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룡검 시간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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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3.06.06 22:54
최근연재일 :
2023.11.0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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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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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지피지기 백전불태

DUMMY

뱃사람들이 단골인 이곳은 무척이나 시끄럽고 소란스러워 옆 좌석의 말소릴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성질이 급한 수적들은 동료들과 얘기 하다가도 별 것도 아닌 일에 탁자를 내려치며 고함을 지르고, 바닥을 발로 굴러 옆 자리의 술병이 굴러 떨어지는 것은 예사였다.


안하무인으로 활개를 치며 떠들고 있는 패거리 옆에 눈초리가 날카로운 네 명의 괴한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제미랄, 돼지새끼들이 꽥꽥거리는 통에 술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네. 좀 조용히 마시면 안 되겠냐?”


눈을 부라리며 욕을 하자 옆 좌석의 수적들이 탁자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꽝!!!”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얼른 처먹고 개소리 말고 냉큼 꺼져라!”


주위의 수적들이 모두 노려보자 네 명의 괴한은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었는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들이 막 식당의 문을 벗어났을 때였다.


활개를 치며 욕했던 패거리들이 갑자기 목을 부여잡았고, 눈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끔찍한 모습으로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독이다!”

“아까 옆에 있던 놈들의 짓이다!”

“놈들을 잡아 죽이자!”


함성을 지르며 주위에 있던 자들이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며 분분히 뛰쳐나갔다.


혼비백산한 손님들도 문을 향해 우르르 달려 나가자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오공에 검은 피를 흘리며 죽어 자빠진 사람들은 염룡채의 일원이었다.


두성이와 일행들도 일단 밖으로 빠져나왔다. 염룡채의 수적들이 먼저 자리를 뜬 네 명의 괴한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당문의 일원인 네 명은 독문 암기인 우모침(牛毛針 쇠털 같이 가는 침)을 날리자, 미처 피하지 못한 수적이 고슴도치가 되어 나뒹굴었다.


동료들이 비참하게 죽자 수적들의 무자비한 공격에 당문의 제자들 세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나머지 한 명은 간신히 몸을 빼 달아나며 소리쳤다.


“우리 당문은 너희들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지옥 끝까지라도 따라가서 아작을 낼 거다. 기다려라!”



* * *



선착장 바로 옆, 이 장 높이의 절벽위에 자리 잡은 염룡채는 나름대로 규모가 갖춰진 요새였다.


넓은 대청에는 염룡채의 채주인 금리도천파(金鯉倒千波) 번쾌수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굳게 다문 입을 열었다.


“사천당문이 그동안 감추고 있던 발톱을 내밀더니 이제는 대놓고 이빨로 물어뜯는구나!

저들의 속셈은 우리의 삶터를 빼앗으려는 것인데 우리가 꼬리를 말고 도망가야 하겠는가?

아니면!”


번쾌수의 말에 부하들이 흥분해서 저마다 떠들었다.


“당문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리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줍시다.”

“옳소, 이번엔 우리가 놈들의 숨통을 끊어버립시다.”

“강물로 끌어들여 물고기 밥을 만들자!”

“죽기 아니면 살기다, 끝까지 싸우자!”


부하들이 분기탱천하여 중구난방으로 떠들자, 번쾌수가 손을 들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너희들의 용기는 가상하지만 사천당문은 우리에게 좀 힘든 상대다.

성질대로만 한다면 우리가 한 수 위가 되겠지만 현실을 직시해라.”

“그럼, 어쩌자는 겁니까? 항복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부채주 일도양단(一刀兩斷) 화무적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번쾌수는 노략질만 일삼는 수적과는 다르게 지모가 있었고 생각이 깊으며 침착했다.


“우리의 사활이 걸려있는 만큼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낭인 용병을 모으고, 고수를 초빙해서 저들과 대항해야 한다는 말이다.

용병들을 별동대로 삼아 당문이 쳐들어왔을 때 뒤를 공격하도록 해야 해!”


“그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


염룡채의 바깥일을 담당하고 있는 청산유수(靑山流水) 채다변이 웃으며 말했다. 그때 부하가 뛰어 들어왔다.


“채주님, 웬 놈들이 막무가내로 들어왔습니다. 꼭 채주님을 뵙는다고요···.”


그때 앞에서 막아서는 부하들을 밀어젖히며 네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두성이와 마동탁, 초대봉과 탁일문이었다.


