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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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9.20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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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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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211화

DUMMY

협력의 길로 들어온 지 한참이 지났다.


- 상대방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메시지만 덩그러니 떠 있을 뿐 앞길이 막혀있었다.

뭘 이렇게 오래 고민하는 건지 원.


- 드르르륵!


선택이 너무 오래 걸려서 아예 앉아서 기다리는데 막혀있던 길이 열림과 동시에 내 뒤로 벽이 솟아나며 퇴로를 차단했다.

그리고 사이렌처럼 시뻘겋게 번쩍이는 요란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 상대방이 도망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 당신은 배신당했습니다, 모든 시련이 당신을 향해 들이닥칩니다!


“오, 드디어 선택했구만.”


지루한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할 일이 생긴 나는 벌떡 일어나 곧장 앞을 향해 달렸다.

이 앞에 뭐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여기가 뭐, 조심한다고 조심이 되는 곳도 아니고 그냥 최대한 빨리 돌파하는 게 능사인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한동안 별일 없이 앞으로 나아가자 딱 싸우기 좋은 투기장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역시 시련이라고 하면 잡다한 몬스터가 우르르 나오는 것보다 보스전 쪽이 어렵긴 하지.


“응?”


그렇게 내가 싸워야 하는 몬스터가 뭘까, 앞으로 나서 주변을 살피는데 저 멀리 사람의 형상이 보였다.

처음엔 그냥 무라고스처럼 사람 형상의 몬스터겠구나~ 하고 말았는데 다가가며 자세히 보면 볼수록 어떻게 봐도 나와 같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한 남자가 코를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헹!”


아, 그런데 나와 같다는 말은 취소.

살면서 딱히 외모 덕을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외모 탓을 할 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는⋯ 못생겼다, 그냥 못생겼다고만 하면 부족하고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짜증과 적개심이 들 정도였다.

저 정도면 얼굴 때문에 겪은 수모에 세상에 원한을 품고 몬스터와 손잡았다고 해도 인정하고 측은히 여길 의향이 있다.


“그⋯ 내 말 알아듣나?”


외모는 영락없는 인간이지만 그라고스에게 수많은 이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저렇게 못생긴 사람이 우리 세상 사람은 아닐 것 같고 이세계인일 가능성이 높으니 일단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해 봤는데.


“인간 주제에 어느 안전에서 먼저 입을 놀리느냐.”


그가 뭐라고 웅얼거리자 마법적인 무언가가 한 번 언어를 번역해줘 분명 다른 언어인데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쨌든 대화는 통하는 것 같았다.


“거 당신도 나랑 같⋯ 당신도 인간인 것 같은데 뭘 인간 주제에 같은 말을 해?”

“흐흐흐⋯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다니 딱 인간다운 어리석음이구나.”


내가 겉모습만 보고 판단했으면 인간 취급도 안 했겠지 이 사람아⋯.

좀 적당히 못생겼으면 뭐라고 한마디 했을 텐데 너무 못생겼으니 남의 아픈 곳을 일부러 후벼파는 것 같아 욕하기도 미안했다.


“그럼 당신은 인간 아니면 뭔데?”

“훗, 나는 말이지.”


내가 그의 정체를 묻자 그는 꼭 물어봐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불의 신 마그어드 님의 신탁을 받은 반신 마네티다!”

“⋯너 이번이 첫 전투지?” “뭣⋯! 그, 그걸 어떻게⋯!”


반신 명함 달고 나온 첫 출전이니 저렇게 어깨뽕이 들어가 있는 거겠지, 이세계인이라도 사람 심리는 다 거기서 거기인가 보다.


“그런데 신이면 신이고 아니면 아니지 애매하게 반신은 뭐야? 반만 신이라는 건가?”

“지금은 절차상 시험대에 올라 있을 뿐 천지를 불태우는 업화의 불길도 버텨낼 능력이 있는 나는 곧 마그어드 님의 뒤를 이어 불의 신이 될 것이다! 그러니 신을 향한 나의 위대한 첫걸음의 제물이 될 그대에게 미리 내게 예를 표할 수 있는 특권을 주도록 하지.”


