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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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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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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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제85화, 외나무다리

DUMMY

청성파는 성도의 북서쪽 청성산에 위치한 문파로 도교를 기본으로 하고 구파일방에 속하기도 했다.


청성산은 푸른 상록수림이 일 년 내내 산 전체를 뒤덮고 있어서 말 그대로 짙푸른 녹색의 산이다. 울창한 나무와 가파른 바위 사이에 자리 잡은 도관이 아찔하면서도 그 위엄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시사철 전국에서 찾아오는 유람객들과 복을 빌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리는 곳이라 항상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아무 곳이나 들어가 향을 피우고 기도를 드릴 수 있었지만, 산 중턱에 위치한 청성파의 장원 근처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곳곳에 매복하거나 순찰을 도는 제자들이 수상한 자들이 나타나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곳에도 유람객들을 위해 산길로 오르는 초입에 객잔과 주점 그리고 찻집 등 기념품과 일용품을 파는 점포들이 모여 있었다.


두성이는 일단 이곳에 자릴 잡고 기반을 굳힐 생각이었다.


일 년 내내 장사가 잘 되는 이곳에 점포를 얻으려면 당연히 청성파의 허락과 까다로운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두성이와 그 일행은 객실이 오십여 개나 되는 커다란 ‘무위객잔’에 방을 얻자, 추명성이 객잔의 주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이곳에 작은 찻집을 열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주인은 두성이가 찻집을 열고 싶다는 말에 언뜻 수궁이 가지 않았다.


훤칠한 외모에 글 냄새를 풀풀 풍기는 젊은이가 찻집을 한다니 장사꾼의 눈으로 볼 때도 전혀 격이 맞지 않았다.


찻집은 한물간 퇴기나 입담이 좋은 영감이 젊은이들을 고용해 심심파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주인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마침 고향에 있는 손자가 장가를 든다는 소식에 찻집을 넘기려는 영감이 있는데, 고집불통이랍니다.

자신이 반평생을 보낸 찻집에 애정이 남달라 살 사람이 맘에 안 들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절대로 팔지를 않습니다.

자신처럼 찻집 경험이 많아 앞으로도 계속 찻집을 번성시킬 사람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일단 그 분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이곳에도 조서방의 입김이 통하는 터라 추명성이 재촉하자 주인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두성이와 함께 찻집으로 들어갔다.


차를 우리고 있던 노인이 반갑게 객잔 주인을 맞았다.


노인은 중키에 서글서글한 인상으로 고집불통처럼 보이진 않았다. 객잔 주인의 얘기를 들은 노인이 두성이를 보고 웃으며 일단 차를 주문하라고 했다.


노련한 장사꾼인건 분명했다. 차를 따라주던 노인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찻집을 인수하고 나서 업종을 바꾸려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차를 마시며 정담도 나누고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이야기꾼과 소리꾼도 고용할 생각입니다.”

"......?"

“그런 사람들은 급료가 높은데 수지타산이 맞겠습니까?

아마 몇 달 못가서 적자에서 헤매지 않나 걱정이 됩니다.”

“고급손님은 특별실로 모실 것이니 돈 문제는 해결될 것이지만.

전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현상유지만 된다면 이곳 산수가 뛰어난 곳에서 책이나 읽으며 지낼 생각입니다.”


노인이 두성이를 보니 꽤나 부유한 집안의 자제처럼 보였고 욕심이 없는 청렴한 선비처럼 보였다.


“그런 생각이라면 장사는 아예 생각지도 마시오. 공자한테는 안 팔겠소.”


노인은 고개를 홱 돌리고 일언지하에 잘라 말했다. 예상치 못 한 노인의 반응에 두성이는 당황하며 물었다.


“거절하는 이유는 뭡니까?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공자는 글만 읽어서 장사를 우습게 보는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절박한 심정으로 정성껏 해야지,

먹고 살만하다고 대충대충 하는 게 장사가 아닙니다.

그건 장사꾼들의 진심을 무시하는 겁니다.”


두성이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제가 실수했습니다.

제가 장사는 안 했지만 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았기에 사람들의 취향은 어느 정도 아는 편입니다.

