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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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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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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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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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화

DUMMY

“이곳으로 가시면 51층입니다. 이 넓은 곳에 둘만 있어 적적했는데 덕분에 시끌벅적해 즐거웠습니다.”


다음 날, 우린 그라고스와 무라고스의 배웅을 받으며 51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섰다.


“둘 다 그동안 고마웠어, 덕분에 잘 쉬었어, 재밌는 것도 많았고.” “불편함이 없었다니 다행입니다.”

“하하! 살다 살다 몬스터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날이 올 줄은 몰랐군! 이래서 죽을 수가 없다니까!”


처음엔 그렇게나 두 몬스터를 경계했지만 생김새만 다를 뿐 인격을 가진 인격체와 함께 지내다 보니 나름 정이 들었는지 모두들 돌아가며 둘에게 인사했다.


“무라고스⋯ 우리 또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가 살아있는 한 분명 기회는 다시 있을 거야! 그러니까⋯ 몸조심해.”

“⋯응!”


특히 정신연령이 비슷한 재현이와 무라고스는 아예 친구 사이로 발전했고 재회의 약속을 다졌다.


“이거 따로 챙겨줘서 고마워, 잘 먹을게.”

“최대한 챙겨드렸지만 아마 부족할 겁니다. 하루에 한두 개씩만 아껴 드세요. 그리고 씨앗을 꼭 잘 보관하세요.”


나는 그라고스가 챙겨준 목란과가 가득 든 자루를 들어 보이며 인사했다.

여길 떠나면 더 이상 목란과를 못 먹는다는 사실이 겁이 날 정도로 목란과에 푹 빠진 나를 위해서 그라고스는 따로 목란과를 챙겨주었고 씨앗을 심어 목란과 나무를 재배하고 열매를 채취하는 법까지 알려주었다.

그냥 위에서 시키니까 마지못해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라고스는 생각보다 훨씬 프로페셔널한 농부였다.


“그런데 그라고스.” “네?” “만약 우리가 탑의 정상에 도착해서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너희는 어떻게 되는 거야?”

“전쟁이 끝나면 싸울 전사도 필요 없기에 징집령이 해제될 겁니다. 그럼 저는 제 고향으로 돌아가 이 생활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연락이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된다면 초대하겠습니다.”

“그⋯ 안전한 건 맞아?”

“예?”

“여기로 사실상 자결하라고 보낸 거라며. 그런데 자결 안 하고 버티고 있으면 나중에 죽이러 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오.”


내 물음에 그라고스는 의외라는 얼굴로 잠시 눈을 깜빡이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군단은 이번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저 같은 것 하나 처리할 정신도 없을뿐더러⋯ 군단장께서 직접 오시지 않는 한 저와 무라고스에게 해를 끼칠 만한 힘을 가진 전사도 없지요.”


하긴, 우리 세계로 와서 처음부터 맞붙은 적이 하필이면 윤아린이라 그렇지 객관적으로 보면 그라고스는 아린이가 아니라 A, B급 정도로 구성된 헌터들과 싸웠다면 사상자깨나 냈을 정도로 충분히 강한 몬스터다.

내가 그의 신변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 그럼 나중에 또 볼 수 있으면 또 보자.”

“그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쉬운 헤어짐을 뒤로하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아름다운 들판의 풍경은 발밑으로 사라지고 다시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던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 촤악! 촥!


나는 51층에 올라오자마자 환영 인사를 나온 몬스터들을 만년빙으로 만든 검으로 해치웠다.

물론 이런 잡몹들을 쓸어 버리는데 히트 비전만큼 효율적인 건 없지만 너무 그것만 써대니 전투 감각이 무뎌지는 기분이 들어서 일부러 백병전에 뛰어들었다.


“흐앗! 흡!”


특전 포인트를 투자함에 따라 강해진 능력치 덕에 검으로 몬스터를 해치우는 덴 큰 문제가 없었다.


“쓰읍⋯?”


하지만 수십,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베어 넘겨도 뭔지 모를 불만족스러운 감각이 손을 떠나지 않았다.


“뭔가 기분 별로지?”


혼자 고개를 갸웃하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서 아린이가 그렇게 말했다.


“어어⋯ 좀 찜찜하네.”

“나는 이유 아는데~.”

“⋯⋯⋯⋯?”


그 이유가 뭔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린이는 놀리듯이 내가 삽질하는 모습을 보며 실실 웃기만 할 뿐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왜! 뭔데!! 궁금하게만 하지 말고 말을 해!!!”

