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0화. 장화와 홍련이
“이거 놓으세요! 저 아니라니까요.”
“니가 아닌데, 왜 도망가?”
“뒤에서 쫓아 오니까 갔죠.”
“이거 참 어이없는 새끼네. 우리가 쫓아가기 전에 니가 먼저 튀었어. 이 새끼야!”
아까 우리에게 쫓기던 놈이 수세에 몰리자 자기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근처에 있던 여성을 인질로 삼았다.
***
“가까이 오지마! 가까이 오면 이년 죽여 버리고 나도 죽을꺼야!”
“내가 보니까 너만 죽을 거 같은데.”
인질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위협을 하던 놈의 몸이 갑자기 거꾸로 떠오르더니 느닷없이 앞으로 처박혔다.
놈이 죽이겠다고 칼로 위협하던 여성이 공교롭게도 다름 아닌 채 형사였다.
발차기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채 형사가 업어치기도 진짜 예술로 한다.
채 형사에게 업어치기를 당한 녀석이 그대로 실신해 버렸고, 우리는 놈을 데리고 경찰서에 도착해 조사실로 데리고 갔다.
“너 똑바로 대답해. 그렇지 않으면, 너 아주 재미 없을 줄 알아. 너 통장에 찍힌 이 돈 다 어디서 났어?”
“제가 일해서 번겁니다.”
“햐.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맨날 빈둥빈둥 먹고 노는 놈이 뭔 일을 해서 벌어.”
“진짜라니깐요. 제 말 좀 믿어 주세요.”
“너 같으면 니가 하는 말 믿겠냐?”
쉬울 것이라 생각했던 놈과의 줄다리기가 제법 팽팽하게 이어졌다.
“제가 방화를 했다는 증거가 있다면 어디 가져와 보세요.”
놈의 너무나도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나서 조사실의 책상을 확 뒤집어 업혔다.
“너 여기서 딱 기다리고 있어. 내가 증거 꼭 찾아올테니까.”
놈은 내말에 콧방귀를 끼었다.
놈에게 큰 소리를 치고 나왔지만, 녀석의 집에선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평소 껄렁껄렁하던 행동과는 달리 매우 아주 치밀한 놈이었다.
“나 저 녀석 집에 한번 더 갖다 올게.”
근처 슈퍼에 들러 몇 병의 소주와 안주거리 될만한 것들을 사 놈의 집으로 갔다.
“조금 전에도 형사님들이 오셨다 가셨는데요.”
“네, 저는 아버님이랑 술 한잔하고 싶어서 왔으니까, 그렇게 경계하실 필요 없으세요.”
난 가게에서 사 온 것들을 마루에 놓고, 술잔 할만한 것을 찾으러 주방으로 갔다.
남자들만 사는 집이라서 그런지 집 안은 엉망이었다. 꼭 우리 집을 보는 거 같아 친근감이 들었다.
“술잔 할만한 게 이거 밖에 없네요.”
주방에서 찾은 찻잔 두 개를 앞에 놓고, 거기에다가 소주를 잔뜩 따랐다.
“자식 놈은 경찰서에 붙잡혀 갔고, 집에는 경찰들이 왔다 갔다 들쑤시고 하니까 가슴도 아프고, 어수선 하시지요.”
“그놈도 처음부터 나쁜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한컵 가득 차 있던 소주를 단숨에 들이키더니 나에게 신세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에는 공부도 제법 잘하고, 아주 착한 아이였죠. 그러다 교통사고로 제 어미 먼저 떠나보내고, 설상가상으로 제가 하던 사업까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더 어려워지고, 그때부터 엇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
“먹고 살기 바빴던 저는 아들 놈에게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고해성사하듯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중간의 그의 말을 끊었다.
“아버님, 그 츄리닝 혹시 아버님 겁니까?”
나의 돌발 질문에 순간 정적이 흘렸다.
“그럼, 아버님, 혹시 시장에 불이 나던 날이나 그 이후에 가게에 가신 적 있으신가요?”
“불이 나던 날은 웬 일로 아들 놈이 자기가 가게에 가 있겠다고 나오지 말라고 해서 안 나갔고, 그 이후로는 몸이 좋지 않아 계속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츄리닝 윗도리는 아들 것인데, 빨아도 얼룩이 지지 않아 버렸던 걸 제가 주워 입었습니다.”
“아버님, 그 옷 저, 주십시오.”
그가 걸치고 있던 츄리닝을 거의 뺐다시피 해서 벗긴 다음 내 것을 벗어 주고는 그 길로 국과수로 향했다.
“원장님, 이거 급한 건데, 성분 분석 좀 빨리해 주십시오.”
“이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은 거 같구만.”
원장실 문을 부수다시피 들어가니 그곳에는 박사님도 함께 있었다.
“그럼, 그 해답이 맞는지 한 번 풀어봐야겠구만.”
원장님이 내 손에 들고 있던 옷을 가지고 실험실 같은 곳으로 가셨다.