마동탁이 들어서자 그 넓은 대청 안이 좁아보였다. 비록 네 사람이었지만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좌중을 압도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내가 채주 번쾌수요, 여긴 무슨 일로 찾아왔소?”


번쾌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네 사람을 살폈다. 두성이가 손을 맞잡으며 번쾌수한테 인사를 했다.


“난 불새단의 단주 장두성이고 이쪽은 마동탁과 초대봉 그리고 탁일문이오.

우린 친구가 될 수 있으니 적대감은 버리십시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친구라니 무슨 말이요?”

“우린 사천당가의 행패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소.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있지 않소?

염룡채를 도와 그들을 물리치려고 찾아온 것입니다.”


두성이의 말에 부채주인 화무적이 같잖다는 어투로 빈정댔다.


“우린 그대들의 실력을 알지도 못하는데 공연히 큰소리만 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혹시 밥이나 축내고 돈이나 몇 푼 얻으러 왔다면,

당장 돌아가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요. 흥!”


말은 안하고 이들의 거동만 살피고 있었지만, 마동탁은 그 말을 듣고 가만있을 소금자루는 아니었다.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어느새 다가가 화무적의 팔목을 거머쥐고 힘을 주었다.


뼈가 으스러질 듯 억센 힘에 화무적은 벙어리가 되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동탁의 덩치와 민첩한 몸놀림, 게다가 일류고수의 반열에 드는 화무적이 일순간에 제압당해 사색이 되어있으니···.


“미안하게 됐소이다, 내가 사과하리다.”


번쾌수의 말에 마동탁이 손을 떼며 화무적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미안하오, 나도 성질을 참았어야 하는데···.”


두성이는 이 기회에 확실히 쐐기를 박을 요량으로 손에 내력을 불어넣으며 순식간에, 주위에 서있는 수적(水賊)들 사이를 누비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성이의 신형이 눈앞에서 번득이는 걸 보았는데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가 웃음을 짓고 있었다.


번쾌수는 무슨 영문인줄 모르고 부하들만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 멍한 얼굴로 서있자 두성이가 두 손을 맞잡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내가 미천한 재주를 부렸는데 여러분 노하지나 마십시오.”


두성이 주위에 있던 수적들이 영문을 몰라 주위를 둘러보며 움직이자 바지가 흘러내렸다. 수적들은 깜작 놀라 바지춤을 추스르기 바빴다.


두성이가 그들의 바지 끈을 잘라버린 것이다.


엉거주춤 서있는 수적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 그저 얼굴만 붉히고 서있었다.


채주 번쾌수는 두 사람의 무예실력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절정의 고수가 제 발로 찾아왔으니 어찌 상서로운 조짐이 아니겠는가.


옛날 어진 임금은 현자가 찾아오면 먹던 밥도 뱉어내고 현자를 맞았고, 머리를 감다가도 손으로 머리채를 잡고 맞았다고 했다.


그런데 저절로 굴러온 호박덩어리가 넝쿨째로 들어왔으니.


게다가 웃으며 서있는 두성이의 얼굴과 손은 거무스레하게 변했고 피부에는 은연중 거북무니가 드러났다.


두성이의 뒤에는 전설상의 신수인 현무의 모습이 어렸다.


수적들은 깜짝 놀라 모두 자리에 엎드렸다. 자신들이 모시는 염룡이 현신한 것이다.


번쾌수는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며 달려와 두성이 앞에 엎드리고 머리를 깊이 숙였다.


“염룡의 현신, 아니 고인을 몰라 뵙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두성이가 웃으며 어깨를 잡아 일으키자 번쾌수는 부하들에게 일러 음식을 장만하고 네 사람을 정성껏 접대했다.



* * *



사천당가, 고루거각이 즐비한 가운데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의사청에선 가주 독수무흔(毒手無痕) 당치황이 중진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묻고 있었다.


“염룡채를 시작으로 장강 상류에서 활동하는 수적들을 우리 손아귀에 넣어야 사천지역을 완전히 장악할 수 있습니다.”


당치황의 동생인 당치평이 목에 힘을 주며 말하자 아들 당원보도 동조했다.


“맞습니다! 육로와 수로를 꽉 틀어잡는다면 감히 우리와 대적할 방파는 없을 겁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염룡채를 쳐부숴야합니다.”


그러나 문주 당치황은 생각이 깊은 자였다. 그는 문 쪽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소 대협, 안으로 드시오.”