“결국은 힘 문제야.”


힘 문제?

아린이의 말에 나는 의식적으로 더 세게 힘을 주고 검을 휘둘렀다.


- 촤아악!


그러자 몬스터의 몸통이 통째로 반으로 갈라졌다.

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방금 힘 문제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

“⋯힘은 충분한 것 같은데?”

“맞아, 힘 문제라고 했지 힘이 부족하다고 한 적은 없어.”

“???”


그게 무슨 소리지, 또 어려운 소리 하네.


“간단히 말해서 힘을 쓰는 방식을 바꿔봐, 순간적으로 내려치듯이 휘두르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균일한 힘을 쭉~ 주는 거지, 마지막에 끊어치듯이 손목에 조금 더 힘을 주면 더 좋고.”

“오케이, 그렇게 한 번 해볼게.”


아린이가 하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대충 감이 온 나는 그대로 힘을 주는 방식을 바뀌었다.

물론 내가 검술천재도 아니고 알려줬다고 바로 따라 할 수는 없었고 초반엔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더 불편하기만 했다.


- 스슥!


“오⋯?”


하지만 그렇게 휘두르기를 수십 번, 반응이 왔다.

처음으로 살갗을 억지로 잡아 찢는 느낌이 아니라 종이를 베듯 부드럽게 베는 느낌이 들었다.


“응, 그거야, 소리부터 다르지?”

“진짜 소리부터 다르네.”


아린이의 가르침을 유의하며 계속 검을 휘두르자 처음엔 100번에 한 번, 그다음엔 95번, 90번에 한 번, 점점 잦은 빈도로 깔끔하게 베는 느낌이 들었다.

힘과 자세, 그리고 타이밍, 모든 것이 하나로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감각이 필요해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이제 그걸 검을 휘두르는 매 순간 할 수 있게 되면 그때부턴 검기를 쓸 수 있느냐 없느냐로 검사의 급이 갈려. 너는 어느 쪽일지 궁금하지 않아?”


이 어렵고 세밀한 감각이 고작 검기를 발현하기 위한 사전 준비일 뿐이라고⋯?

검기를 쓸 줄 아는 검사가 괜히 극소수인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럼 나도 제대로 된 검을 하나 사야 하나, 이런 걸로는 좀 힘들 것 같은데, 사실 말이 검이지 날카로운 얼음막대기일 뿐이니까.”

“줘 봐.”


- 콰아아아!


하지만 내 얼음막대기를 넘겨받은 아린이는 보란 듯이 검기를 펼쳐 보였다.

아, 되는구나.


“검기라고 말은 하지만 정확히는 무기에 마력을 흘려 그 무기의 성능을 더 극대화하는 방법일 뿐이야. 따지고 보면 검도 날카로운 쇠막대기일 뿐이잖아?”


⋯검이라는 물건이 워낙 개념이 확실히 잡혀있고 또 상징적이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따지고 보면 아린이의 말대로 검도 날카로운 쇠막대기에 불과하다.

재질이 쇠냐 얼음이냐의 차이일 뿐 날카로운 물체로 다른 물체를 베어내는 것, 결국 본질은 동일하다.


“⋯이건 또 뭐야?”


그렇게 검을 다루는 데 집중하며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이번엔 아예 20갈래로 갈라진 앞이 막힌 갈림길이 나왔다.

당연히 갈림길 당 한 명씩 들어가라는 소리인지 입구 위에 1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20명을 제각각 떨어트려 놓는 기믹이라면 그만큼 밸런스 패치를 해 적당히 혼자 상대할 만한 적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자기중심적인 사고였다.


“어, 어떡하지.”

“⋯⋯⋯⋯.”


대부분은 괜찮지만 한쪽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아이리였다.

마법사지만 회복과 방어마법에 치중한 힐러인 아이리는 개인 전투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혼자 떨어지게 된다면⋯ 극복 불가능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았다.


“아⋯ 내 인생 진짜⋯.”

“아이리, 괜찮아, 방법이 있을 거야.”


아이리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참기 위한 억지웃음이었다.


“어떡하죠, 같이 들어가거나 열외도 불가능할 것 같은데⋯.”


미즈키가 아이리를 진정시키는 동안 유스케가 조용히 이쪽으로 와 방법을 물었다.

당연히 우리도 어쩌라고, 그냥 가, 라고 등 떠밀 정도의 싸이코들은 아니기에 다들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했다.


“아, 재현아, 네가 있잖아! 네 그림자 병사를 아이리에게 붙여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그 순간, 아주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생각났다.