뭐야, 불길을 버텨낼 능력이 있으면 신이 될 수 있어?

나도 그라고스의 불씨 때문에 불길 버티는 건 꽤 자신 있는데 그럼 쟤네 세계에서 태어났으면 신 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우리 세계는 불의 신이 없는 거야 직무 유기를 하는 거야, 나 같은 인재를 안 업어가네.


“그런데 예를 표해봤자 뭐해? 어차피 여기서 나 아니면 당신 하나는 죽는 거 아니야?”

“뭐? 하하! 네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냐? 죽음은 끝이 아니다, 삶의 무한한 굴레 속에서 언젠가 다시 조우할 지도 모를 일이지!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네놈에겐 불의 신 마네티 님의 가호가 깃드는 것이다!”


으~ 저렇게 못생긴 신 가호는 별로 받고 싶지 않은데.


“어⋯ 뭐, 지금은 내가 좀 바빠서 예는 나중에 표하는 걸로 하고 아무튼 당신을 해치워야 앞으로 지나갈 수 있다는 건 맞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모를 못생긴 놈 설정 놀음에 놀아줄 여유는 없다.

내가 메이스를 꺼내 들며 적의를 들어내자 마네티의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처음이니만큼 기분 좋게 자비를 베풀어주려 했건만 그 영예를 스스로⋯.”

“아! 좀! 불의 신이 아니라 아가리의 신이야? 어차피 서로 일이잖아, 어?! 비지니스! 일 좀 하자, 일 좀!”


내가 놈의 말을 끊자 이제 마네티의 눈동자가 확 커졌다.

인내심이 바닥나서 스스로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폭발하기 직전의 징조였다.


“내게 있어 벌레와 다를 바 없는 하등 생물이!!! 최대한 고통스럽게 태워주마!!!”


그리고 역시, 뚜껑이 열린 마네티는 순식간에 투기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시뻘건 화염을 전신에서 뿜어냈다.


“⋯역시 신에도 급이라는 게 있는 건가, 반신 기준 되게 널널하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마네티의 화력은 그냥 뜨뜻미지근한 정도였다.


“오호! 버티는가! 하지만 이 마네티 님의 불길 속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아마 평생?” “⋯어?”


마네티는 자신의 힘을 더욱 과시하기 좋은 상대라고 생각했는지 혼자 신이 나 있었지만⋯ 자신의 불길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메이스를 꽉 쥐고 눈앞에 나타난 나를 보자 웃음기가 싹 가셨다.


- 빠아아악!


“케헥!”


마네티의 머리통을 내려치자 충분한 데미지가 들어갔다는 감각이 있었다.

메이스의 성능 자체는 이미 최고치를 찍었지만 나의 순수 능력치가 올라간 덕이었다.


“크으윽! 이, 이것도 버텨보시지!”


내게 머리통을 얻어맞은 마네티는 깜짝 놀라 한 손으로 머리를 꾹 누르며 뒤로 펄쩍 뛰어 거리를 벌린 뒤 손바닥에서 아까보다 강한 화염을 뿜어냈다.

거참, 그래도 신 후보라는 게 품위 유지 좀 하지 저렇게 놀라고 아픈 티를 팍팍 내서야.

그나저나 불의 신이면 불 공격에 면역인가?

갑자기 그런 게 궁금해진 나는 마네티와 마찬가지로 손에 화력을 집중해 테르고스의 불씨를 발동해 맞불을 놨다.


- 콰아아아아!


전과 비교해 체력이 높아진 만큼 테르고스의 불씨의 화력도 그만큼 증가해 있었다.


“어어?”


그래서일까, 내가 뿜는 불꽃의 화력이 마네티의 불꽃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마네티는 저게 진짜 최고 화력인지 적잖이 당황했고 결국 내가 뿜은 불에 전신이 불탔다.