“자네는 계속 그렇게 넋 놓고 있을 건가? 곧 있으면 그 방화범이 풀려난 시간 아닌가.”
정신이 바짝 든 나는 인사하는 것도 까먹고, 경찰서로 갔다.
“한 시간이네. 한 시간. 넉넉잡고 한 시간만 붙잡고 있으면 되네.”
도망치듯 국과수 건물을 나오던 내 뒤통수에 대고 박사님이 소리치셨다.
“시간이 다 됐으니까 저 이만 가 봐도 되죠?”
증거가 없이 용의자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시간이 48시간밖에 되지 않기에 하는 수 없이 녀석의 수갑을 풀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패서 한시간 동안 기절을 시킬까요?”
동만이의 한마디에 주변에 있던 동료들의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뭣들 해! 시간, 다 됐으니까 이거 풀라니까. 다 옷 벗고 싶어!”
다들 변태도 아니고, 왜 그리 옷을 벗기려고 하는지.
“증거 이제, 곧 나오니까 한 시간만 붙잡고 있어줘!”
경찰서에서 내 전화를 받고는 조사실 안에 있는 방화용의자를 잡아 두기 위한 방법을 모색 중이었다.
명색이 유능하기로 소문 난 경찰들인데, 기절을 시키자니 별 시답지 않은 것들만 늘어 놓는다.
“조사받으시느라 고생하셨는데, 식사라도 하고..”
“아니, 아저씨. 내가 지금 여기서 한가하게 밥이나 먹고 있게 생겼어요. 아저씨들이나 많이 쳐 잡솨.”
싸가지 없는 놈의 말투에 서 반장이 주먹을 살짝 쥐었다 놨다.
“반했어요!”
경찰서를 탈출하려는 자와 그걸 막으려는 자들의 실랑이가 벌어져 어수선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을 때, 채 형사가 소리쳤다.
“사실 말은 안 했지만, 그 남자다움에 솔직히 반했어요.”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채 형사의 손 짓에 모두 조사실을 나가고 단 둘만이 남았다.
말도 안되는 개소리로 놈에게 갖은 아양을 떨고 있었다.
“오빵. 오빠는 언제부터 그렇게 잘생겨졌나요.”
밖에서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 경찰들은 순간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얼토당토않은 말들로 동료들을 모두 공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그렇다고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보다 못한 서장님이 한소리 하신다.
“정 형사, 너 전에 채 형사 좋아한다고 그러지 않았냐?”
“전, 채 형사가 저렇게까지 두렵고 무서운 사람인지 몰랐습니다.”
정 형사는 안에서 갖은 교태를 부리고 있는 그녀에게 진정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안에 있는 저 녀석도 채 형사의 행동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
“요새는 꽃뱀이 형사도 합니까?”
그의 한마디에 동료들은 모두 뒤집어 졌고, 조사실 안에는 험악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빨리 가서 쟤 말려라. 안 그러면 쟤 또 사고 친다.”
서장님의 말에 모두 달려 들어 놈에게 해코지 하려는 채 형사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모두 뭣들 해?”
내가 경찰서에 도착하니 모두 얽히고설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뒤로 하고 나가는 그놈과 마주쳤다.
“어이 이 봐. 조사실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놈의 손에 수갑을 다시 채웠다.
“넌 지금 이 시간부터 시장에 불을 지른 용의자가 아니라 현행범이야.”
“퀵 서비스입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식이가 검사 결과지와 함께 국과수에 맡겼던 증거품을 들고 나타났다.
“이제는 퀵이냐.”
난 우식이에게서 그것들을 넘겨받았다.
“이거 낯이 많이 익지.”
“저거 버렸는데, 어떻게..”
증거품을 보자 결과를 말하기도 전에 녀석이 먼저 범행을 시인했다.
“이 금수만도 못한 새끼야. 혼자 고생하시는 아버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돈 때문에 거기다가 불을 지르냐!”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추후 조사 결과, 목 좋은 자리에 있는 재래시장을 매입해 허물고 거기다가 쇼핑몰을 지으려고 계획을 하고 있던 업주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자 빈둥거리며 놀고 있는 범인에게 돈을 주며 불을 지르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죄가 드러난 업주는 몰래, 밀항하려던 걸 추적 끝에 체포할 수 있었다.
오늘도 뉴스에서는 어김없이 어느 지역에 불이 나 그걸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방관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숭고한 그들의 희생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
“넌 새벽에 신음소리를 그렇게 내냐? 난 또 니가 자다가 해피타임이도 가지는 줄 알았다.”
서장님과 아침을 먹는데, 괜한 시비를 걸어오신다.
얼뜨기 폭파범에 의해 내 하나밖에 없는 집이 폭파되고, 당분간 서장님 집에서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근데 집이 탑클레스들만 산다는 최첨단 시스템이 갖추어진 그런 집이었다.
이런 집에는 누가 사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바로 내 주변에 있었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아주 잠깐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계획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말도 마세요. 저 새벽에 죽을 뻔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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