 근육이 뒤틀리며 신체가 변하기 시작했다.


“우드드드득!”


혁밀지의 몸은 강철처럼 단단하게 변해 마치 쇠로 만들어진 인간이 눈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검에선 용암처럼 분출하는 불길이 일렁이며 주위를 태울 듯 엄청난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인간이 아닌 지옥의 마귀가 현신한 듯, 추호의 빈틈도 보이지 않는 불검 그 자체였다.


주위사람들이 그 열기를 감당하지 못해 우르르 뒤로 물러나자 반경 삼 장이던 공터가 오 장으로 더 넓어졌다.


두성이도 숨이 막힐 것 같은 압박감을 견딜 수 없어 내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피부가 거무스레하게 변했고, 사룡검에선 짙푸른 검기가 더욱 또렷하게 뻗어 나오며 등 뒤론 현무의 형상이 나타났다.


반경 오장의 공터엔 시뻘건 불길을 내뿜는 지옥의 검과 푸른 검기를 내뿜는 현무의 검이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피를 뿜으며 혼전을 벌이고 있던 아수라장의 싸움터는 저절로 싸움이 멈춰졌고 모든 이의 시선은 두 사람을 향했다.


이젠 모두들 정사 양편으로 갈라져 두 수뇌의 싸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보통 두 수뇌의 싸움은 전쟁 막바지에 이루어지지만 두성이의 개입으로 일찍 이루어진 것이다.


정사를 대표하는 두 수뇌의 싸움은 전투의 승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사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선 절박한 순간이라 혁밀지와 두성이는 서로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흘러간 세월에서 충분한 경험이 쌓인 혁밀지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한 발 한 발 두성이를 향해 다가왔다.


두성이는 움직이지 않고 사룡검을 가슴 앞에 세우고 찰나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순간 혁밀지가 한 발 앞으로 내딛었을 뿐인데 세찬 불길이 두성이의 전신을 휘감으며 불타는 검이 두성이의 가슴을 찔러들었다.


두성이는 사룡검을 왼쪽으로 밀어 혁밀지의 불검을 흘리며 칼자루 끝으로 혁밀지의 관자놀이를 공격했다. 혁밀지는 가볍게 몸을 틀어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가벼운 탐색전이었다. 가볍게 몸을 풀며 본격적인 공격의 방향을 세우는 전략이었다.


혁밀지가 마기가 뚝뚝 흐르는 사악한 눈빛을 흘리며 입술을 비틀었다. 앞으로 한 발 크게 내딛는 순간 혁밀지의 신형이 사라지며 세찬 불길이 소용돌이 쳤다.


두성이도 암영무흔보를 밟으며 신형을 날리자 흐릿한 잔상을 남기며 회오리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용 그림자가 일렁이며 으르렁거리는 용울음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후벼팠다.


회오리바람 속에서 혁밀지가 검과 한 몸이 되어 빙글빙글 돌면서 뻗어 나오더니 두성이의 호신강기를 뚫고 들어갔다.


“파지직!”

“으읍!”

“아아!”


호신강기가 깨졌다. 두성이의 왼쪽 어깨가 검에 찔려 피를 흘리며 타들어가자 사람들의 안타까운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거북이의 단단한 등껍질처럼 변한 피부가 혁밀지의 검에 깨져나간 것이다.


혁밀지의 마공이 두성이를 앞지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두성이는 이를 악물고 어깨에 흐르는 피를 지혈하며 오른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한 번의 공격이 성공하자 기세를 탄 혁밀지는 전광석화처럼 두성이의 신형을 따라붙으며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용암처럼 타오르는 불길이 두성이의 전신을 위협했다.


간신히 피하며 다시 내력을 끌어올려 호신강기를 두른 두성이는 사룡검을 왼손에 쥐고 바른손을 들어올렸다.


두성이의 손으로 주위에 스며있는 정순한 기운들이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손 주위의 공간이 일렁이며 손에서 푸르고 강렬한 빛이 어리자 두성이가 그 빛을 앞으로 뿜어냈다.


빛을 머금고 산들바람처럼 살랑살랑 부는 미풍이 혁밀지를 향해 다가가자 뜨겁게 일렁이던 불길이 사방으로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불길이 바람을 맞으면 더욱 거세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혁밀지는 어린놈이 무슨 돼먹지 않은 술수를 부리는지 잠시 흥미가 생겨 신형을 멈추고 입가에 잔뜩 비웃음을 담았다.


그러나 산들바람이 혁밀지의 호신강기와 부딪치는 순간, 갑자기 커다란 독이 깨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왕!!”

“으지직!”


혁밀지를 감싸고 있던 마의 호신강기 깨어지면서 혁밀지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허공으로 날아가더니 땅바닥에 처박혔다. 아무래도 갈비뼈가 서너 개 부러진 거 같았다.


구경하던 정사의 인물들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자 모두 입을 벌리고 말을 잊어버렸다.


혁밀지가 소태 씹은 얼굴로 잔뜩 얼굴을 구기고 일어서는 순간 두성이가 빛의 속도로 다가왔다.


혁밀지가 발을 구르며 공중으로 높이 뛰어오르며 손을 휘젓자 나뒹굴던 검이 손으로 날아왔다.


그 순간 두성이도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높이 뛰어올라 사룡검을 앞세우고 혁밀지를 향해 쇄도했다.