“⋯⋯크하하⋯ 크하하하! 네놈도 불의 권능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하지만 멍청한 놈! 나는 불의 신이다! 그런 내가 네놈의 불에 탈 것이라 생각했느냐!!!”

“흠, 역시 안 통하네.”


- 쉬이익!


정신이 완전히 마네티에게 쏠려있을 때 갑자기 뒤통수가, 정확히는 뒤통수와 정수리 사이, 대각선 부분이 따끔했다.

무언가가 날카로운 물체가 날아들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 나는 고개를 휙 돌리며 따끔함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히트 비전을 발사했다.


- 파지지지직!

- 퍼어엉!


날카로운 물체를 히트 비전의 고열로 녹이자 그것이 폭발하며 뿌연 수증기를 뿜어냈다.


“야, 이 못생긴 새끼야! 내가 나랑 같이 싸워야 할 땐 사방팔방 불 지르고 지랄하지 말랬지!”


나를 향해 날아든 물체는⋯ 다름 아닌 고드름이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피부가 허옇고 옅은 푸른빛의 드레스를 걸친 여성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녀는 마네티와는 반대로⋯ 아름다웠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와 약간 날카롭고 도도한 눈매가 얼음공주 같은 별명이 딱 어울리는 그런 인상이었다.

아무래도 원래는 둘 중 하나만 상대하면 되는데 내 파트너가 도망의 길로 들어간 덕에 내가 1대2로 상대하게 됐나 보다.


“미, 미안해! 엘라! 깜빡했어!”


새로 나타난 엘라라는 여자가 마네티에게 소리치자 그는 찍소리도 못하며 허둥지둥 불길을 거둬들였다.

하지만 마네티는 욕을 얻어먹어 놓고서, 아니 오히려 욕을 얻어먹어서 좋다는 듯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어이구야⋯ 그런 거구나⋯ 하지만 그래봤자 상처만 남을 텐데⋯.


“엘라! 그 자식도 나처럼 불을 다루는 놈이야! 그러니까⋯!”

“나도 봐서 알아, 냄새나는 거 같으니까 입 닥쳐, 그리고 기분 더러우니까 슬금슬금 가까이 오지 마.”

“으응!”


마네티의 눈물겨운 구애를 뒤로하고 나는 엘라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끝까지 나를 깔보는 눈으로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와 땅에 발을 디디며 말했다.


“흐음, 그럭저럭 괜찮게 생겼군. 아니면 저 못생긴 것만 매일 봐서 내 눈이 낮아졌거나.”

“댁도 그렇게 예쁘지는 않아요.”

“호오? 그런 앙칼진 모습 싫지 않아, 귀여워.”


- 화르륵.


엘라가 씩 웃으며 말하자 뒤에서 마네티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질투심에 뒤에서 아주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넌 이 지루한 곳에서 나갈 때까지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구나.”


- 쩌저적.


엘라가 가볍게 손짓하자 발끝에서부터 으슬으슬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지루한 곳에서 나갈 때까지 그대로 꽁꽁 얼려서 보관해줄게, 기쁘지? 나의 컬렉션이 되어 함께 할 수 있는 거란다.”

“⋯⋯⋯⋯.”

“⋯⋯⋯⋯.”


엘라는 계속해서 나를 얼렸다.

얼리려고 했다.


“⋯⋯⋯⋯?”


하지만 얼지 않았다.

정수가, 그 귀엽고 착한 고양이가 하악질 하며 외부의 냉기에 저항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잘 안 얼지? 내가 원래 추위를 안 타.”

“무, 무슨⋯! 엘카르 님의 신탁을 받은 반신인 내가 얼리지 못하는 것 따위가 있을 리가⋯!”


넌 또 얼음 신의 반신이구나.

아무래도 저쪽 세계는 신의 커트라인이 상당히 낮은 것 같다.

이거 내가 저쪽 세계 사람이었으면 불의 신, 얼음의 신 혼자 다 해 먹었겠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슬슬 내 차례지?”