재현이가 아이리에게 그림자 병사 열댓 명 정도 붙여줘 보호해주면 되는 게 아닌가?


“아⋯ 그게⋯ 아마 안 될 것 같아요. 사실 탑에 들어올 때부터 만일을 대비해 모든 분에게 그림자 병사를 한 명씩 붙여놨었는데 저희 처음에 5명씩 흩어졌던 그때 이동하는 순간 전부 저한테 되돌아오더라구요⋯. 일단 해보기는 하겠지만 아마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이⋯.”


이런,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재현이가 가만히 있는 이유가 있었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마법 아이템들을 최대한 지원해줄게. 이거면 보스급만 아니면 어지간해선 괜찮을 거야.”


소은 누나는 아공간에서 목걸이, 반지, 귀걸이, 모자 등등 온갖 아이템을 끄집어냈다.

예전에 내게 줬던 팬던트 같이 공격과 방어 기능이 있는 아이템들이었다.


“하아⋯ 무력하구만⋯ 무력해⋯.”


하지만 아무리 방법을 고심해도 소은 누나의 마법 아이템을 덕지덕지 입힌 채로 보내는 것, 그 이상의 묘수가 나오진 않았다.

석혁 형님은 S급의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는 현실에 주먹을 쥐락펴락할 뿐이었다.


“아이리⋯.”

“대장, 괜찮아, 한 번 해볼게. 유스케, 켄토. 그렇게 풀 죽어 있지 마. 누구 초상났어?”


아무리 고심하고 고심해도 더 이상의 방법이 나오지 않자 아이리는 곧 마음을 굳혔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그녀 역시 한 명의 헌터이기에 보통 사람에겐 없는 용기와 희생정신이 있었다.


“그럼⋯ 다들 몸조심해.”


마음의 준비를 마친 아이리는 자진해서 먼저 갈림길 안에 섰고 모두는 그 모습을 씁쓸히 바라보며 갈림길 안에 섰다.


- 띵!


그리고 그렇게 모두가 갈림길 안에 서자 마찬가지로 숫자에 불이 들어오며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감각과 함께 시야가 바뀌더니 어느새 던전 안에 혼자 서 있게 되었다.




***




나는 달렸다.

최대한 빠르게 이곳을 돌파하기 위해 전력으로 달렸다.

혹시라도 일찍 나가면 다른 사람을, 아이리를 도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하다못해 아이리가 빈사 상태가 되어 겨우 탈출했을 경우 내가 먼저 나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성역으로 치료해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는 또 뭔 짓을 하려고 이렇게 아무것도 없지?”


몬스터가 나올 거면 진작에 나왔어야 할 만큼의 거리를 달렸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고 있다.

차라리 대량의 몬스터면 상대하기 편한데 설마 보스전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갑자기 공중에 시스템창 같은 커다란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오르며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났다.


[당신의 동료를 믿습니까?]

- 경고 : 이 앞으론 끔찍한 시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목숨을 장담하지 못합니다.


“뭐야? 어디서 입을 털고 있어.”


그 메시지를 본 나는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지, 다음 메시지가 뜨기를 기다렸다.


- 하지만 당신의 소중한 건강과 생명을 지켜낼 방법이 있습니다.


“들어온 놈들 죽으라고 만들어놓은 탑에 살길이 있다고?”


대체 무슨 소리가 하고 싶어 이렇게 떡밥을 까는 걸까, 그 내용을 살펴본 나는 반가움에 코웃음을 쳤다.


[당신과 당신의 옆에 위치한 동료가 선택한 길에 따라 시련의 난이도가 조절됩니다.]


- 협력의 길

양측 모두가 선택 시 공정한 시련이 내려집니다.


- 도망의 길

상대가 협력의 길로 들어간 경우 본인의 시련은 모두 상대방에게로 향합니다.

단, 양측 모두가 선택 시 당신들을 쫓기 위해 더욱 강력한 시련이 풀려나게 됩니다.


“이거 그거 아닌가, 침묵하면 1년 자백하면 5년.”


죄수의 딜레마였나.

아무튼 서로를 믿을 수 있냐, 없냐, 그것이 문제인 선택지였다.

그나저나 내 옆에 위치한 동료라⋯.


“제발, 제발 똑똑한 선택해라⋯.”


그게 누구였는지 얼굴을 떠올린 나는 믿는 신은 없지만 일단 누군가를 향해 기도했다.

그리고 협력의 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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