소청천이 안으로 들어와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문주님, 중요한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소 대협, 해룡방 방주의 생각을 알고 싶으니 자세히 말해주시오.”

“방주께선 기회를 노렸다가 일시에 섬멸하는 게 좋다고 하십니다.”

“이곳에서 거들먹거리는 수적들은 염룡채와 와룡채, 그리고 대망채(大蟒寨)인데···,

좋아! 삼일 후에 공격이다.

그동안 준비를 확실하게 해 놓으시오.”


가주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필승의 결의를 다졌다.


사천당문은 이미 해룡방과 한배를 탄 모양이었다. 그러니 독수방처럼 작은 방파가 당문의 마당에서 함부로 나대는 것이다.


사흘 뒤, 달이 보이지 않는 저녁 하늘은 비가 오려는지 어두컴컴하였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한 당문은 염룡채를 초토화시켜 완전히 장악하려고 많은 인원들을 투입했다.


이들은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염룡채의 정문으로 들이닥쳤고, 실력이 출중한 제자들은 선착장 옆의 절벽으로 침투했다.



앞서 염룡채에선 두성이의 조언대로 정문 앞에서부터 한 자 간격으로 독을 바른 투골정(透骨釘)을 박아놓았다. 그리고 가시가 달린 검은 철선을 일 장 간격으로 배치해 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어둠속에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들어오던 적들은 뾰족하게 튀어나온 투골정을 밟아 앞으로 고꾸라졌고,


가시철선에 걸려 다리가 찢기며 마비독에 중독되어 쓰러졌다.


독의 전문가인 당문을 상대로 독(毒)으로써 독(毒)을 공격하는 이독공독(以毒攻毒)이였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곳곳에 숨어있던 염룡채의 수적들은 좀 비열한 짓거리였지만, 사방에서 독 모래와 석회를 뿌리곤 잽싸게 숨어버렸다.


어렵게 거지 같은 독진을 통과한 당문의 제자들은 저승사자 마동탁을 만나 하나둘 팔다리가 부러져 땅바닥에 개처럼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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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제110화, 아, 취영아! - 완결- 23.11.01 125 4 16쪽
109 제109화, 무공을 폐하다 23.10.30 119 5 10쪽
108 제108화, 성녀 설중매 23.10.28 134 3 10쪽
107 제107화, 궁주 혁밀지 검을 뽑다 23.10.27 139 3 10쪽
106 제106화, 기동대의 활약 23.10.25 146 4 10쪽
105 제105화, 유아독존 (唯我獨存) 23.10.23 154 3 10쪽
104 제104화, 시간이 멈췄다 23.10.21 153 4 11쪽
103 제103화, 첫 승리 23.10.20 166 5 12쪽
102 제102화, 정사대전의 서막 23.10.18 164 5 10쪽
101 제101화, 척살대 척살하다 23.10.16 184 5 10쪽
100 제100화, 혈미상단 23.10.14 191 4 10쪽
99 제99화, 두 개의 장원 23.10.13 202 3 11쪽
98 제98화, 마동탁의 활약 +3 23.10.11 202 4 10쪽
97 제97화, 신궁 神弓 23.10.09 206 5 11쪽
96 제96화, 재회 23.10.06 213 4 10쪽
95 제95화, 독수방 방주 노팔보 23.10.04 226 3 12쪽
94 제94화, 궤멸 潰滅 23.10.02 235 3 10쪽
93 제93화, 낭인부대와 전투 23.09.30 252 3 10쪽
92 제92화, 낭인곡 십자검 채이평 23.09.29 249 4 10쪽
91 제91화, 모홍강의 말로 23.09.27 235 4 10쪽
90 제90화, 소인배 모홍강 23.09.25 240 4 11쪽
89 제89화, 오독교주 사명명 23.09.23 242 4 10쪽
88 제88화, 오독교 23.09.22 259 4 10쪽
» 제87화, 지피지기 백전불태 23.09.20 276 5 10쪽
86 제86화, 사천당문 23.09.18 282 4 11쪽
85 제85화, 외나무다리 23.09.16 310 5 11쪽
84 제84화, 걸개법사와 탈혼수 23.09.15 316 4 11쪽
83 제83화, 팔방풍우(八方風雨) 진정일 23.09.13 316 7 11쪽
82 제82화, 지하동굴의 노인 23.09.11 327 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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