위에서 밑으로 공격하는 혁밀지와 밑에서 위를 공격하는 두성이의 싸움이 공중에서 계속되었다. 밑에서 볼 때는 두 사람 모두 공중에서 춤을 추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부드러운 몸놀림에는 치명적인 살수가 펼쳐지고 있었다. 약아빠진 혁밀지는 이미 상처를 입은 두성이의 왼팔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두성이의 옷은 불에 타고 찢어졌으며 왼팔과 어깨는 크고 작은 상처로 너덜너덜해졌고 피는 쉬지 않고 흘러내렸다.


갈비뼈가 부러져 움직임이 다소 둔해진 혁밀지도 다리에 심한 검상을 입어 피를 질질 흘리고 있었다.


둘 다 기운이 빠져 지상으로 내려왔지만 누구하나 싸움을 멈출 순 없었다. 여기서 끝장을 봐야했다.


결코 밀려서도, 져서도 안 되었다.


타인이 간섭해서도, 도와줄 수도 없는.


자존심과 의지의 싸움이었다.


아니 정사의 운명이 걸린 대결이었다.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보는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싸움은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해가 질 때까지도 두 사람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이때 새된 여인의 목소리가 팽팽하게 긴장된 분위기를 깨며 들려왔다.


“멈추세요, 멈춰요!”


월하미인 설중매가 사람들을 뚫고 뛰어왔다. 그 뒤를 조서방의 대원들이 따라왔다.


“아! 월하미인이다!”

“성녀가?”


혁밀지가 잔뜩 지친모습으로 설중매를 쳐다봤다. 설중매가 혁밀지와 두성이 사이로 걸어오더니 눈물을 흘리며 주위를 돌아봤다.


설중매는 무자비한 전투에서 쓰러져 죽은 병사들과 고통에 신음하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대마혈궁의 궁주님!

이 많은 병사들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목숨이 끊어져 구천을 헤맨단 말입니까?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마교의 성녀인 제가 대신 벌을 받겠습니다.

제 하찮은 목숨을 바치겠으니 이제 그만하십시오.“


말을 마친 성중매가 예리한 비수를 자신의 목에 대고 언제라도 찌를 기세로 서 있었다.


“후후후! 그래 마침 잘 왔다. 망설이지 말고 목숨을 바쳐라.

네 목숨을 제물로 삼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혁밀지는 설중매에게 다가가 비수를 든 설중매의 손을 잡았다.


“대마혈궁이 숭배하는 마신이시여! 성녀의 피로 제물을 바치겠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는 혁밀지가 성녀의 목에 비수를 꽂으려는 순간, 두성이가 온힘을 다해 외치며 혁밀지를 향해 사룡검을 휘둘렀다.


“안돼!!!”


사룡검이 우르르 진동하며 혁밀지의 팔목으로 향하려는 순간, 다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아니 두성이의 간절한 바람이 이루어졌다.


시끄럽던 온갖 소리가 사라졌다.


모든 움직임이 사라졌다.


시간이 멈췄다.


유아독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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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제110화, 아, 취영아! - 완결- 23.11.01 125 4 16쪽
109 제109화, 무공을 폐하다 23.10.30 119 5 10쪽
» 제108화, 성녀 설중매 23.10.28 134 3 10쪽
107 제107화, 궁주 혁밀지 검을 뽑다 23.10.27 138 3 10쪽
106 제106화, 기동대의 활약 23.10.25 146 4 10쪽
105 제105화, 유아독존 (唯我獨存) 23.10.23 154 3 10쪽
104 제104화, 시간이 멈췄다 23.10.21 153 4 11쪽
103 제103화, 첫 승리 23.10.20 166 5 12쪽
102 제102화, 정사대전의 서막 23.10.18 164 5 10쪽
101 제101화, 척살대 척살하다 23.10.16 184 5 10쪽
100 제100화, 혈미상단 23.10.14 191 4 10쪽
99 제99화, 두 개의 장원 23.10.13 202 3 11쪽
98 제98화, 마동탁의 활약 +3 23.10.11 202 4 10쪽
97 제97화, 신궁 神弓 23.10.09 206 5 11쪽
96 제96화, 재회 23.10.06 213 4 10쪽
95 제95화, 독수방 방주 노팔보 23.10.04 225 3 12쪽
94 제94화, 궤멸 潰滅 23.10.02 234 3 10쪽
93 제93화, 낭인부대와 전투 23.09.30 252 3 10쪽
92 제92화, 낭인곡 십자검 채이평 23.09.29 249 4 10쪽
91 제91화, 모홍강의 말로 23.09.27 234 4 10쪽
90 제90화, 소인배 모홍강 23.09.25 240 4 11쪽
89 제89화, 오독교주 사명명 23.09.23 241 4 10쪽
88 제88화, 오독교 23.09.22 259 4 10쪽
87 제87화, 지피지기 백전불태 23.09.20 275 5 10쪽
86 제86화, 사천당문 23.09.18 282 4 11쪽
85 제85화, 외나무다리 23.09.16 310 5 11쪽
84 제84화, 걸개법사와 탈혼수 23.09.15 316 4 11쪽
83 제83화,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 23.09.13 316 7 11쪽
82 제82화, 지하동굴의 노인 23.09.11 3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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