충분히 얼릴 시간을 줬는데 엘라는 내 발끝조차 제대로 얼리지 못했다.

나는 엘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눈에 점화의 화력을 집중했고.


“힉!”


- 파지지지직!


내가 히트 비전을 발사하는 순간 응축되는 열기를 감지한 엘라는 빠르게 몸을 날려 일단은 회피했다.

오~ 역시 반신은 반신이라는 건지 반응속도가 장난 아니네.


- 지지지지직!


“꺄아아악!”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히트 비전은 총이나 화살처럼 한 발 뿅 나가고 마는 투사체가 아닌 레이저처럼 쭉~ 나가는 형태였기에 피해도 내가 고개만 슥 돌리면 그만이라 엘라는 가슴팍에 히트 비전을 맞고 쓰러졌다.


“미, 미친, 이게 뭐야⋯ 마네티! 저, 저 새끼 죽여!”


순식간에 가슴팍에 구멍이 뚫린 뻔한 엘라는 화들짝 놀라 얼음장벽으로 주변을 둘러 몸을 숨기고 마네티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응! 맡겨둬!!!”


그러자 마네티는 엘라에게 점수를 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후다닥 몸에 불을 지피며 달려들었다.


“감히 엘라의 완벽한 몸매에 상처를 입히다니, 네 이놈!!!”


- 쩌저적!


“⋯뭣?”


얼음의 신에겐 불, 불의 신에겐 얼음.

양쪽 모두 다룰 수 있는 나는 활활 타오르는 몸뚱이를 믿고 무식하게 돌진하는 마네티를 끌어 안⋯으려다가 얼굴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그냥 손으로 목을 붙잡아 혹한의 냉기를 최대출력으로 방출했다.


“크억⋯ 컥⋯!”


역시, 불의 반신답에 마네티는 조금 버티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정수의 냉기에 패배한 그의 불꽃은 점점 사그라들었고 이내 그의 목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마네티는 자신의 모가지를 꽉 조르고 있는 내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근육의 신은 아니라 그런지 근력은 형편없었다.


“대, 대체 어떻게⋯ 어떻게 상반되는 두 가지 권능을 동시에⋯!”


이제 몸에서 불꽃이 거의 꺼진 마네티는 자신의 패배를, 불과 얼음을 동시에 다루는 자가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안면을 기괴하게 꿈틀거리며 중얼거렸다.

뭐, 나도 처음엔 서로 반발을 일으켜 성능이 제한됐으니 이게 정상적인 경우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개랑 고양이가 착한 애들이 왔어, 서로 잘 놀더라고.”

“뭐⋯?”

“그냥 그런 게 있어.”


- 콰자작!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든 말든 어쨌든 내 나름대로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순간 나는 손에 콱 힘을 줘 충분히 꽝꽝 얼어붙은 마네티의 목을 깨트려버렸다.


- 화륵, 화르르륵⋯.


내가 그의 목을 깨트리자 아무리 불의 신의 신탁을 받은 반신이라도 몸과 머리가 분리되는 건 어쩔 수 없는지 마네티는 단말마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몸이 타닥타닥 타들어 가 결국 작은 불씨만 남기고 사라졌다.


“일단 한 놈은 해치웠고⋯.”


마네티가 완전히 소멸한 것을 확인한 나는 엘라는 향해 눈을 돌렸다.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죽는 게 끝이 아니더라고 하대요, 마네티가.”


그리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벌벌 떨고 있는 엘라를 향해 말했다.


“뭐⋯ 나도 살다 보니까 평생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인연을 우연히 다시 만나는 일이 많더라고요, 생각보다.”


예를 들면 김지호라던가 그라고스와 무라고스라던가.


“그래서 말해두는 건데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나중에 이런 장소, 이런 입장이 아니라 그냥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다시 만나게 되면⋯ 뭐, 그땐 그랬지~ 하면서 식사라도 한 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치지지지지직⋯!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마친 나는 다시 눈에 점화의 화력을 모았고 나의 눈은 시뻘건 안광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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