보통사람은 물론 내로라하는 사람들도 편히 쉴 수 있는 찻집을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노인은 두성이를 다시 쳐다봤다. 옆에는 산처럼 커다란 장한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데 두성이가 벌떡 일어나자, 무슨 사달이 날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두성이가 오히려 공손하게 자신의 심중을 진심으로 토로하자 노인의 안색은 불안한 표정에서 해방되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건방진 말을 했습니다. 잊어주십시오.

그런 뜻이라면 공자님께 찻집을 넘기겠습니다.

잠깐 기다리십시오.”


노인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건장한 무사와 함께 들어왔다.


“이분은 청성파의 외당 당주로 청풍검 주유 대협이신데 이곳을 관장하고 있습니다. 주 대협의 허락이 있어야 찻집을 인수할 수 있습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전 두성이라 합니다.”


“월세를 또박또박 지불하고 난잡하거나 상도와 질서를 어지럽히지만 않는다면, 누구라도 환영하지만..., 보아하니 공자는 장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잘 나가는가 싶었는데 꼭 토를 다는 사람들이 있다. 주유는 거만한 태도로 두성이와 일행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노인이 두성이를 힐끗 보며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고 눈을 껌벅인다. 눈치 빠른 추명성이 귓속말로 속삭인다.


“뇌물을 집어주란 뜻입니다.”


두성이는 기분이 나빴지만, 주머니에서 은자 댓 냥을 집어 손바닥에 감추며 딴청을 부리고 있는 주유의 손을 덥석 잡더니 능청스럽게 웃었다.


“주 대협,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은자 댓 냥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주유는 껄껄 웃더니 천연덕스럽게 입을 떼었다.


“책만 읽는 도련님인줄 알았는데 시세를 아는 군, 염려 마시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인사를 하고 지냅시다.”


슬그머니 돈을 품속에 넣으며 앞으로도 지금처럼 돈을 바치라는 소리다. 청성파의 내부사정을 알려면 주유와 같은 자의 협조가 필수적이었다.


마동탁과 초대봉은 시답잖은 주유를 무시하고 아예 감고 있던 눈을 뜨지도 않았다.


두성이는 찻집 ‘다향(茶香)’으로 돌아와 노인에게 돈을 지불했다.


이제 이야기꾼과 노래꾼 등 찻집의 운영은 전문가인 추명성에게 맡기면 될 일이었다.


남은 일은 암암리에 찾아올 소청천과 독수방의 패거리들을 기다리는 것이다.


두성이와 마동탁, 초대봉과 탁일문은 산 전체의 지형을 익히기 위해 느긋하게 ‘청성산’이란 편액이 걸려있는 산문을 들어섰다.


산 전체가 수목이 무성하며 산길을 따라 고목이 하늘까지 높이 치솟아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풍류객과 참배객들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옥 같은 계류가 흐르는 곳에 고색창연한 정자가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자 지붕 끝의 처마 곡선은 하늘을 향해 둥글게 뻗쳐올라 마치 날갯짓하고 있는 새처럼 보였다.


마치 득도한 도사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듯.


잠시 정자에 앉아 사위를 둘러보니 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청량한 기운 속에 야생화의 그윽한 향기가 가슴 가득히 스며들었다.


뭇 봉우리들이 주봉을 성곽과 같이 둘러쌓았고, 울창한 나무와 가파른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사원이 아찔한 가운데서도 그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정상에 높이 솟은 노군각엔 높이가 삼 장이 넘는 태상노군상이 있었다. 참배객들이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느라 좀 혼잡했다.


산 뒤쪽에는 멀리 굽이굽이 흐르는 월성호가 있었고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은 평화롭게 보였다.


세인의 눈길을 피해서 청성파에 들어오려면 물길을 이용해 마을을 통해서 들어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눈여겨 보았다.


산 중턱에 있다는 청성파의 본채는 나무와 암벽 등에 가려 정상에서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접근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은 전체적인 지리를 파악하였으니 찻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앞서 내려가던 마동탁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두성이는 재빨리 고목 뒤로 몸을 숨기고 주시했다


밑에서 죽립을 쓴 경장차림의 장한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멀리서도 느껴지는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날렵한 발걸음인데도 무게가 실려 있었고 앞서가는 유람객들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빠르게 올라오고 있었다.


마동탁은 한쪽으로 비켜서서 그 장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장한이 마동탁 앞에서 멈춰서며 엄지로 죽립을 살짝 들어올렸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군.”


장한은 비릿한 웃음을 꽉 다문 이빨사이로 흘리며 마동탁을 노려보았다. 마동탁은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키고 장한을 어깨로 툭 밀치며 성큼성큼 내려갔다.


장한이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두성이는 그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그 둘의 대화로만 봐서는 원수지간인 것 같았지만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었다.


산문을 빠져나와 인적이 없는 숲속의 공터에 도착한 마동탁이 장한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장한은 흑도의 고수로 유성일검(流星一劍) 하무거였다.


어릴 때의 죽마고우로 같은 무도장에서 수련했으나 후에 각자 다른 사부를 만나는 바람에 서로 어긋난 길을 가게 되었다.


십 년 전에 소흥과 항주에선 막대한 이권을 놓고 적대관계에 있는 오봉방과 황사방 두 세력이 한바탕의 혈전을 벌였다.


오봉방은 수적질은 하였으나 그곳의 백성들에겐 해를 끼치지 않았지만, 황사방은 돈 냄새만 맡으면 인정사정없이 달려들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


그때 마동탁이 속한 오봉방이 황사방을 물리치고 패권을 장악했다.


황사방의 하무거는 이를 갈며 잔당들과 장강상류로 도망쳤는데 오늘 이곳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너도 이제 불뚝성을 좀 죽이고 얌전히 살고 있겠지?”


마동탁이 웃으며 말을 하자 하무거는 죽립을 벗어 던지며 노려보았다. 왼쪽 눈썹 위에서 사선으로 한줄기 칼자국이 길게 나있는 하무거는 대뜸 칼을 뽑아들었다.


“나에게 이런 치욕을 안겨준 네놈이 할 소린 아닌데, 너 같으면 성질을 죽이고 얌전히 살았겠느냐? 이 빌어먹을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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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제109화, 무공을 폐하다 23.10.30 119 5 10쪽
108 제108화, 성녀 설중매 23.10.28 133 3 10쪽
107 제107화, 궁주 혁밀지 검을 뽑다 23.10.27 138 3 10쪽
106 제106화, 기동대의 활약 23.10.25 146 4 10쪽
105 제105화, 유아독존 (唯我獨存) 23.10.23 154 3 10쪽
104 제104화, 시간이 멈췄다 23.10.21 153 4 11쪽
103 제103화, 첫 승리 23.10.20 165 5 12쪽
102 제102화, 정사대전의 서막 23.10.18 164 5 10쪽
101 제101화, 척살대 척살하다 23.10.16 184 5 10쪽
100 제100화, 혈미상단 23.10.14 190 4 10쪽
99 제99화, 두 개의 장원 23.10.13 202 3 11쪽
98 제98화, 마동탁의 활약 +3 23.10.11 201 4 10쪽
97 제97화, 신궁 神弓 23.10.09 206 5 11쪽
96 제96화, 재회 23.10.06 213 4 10쪽
95 제95화, 독수방 방주 노팔보 23.10.04 225 3 12쪽
94 제94화, 궤멸 潰滅 23.10.02 234 3 10쪽
93 제93화, 낭인부대와 전투 23.09.30 252 3 10쪽
92 제92화, 낭인곡 십자검 채이평 23.09.29 248 4 10쪽
91 제91화, 모홍강의 말로 23.09.27 234 4 10쪽
90 제90화, 소인배 모홍강 23.09.25 239 4 11쪽
89 제89화, 오독교주 사명명 23.09.23 241 4 10쪽
88 제88화, 오독교 23.09.22 259 4 10쪽
87 제87화, 지피지기 백전불태 23.09.20 275 5 10쪽
86 제86화, 사천당문 23.09.18 282 4 11쪽
» 제85화, 외나무다리 23.09.16 310 5 11쪽
84 제84화, 걸개법사와 탈혼수 23.09.15 316 4 11쪽
83 제83화,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 23.09.13 316 7 11쪽
82 제82화, 지하동굴의 노인 23.09.11 3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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